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 바뀐 후 해경·국방부 입장 뒤집혀…정치권 전선 확대 속 ‘월북’ 판단 감청자료 열람은 어려워
그야말로 파상공세다. 윤석열 대통령은 문재인 정부에서 벌어졌던 서해 공무원 피살사건과 관련해 강경 일변도로 나서고 있다. 정치권에선 윤 대통령이 서해 공무원 피살사건을 필두로 탈북민 강제북송, 천안함 유족 명예훼손 등에 대해 강력한 ‘안보 드라이브’를 걸 것이란 전망이 제기되고 있다. 윤 대통령은 국가안보실에 “공무원 피살뿐 아니라 대북 관련 석연치 않은 문제들을 다시 살펴볼 것”을 지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시작점이 된 서해 공무원 피살사건은 여러 가지 미스터리를 안고 있는 사건이다. 실마리는 여전히 풀리지 않은 채 잊혀 가고 있었다. 윤 대통령이 이 사건을 정국 전면에 끄집어낸 셈이다. 사건 핵심 쟁점은 이 씨가 왜 북한 측 해역에서 발견됐는지다. 또 이 씨가 자진 월북 의사를 밝힌 명백한 증거가 존재하는지 여부도 미스터리 중 하나다.
이 씨 유족 측은 2021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국방부 장관, 해양경찰청장을 상대로 정보공개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서울행정법원은 유족 측 손을 들어줬다.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이었다. 재판부는 청와대가 정보공개를 거부한 안보실 정보 중 ‘북측 실종자 해상 발견 경위’, ‘군사분계선 인근 해상(연평도)에서 일어난 실종사건’ 관련 정보를 열람할 수 있도록 하라고 판결했다.
국가안보실은 소송 결과에 불복하고, 항소했다. 이에 유족 측은 2021년 12월 29일 문재인 전 대통령과 청와대 국가안보실을 상대로 각각 대통령기록물지정금지 및 정보열람 가처분 신청을 서울행정법원에 내며 맞대응했다. 이 씨 형인 이래진 씨는 기자회견을 통해 문 전 대통령에 대해선 국가안보실에 청구한 정보를 대통령기록물로 지정하지 말 것을 요구했고, 국가안보실을 상대로는 행정법원 판결문대로 정보를 공개할 것을 촉구했다. 대통령기록물로 지정된 자료는 지정 이후 15년 동안 열람할 수 없다.
점차 잊혀 가던 서해 공무원 피살사건이 정국 전면에 대두된 건 지난 6월 16일이었다. 이날부터 서해 공무원 피살사건의 물길이 완전히 뒤바뀌었다.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은 문재인 전 대통령 재임 당시 청와대 국가안보실의 정보공개 청구 소송 항소를 취하했다.
국가안보실은 “이번 항소 취하 결정이 우리 국민이 북한군이 피살됐음에도 유족에게 사망 경위도 제대로 알리지 않은 채 정보를 제한했던 과거 부당한 조치를 시정하고, 국민 알권리를 충족하는 데 조금이라도 기여하길 기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국방부와 해경 또한 사건 당시 브리핑했던 입장을 번복했다. 6월 16일 윤형진 국방부 정책기획과장은 “월북을 시도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발표함으로써 국민들에게 혼선을 드렸으며, 보안 관계상 보다 많은 사실 알려드리지 못한 점에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했다. 같은 날 박상춘 인천해양경찰서장은 “국방부 발표 등에 근거해 피격 공무원의 월북 등 여러 가능성을 열어두고 수사를 진행했으나, 월북 의도를 인정할 만한 증거는 발견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2년 전 문재인 정부 당시 “정신적 공황 상태에서 현실 도피 목적으로 월북한 것으로 판단된다”는 입장이 정부가 바뀌자 백팔십도 뒤집어진 상황이다. 국방부와 해경 등 당국 입장 변화는 추가적인 증거 확보가 없는 상태로 이뤄져 많은 이의 궁금증을 자아내고 있다. 전직 정보당국 관계자는 “같은 자료를 두고 해석의 차이가 발생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그는 “주목해야 할 부분은 2년 전 사건 발생 당시 정부가 추정한 해당 사건 경과가 상당히 세부적이었다는 점”이라고 덧붙였다.
사건 개요는 이랬다. 2020년 9월 21일 오전 1시 30분경 해수부 공무원 이대준 씨는 “잠시 업무를 보고 오겠다”는 말과 함께 사라졌다. 10시간이 지난 11시 30분경 이 씨가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선내 및 인근 해상을 수색했다. 해경에 실종신고가 접수된 시점은 오후 12시 51분이었다.
9월 22일 오후 15시 30분경 군 당국은 북한 교신을 파악하고, 북측 등산곶 인근 해상에서 북한 수산관리선이 실종자를 발견한 것으로 추정했다. 군은 이 과정에서 공무원 이 씨가 자신의 신상정보와 월북 의사를 밝힌 것으로 추정했다. 당시 국방부 발표에 따르면 북한군 병사가 방호복과 방독면을 착용한 상태로 월북 의사를 전달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이 씨는 다시 사라졌고, 북한 측이 2시간여 동안 재수색을 펼친 것으로 파악된다.
