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 때 친박 저격, 바른미래당 땐 손학규 퇴진 외쳐…“정치권서 점점 고립되는 중”
이준석 국민의힘 전 대표가 ‘윤핵관(윤석열 대통령 핵심 관계자)’을 넘어 이제는 윤석열 대통령과 대결 구도를 그리고 있다. ‘양두구육’, ‘국민도 속고 나도 속았다’ 등의 수위 높은 발언들로 집권 4개월 차에 들어선 윤 대통령 직격에 나섰다. 이 전 대표는 최근 당이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전환하면서 대표직을 박탈당했다. 그는 ‘여론전’을 이어가며 비대위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제기한 상태다.
이 전 대표가 당 주류 세력과 전면전을 벌이며 정치권을 소용돌이로 몰고 갔던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이 전 대표가 ‘싸움닭’ 기질을 처음 보인 것은 7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른바 ‘K·Y 문건파동’이다. 2015년 1월 12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문건 파동 배후는 K.Y. 내가 꼭 밝힌다’라는 내용이 담긴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 수첩이 언론 카메라에 포착됐다. ‘정윤회 국정개입 의혹’ 문건 배후에 김무성 전 대표와 유승민 전 의원이 있다는 뜻이었다.
사건 발단은 이랬다. 2014년 12월 18일 음종환 청와대 홍보수석실 행정관과 이 전 대표의 저녁 술자리가 화근이었다. 손수조 전 청년위원, 신용한 대통령 직속 청년위원장, 이동빈 행정관 등 3명이 동석했고, 이 전 대표는 밤 10시경 합류했다. 이 전 대표에 따르면, 음 전 행정관이 문건 파동 배후로 김무성·유승민을 지목했다.
음 전 행정관은 원조 친박계 인물로, 정윤회 문건에서 문고리 3인방(이재만·정호성·안봉근)과 함께 ‘십상시’ 중 한 명으로 거론됐던 인물이다. 반면 2011년 ‘박근혜 키즈’로 정치권에 데뷔한 이 전 대표는 2014년 7월 새누리당 혁신위원장에 임명됐다. 이후 청와대와 당 주류인 친박계를 향해 거침없는 발언으로 큰 화제가 되기도 했다. 당시 술자리에서 음 전 행정관은 이 전 대표에게 “방송에서 마음대로 말하면 안 된다”고 훈계조로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이 전 대표는 2015년 1월 6일 이 사실을 김무성 전 대표에게 전했다. 김 전 대표는 그 자리에서 대로하며, 본인의 수첩에 해당 사실을 메모했다. 음 전 행정관은 이를 ‘허위사실’이라고 했지만, 청와대는 그를 곧바로 면직 처리했다. 정권의 지근거리에 있던 대통령 측근과의 싸움에서 사실상 이 대표가 판정승을 거뒀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정국에서도 친박계를 향한 이 전 대표 비판은 계속됐다.
정권이 바뀐 후에도 이 전 대표의 ‘주류 공격’은 이어졌다. 2018년 2월 바른정당(유승민계)과 국민의당(안철수계)이 손을 잡고 출범한 바른미래당은 손학규 전 대표가 이끌고 있었다. 지지율 하락 및 여러 내홍으로 바른미래당은 위기를 맞았고, 바른정당계 인사들은 조기 전대 카드를 꺼내며 당권파였던 손 전 대표 퇴진을 요구했다. 손 전 대표는 이를 거부했다.
당시 이 전 대표는 2019년 10월 23일 손 전 대표의 당비 대납 의혹을 제기했다. 이 전 대표가 당 윤리위로부터 징계를 받은 지 5일 만에 벌어진 일이다. 이 전 대표에게는 10월 18일 ‘안철수 의원 비하 발언’으로 당직 직위해제 처분이 내려진 상태였다. 이외에도 권은희, 유의동 의원 등 바른정당계 의원들이 징계 처분을 받거나, 윤리위 결과를 기다리고 있을 당시였다. 사실상 이 대표가 손 전 대표에게 직접 반격에 나선 셈이었다.
