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승환·김광현·오타니도 경험…구속 증가? 팔꿈치뿐 아니라 어깨 근육까지 강화한 덕
올 시즌 초반부터 조짐이 좋지 않았다. 류현진은 지난 4월 17일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전이 끝난 뒤 왼쪽 팔뚝 통증을 호소해 부상자 명단에 올랐다. 28일간 재활하고 5월 15일 탬파베이 레이스전에 복귀했지만, 27일 LA 에인절스전에서 다시 왼쪽 팔꿈치에 불편함을 느껴 5회까지 공 65개만 던지고 내려왔다. 다음 등판인 6월 2일 시카고 화이트삭스전에서도 같은 상황이 반복됐다. 큰 문제가 없을 거라 여기고 등판을 강행했는데, 팔꿈치 통증이 심해져 5회부터 불펜에 마운드를 넘겼다.
류현진을 정밀 검진한 조브 클리닉의 닐 엘라트라체 박사는 "팔꿈치에 만성적인 문제가 발견됐다"는 소견을 냈다. 토론토 구단은 이튿날 류현진을 시즌 두 번째로 부상자 명단에 등재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팔꿈치 수술을 받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이어 캐나다 언론은 6월 19일 "류현진이 인대를 완전히 제거하는 토미존 서저리를 택했다. 수술은 이날 성공적으로 끝났다"고 전했다. 인대 부분 제거 대신 토미존 서저리를 택한 이유는 '재활기간 단축'보다 '확실한 치료'가 더 중요하다는 판단 때문이다.
#토미존 서저리의 기원
인대는 팔꿈치를 구부리거나 펼 때 안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결합 조직이다. 투수가 공을 던질 때도 필수적으로 사용된다. 인간의 팔꿈치 인대가 버틸 수 있는 장력은 보통 260N(1N은 약 0.1㎏) 안팎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투수가 시속 150㎞짜리 공을 던질 때는 이보다 강한 290N의 장력이 실린다. 계속해서 강속구를 던지다 보면 인대의 탄성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팔꿈치 인대가 손상되면 공을 던질 때마다 극심한 통증을 느끼는 일명 '데드암' 증상이 나타난다. 과거 많은 투수가 데드암 증상을 해결하지 못해 조기 은퇴를 했다. 전설적인 투수 샌디 쿠팩스도 같은 이유로 유니폼을 벗었다는 설이 유력하다. 하지만 1974년 9월 팔꿈치 인대 접합수술이 탄생하면서 수많은 특급 투수가 제2의 야구 인생을 얻었다. 그 최초의 수혜자는 LA 다저스 왼손 투수였던 토미 존이다.
존은 당시 왼쪽 팔꿈치 안쪽 측부인대가 파열됐다는 진단을 받고 수술대에 올랐다. 손상된 인대를 복구하지 못하면 선수 생활을 이어갈 수 없는 상황인데, 어차피 기존 수술 방식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였다. 11년째 다저스 주치의를 맡고 있던 프랭크 조브 박사는 고심 끝에 공을 던지지 않는 오른쪽 팔꿈치 힘줄을 떼어내 왼쪽 팔꿈치에 붙이는 수술법을 시도해보기로 결심했다. 그때까지는 아무도 시도하지 않았던, 획기적인 방식이었다. 처음 수술을 시도할 때는 "성공률이 5%밖에 안 될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그만큼 큰 모험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뜻밖의 '대성공'이었다. 연거푸 강속구를 던지면서 상할 대로 상한 존의 인대는 다시 처음 못지않게 튼튼해졌다. 존은 1년간 재활 후 1976년 마운드에 복귀해 13년 더 선수 생활을 했다. MLB에서 올린 288승 가운데 164승이 수술 이후 따낸 승리다. 그때부터 이 수술에는 '토미존 서저리'라는 이름이 붙었고, 수많은 투수가 새로운 팔로 새출발할 기회를 얻었다. 2013년에는 MLB 전체 투수의 30%에 달하는 124명이 토미존 서저리를 받았다는 통계가 나왔을 정도다.
고교 시절 토미존 서저리를 받은 류현진 외에 KBO리그의 '리빙 레전드' 오승환(삼성 라이온즈)와 김광현(SSG 랜더스)도 이 수술을 이겨낸 투수들이다. 오승환은 단국대 재학 시절 토미존 서저리를 받은 뒤 프로에 입단해 역대 최고 마무리 투수로 자리잡았고, 김광현은 2016시즌이 끝난 뒤 수술대에 올라 MLB와 KBO리그에서 제2의 전성기를 보낼 원동력을 얻었다.
