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인기 있는 대표팀과 가장 핫한 음악이 어우러진 것…1회로 끝나는 프로젝트 아냐”
20년이 흐른 2022년, 또 다시 월드컵을 앞두고 있다. 한일 월드컵 20주년을 기념하고 2022 카타르 월드컵을 앞둔 대표팀을 응원하는 음원이 발매됐다. 황희찬을 테마로 한 '빅토리'가 지난 6월 말 공개됐다.
한국 힙합씬에서 가장 뜨거운 아티스트들이 참여해 눈길이 쏠렸다. 씬의 슈퍼스타 더콰이엇이 이번 프로젝트의 음악감독 격으로 나섰고 '빅토리'에는 슈퍼비, 스키니브라운이 힘을 모았다. 곡의 후반부에는 황희찬의 목소리도 삽입됐다. '빅토리'의 발매까지 어떤 과정이 있었을까. 이번 프로젝트를 함께한 축구 싱크탱크 '엘 후에고'의 박수용 디렉터를 만나 직접 이야기를 들어봤다.
이번 응원가 음원 발매의 시작점은 김광준 대표팀 주치의와 박수용 디렉터의 짧은 대화였다. 별도 프로젝트 진행을 위해 만난 이들은 헤어지기 전 잠시 음악 이야기를 나눴다. 선수들이 개인적으로 혹은 라커룸에서 힙합 음악을 즐겨 듣는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은 박 디렉터는 곧장 이번 프로젝트를 구상했다.
박 디렉터에게 축구와 힙합의 만남은 어색함이 없었다. 이전에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2020시즌 K리그1은 파이널라운드에 돌입하며 이와 관련한 테마곡을 발매한 바 있다. 힙합그룹 리듬파워가 음원과 뮤직비디오를 발매했다. 당시 박수용 디렉터가 프로젝트를 맡아 진행했다.
"'파이널라운드' 프로젝트 이후 비슷한 작업을 또 하고 싶다는 생각이 언제나 머릿속에 있었다. 박사님께 이야기를 듣고 곧장 행동으로 옮겼다. 바로 떠오른 인물은 대중음악평론가인 김봉현 작가였다. 힙합 분야에서 '리스펙트'를 받는 인물이기에 도움을 요청했다. 김 작가도 흔쾌히 프로젝트에 참여하겠다고 했다. 그렇게 빠르게 일이 진행됐다."
왜 축구와 힙합을 만나게 했을까. 일각에서는 공개된 음원을 두고 아쉬움의 목소리를 내기도 한다. 그간 윤도현밴드, 버즈 등 록밴드가 월드컵 응원가 작업에 참여했지만 이번에는 장르가 달랐다. 박수용 디렉터는 자연스러운 결과물이라고 말한다.
"이미 힙합은 현재 세대를 관통하는 음악 장르가 됐다고 생각한다. 과거 힙합 하면 떠올리는 스포츠 종목은 농구였다. 본거지가 같았기 때문에 필연적인 것이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축구와 힙합이 어우러지는 사례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그런 흐름이 대표팀에서도 이어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의 말대로 축구와 힙합의 만남은 국내외에서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이탈리아의 명문 구단 AC 밀란은 미국의 아티스트 제이지(JAY-Z)가 운영하는 락 네이션과 협업을 진행한 바 있다. 국내에서도 '강원FC', 'PEP' 등 축구 관련 곡들이 발매되기도 했다.
박 디렉터는 '어색하다'는 반응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음악은 개인적 취향이 있으니까 안 어울린다고 할 수 있다"며 "한일 월드컵, 독일 월드컵이 열리던 때는 록 음악이 지배적이던 시절이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팀이라고 할 수 있는 축구 국가대표팀과 현재 가장 뜨거운 음악인 힙합을 만나게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 디렉터는 이번 음원을 응원가보다 '테마곡'의 개념으로 이해했으면 좋겠다는 뜻을 밝혔다. 황희찬과 관련된 한 곡의 음악일 뿐이라는 것이다. 더콰이엇도 자신의 개인 채널에서 곡을 소개하며 '황희찬에게 영감을 받은(inspired by 황희찬)'이라는 표현을 썼다.
