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너리그 도전 자체가 나에게는 자부심…올 시즌 우승에 보탬되고 싶어”
7월 7일 인천 SSG랜더스필드에서 만난 노경은은 전날 롯데전에서 5이닝 13피안타(2피홈런) 6실점(6자책)을 기록한 상황을 떠올리며 고온다습한 경기장 환경에 스스로 무너졌다며 패인을 분석했다.
지난 4월 28일 롯데전에 등판 중 불의의 강습 타구에 맞아 오른손 엄지손가락이 골절됐던 노경은 62일 만의 1군 복귀전이었던 6월 29일 대전 한화전에서 5이닝 3피안타 1볼넷 4탈삼진 무실점 역투로 성공적인 복귀전을 치렀다. 이후 복귀 두 번째 등판에서 난타를 당했고, 상대가 올 시즌 천적으로 꼽히는 롯데였다는 점에서 노경은의 아쉬움은 더 클 수밖에 없다.
지난 시즌을 마치고 롯데의 웨이버 공시를 통해 방출된 노경은은 SSG와의 입단 테스트를 통해 올 시즌부터 SSG에서 활약 중이다. 엄지손가락 골절 부상을 당하기 전까지 그는 5경기서 3승 2패 평균자책점 2.63을 올렸고, 오원석과 함께 4, 5선발을 책임졌다. 긴 재활 끝에 1군에 복귀해선 다시 선발 투수로 마운드에 나서고 있는 노경은. 그는 누구보다 올 시즌 SSG의 우승을 간절히 바랐다.
지난 4월 28일 노경은이 부상당했을 때 가장 안타까워한 이가 김원형 감독이었다. 김 감독은 당시 ‘일요신문’과의 인터뷰를 통해 노경은의 부상이 단순한 전력 손실 그 이상의 의미라고 말했다.
“작년에 선발 투수들의 부진으로 시즌 내내 힘든 경기를 많이 치렀는데 경은이가 합류하면서 젊은 선수들과 경쟁을 할 수 있을 정도의 구위를 선보였다. 30대 후반의 나이에도 140km/h대 중반을 던질 수 있다는 건 그만큼 꾸준히 노력했다는 증거 아닌가. 경은이가 우리 팀에 합류하면서 젊은 선수들한테 모범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정말 팀에 필요한 선수인데 경기 중 사고로 이탈했다는 게 가슴 아프다. 열심히 재활해서 복귀한다고 했으니 우린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노경은은 정확히 62일 만에 1군으로 복귀했다. 손가락 골절이었지만 수술하지 않고 뼈가 붙기를 기다렸다가 재활을 거쳐 몸을 만들고 캐치볼을 시작하면서 예상보다 빨리 복귀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뼈가 뒤로 밀리지 않아 수술하지 않고 반 깁스한 채 뼈가 붙기를 기다렸다. 당시 좋은 흐름을 이어가고 있던 터라 부상으로 멈춰야 하는 게 아쉬웠다. 더욱이 같이 시즌을 시작한 투수들은 대부분 100이닝 전후를 소화하고 있는데 난 이제 겨우 34이닝을 던졌다. 더 많은 승수를 채우지 못 하게 된 부분이 조금은 힘들었다.”
1군에서 홈과 원정 경기를 돌며 선수단과 함께 움직이다 재활군으로 내려가 선수들과 동떨어져 있다 보면 정신적인 소외감을 느낀다고 한다. 노경은도 마찬가지였다.
“재활보다 더 힘든 게 정신적인 부분이었다. 몸보다 마음을 추슬러야 했다. 두 달 정도 쉬라고, 그렇지 않았으면 더 안 좋은 일이 일어날 수도 있었을 거라는 하늘의 계시로 생각하고 애써 위로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노경은은 재활 마치고 저녁이면 TV 앞에 앉아 SSG 경기를 틀어 놓고 응원을 보내며 1위 SSG를 바짝 뒤쫓고 있는 키움의 경기 결과를 확인하는 일을 반복했다고 한다.
“키움이 9연승을 했음에도 우리 팀이 1위 자리를 내주지 않았다는 게 대단하더라. 1위에 오르는 것도 어렵지만 시즌 내내 그 자리를 유지한다는 건 더 어려운 일이다. 그걸 우리 팀이 해내고 있는 게 자랑스러웠다. 하루 빨리 몸 만들어서 복귀해 팀에 도움이 되는 선수가 되고 싶은 마음 밖에 없었다.”
마침내 6월 29일 대전 한화전에서 노경은은 65이닝 3피안타 1볼넷 4탈삼진 무실점 역투로 62일 만의 성공적인 복귀전을 장식했다. 예정된 70구보다 2구 많은 72구를 소화했고, 평균자책점도 2.17로 떨어트렸다.
그리고 7월 6일 롯데와의 경기. 날씨 때문에 졌다고 말했지만 누구보다 노경은 자신이 롯데전의 패인을 잘 파악하고 있었다.
