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 비밀 유지·충성 가능성 높고 외부 노출 시 ‘꼬리자르기’ 용이…법조계 “정식 채용됐다면 처벌 못 피할 것”
국내 마약사범 수는 증가 추세다. 경찰청에 따르면 마약사범 검거 인원은 △2018년 8017명 △2019년 1만 209명 △2020년 1만 2209명 △2021년 1만 626명으로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연령이 낮아지고 있다는 점도 심각하다. 대검찰청 마약류 범죄백서에 따르면 19세 이하 청소년 마약류 사범은 △2018년 142명 △2019년 239명 △2020년 313명 △2021명 450명으로 증가하고 있다. 마약사범 수가 늘면서 압수된 마약량도 늘어나고 있다. 대검찰청에서 발표한 자료를 보면 지난해 마약 압수량은 1296.7kg으로 전년(320.9kg) 대비 4배 이상 폭증했다.
실제 국내에서도 마약을 손쉽게 구매할 수 있다. 텔레그램, 트위터 등에는 ‘아이스 한 잔’ ‘아이스, 캔디 안전하게’라는 문구를 내세워 버젓이 마약을 판매하고 있다. 여기서 아이스는 필로폰을, 캔디는 엑스터시를 뜻하는 마약 은어다. 현행법상 필로폰·엑스터시와 같은 향정신성의약품을 소지·투약·알선·매매 시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다.
소지만으로 처벌됨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 필로폰 등 마약 투약 사건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지난 7월 강남구의 한 유흥업소에서 필로폰이 든 술을 마시고 2명이 숨졌고, 지난 22일에는 도심의 한 캠핑장에서 환각 효과가 필로폰의 300배에 달하는 LSD(향정신성의약품)를 투약한 남성 3명이 검거된 바 있다.
결국 정부가 칼을 빼들었다. 대검찰청은 최근 경찰청, 해양경찰청, 국정원 등과 수사협의체를 구축해 마약 유통 조직을 가중처벌 하겠다고 밝혔다. 그러자 국내 마약 조직도 더 치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드라퍼를 정직원으로 채용하는 것도 그중 하나다. 상대적으로 아르바이트생보다 직원이 마약 유통 과정의 비밀을 유지하며 조직에 충성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이유다. 또 외부에 조직이 노출될 시 직원의 단독 판매 행위로 몰아갈 수 있다. 즉 '꼬리자르기'에 용이한 셈이다.
경찰은 드라퍼를 정직원으로 채용하는 방식 자체가 새로운 수법이라고 설명한다. 경찰에 따르면 대체로 마약 거래는 구매자가 암호화폐로 마약 비용을 보낸 뒤 판매자가 마약이 숨겨진 위치(좌표)를 알려주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숨겨진 마약은 구매자가 나타나기 전 드라퍼가 미리 판매자 지시에 따라 현장에 놔둔다. 구매자와 판매자, 드라퍼의 신상을 알아내기 힘들다.
현장에 마약을 두고 오는 드라퍼는 그동안 △총판매책이 아는 조직 내 인물 △텔레그램,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마약 운반책이라며 직접 모집한 아르바이트생 △서비스대행 플랫폼에 ‘물품 배송·서류 전달 아르바이트’라며 마약 유통임을 속이고 구한 아르바이트생 등이 담당해왔다.
하지만 최근 마약 조직은 드라퍼를 아르바이트생 대신 정식 직원으로 채용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마약업계 사정을 잘 아는 관계자와 사정기관 등에 따르면 마약 조직은 텔레그램, SNS를 통해 정식 직원으로 활동할 드라퍼를 모집한다. 뽑힌 드라퍼들에게 수습 기간을 줘 마약 유통 업무를 제대로 이행하는지 지켜본 후 정식 직원으로 채용한다. 수습 기간 중 업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못하면 해고된다. 정식 직원으로 채용된 드라퍼는 암호화폐로 주급 최소 120만 원에서 최대 350만 원을 받는 것으로 전해진다. 드라퍼가 마약 중독자면 암호화폐 대신 필로폰 등 마약으로도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마약 조직은 수습 기간 동안 드라퍼에게 신분증과 현 거주지 주소도 요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익명을 요구한 관련 업계 관계자 A 씨는 “드라퍼가 마약을 받으면 며칠간 지시를 하지 않고 놔둔 채 그 기간 드라퍼의 거주지 주변을 찾아가 경찰이 있는지 확인한다”며 “(드라퍼가) 집에 있으면 영상 통화를 걸고 주변을 보여달라고 요구한다”고 말했다. 신분과 거주지가 노출된 탓에 위험성은 훨씬 커질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은 정식 채용된 드라퍼는 처벌을 피하지 못할 것이라고 강조한다. 법무법인 예현의 신민영 변호사는 “원칙적으로 마약 운반에 고의가 있으면 처벌된다”며 “스스로 마약 유통책을 지원한 드라퍼는 처벌을 피하지 못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소영 기자 upjs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