투타를 겸업하는 '야구 괴물' 오타니 쇼헤이(LA 에인절스)도 토미존 서저리 경험자다. 그는 2018년 투수와 타자로 모두 활약하다 6월 초부터 팔꿈치에 극심한 통증을 느꼈고, "인대가 손상됐다"는 진단을 받았다. 그 후 타자로만 출전하면서 팔꿈치 상태가 호전되기를 기다렸지만, 결국 정규시즌을 마친 10월 수술대에 올라 인대접합 수술을 받았다.
오타니는 팔꿈치 재활에 한창이던 2019시즌에도 5월부터 지명타자로 경기에 나서는 의지를 보였는데, 복귀 첫 경기부터 수술 부위인 오른쪽 팔꿈치에 공을 맞아 구단을 아찔하게 만들기도 했다. 이후 주자로 출루할 때도 팔꿈치 보호대를 착용하면서 철저하게 몸을 관리했고, 2020시즌부터는 다시 강속구를 던지면서 대형 홈런까지 때려내는 '이도류'로 돌아왔다. 그리고 100%의 몸 상태를 회복한 지난해 투수와 타자로 모두 최고의 성적을 올리면서 MLB 아메리칸리그 최우수선수(MVP)로 뽑혔다.
#간단한 수술, 힘겨운 재활
사실 팔꿈치 인대접합수술은 1시간도 채 걸리지 않는, 간단한 수술에 속한다. 팔꿈치 위쪽과 아래쪽 뼈에 각각 두 개씩 구멍을 뚫은 뒤 미리 채취해둔 다른 부위의 힘줄을 8자 모양으로 끼우면 끝이다. 이식된 힘줄은 시간이 지나면서 원래 존재했던 인대처럼 자리를 잡아 다시 팔꿈치를 지지하는 역할을 한다.
처음 수술을 받았던 존은 반대쪽 팔꿈치 힘줄을 떼어냈지만, 요즘 선수들은 반대쪽 손목을 구부리는 근육을 주로 이용한다. 이 근육이 충분하지 않은 선수는 허벅지 안쪽이나 발바닥 힘줄을 이용하기도 한다. 과거 세 차례 토미존 서저리를 이겨내 '투혼의 상징'으로 기억되는 권오준 삼성 육성군 투수코치는 첫 수술 때 오른쪽 손목 인대, 두 번째 수술 때 왼쪽 손목 인대, 세 번째 수술 때 오른쪽 다리 오금 쪽 인대를 각각 잘라내 팔꿈치에 붙였다.
투수들에게 수술 그 자체보다 더 괴로운 것은 그 후의 재활 과정이다. 최소 1년은 지나야 마운드에 복귀할 수 있는 수술이라 재활 과정이 길고 지루하고 힘들다. 팔꿈치 인대접합수술을 받은 뒤 첫 3주는 주변 조직을 보호하고 근육 위축을 지연시키는 기본적인 재활에 돌입한다. 열흘간은 팔에 부목을 댄 채 최대한 움직이지 않아야 하고, 부목을 뺀 뒤에도 보조기를 착용해야 한다. 4주 차에서 8주 차 정도까지는 근력 증가를 위해 팔꿈치를 30도가량 구부렸다가 다시 100도가량 펴는 운동을 반복한다.
8주 후부터는 본격적인 근력보강 프로그램이 시작된다. 14주 차 정도가 돼야 투구 거리를 5m, 10m씩 서서히 늘려 나가는 ITP(Interval Throwing Program·단계별 투구 프로그램)를 시작할 수 있다. 그 사이 틈틈이 가벼운 물체를 들고 하체 밸런스를 강화하거나 팔꿈치 근력을 강화하는 재활 프로그램을 꾸준히 소화해야 한다. 약 7개월 뒤 별다른 문제 없이 시뮬레이션 피칭까지 할 수 있게 되면, 재활 과정이 성공적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회복과 재활 기간은 사람마다 다르다. 팔꿈치의 상태와 수술 경과, 재활 프로그램 구성, 그리고 무엇보다 개인의 의지와 노력에 따라 수술의 결과도 크게 달라진다. A 구단 트레이닝 코치는 "수술 전과 같은 100%의 컨디션을 되찾으려면 대개 1년 6개월 정도는 재활에 집중하는 게 좋다는 게 일반적인 견해"라며 "최근에는 재활 프로그램이 워낙 체계적이라 1년까지 시간이 필요하지 않은 선수들도 있지만, 장기적으로 최상의 결과를 얻으려면 복귀를 너무 서두르지 않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토미존 서저리 후 1년 만에 복귀한 투수들이 대부분 경기당 투구 수와 전체 투구 이닝에 제한을 두고, 등판 간격을 철저히 조절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완벽하게 회복하지 않은 상태에서 갑자기 풀타임 전력 피칭을 하면 다시 팔꿈치에 무리가 따를 수 있다. 김광현 역시 재활을 마치고 복귀한 2018년에는 구단의 철저한 관리 속에 25경기에서 136이닝을 던지면서 숨을 골랐다. 복귀 두 번째 시즌인 2019년부터 이닝 제한 없는 정상 로테이션을 소화해 31경기에서 190과 3분의 1이닝을 책임지고 17승(6패)을 올리는 에이스의 면모를 뽐냈다.
