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리그 일정 무시 원성 샀지만 매끄러운 진행으로 흥행 성공…“성장동력 적은 축구계로선 반가운 일” 평가
#토트넘과 한국의 인연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상위권 구단으로 자리 잡은 토트넘은 대한민국 국가대표 주장 손흥민이 장기간 활약하며 '친한파' 구단이 됐다.
토트넘과 한국의 인연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05년 통일교 재단이 주최한 친선 축구대회인 '피스컵 코리아' 참가를 위해 한국을 찾은 바 있다. 당시 로비 킨(아일랜드), 저메인 데포(잉글랜드) 등이 주축이던 토트넘은 대회 우승까지 차지하며 좋은 기억을 남긴 바 있다.
이후 토트넘은 구단 역사상 첫 한국인 선수인 측면 수비수 이영표를 영입했다. 이영표가 토트넘 유니폼을 입고 활약한 기간은 2시즌 반이지만 국내 팬들에게 토트넘이라는 구단은 강한 인상을 남겼다.
이영표 퇴단 이후 10년이 채 지나지 않은 2015년, 손흥민이라는 또 한 명의 한국인 선수가 토트넘 유니폼을 입었다. 자연스레 국내에서 토트넘에 대한 관심은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2017년 팀 차원의 방문은 아니지만 손흥민을 포함해 카일 워커(잉글랜드), 벤 데이비스(웨일스) 등 일부 토트넘 선수들이 스폰서 행사 참여차 한국을 찾기도 했다.
성장을 거듭하던 손흥민은 2021-2022시즌 정점을 찍는 활약을 펼쳤다. 리그에서 23골을 기록, 공동 득점왕을 수상했다. 국가대표팀의 호조와 함께 '축구 인기 자체를 끌어올렸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다.
시기가 절묘했다. 지난 2년간 전 세계가 코로나19로 몸살을 앓았다. 여름이면 국내를 찾던 국제적 명문구단의 방한도 끊어진 상태였다. 하지만 사회적 거리두기가 해제되고 국가 간 이동이 비교적 자유로워지며 이번 여름 토트넘의 방한이 전격 성사된 것이다.
#손-케 듀오 골로 기대에 화답
2022년 초 토트넘의 방한 소식이 전해지자 국내 축구팬들 사이에선 우려가 나왔다. 그간 해외팀을 초청해 경기를 치르는 과정에서 부작용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표적 사례가 2019년 유벤투스 방한이었다. 당시 크리스티아노 호날두(포르투갈)가 속한 유벤투스의 방한은 폭발적인 관심을 받았지만 결과는 실망스러웠다. 주최사의 무리한 일정 추진, 구단의 비협조 속에 유벤투스 선수단 버스가 경기 킥오프 시간까지도 도착하지 못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이에 더해 호날두는 단 1분도 그라운드를 밟지 않아 실망감을 더했다.
2010년 여름 FC 바르셀로나의 방한에서도 웃지 못 할 기억을 남겼다. 리오넬 메시(아르헨티나)가 한국을 찾는다는 소식에 폭발적 관심을 끌었지만 경기를 앞두고 당시 사령탑 펩 과르디올라 감독이 "부상 탓에 메시가 출전하기 어렵다"는 뜻을 전했고 경기를 눈앞에 두고 관중들의 티켓 구매 취소가 이어졌다. 경기 진행에는 문제가 없었지만 당일 경기장을 찾은 관중 수는 기대치를 훨씬 밑돌았다.
예상치 못한 '사고'가 벌어진 유벤투스와 바르셀로나의 방한은 씁쓸한 추억으로 남았다. 두 이벤트를 주최했던 각각의 업체들은 수익을 남기지 못해 경기 이후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폐업 절차를 밟았다. 한 사업가는 개인 파산 절차를 밟았다는 후문도 이어졌다. 반면 일정 시간 이상 스타들의 출전을 약속했던 두 명문구단은 수억 원에 달하는 위약금을 '쿨하게' 지불하고 떠난 것으로 알려졌다.
사업적으로는 문제가 없었지만 국내 축구 문화가 지탄을 받은 사건도 있었다. 2007년 박지성의 활약으로 유럽 축구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으로 증가할 무렵 박지성의 소속팀이자 당시 유럽을 지배하던 구단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맨유)가 방한경기를 치렀다.
맨유는 FC 서울과 친선전을 벌였는데 문제는 국내 맨유 팬들의 응원 태도였다. 이들은 맨유 선수들을 환영하고 응원한다는 뜻으로 FC 서울의 홈구장인 서울월드컵경기장에 '여기는 또 다른 올드 트래포드다(Here is Another OLD TRAFFORD)'라는 문구를 대형 현수막으로 내건 것이다. 올드 트래포드는 맨유의 홈구장 이름이다. 이는 현재까지도 '남의 집 안방에서 내 집이라고 우긴 격'이라며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하지만 이번 토트넘의 방한은 이 같은 트라우마를 씻어낼 정도로 매끄럽게 진행됐다. 토트넘은 비교적 긴 시간인 약 일 주일의 일정으로 한국행 비행기를 탔다. 단순히 경기를 치르는 것을 넘어 훈련 장면을 팬들에게 공개하고 유소년 클리닉을 진행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진행했다.