“경기 전에는 5이닝 3실점 안으로 막자고 생각했다. 그런 다짐을 하고 마운드에 올랐는데 5회 투아웃 잡고 주자 없을 때 한동희 타석에서 방심하는 바람에 홈런을 맞고 이후 무너졌다. 올 시즌 이상하게 롯데만 만나면 실점이 많다. 두 차례 만나서 10실점을 기록했다. 이유가 무엇인지 고민했는데 이전 두산에서 롯데로 갔을 때는 두산을 만났을 때, 롯데에서 SSG로 옮긴 지금은 롯데를 만날 때 성적이 안 좋다. 상대 타자들이 나를 잘 파악해 대응하는 것 같다.”
2018년 자유계약선수(FA) 신분으로 시장에 나왔다가 롯데와 협상 과정에서 마찰이 빚어지는 바람에 한국을 떠나 미국으로 향했던 노경은. 당시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스프링캠프에서 공개 테스트를 통해 마이너리그 문을 노크했다가 무산된 상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두 차례나 실전 경기에 투입돼 공을 던졌다. 단 한 개의 안타도 허용하지 않았고, 마이너리그 팀 타격 코치가 경기 후 ‘웰컴’이라고 말할 정도로 나에 대한 평가와 분위기가 좋았다. 그런데 결과적으론 샌디에이고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하지만 그 경험을 후회하지 않는다.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귀한 경험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친구들 사이에선 미국까지 가서 테스트를 받았다는 ‘부심’이 있다(웃음).”
노경은은 2019시즌을 소속팀 없이 개인 훈련으로 버텼다. 그리고 2019년 11월 롯데 단장으로 부임한 성민규 단장과의 협상을 통해 롯데와 2년 총액 11억 원에 계약하면서 1년 만에 다시 현역으로 복귀했다. 2020년 25경기에서 133이닝을 소화한 노경은은 11번의 퀄리티스타트를 기록하며 선발투수의 몫을 다했다. 그러나 2021시즌에는 14경기에 등판해 3승 5패 평균자책점 7.35로 에이징 커브(나이에 따른 기량 저하)가 나타난다는 평가를 받았다.
“지난 시즌 중반 이후 이미 롯데로부터 다음 시즌 전력에 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전해 들었다. 덕분에 일찌감치 다음 행보를 준비할 수 있었다. 롯데에서 웨이버 공시를 발표하자마자 SSG로부터 연락이 왔다. 입단 테스트를 받을 수 있느냐는 문의였다. 이미 몸과 마음을 준비한 나로선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그렇게 해서 SSG와 계약할 수 있었다.”
노경은은 SSG와의 시즌을 준비하며 설렘을 느꼈다고 말한다. 자신감이 없었다면 설렘보다 걱정이 더 많았을 텐데 자신의 몸이 건강하고 튼튼한 팔로 공을 던질 수 있다는 생각에 기대가 컸다는 말도 덧붙인다.
“방출된 선수들끼리 모이면 농담 삼아 이런 말을 한다. (다른 구단으로부터) 전화를 받는 선수가 있는가 하면 전화를 돌리는 선수가 있다고. 난 전화를 받은 ‘부심’이 있다. 앞서 미국에서 테스트 받은 부심과는 또 다른 형태다(웃음). 어려운 상황들이지만 그 상황에 좌절하기보단 이렇듯 농담으로 승화시키며 최대한 긍정적인 마인드를 유지하는 게 아직까지 마운드에서 공을 던지고 있는 요인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부심’이 많은 노경은한테 또 다른 부심이 있다. 바로 자신이 SSG랜더스 소속 선수라는 사실이다. 이전에는 선수들이 뛰고 싶어 하는 팀이 삼성-LG-두산 순이었다면 지금은 SSG가 압도적으로 많다는 게 노경은의 설명이다.
“SSG 합류 후 스프링캠프에서 추신수 선배를 만났는데 처음에는 눈도 제대로 맞추지 못하겠더라. TV에서 봤던 유명한 선수가 내 눈앞에 있다는 게 실감이 나지 않았다. 이후 김광현까지 합류하면서 SSG에 2명의 메이저리거 출신이 뛰게 됐다. 최정, 한유섬 등 SSG 선수들을 보고 있으면 눈이 즐거웠다. 내가 말년에 팀 복이 있구나 싶었다.”
노경은은 얼마 전 LG 김진성을 만나 나눈 대화의 내용을 소개했다. 김진성도 지난 시즌 후 NC에서 방출됐다가 입단 테스트를 통해 LG 유니폼을 입었고 지금은 LG 불펜에서 없어서는 안될 투수로 평가받는 중이다.
“(김)진성이랑 내가 가장 걱정하는 게 내년 재계약이다. 그러려면 올해 우승해야 하고, 우승하는 데 보탬이 되는 선수가 돼야 한다. 각자 팀은 다르지만 서로의 생각엔 변함이 없다. 서로 잘해서 내년에도 지금의 유니폼을 입고 뛰자고 약속했다.”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