수사 성과 없는 상황서 한동훈 체제 ‘중수청’ 출범 시 수사 범위 중첩 입지 축소 불가피
이런 상황이 반가울 수 없는 수사기관들이 있다. 바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와 국가수사본부(국수본)다. 권력 비리를 수사하기 위해 출범한 공수처와 한국형 FBI를 꿈꿨던 국수본은 검경 수사권 조정과 공수처 설립 이후 1년이 넘도록 미진한 수사력으로 비판을 받고 있다. 두 조직 모두 이런 분위기를 읽고 대응에 나섰지만, 한동훈 법무부 장관 등이 주도할 수사권 조정 개혁의 칼날을 비켜갈 수 있을 것인지는 의문이다. 중수청이 설립돼 수사 권한을 넓게 확보할 경우 두 조직 모두 검사들이 대거 포진하게 될 중수청에게 사건을 뺏길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부진한 성과에 말까지 바꾼 공수처
설립 초기만 해도 13명의 검사면 충분하다고 했던 김진욱 공수처장. 하지만 5월 16일 취임 480일에 맞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는 “25명인 현재 공수처 검사 정원을 세 자릿수로 늘리는 게 공수처 정상화”라며 말을 바꿨다. 그동안의 미진한 수사 성과에 대해 인정하면서도 ‘인력’을 늘려야 한다며 대안을 제시한 셈이다.
김진욱 처장은 이 자리에서 “적정 정원은 검사만 세 자리 숫자”라며 “그게 안 된다면 공수처법 원안의 숫자(50명)는 최소한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앞서 윤석열 대통령이 “고위공직자범죄에 대해 공수처의 우선적 수사권을 규정한 공수처법 조항을 폐지해 공수처를 정상화하겠다”고 말한 것과 관련해 오히려 ‘검사 확대’를 제안한 셈이다.
사실 공수처는 지난해 1월 출범한 이후 꾸준히 비판을 받아왔다. △정치 편향적 수사 대상 선택 △수사 능력 부족 △일반 국민 사찰 의혹 등이 제기되며 ‘공수처 무용론’까지 제기됐다. 공수처는 이런 여론을 고려해 수사 역량 부족에 대한 비판과 지적에 대해 전문 연구기관 용역도 발주했다. 김 처장이 밝힌 ‘인력 증원을 골자로 한 공수처법 개정 추진’과 별개로 조직 운영 효율을 강화해 수사 능력을 키워보자는 취지다.
하지만 이런 공수처를 바라보는 법조계 시선은 곱지 않다. 비판할 명분을 제공한 것이 오히려 공수처라는 지적이다. 검찰 관계자는 “25명의 검사라면 과거 대검 중앙수사부 정도의 규모로 볼 수 있고, 반부패수사부 2곳 이상의 규모에 해당하는데 왜 규모가 작은 것을 수사력 부족의 근거로 제시하는지 모르겠다”며 “제대로 된 법조인의 비리나 정치권력 사건을 1~2건만이라도 정상적으로 기소해 유죄를 받았다면 이런 비판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국수본은 더 나은 상황이라지만…
2021년 1월 1일 출범 당시 경찰청 국수본은 공수처에 비해서는 상황이 나은 편이다. 하지만 ‘한국형 FBI’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과 달리, 국수본은 ‘경찰 내 수사전문조직’으로 성장하지 못했다. 특히 한국토지주택공사(LH) 투기 의혹 등 굵직한 사건에서 국민들이 원하는 성과를 만들어내지 못하면서 검찰의 대체적 수사기관이 되기에는 실력이 부족하다는 평가도 나왔다. 특히 한동훈 장관이 법무부 산하에 중수청를 설치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가운데 중수청과 국수본 두 조직 모두에 ‘검사’ 출신이 중용될 가능성까지 제기되면서 출범 1년 6개월 만에 입지가 흔들리고 있다.
국수본은 출범과 동시에 ‘경찰 수사권 확대’의 상징과 같은 조직이었다. 검찰의 수사범위를 6대 범죄로 제한하면서 강화된 경찰수사 권한과 역할을 도맡는 책임수사 시스템의 핵심 기구였다. 국수본부장의 임기를 2년으로 보장한 까닭도 그에게 책임수사 권한을 부여하는 차원이었다. 하지만 1년 6개월 사이 국수본은 뚜렷한 성과를 보여주지 못했다.