이 씨와 북측 관계자가 처음으로 접촉한 지 6시간가량 지난 오후 9시 40분경 당국은 총격음을 감지했다. 당국은 이때 북한군이 이 씨를 총살한 것으로 추정했다. 오후 10시 11분부터는 연평도 감시기지가 40분 동안 북측 해역에서 발생한 불빛을 포착했다. 당국은 북한 측이 이 씨 시신을 소각한 것으로 추정했다. 북한 측은 “이 씨가 남긴 부유물을 소각했다”고 주장했다.
당시 우리 군과 정보 당국이 수집해 ‘추정한다’고 밝힌 정보 면면을 살펴보면 상당히 구체적이고 세부적임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복수 군 관계자에 따르면 현재 전방에서 운용하고 있는 열영상감시장비(TOD)로는 이렇게까지 구체적인 정보를 습득하기는 어렵다는 분석이다. 그렇다면 이런 정보들은 어떻게 수집된 것일까.
해답은 SI(특수정보)다. SI는 통신 주파수 등 감청, 위성 촬영, 공작원 첩보 기반 휴민트(인간정보) 등을 수집해 분석·평가한 자료를 일컫는다. “그간 쌓아온 SI 수집 경로가 밝혀질 경우 북한 측이 정보 유출 경로를 차단할 가능성이 존재하는 까닭에 공개하기 상당히 예민한 정보”라는 게 익명 정보 당국자의 설명이다(관련기사 공무원 피격 둘러싼 첩보전 막후…미국이 지켜보고 있었다).
전·현직 군 및 정보당국 관계자들은 SI를 살펴보면 서해 공무원 피살사건 관련 진실이 규명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한 전직 정보당국 관계자는 “해당 사건에서 이런 세세한 자료가 나온 대략적 기반은 감청 자료가 아닐까 생각된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감청에서 들린 특정 무전대화 내용을 기반으로 당시 상황을 유추한 것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 다른 전직 정보당국 관계자도 “북한군이 공무원 이 씨를 총살했다고 추정한 것 역시 SI 해석 과정에서 북한군의 사살 명령 관련 암호를 해독해 이런 정황에 대해 어느 정도 파악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그는 “SI를 직접 볼 수 없고, 공개되지도 않겠지만 이 씨를 둘러싼 자진 월북 의사 관련 내용에 대해 뚜렷하게 확증할 수 없는 모호한 내용이기에 이처럼 정치공방으로 비화되지 않았겠나 추측해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진실의 열쇠는 SI에 분명 존재하지만, 이를 열람하기는 어렵다는 것이 전·현직 관계자들의 중론이었다. SI는 ‘제한 정보’가 될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이 씨 유가족 대리인은 해경이 수집한 어업관리선 ‘무궁화 10호’ 직원 7명의 진술조서 편집본을 공개했다.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한 동료 직원은 해양경찰청 조사에서 “월북을 하려면 각방에 비치된 방수복을 입고 바닷물에 들어갔어야 했는데, 그 추운 바닷물에 그냥 들어갔다는 것은 월북이 아닌 자살로 생각되는 부분”이라면서 “이 씨 방에 방수복이 그대로 있는 것을 확인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확인됐다. 그는 “9월 21일 새벽 1시부터 6시까지 밀물로 물살이 동쪽으로 흐르고 있어 그것을 뚫고 북쪽으로 간다는 것은 무리라는 생각이 든다”는 의견도 전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 씨 유족 법률대리인 김기윤 변호사는 “(문재인 정부가) 구명조끼는 월북이라는 증거로 댔으면서 왜 방수복은 언급을 안 했는지 이해되지 않는다”면서 “월북으로 조작한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서해 공무원 피살사건이 정국 전면에 부상하면서, 더불어민주당 측은 해당 사건이 민생 현안이 아니라며 반발하고 있다. 6월 21일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은 “끊임없이 전임 대통령을 물고 늘어져 무슨 이득을 보겠다는 것이냐”라면서 “이런 방식으로 정쟁을 유발하고 국민 관심을 민생이 아닌 다른 쪽으로 돌려보려고 하는 정략적 의도가 여당 태도로 온당한지에 대한 국민 심판이 이뤄질 것”이라고 했다.
한 국민의힘 내부 관계자는 우 위원장 발언과 관련해 “민생은 먹고 사는 문제와 직결되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 죽고 사는 문제와도 밀접하게 관련이 있다”면서 “서해 공무원 피살사건은 더 심각한 민생문제일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더불어민주당은 정권 교체를 이뤄내고 상당한 비용을 세월호 진상 조사에 투입하지 않았느냐”면서 “민주당이 내세운 잣대를 기준으로 봤을 때 그럼 세월호 참사 진상 조사도 민생 문제가 아닌지 묻고 싶다”고 주장했다. 그는 “서해 공무원 피살사건에 대한 진실은 민생을 핑계로 감춰질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