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패’ 민주당 책임론 놓고 내홍, 이재명 출마 논란·지도부 전략 부재 거론…‘압승’ 국민의힘 산적한 과제 이제 시작
2018년 치러진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와 비교하면 지방정부 구도가 백팔십도 바뀌었다. 당시 민주당은 17개 광역단체장 중 14곳에서 깃발을 꽂았다.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은 ‘보수의 심장’ 대구·경북(TK)을 유지하는 데 그쳤다. 당시 무소속이었던 원희룡 현 국토교통부 장관이 당선된 제주지사까지 합쳐 3곳에 불과했다.
6월 1일 출구조사 발표 때까지만 해도 민주당은 광역단체장 10곳을 내주고 호남(전북‧전남‧광주)과 제주만 겨우 건지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우세했다. 일각에서는 민주당이 지역기반 정당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는 평가를 내놨다. 그러던 중 2일 새벽 경기도지사 개표 막판 김동연 후보가 김은혜 후보를 상대로 대역전극을 펼치면서 겨우 체면치레를 할 수 있게 됐다.
민주당 내부에서는 이번 지방선거를 두고 변명의 여지가 없는 참패라는 게 공통된 의견이다. 그럼에도 광역의회·기초단체장·기초의회 등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2018년 자유한국당처럼 압도적으로 내준 것은 아니라는 평가도 있다.
서울시의 경우 구청장은 국민의힘 17곳, 민주당이 8곳을 차지했다. 2018년 지방선거에서는 24 대 1로 자유한국당이 치욕을 맛봤다. 서울시의회 역시 국민의힘이 전체 112석 가운데 68%에 해당하는 76석을 차지하면서 12년 만에 다수당 위치에 올랐다. 민주당은 36석을 가져가는 데 그쳤다. 하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이 102석으로, 6석의 자유한국당에 압도적 승리를 거둔 것과 비교하면 선방했다고 볼 수도 있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이번 지방선거 결과가 기대에 턱없이 부족한 참패인 건 사실이다. 김동연 당선인의 경기도지사가 아니었다면 정말 무너질 뻔했다”며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민주당에 악재가 계속 겹쳤는데도 의외로 선전했다. 서울시도 구청장이나 시의원을 4년 전 자유한국당처럼 모두 내주지는 않았다. 마냥 낙담하고만 있을 건 아니라고 본다”고 전했다.
그럼에도 민주당 안팎에서는 행정부에 이어 4년 만에 지방권력까지 넘겨주게 된 패배 원인을 두고 의견이 분분하다. 이재명 상임고문의 인천 계양을 국회의원 보궐선거 출마를 두고도 다양한 평가가 나온다. 출마 강행 여부를 포함해 지역구 계양을 선택이 옳았느냐는 지적이다.
고진동 정치평론가는 “이재명 의원의 이번 선거 출마가 제대로 된 승부를 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 이재명 의원이 나옴으로써 대선의 연장전이라는 인식을 갖게 만들었다. 그럼 이렇게 된 이상 정면승부를 했어야 했다. 김병관 후보가 먼저 준비를 했었다고는 하지만 성남 분당갑에 출마해 안철수 의원과 붙었어야 한다. 본인의 당선 여부와 상관없이 판을 키울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지방선거 나오면서 반성이 있었어야 한다. ‘출마 반대 많았지만 심판 받겠다’ ‘저 때문에 지방선거까지 패배할 수 없다’ ‘민주당이 더 좋은 지방정부 만들도록 힘을 달라’고 호소했어야 한다. 하지만 그런 모습이 부족했다”고 덧붙였다.
정치권에서는 민주당이 대선 이후 반성과 쇄신 없이 ‘졌잘싸’라고 평가하며 제대로 된 패배 원인 분석을 하지 않아 지방선거 패배까지 이어졌다는 해석이 봇물을 이룬다. 하지만 반대 목소리도 있다. 앞서 민주당 관계자는 “대선 직후 패배 원인을 찾겠다고 평가하고 쇄신·책임 공방을 벌였다면, 지방선거는 지금보다 훨씬 미궁으로 갔을 것이다. 이재명 의원은 등판조차 못했다”며 “선거 패배가 결정된 후 벌써부터 일부 중진 정치인들이 ‘책임론’을 꺼내들며 이빨을 드러내고 싸우려 달려들고 있지 않느냐”고 꼬집었다.
가장 큰 문제점으로 당 지도부의 미숙함이 꼽히고 있다. 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와 공천관리위원회는 지방선거를 앞두고 서울시장 후보 송영길 전 대표 배제 및 번복 등 공천 과정에서 잡음을 일으켰다. 선거운동 과정에서는 박지현 전 비대위원장이 ‘86그룹 용퇴론’과 최강욱 의원 징계, 반성과 쇄신 등을 꺼내들었다. 이 과정에서 윤호중-박지현 공동비대위원장 간 갈등설 등 당내 불협화음이 발생했다. 지도부끼리 싸우느라 정작 후보들에게는 스포트라이트가 가지 않았다는 것이다. 개혁 성향의 민주당 한 초선 의원 말이다.
