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구성 협상 표류로 국회 한 달 넘도록 공전…여권은 ‘국정 발목’ 프레임 짰지만 지지율 데드크로스
이후 민주당은 법사위원장을 국민의힘에 주는 대신, 사법개혁특별위원회(사개특위) 구성과 ‘검수완박’ 헌법소원 및 권한쟁의 심판 청구 취하를 조건으로 제시했다. 하지만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민주당 협상안에 대해 ‘수용불가’ 입장을 밝혔다. 이 와중에 윤석열 대통령은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순방에 나섰고, 권성동 원내대표는 필리핀으로 떠났다. 멈춰버린 국회에 민생은 실종됐다.
국회법에 따르면 국회의장단 선출 및 후반기 국회 개원은 5월 30일이다. 하지만 국회는 한 달이 넘도록 공전을 계속하고 있다. 원구성 협상을 두고 집권당인 국민의힘과 1야당 더불어민주당이 평행선을 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핵심 쟁점은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 자리다. 양당은 2021년 7월 전반기 상임위원장 배분을 정상화하면서, 그 조건으로 후반기 법사위원장을 국민의힘이 맡기로 합의한 바 있다. 그런데 민주당이 후반기 국회 원구성 협상을 앞두고 법사위원장을 사수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이에 국민의힘은 여야 합의사항이기 때문에 되돌려 받아야 한다고 반발했다.
원구성 협상이 지지부진 표류하는 것에 대한 비난 여론이 거세지자 민주당에서 먼저 중재안을 제시했다. 법사위원장직을 넘겨주겠다고 밝힌 것이다. 다만 민주당은 사개특위 구성, ‘검수완박’ 법안 관련 헌법소원 및 권한쟁의 심판청구 등 소송 취하 등을 조건으로 내걸었다.
민주당 요구에 대해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수용불가” 입장을 밝혔다. 권 원내대표는 6월 27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민주당은 원구성 협상에 검수완박 악법을 끼워팔기 하고 있다”며 “민주당이 진심으로 법사위원장을 국민의힘에 반환할 생각이라면 본회의를 열어 국회의장단과 법사위원장을 먼저 선출할 것을 제안한다”고 말했다.
국민의힘의 중재안 거절에 야권에선 쓴소리가 쏟아졌다. 국정운영의 1차적 책임을 진 여당이 시급한 국회 정상화에 나서지 않고, 오히려 정치 공백을 늘리고 있다는 이유다. 야권의 한 관계자는 이렇게 지적했다.
“글로벌 경제위기 우려가 심화되면서 국내도 고금리·고물가·세금 인상 등 국민들의 삶이 점차 어려워지고 있다. 정부여당이 서둘러 앞장서 민생을 챙겨야 한다. 그런데 지금 국민의힘을 보면 국회를 열 생각이 없어 보인다. 협상을 하고 중재안을 도출해야 하는데 자신들의 입장만 고수하고 있다. 아직도 자신들이 야당인 줄 알고 있는 것 같다.”
여기에 권 원내대표는 원구성 협상을 미뤄두고 필리핀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신임 대통령 취임식에 특사 단장 자격으로 참석하기 위해 6월 28일 출국했다. 이에 대해 우상호 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은 “깜짝 놀랐다. 지금 국회를 정상화하면서 민생 문제에 진력을 다해야 할 집권당의 원내대표가 원내대변인을 대동하고 특사로 간다는 건, 애초부터 국회 정상화 의지가 없었던 것 아닌가”라고 비판했다. 윤석열 대통령을 향해서도 “국회가 정상화되지 않았는데 집권여당 원내대표를 특사로 임명하는 대통령은 또 무엇인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윤석열 대통령까지 나토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스페인으로 순방을 떠난 것을 두고도 곱지 않은 여론이 나온다. 국내 경제 사정, 국회 공전에 따른 정치 공백 등을 감안하면 국내에 머물며 현안을 챙겼어야 한다는 것이다.
민주당 한 초선 의원은 “윤 대통령의 나토 정상회의 참석에 대해 반대의 목소리가 많았다. 그런데도 윤 대통령은 참석을 강행했다. 그 결과가 무엇인가. 성과는 없고 핀란드 대통령과 정상회담 취소, 나토 사무총장과 면담 순연,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노룩 악수 논란 등 외교참사 수준의 모습을 보여줬다”며 “여당과 협력해 국내 정치를 정상화하고 민생을 돌보는 편이 나았다”고 꼬집었다.
후반기 국회 공전이 길어질수록 정부여당과 윤 대통령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국정 운영 차질에 따른 정치적 책임을 대통령과 여권이 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국민의힘은 ‘거대 야당의 발목잡기’ 프레임을 앞세우고 있지만 세간의 여론은 ‘여권 책임론’에 무게가 실리는 모양새다.
최근 윤석열 대통령 국정운영 평가를 묻는 여론조사에서 부정평가가 긍정평가를 앞서는, ‘데드크로스’가 나타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6월 20일부터 24일까지 조사해 27일 발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정 수행을 잘하고 있다’는 응답은 46.6%, ‘국정 수행을 잘못하고 있다’는 응답은 47.7%였다. 리얼미터 여론조사에서 데드크로스가 발생한 것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처음이다.