특히 국수본이 총괄 지휘한 ‘부동산투기 의혹’ 수사는 국수본도 기존 검찰처럼 정치권력 앞에 취약하다는 점을 드러냈다. 경찰은 부동산투기 혐의자 6081명(1671건)을 수사해 4251명을 검찰에 송치했지만, 이 가운데 국회의원과 그 가족은 33명의 혐의 대상자 가운데 14명만 송치했다. 이마저도 국회의원은 6명, 구속한 경우는 1명에 불과했다. 엄청난 규모의 수사 성과에 비해 ‘국회의원 등 고위직 수사 성과’가 미진한 점이 비판을 받고 있는 셈이다.
남구준 국수본부장은 지난 3월 취임 1주년 언론 인터뷰에서 “성과가 미진했다는 평가가 있는 점을 알고 있다”면서도 “경찰의 역사가 곧 수사의 역사다. 70년이 넘는 노하우가 있다”고 나아질 것임을 시사했다.
하지만 중수청이 변수다. 현재 국회는 중수청 설치를 위한 사법개혁특별위원회(사개특위) 구성을 논의하고 있는 상황이다. 중수청이 현재 논의 중인 방안대로 출범하면 검찰의 남은 ‘2대 범죄’ 수사권한까지 폐지되면서 중수청이 이를 승계할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아직 알 수 없는 중수청의 수사 범위다. 중수청이 검찰에 남아있는 2가지 범죄 수사 영역만 이어받을 가능성은 높지 않다. 이름에 걸맞게 부패·경제 외에 추가적인 수사 대상을 부여받을 가능성이 높다. 경찰 국수본은 수사범위와 중첩돼 기존 수사권한을 침해받게 된다.
특히 검찰이 중수청을 과거 검찰 내 강력한 특수 수사부서였던 ‘대검 중수부’처럼 만들려고 하는 점은 국수본에게도 부담스럽다. 현재 검찰 안팎에서는 초대 중수청장으로 현직 검사나 검사 출신 변호사들을 거론하는 상황이다. 특히 경찰청장의 대우를 장관급으로 높이면서, 중수청의 대우도 비슷하게 할 경우 현직 검사들이 대거 중수청으로 넘어갈 가능성도 다분하다. 안 그래도 수사력 부족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는 경찰 국수본 입장에서는 검사 출신들이 대거 포진하게 될 중수청과의 비교가 부담스러울 수 있다.
심지어 후임 국수본부장으로 검찰 출신 인사가 올 것이란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특수통 출신의 한 변호사는 “윤석열 라인으로 분류되는 검사 출신 변호사들 중 옷을 벗은 지 1년이 넘는 이들이 국수본부장으로 갈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며 “검찰 출신이 만일 국수본부장으로 가게 된다면 그 후에도 요직에 검사들이 여럿 갈 수 있지 않겠냐”고 귀띔했다.
불가능하지도 않다. 외부 개방직 임용 시 자격 요건은 △10년 이상 수사업무 경력자 가운데 고위공무원·경찰 총경 이상 출신 △판사·검사 또는 변호사로 10년 이상 있었던 사람 △정당 당원이거나 당적을 이탈한 날부터 3년이 지나지 않은 사람 △선거로 취임해 공직에 있거나 그 공직에서 퇴직한 날부터 3년이 지나지 않은 사람이다.
심지어 윤석열 대통령과 함께 수사를 하며 좌천도 함께 경험했던 이복현 전 부장검사(사법연수원 32기)는 내년 2월 임기가 끝나는 남구준 본부장의 후임으로 거론되고 있다. 검경 수사권 조정의 상징과도 같은 국수본의 본부장에 검사 출신이 온다면 불쾌할 수밖에 없는 얘기들이다.
앞선 법조계 관계자는 “이제 공수처와 국수본, 그리고 중수청은 국회의 영향도 받겠지만 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행보와 정책 하나하나가 신경 쓰이는 상황”이라며 “검사 출신 첫 대통령이 나온 만큼, 수사기관들 곳곳에 검사들이 임명되는 모습이 등장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서환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