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정부 수소 관련 예산 삭감 등 지원 미온적…현대차 “신차 출시 능사 아냐, 연구 계속 진행중”
현대차는 ‘수소 경제’를 선도하는 기업으로 자리매김하겠다는 의지를 숨기지 않았다. 정의선 현대자동차 회장은 지난해 10월 회장 취임사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수소연료전지 기술을 자동차는 물론 다양한 분야에 활용해 인류의 미래 친환경 에너지 솔루션으로 자리 잡게 할 것”이라고 전했다. 정 회장이 취임한 후 진행한 첫 공식 행보도 제2차 수소경제위원회 민간위원으로 참여한 것이었다.
현대차는 앞서 2018년 수소차 ‘넥쏘’를 출시했다. 현대차는 당시 “넥쏘는 단순한 이동 수단을 넘어 화석연료에 의존했던 기존 자동차 산업의 패러다임을 바꿀 수소전기시대의 아이콘”이라며 “미세먼지 문제 해결은 물론 자동차산업 제2의 전성기를 가져올 궁극의 친환경차”라고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판매량과 수익성만 놓고 보면 현대차의 수소차 사업은 아직 개화도 못한 상황이다. 우선 넥쏘의 판매 실적이 부진하다. SNE리서치에 따르면 넥쏘의 글로벌 판매량은 지난해 1분기 1807대에서 올해 1분기 1710대로 감소했다. 현대차의 전기차 ‘아이오닉5’ 판매량이 수만 대가 넘는 것과 비교되는 대목이다.
현대차는 지난 4월 1분기 경영실적을 발표하면서 “글로벌 친환경차 시장은 전기차를 중심으로 높은 성장세를 이어갈 것으로 내다본다”며 “GV60, GV70 전동화 모델, 아이오닉6 등 주요 신차의 글로벌 출시를 통한 전기차 라인업 강화 등에 집중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이날 수소차 관련 언급은 없었다.
현대차는 전용 전기차 아이오닉5에 이어 아이오닉6의 생산 계획까지 수립했고, 아이오닉7 출시에 대한 소문도 나온다. 현대차그룹 계열사인 기아 역시 전용 전기차 EV6에 이어 EV7, EV9 등을 출시할 예정이다. 하지만 수소차의 경우 오는 2023년 넥쏘 2세대 모델 출시 외에는 알려진 계획이 없다. 현대차그룹 안에서 넥쏘 외에는 이렇다 할 수소차가 없는 것이다.
현대차는 2025년부터 제네시스의 모든 신차를 수소차와 전기차로 출시하겠다고 지난해 9월 밝혔다. 현재 제네시스 G80과 GV70의 전기차 모델이 출시됐으며 다른 모델의 전동화 작업도 진행 중이다. 하지만 현대차의 수소차 계획에 대해서는 여러 뒷말만 난무하고 있다. 제네시스 수소차 개발을 중단한다거나 스타리아(스타렉스 후속 모델) 수소차 모델 출시가 연기됐다는 이야기가 나돈다. 현대차 측은 해당 소문을 부정하지만 지난해 수소차 개발 과정에서 기술적인 문제가 발생했던 것은 인정한 바 있다.
현대차는 수소 투자를 지속하겠다는 입장이다. 정의선 회장은 지난 4월 뉴욕 특파원 간담회에서 “수소차는 원하는 목표가 있지만 달성이 조금 늦어질 수도 있다”면서도 “최대한 당겨서 하려고 한다”고 전했다. 현대차도 지난 5월 국내 63조 원 투자 계획을 발표하면서 “수소 사업 부문에서는 승용, 버스, 트럭 등 차세대 제품과 함께 연료전지 시스템의 효율개선 및 원가절감 기술 개발에 매진하고, 전용 부품 연구시설 인프라를 확충할 것”이라며 “연료전지 시스템의 광범위한 활용을 위한 실증 사업, 수소 관련 원천기술 및 요소기술 강화를 위해 외부 스타트업에 대한 활발한 투자도 추진한다”고 밝혔다.
수소차 산업의 의지와는 별개로 현대차는 당분간 수소차로 수익을 거두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현대차 입장에서 다행인 것은 윤석열 정부가 문재인 정부와 마찬가지로 수소 경제에 대한 지원을 약속했다는 것이다. 제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인수위)는 지난 5월 110대 국정과제를 발표하면서 “안정적 청정수소 생산·공급기반을 마련해 세계 1등 수소 산업을 육성하겠다”며 “전기차·수소차 등 무공해차 보급 확대 및 2035년 무공해차 전환 목표 설정을 추진하겠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정부 지원 없이 수소 경제가 활성화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한다. 김재경 에너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적어도 현재까지는 높은 생산원가로 인해 경쟁 시장에서 청정수소가 충분한 경쟁력을 갖출 수 있을지, 충분한 수익을 창출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구심이 만만치 않다”며 “탄소중립 추진과 정부의 청정 수소 경제로의 전환 의지를 실현하기 위해서라도 민간 기업들이 청정수소로 사업을 수행해 수익을 창출할 수 있도록 지원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수소 산업 지원은 미온적이라는 평가다. 환경부의 2022년 제2회 추경예산안은 11조 1586억 원으로 본예산(11조 5700억 원) 대비 4114억 원 줄었다. 이 중 가장 많이 삭감된 예산은 수소차 보급 예산안으로 6795억 500만 원에서 4545억 500만 원으로 줄었다.
신영대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집행률을 이유로 예산을 대폭 삭감한 것은 환경부가 정권의 입맛에 따라 정책을 고무줄처럼 바꾸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환경부 관계자는 “추경안의 수소차 예산 감액은 변화된 여건을 종합 고려한 것으로 수소차 보급 확대라는 정책 방향에 변화가 있는 것은 아니다”며 “신차 출시 지연으로 인한 수요 확대 한계, 코로나19 장기화에 따른 지방비 확보 제한, 반도체 수급난 등 보급 여건 변화를 반영해 연내 집행이 가능한 수준으로 예산을 조정했다”고 해명했다.
자동차업계에서도 정권 교체 후 수소 경제에 대한 정부 태도에 변화가 보인다고 주장한다. 자동차업계 한 관계자는 “문재인 정부가 수소 경제를 밀어주다보니 현대차가 언급되는 일도 많았지만 윤석열 정부는 상대적으로 관심이 적은 듯하다”며 “현대차가 스스로 언론 플레이를 하는 것이 아닌 이상 정부 차원에서 수소차에 대한 관심이 없어지니 현대차 수소 사업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도 줄어든 것”이라고 분석했다.
수소차가 활성화된다면 지속적으로 투자와 개발을 진행한 현대차가 유리한 위치를 차지할 수 있다. 현대차의 수소차 관련 기술력은 대부분 글로벌 자동차 업체보다 뛰어난 것으로 전해진다. 현재 글로벌 시장에서 판매 중인 승용 수소차는 넥쏘와 일본 도요타의 ‘미라이’뿐이다. 일본 혼다의 수소차 ‘클래리티’는 지난해 단종됐다.
이와 관련, 현대차 관계자는 “수소차를 포기하는 것은 전혀 아니고, 수소 관련 연구는 계속 진행하고 있다”며 “무조건 신차를 출시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니 관련 시장을 지켜보고 있다”라고 전했다.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