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폐율 높아 심의 거치느라 공사 지연…2020년 매장문화재 조사서 무덤 61기 발견되기도
무덤 61기는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이 6층 규모 단독주택을 새로 짓는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땅에서 발견됐다. 이곳은 지하철 6호선 이태원역에서 그랜드하얏트호텔로 이어지는 언덕길 가운데쯤 있다. 근처에 SK, 신세계, 아모레퍼시픽 등 재벌가도 산다. 삼성가 소유 단독주택도 여러 채다. 그런데 이 부자 동네는 100년 전 공동묘지였다.
일요신문은 최근 문화재청에 등록된 매장문화재 조사 기관인 (재)수도문물연구원이 작성한 발굴조사 약식보고서를 입수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무덤 61기 중 58기는 유골이 관 없이 염(시신을 수의로 갈아입힌 다음 베나 이불로 쌈)만 한 상태였다. 무덤 3기에서만 나무로 만든 관이 나왔다. 발굴조사를 실시한 수도문물연구원은 일제강점기 동전이 함께 출토된 점과 일제강점기 지형도에 표시된 공동묘지 위치 등을 종합해 일제강점기에 조성된 분묘일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했다.
수도문물연구원은 "이태원동 일원에서 처음 확인된 분묘군"이라며 "향후 이 지역 일원에 대한 문화재 조사 시 일제강점기 지형도와 문헌기록 등을 철저히 분석하여 조사에 적극 활용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서현 이사장은 오빠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으로부터 2020년 4월 초 247억 3580만 5000원에 이 땅을 샀다. 같은 달 말 이 이사장은 용산구청에 건물 신축 허가를 신청했다. 용산구 이태원동 일대는 조선시대 성저십리(城底十里, 한양 도성에서 4km 이내) 지역이라 건축 공사에 앞서 매장문화재 조사를 실시해야 했다. 수도문물연구원은 2020년 7월부터 9월까지 조사를 실시했고 학술자문회의를 거쳐 건물 신축 공사를 시행해도 무방하다고 판단했다.
#건폐율 30% 제한 지역에 46.9%로 신청
그러나 이서현 이사장의 단독주택은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지난 20일 방문한 단독주택 신축 부지 주변은 고요했다. 공사 차량이나 인부 모습도 볼 수 없었다. 공사장 출입문 작은 틈으로 들여다본 내부에도 본격적인 공사가 진행된 흔적은 없었다. 삼성 관계자는 "공사 진행 상황을 일일이 알지는 못한다"고만 밝혔다. 이곳 바로 옆 단독주택도 지난해 철거됐다. 조만간 매장문화재 조사가 실시될 예정이다.
일요신문 취재 결과, 이서현 이사장의 신축 단독주택은 용산구 건축위원회 심의를 거치면서 건축계획을 보완 중이다. 무덤 발굴 여부와 별개로 애당초 이 이사장이 지으려던 집 규모가 지나치게 컸기 때문이다. 이 이사장은 건폐율 46.9%로 건물 신축 허가를 신청했다. 건폐율은 대지면적에서 건축면적이 차지하는 비율. 문제는 이 이사장이 단독주택을 짓는 부지 일부는 자연경관지구에 포함돼 건폐율이 30%로 제한된다는 점이다.
바로 맞은편에 지난해 2월 완공된 최태원 SK 회장의 단독주택은 건폐율이 29.98%다. 30% 미만으로 건폐율을 최대화한 것으로 보인다. 최 회장 단독주택 역시 신축 공사에 앞서 매장문화재 조사가 이뤄졌다. 유물이 발견되지는 않았다.
이서현 이사장의 단독주택 공사는 조만간 재개될 것으로 보인다. 용산구 건축위원회는 지난 9일 심의에서 이 이사장의 단독주택 건축계획안을 조건부 의결로 통과시켰다. 담장 위압감 상쇄를 위해 담장 벽면 녹화 검토, 전면 도로 쪽 옹벽 높이 축소 방안 강구 등을 조건으로 내걸었다. 이에 앞서 지난 4월 21일 열린 건축위원회는 이 이사장 단독주택 건축에 대해 재심 결정을 내렸다. 당시엔 지붕과 외벽 색상을 남산과 조화되도록 검토, 직원공간의 쾌적성 검토, 지하층 및 1층에 구성된 실(방)에 대한 채광 및 환기 등 주거환경성에 대한 검토 등 더 많은 지적을 받았다.
과거 이 부지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임세령 대상그룹 부회장과 신접살림을 차렸던 단독주택이 자리했다. 이 부회장은 2009년 임 부회장과 이혼하면서 결혼 전 살았던 한남동 단독주택으로 이사했다. 2018년 9월부터 11월까지 철거 공사가 진행된 이후 이서현 이사장이 매입하기 전까지 한동안 공터로 방치됐다.
#일제강점기 때 공동묘지 옮기고 고급주택지 개발
어쩌다 일제강점기 공동묘지에 재벌들이 모여 살게 된 것일까. 사연은 일제강점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의성 서울대 협동과정 도시설계학 석사과정 졸업생의 2021년 학위논문에 따르면, 일제는 서울에 일본인을 위한 주택을 보급하기 위해 사대문 바깥에 조성된 공동묘지를 서울 외곽으로 이전했다. 남대문과 인접한 이태원 공동묘지 분묘 3만여 기는 1935년부터 순차적으로 미아리와 망우리 묘지로 이장했다. 1939년 이태원 공동묘지가 사라진 땅과 주변은 한남토지구획정리지구로 지정되며 12만 4000평 규모 토지가 고급주택지로 개발됐다. 12만 4000평 중 5만 9000평이 묘지였다.
일제가 이태원을 고급주택지로 개발한 이유는 근처에 일본인이 많이 거주하고 있었고, 공동묘지 부지 확보는 상대적으로 수월해서였다. 뒤로는 남산이 있고, 언덕이 높은 덕분에 한강까지 보이는 탁 트인 전경도 주목받았다. 현대건축 관점에서 일제 권력층이 이태원 언덕길의 입지를 먼저 알아본 셈이다.
서울역사박물관이 2010년 발간한 이태원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전쟁 이후 1950년대 중반 정부는 일제가 조성했던 이태원 언덕길 주택지역에 미군과 유엔 직원 등 외국인을 위한 주택을 건설했다. 외국인 입장에서 이태원은 용산 미군기지와 가까워 유사시 주한미군의 보호를 받을 수 있었다. 국내에 장기 체류하는 외국인도 이태원 언덕길의 외부와 단절된 고급주택을 선호했다. 이 일대에 1960년대 후반 호화 주택단지가 형성되기 시작하면서 국내 부유층도 하나둘 모여들었다.
남경식 기자 ngs@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