국민의힘의 정당 지지율 역시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리얼미터의 같은 여론조사에서 국민의힘은 44.8%, 더불어민주당은 39.5%를 기록했다. 일주 전 발표한 여론조사 대비 국민의힘은 2.0%포인트 하락했고 민주당은 0.1%포인트 상승했다.
한국갤럽이 지난 6월 28일부터 30일까지 사흘간 실시한 ‘대통령 직무수행 평가’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들이 윤 대통령의 국정평가를 부정적으로 보는 이유에 대해 ‘인사’(18%), ‘경제·민생 살피지 않음’(10%), ‘독단적·일방적’(7%) 등이 꼽혔다(자세한 사항은 여론조사기관 또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원구성 협상이 길어지자 민주당이 먼저 해결에 나섰다. 민주당은 6월 28일 국회 의사과에 7월 임시국회 소집요구서를 제출했다. 국회 규정상 이날 소집요구서를 내면 사흘 뒤인 7월 1일부터 임시국회 회기가 시작돼 본회의가 가능하다. 동시에 민주당은 국회의장단 단독 선출을 시사했다.
권성동 원내대표는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2020년 전반기 국회의 재연이 될까 매우 우려스럽다”며 “민주당이 일방적으로 본회의를 소집한다면, 이는 입법독주 재시작의 신호탄이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민주당은 당초 7월 1일 오후 2시에 열기로 했던 본회의를 4일 오후 2시로 연기했다. 사흘간 시간을 벌면서 여야 간 접점을 찾아보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애초 1일 본회의를 열기로 계획했지만 의원들과 논의 끝에 국민의힘이 양보안을 제출할 수 있도록 인내심을 갖고 기다리기로 했다”며 “계속 이런 식으로 국회가 파행한다면 우리도 4일 오후에는 의장을 선출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의견이 좁혀지지 않을 경우 민주당 단독선출을 강행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으로 읽힌다.
이어 박 원내대표는 “계속 정쟁하는 식물국회냐, 제대로 일하는 민생국회냐 선택하는 것은 이제 국민의힘 결단에 달려있다”며 “원내 1당인 야당을 공격해서 굴복시키려는 데만 골몰하지 말고, 진정으로 타협하고 포용하는 협치의 정치를 보여주는 것은 국정 운영의 무한책임을 지고 있는 집권 여당의 몫”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국민의힘이 강하게 반발하고 있어 국회의 공전이 계속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성일종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6월 30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입법부인 국회에서는 여당이 민주당이다. 지금 180석의 거대여당이 여야 합의도 없이 국회의장을 뽑고 다 하겠다는 거 아닌가”라며 “의회에서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국민들에게 여야 합의 없는 본회의 소집 부당성을 알리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항의 피켓시위 등 물리력을 동원할 수도 있음을 암시했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민주당이 법사위원장 자리를 두고 국회 공전의 빌미를 제공했다는 평가도 어느 정도 수긍한다. 이에 민주당이 중재안 등을 내며 협상에 나선 것이다. 정치라는 게 협상을 통해 의견을 모아 타협점을 만드는 행위 아닌가”라며 “지금의 윤석열 정부나 국민의힘은 그런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자신들의 기준을 세우고 물러서지 않는다. 정치가 실종된 것 같다. 4일 본회의 개최 전까지 지켜봐야 한다”고 전했다.
거대 양당이 각각 당 주도권을 둘러싼 집안싸움에 몰두하고 있는 상황도 향후 국회 운영의 걸림돌로 거론된다. 민생 및 개혁 입법 처리가 계파 간 셈법, 정치적 논리 등에 좌우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민주당은 8월 전당대회를 앞두고 구주류인 친문과 신주류인 친명이 맞붙었다. 친문은 이재명 의원 출마에 강력 반발하는 반면, 친명에선 ‘대안 부재론’을 내세우며 밀어붙이는 양상이다. 국민의힘에선 이준석 대표 징계 여부가 ‘화약고’다. 여기엔 주류인 친윤 진영 내부의 파워게임, 또 친윤과 반윤 간 대립 등 복합적인 원인이 작용하고 있다. 국민의힘 한 중진 의원은 이렇게 말했다.
“국민들 보기에 너무 부끄럽다. 그래도 과거엔 정권 초반 비교적 국회가 활발하게 돌아갔었다. 그런데 지금은 아예 원구성조차 못하고 있다.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계파 싸움만 벌이고 있다. 솔직히 민주당에서 누가 당권을 잡느냐, 윤핵관들이 이준석을 몰아내느냐 등에 국민들 누가 관심이 있느냐. 국회 문이 닫혀 있는데 집권당 원내대표가 한가롭게 특사를 가는 게 말이 되느냐. 전세계적인 경제 위기가 닥치고 있는 상황에서 국회가 이렇게 손 놓고 있는 것은 범죄나 다름없다. 거대 양당이 대승적인 차원에서 테이블을 열어야 한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