“‘후보 리스크’는 들어봤어도 ‘지도부 리스크’는 처음 들어봤다. 박완주 의원 성비위 문제 등 민주당도 악재가 많았지만, 윤석열 정부도 한동훈 장관 임명, 김건희 여사의 돌출행동, 용산 집무실 이전 등 문제가 많았다. 이번 선거에서 절반은 가져올 수 있었는데 못 가져온 것은 지도부의 책임이다. 반전의 기회를 사과·쇄신 발언으로 다 날렸다. 메시지부터 전략이 하나도 안 맞았다. 예를 들어 박지현 전 위원장이 ‘86그룹 용퇴론’을 말했다. 그런데 서울시장 후보로 뛰는 송영길 후보가 86그룹의 대표주자 아니냐. 지도부는 용퇴하라고 하고, 현장에서 뛰는 운동원들은 뽑아달라 하는 것 자체가 논리적으로 모순이었다.”
지도부 미숙함은 전략의 부재로 이어졌다. 윤석열 정권에 대한 ‘견제론’보다는 민주당 후보들의 ‘인물론’으로 나갔어야 했다는 아쉬움이 여기저기서 나온다. 야권의 한 관계자는 “윤석열 정부에서 인사 검증 논란, 한동훈 장관 임명 및 검찰공화국 구축, 용산 대통령 집무실 이전 강행 등 여러 문제가 도출됐다. 그래도 어쨌든 이제 취임해 국민들의 불만이 폭발할 정도는 아니었다”며 “또한 민주당의 최근 ‘검수완박’ 입법 처리를 통해 거대 야당의 힘을 보여줬다. 그런 상황에서 정부 ‘견제론’이 통하기는 어려웠다”고 설명했다.
앞서 민주당 초선 의원 역시 “‘윤석열 정부를 견제하기 위해 민주당에 힘을 달라’고 호소하기엔 출범한 지 한 달밖에 안 돼 기간이 짧았다”고 인정하면서 “이번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들의 면면을 봤을 때 국민의힘 후보들보다 능력이 좋았다. 따라서 민주당 후보들의 지역 인재 ‘일꾼론’으로 선거운동 방향을 잡았어야 했다”고 아쉬워했다.
민주당 지도부는 6월 2일 오전 비공개 회의 끝에 지방선거 참패의 책임을 지고 총사퇴를 결의했다. 윤호중 전 공동비대위원장은 “비상대책위원 일동은 이번 지방선거 결과에 책임을 지고 전원 사퇴하기로 했다”며 “지지해주신 국민 여러분과 당원 여러분께 사죄드린다”고 밝혔다.
박지현 전 공동비대위원장도 자신의 SNS(소셜미디어)를 통해 “우리는 완벽하게 졌다. 대선에 지고도 오만했고, 달라져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변화를 거부했다”며 “나부터 반성하고 책임지겠다”고 사퇴 의사를 전했다. 그러면서 “민주당에 새 희망의 불씨를 만들어준 2030 여성들께 감사의 인사를 남기고 싶다. 이번에는 졌지만 아직 우리의 희망을 포기할 때는 아니다”라며 “또 다른 모습으로 여러분과 함께 길을 열겠다”고 향후 행보에 대한 암시를 덧붙였다.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은 지방권력까지 손에 쥐었지만 난관은 이제부터라는 지적이다. 고진동 정치평론가는 “대선과 지선 모두 국민의힘이 잘해서 이긴 게 아니다. 윤석열 정부나 국민의힘이 아직 부동산·경제·외교·안보·남북 문제 등에 대해 국민들 눈에 들어오는 정책을 하나도 내놓은 게 없다. 이번 지방선거는 이들에 대한 막연한 기대의 반영”이라며 “정부여당이 앞으로 제대로 된 모습을 보이지 않으면 국민들은 바로 돌아설 것”이라고 꼬집었다.
실제 정부여당은 대통령직인수위부터 정부 출범 초기까지 지방선거 눈치를 보며 자신들 앞에 산적한 과제를 뒤로 미루는 모습을 보여 왔다. 여성가족부 폐지를 골자로 한 정부조직 개편도 실시하지 않았고, 부동산 대책도 내놓지 않았다. 이준석 당대표의 성상납 및 증거인멸교사 의혹과 관련한 국민의힘 중앙윤리위원회의 징계절차도 지방선거 이후로 연기했다.
이러한 난제들에 대한 정부여당 결정에 따라 향후 민심의 향배가 달라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야권의 한 관계자는 “현재 윤석열 정부 내각 구성을 보면 검찰과 기재부 출신들의 합작 정부다. 기존 국민의힘 정치인들은 점차 배제되고 있다. 지방선거 이후 국민의힘 내부도 ‘윤핵관’을 중심으로 윤석열 당으로 빠르게 변모할 것”이라며 “그러다 보니 여당 내부에서도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당권을 잡기 위한 경쟁이 시작되고 있다. 그 1라운드는 이준석 대표의 윤리위 징계 결과다. 이준석 대표의 거취가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 국민의힘이 민주당보다 더 극심한 내분 상황에 들어갈 수도 있다. 위기는 야당의 공격이 아니라 내부 분열에서 올 수 있다”고 귀띔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