#수술은 최후의 수단
팔꿈치 인대 접합수술을 받으면, 새로운 인대의 장력이 357N까지 늘어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인대에 싱싱한 콜라겐이 생기면서 팔 근육에 이전보다 더 탄력 있는 힘을 실어준다는 것이다. 실제로 토미 존을 포함한 많은 투수가 이 수술 후 3년 정도 지난 시점에 직구 구속이 시속 5~10㎞ 빨라지는 효과를 봤다. 투수들 사이에서 '구속이 빨라지는 수술'로 유명세를 탄 이유다.
사이드암 투수로는 드물게 강속구를 던졌던 임창용이 좋은 예다. 임창용은 원래 시속 140㎞ 중반 정도의 직구를 던지던 투수였지만, 2005년 10월 인대접합수술을 받고 재활을 마친 뒤 구속이 더 빨라졌다. 일본 야쿠르트 스왈로스에서 뛰던 2000년대 후반부터 2010년대 초반에는 연일 시속 150㎞를 훌쩍 넘는 강속구를 뿌렸고, 한때 시속 160㎞에 육박하는 구속을 기록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구속이 올라갈 것이라는 믿음이나 희망을 품고 큰 고민 없이 수술대에 올라선 안 된다. 수술은 무조건 최후의 수단이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KBO가 발간한 '부상 예방과 체력 관리를 위한 야구선수 가이드북'의 대표 저자인 한경진 이학박사는 책 속에서 "토미존 수술의 성공률은 90% 이상이지만, 바꿔 말하면 1000명 가운데 100명은 실패한다는 얘기"라며 "성공 사례가 많이 조명됐을 뿐 수술은 야구선수의 인생을 걸고 신중하게 생각해야 할 문제다. 자동차 부품을 교체하듯 쉽게 결정해선 안된다"고 강조했다.
모든 선수의 구속이 올라가는 것도 아니다. 토미존 서저리 이후 과거의 구속을 회복하지 못한 선수가 더 많다. 최근에는 수술 실패 사례가 거의 없지만, 과거 '조라이더'라는 별명으로 유명했던 조용준은 2005년 수술을 받은 뒤 단 한 차례도 1군 마운드에 오르지 못한 채 은퇴했다. 결국 수술 그 자체가 아닌 수술 이후의 재활 과정이 구속 증가 여부를 결정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한 박사는 "인대를 갈아 끼운다고 공이 빨라진다는 것은 터무니없는 생각이다. 선수들은 1년 정도의 고통스럽고 외로운 재활 기간 동안, 팀에서 훈련할 때보다 훨씬 더 많은 근력 운동을 소화한다. 그 결과 근육량이 많이 늘어나 구속 증가로 이어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임창용 역시 한창 강속구로 화제를 모으던 당시 "팔꿈치 수술 때문에 구속이 좋아진 건 아닌 것 같다"며 "팔꿈치만 집중적으로 재활한 게 아니라 어깨 근육까지 전체적으로 강화할 수 있는 재활 프로그램을 소화했다. 전체적으로 몸 상태가 좋아진 것이 더 큰 이유"라고 증언했다. A 구단 트레이닝 코치 역시 "투수들은 수술 후 만성적인 팔꿈치 통증에서 벗어나 최상의 투구 매커니즘으로 공을 던질 수 있게 된다. 수술 이후 구속이 늘었다면 그 이유일 것"이라고 했다. 모든 선수가 입을 모아 "견디기 어렵다"고 외치는 재활. 그 시간을 무사히 이겨내야 비로소 더 강하고, 더 완벽한 팔꿈치를 되돌려 받을 수 있다.
배영은 중앙일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