프로젝트의 진행 역시 힙합적인 방식을 선택했다. 과거와 같이 스포츠 단체와 긴밀하게 움직이거나 기업과 손을 잡고 TV 광고를 제작하는 등의 방식과 달랐다. 그저 완성된 음악을 대중에게 던져놓을 뿐이다. 그는 "더콰이엇이 오피셜하게 뭔가를 하기보다 자체적으로 진행하자는 제안을 했다"며 "시대가 달라지지 않았나. 모두 TV 앞에 앉아있기보다 각자 보고 싶은 유튜브 채널을 시청하는 파편화된 세상이 됐다. 레거시 미디어를 꼭 거치는 중앙집권적인 방식보다 자연스러움을 선택했다"고 설명했다.
다만 음악을 만드는 목적이나 방향성은 과거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현재 대표팀은 손흥민, 황희찬, 김민재 등 다양한 포지션에서 선수들이 두각을 드러내고 있다. 대표팀이 월드컵 본선에 오르는 과정도 유려했다. 사상 최초로 한 명의 감독이 4년간 온전히 팀을 이끌며 대회를 준비했다. 박 디렉터는 다가오는 월드컵을 더 많은 팬들이 좋은 기억으로 남길 수 있길 바라고 있다.
이번 프로젝트에는 더 많은 이들이 대표팀과 축구라는 종목에 관심을 가지는 계기가 될 수 있는 바람도 담겼다. 박수용 디렉터는 "그래서 더콰이엇이 가장 먼저 이번 작업의 적절한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그간 행보가 축구와 연관성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라며 "더콰이엇은 늘 새로운 시도를 해온 아티스트다. '판을 바꿔 고기집 알바처럼'이라는 가사가 그를 잘 표현한다고 느꼈다. 축구를 음악의 소재로 다루지 않았던 인물을 찾고 싶었다. 그런 인물이 이번 곡에 참여하면 축구에 더 많은 눈길을 돌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실제 결과에 대해 긍정적인 자평을 남겼다. 그는 "더콰이엇은 이전까지 축구에 크게 관심이 없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이번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유럽 출장 기간과 최근 A매치 등 여러 경기장을 직접 찾아 경기를 관람했다. 그 이후 스스로 '축구팬이 됐다'는 말을 하더라. 더콰이엇이라는 또 한 명의 축구팬을 만든 것이다. 음원 발매 이후로도 더 많은 팬이 생기지 않을까"라고 전했다.
이어 그는 "축구와 관련된 아티스트가 이번 작업을 맡는 것도 매력적이었을 것이다. 축구팬들 사이에서도 특별히 선호하는 아티스트들이 있고 나 또한 그들을 개인적으로 정말 좋아한다. 하지만 의도적으로 배제했다. 새로운 인물을 '축구의 장'으로 끌어오는 것이 내 역할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라고 덧붙였다.
김봉현 작가, 더콰이엇 등 관련 인물들은 직접 프리미어리그 시즌이 진행되던 중 영국 현지를 방문해 황희찬과 만났다. 이후로도 소통을 지속하며 황희찬의 취향과 의견 등을 음악에 반영했다. 곡 말미에는 황희찬의 과거 언론 인터뷰 당시 음성이 삽입됐다.
작업 과정이 순조롭지는 않았다. 예상치 못한 외부변수가 발생했다. 한창 작업이 진행되던 때 갑작스레 '황희찬이 가수로 데뷔한다'는 언론 보도가 나온 것이다. 박 디렉터는 당시를 떠올리며 "정말 당황스러웠다. 대표팀이 A매치를 준비하는 중요한 시점이었다. 대표팀과 황희찬 선수에게 피해가 갈 수 있는 일이었다. 잘못된 정보도 섞여 있었고 보도 이후 안 좋은 반응도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면서 "이후 보안 유지에 더욱 집중하게 됐다"며 웃었다.
'빅토리'처럼 축구 국가대표팀 관련 힙합 음악 발매는 앞으로도 이어질 전망이다. 박 디렉터는 "스포일러 문제 때문에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없어 죄송하다"면서도 "1회성으로 끝나는 프로젝트는 아니다. 앞으로 나올 음악도 기대해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번 프로젝트 이후로도 축구와 힙합이 만날 수 있을까. 박수용 디렉터의 대답은 '그렇다'였다.
"나 같은 '중간자'가 움직이지 않더라도 당연히 그러한 작업이 이뤄질 것이다. 축구를 좋아하는 아티스트, 힙합을 좋아하는 선수가 많다. 아티스트가 홀로 축구를 테마로 한 작업을 하거나 구단이나 단체가 협업을 의뢰하는 등 어떤 형태로든 유사한 작업은 진행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누군가 강요하지 않더라도 자연스러운 흐름이 될 것이다. 나 또한 소비자로서 어떤 결과가 나올지 궁금해진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