이 전 대표는 “손학규 대표의 올해 1월 8일, 3월 7일, 4월 1일, 5월 1일 등 확인된 7회, 1750만 원의 당비가 타인 계좌에서 입금됐다”며 “이 문제는 선관위 측에 문의한 바 정치자금법·정당법·형법 위반, 배임수재로 매우 심각한 처분 받을 수 있다”며 맞섰다. 이 전 대표는 2018년 9월 취임한 손 전 대표와 줄곧 대립각을 세웠다.
정치권 관계자들은 이 전 대표가 당 주류와의 여러 차례 전쟁에서 살아남으며 지난해 제1 야당 대표로까지 오를 수 있었던 배경으로 특유의 화술, 이를 활용한 여론전을 꼽는다. 국민의힘 한 초선 의원은 “그동안 이 전 대표가 내부총질에도 불구하고 버텼던 것은 어느 정도 명분이 있었고, 또 그만큼 그를 응원하는 여론이 있었기 때문”이라면서 “그런데 지금은 조금 상황이 달라 보인다. 상대가 임기 초반의 대통령이다. 지원 세력도 거의 없다. 이 전 대표가 최대 위기를 맞았다”고 했다.
사실 이 전 대표와 윤 대통령은 대선 기간 내내 갈등을 빚었다. 이 전 대표가 당무를 거부하고 잠적을 했던 적도 있었다. 대선을 앞두고 손을 잡긴 했지만, 친윤 진영의 이준석 비토 기류는 정권 출범 후에도 수그러들지 않았다. 양측의 갈등은 어느 정도 예견됐었다는 뜻이다. 이 전 대표가 윤리위 중징계 배후로 친윤을 의심하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이 전 대표는 지난해 11월 특정 매체발 ‘익명 관계자’ 인터뷰를 문제 삼으며 ‘윤핵관’이란 용어를 사용했다. 윤핵관이 당 대표인 자신을 흔들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앞서 이 전 대표는 2019년 11월 황교안 대표 체제 시절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과 합당 협상이 어려워지자 ‘황핵관(황교안 측 핵심 관계자)’을 비판한 바 있다.
한 국민의힘 관계자는 “이준석 전 대표가 옛날부터 여론전에 강했다. 말도 시원시원하게 잘하지. 기자들이 쓰기 좋아하는 단어 만들어서 쓰는데 좋아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국회 출입하는 기자들이랑 나이가 비슷하니 편하고, 소스도 잘 흘려주지 않나. 영리하게 언론을 잘 이용하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 전 대표의 화살은 이제 윤석열 대통령을 향하고 있다. 분수령은 ‘비대위 효력정지 가처분’ 결과가 될 전망이다. 당 내부에선 법원 결정과는 별개로 이 전 대표를 향한 곱지 않은 시선이 팽배한 분위기다. 박성중 의원은 8월 19일 YTN 라디오 ‘뉴스킹 박지훈입니다’ 인터뷰에서 “굉장히 부글부글 끓고 있다. 당 대표를 했던 사람이 해도 해도 너무 한다. 자기 탓은 하지 않고 전부 남 탓이고, 윤핵관 탓이고, 대통령 탓이라고 한다”며 이 전 대표를 직격했다.
이 전 대표에게 우호적이었던 이들 역시 등을 돌리는 상황이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8월 13일 이 전 대표를 향해 “탄핵 때 당내 일부 세력이 민주당과 동조해 억울하게 쫓겨난 박근혜 전 대통령의 심정을 생각해봤나. 바른미래당 시절 손학규 전 대표를 모질게 쫓아낼 때 손 전 대표 심정을 생각해봤나”라며 “돌고 돌아 업보로 돌아오는 게 인간사”라고 했다. 오세훈 서울시장 역시 “참아야 한다”며 자중을 당부했다. 이 전 대표가 정치권에서 점점 더 고립되는 양상이다.
설상미 기자 sangmi@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