메인 이벤트인 팀 K리그와 경기는 팬들에게 즐거움을 안겨주기에 충분했다. 선발 명단에서 제외됐던 팀의 최고 스타인 손흥민과 해리 케인(잉글랜드)은 교체로 나와 골을 넣으며 기대에 화답했다. 팀 K리그도 만만치 않은 경기력을 보여 팬들을 즐겁게 했다.
다만 이번 이벤트가 처음부터 매끄럽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일정을 조율하는 과정에서 축구계 일부에선 반대 여론이 형성되기도 했다. 이벤트 경기를 치르기에 현재 국내 축구 일정이 너무 빡빡하다는 것이다.
토트넘의 방한이 2022년이 아니었다면 일정상 큰 문제가 될 것이 없었다. 하지만 올해는 오는 11월 월드컵 개막이 예정돼 있다. 이에 K리그 개막을 앞당겼지만 폐막 시기가 워낙 빠르기에 예년에 비해 촘촘한 리그 일정이 진행되고 있었다. 이외에도 여전한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가 리그 일정에 영향을 줬고 7월에는 국가대표 일정도 있다. K리그는 혹서기에 일주일 2경기 이상을 치르는 장기간의 강행군을 피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토트넘과 K리그 올스타팀의 일정까지 잡히자 일부 축구팬들의 불만이 폭발했다. 순위 싸움을 위해 선수들의 체력 관리가 중요해진 상황에서 이벤트 매치를 위해 또 다시 선수들이 소모된다는 지적이었다.
불만은 팬들 사이에서만 터져 나온 것이 아니다. 수원 FC 공격수 이승우는 토트넘과 경기를 앞두고 "선수에게나 팬들에게 좋은 기회인 것은 맞다"면서도 "선수들이 덥고 습한 날씨 속에 뛰고 있는데 리그 도중 이런 경기를 한다는 게 아쉽기도 하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복수의 선수들이 불만을 표출했다. 이에 토트넘과 경기에 뛰는 선수들에게 책정된 수준보다 높은 보수가 돌아가며 갈등이 무마된 것으로 전해졌다.
#돈 잔치? 사업? 쿠팡의 스포츠 진출에 쏠린 눈
2022년 한국을 찾은 유럽 구단은 토트넘뿐 아니다.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의 강호 세비야도 같은 기간 방한했다. 세비야도 유소년 교육 등의 프로그램을 진행하다 16일 토트넘과 친선경기를 치른다.
이번 두 구단의 방한은 이커머스 기업 쿠팡이 성사시켰다. 팀 K리그와 토트넘, 토트넘과 세비야의 경기를 '쿠팡플레이 시리즈'로 명명했다. 쿠팡은 이 시리즈에 약 100억 원을 투자한 것으로 알려졌다. 쿠팡의 이번 해외구단 초청 행사는 다수의 팬들로부터 긍정적 평가를 받고 있다. 그간의 사례와 다르다는 것이다.
쿠팡의 OTT 서비스인 쿠팡플레이에서 독점한 중계도 그간의 방송과 달랐다. TV 채널 운영시간에서 자유로운 쿠팡플레이는 킥오프 1시간 30분 전부터 프리뷰쇼를 방영했다. 중간광고도 삽입하지 않으며 경기장 상황을 전했고 경기 후 기자회견까지 송출했다. 국내 최고 스포츠 이벤트로 불리는 축구 국가대표 경기조차 이러한 형태로 방영된 사례는 없었다.
차별화된 이벤트, 중계 등의 원동력은 주최사인 쿠팡의 자금력에서 나왔다는 분석이 따른다. 2022년 특성상 해외구단 초청이 어렵지 않겠느냐는 축구계 관측이 나왔지만 쿠팡은 이를 성사시켰다. K리그 일정 조정까지 이끌어낸 것에 대해 한 축구계 인사는 "이번 행사를 포함해 파트너십을 맺으며 쿠팡이 한국프로축구연맹에 많은 금액을 안긴 것으로 알고 있다"며 "국내 축구 구성원들의 희생이 어느 정도 뒤따를 수밖에 없다. 성장동력이 많지 않은 축구계로선 반가운 일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쿠팡플레이는 2023~2025시즌 K리그 온라인 독점 중계권을 따내기도 했다.
하지만 긍정적 평가만 있는 것은 아니다. 물류업계 한 관계자는 "노동자들을 쥐어 짜서 번 돈을 스포츠 투자한다"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노동자들에게는 화장실도 통제하는 회사가 스포츠 쪽에서 찬사를 받는 모습을 어떻게 봐야 할지 모르겠다"고 질타했다. 쿠팡은 최근 수 년간 지속적으로 덩치를 불려왔지만 노동자 사망 사건 등 논란이 이어져 왔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