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만의 복귀 김윤영 “3지명 섭섭하긴커녕 고마워…반타작만 해도 대박, 부담 없이 임해”
챔피언결정전 1차전을 순천만국가정원이, 2차전을 서귀포칠십리가 가져간 가운데 9월 23일 열린 최종전에서 서귀포칠십리는 주장 조승아가 패했지만 2지명 이민진과 3지명 김윤영이 내리 두 판을 따내면서 역전 우승을 일궈냈다. 2015년 여자바둑리그 출범과 역사를 함께한 서귀포칠십리는 2019시즌 준우승을 차지한 것이 그동안의 최고 성적이었다.
#챔피언결정전 '역대 최고의 명승부'
‘한국바둑리그보다 재미있다’는 여자바둑리그가 왜 재미있는지를 여실히 증명한 2022 한국여자바둑리그 포스트시즌 경기였다.
정규시즌 순위는 1위 서귀포칠십리, 2위 순천만국가정원, 3위 삼척해상케이블카, 4위 새만금잼버리. 여자랭킹 1위 최정 9단을 보유한 보령머드가 4위 안에 들지 못했을 때부터 포스트시즌도 심상치 않을 것이라는 예감은 있었다. 최정은 정규리그에서 12승 2패를 기록했지만 다른 팀원들이 받쳐주지 못하면서 4강 탈락의 아픔을 맛봤다.
보령머드에 이어 전기 챔피언 삼척해상케이블카의 패배도 이변이었다. 지난해 전력을 고스란히 지킨 삼척은 2연패 도전도 가능하다는 전문가들의 분석이 있었지만, 선수들의 평균연령이 1위라는 부담이 결국 마지막에 발목을 잡았다.
정규리그 1위 서귀포칠십리와 2위 순천만국가정원이 맞붙은 챔피언결정전은 역대 최고의 명승부로 꼽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1승 1패 후 최종전에서 다시 마주앉은 두 팀의 대결은 포스트시즌 들어 처음 성사된 주장 대결에서 조승아 5단이 동갑내기 라이벌 오유진 9단에게 믿기 힘든 대역전패를 당했을 때만 해도 순천만국가정원의 우승이 유력해 보였다. 하지만 동시에 진행된 2국에선 반대의 결과가 나왔다. 시종 끌려가던 이민진이 막판 뒷심을 발휘하며 이영주에 대역전승을 거둔 것. 두 판 모두 패한 선수들의 우세가 오래 지속됐기에 선수는 물론 팀 관계자들도 충격도 상당했다.
결국 우승컵의 향방은 3차전 최종국 김윤영과 박태희의 대결로 넘어갔다. 피차 팀 우승을 짊어진 부담스러운 승부는 노련한 김윤영 5단이 적극적인 행마로 제압했다.
5년 전 캐나다로 바둑 보급을 떠나 그곳에서 결혼하면서 4년 동안 여자바둑리그 출전을 쉬었던 김윤영은 5년 만의 복귀 무대에서 9승 3패로 정규시즌 다승 공동 4위에 올랐다. 또 챔피언결정전에서는 2차전과 3차전에 연이어 팀의 최종 주자로 등장, 팀 승리와 팀 우승을 결정지었다.
바둑TV 해설을 맡은 백홍석 9단은 김윤영을 두고 “후배 기사들이 꼭 본받을 만한 기사”라고 평가했다. 그는 “김윤영 5단은 누구를 만나더라도 절대 주눅 드는 법 없이 자신의 주특기인 수읽기를 앞세운 전투바둑으로 상대를 어렵게 만든다. 그러면 설령 패하더라도 다음에 만날 때 상대는 경시할 수 없으며 수준 높은 승부로 이어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김윤영 "서귀포 지명됐을 때 좋은 예감 들어"
서귀포칠십리 우승의 일등공신 김윤영 5단은 26일 광주광역시 빛고을체육관에서 만났다. 마침 이곳에서 열리는 제17회 국무총리배 세계바둑선수권대회 심판을 맡았다. 다음은 그와의 짧은 인터뷰.
―5년 만에 돌아와 활약이 놀랍다.
“서귀포에서 3장으로 뽑아준 것이 성적을 내는 데 좋게 작용한 것 같다. 여자바둑리그에서 3장은 반타작만 해도 대박으로 생각하니 출전에 부담이 없었고, 그게 좋은 성적으로 작용한 것 같다.”
―팀 분위기는 어땠나.
“여자바둑리그 출전을 결정했을 때 정말 서귀포에 들어가길 원했다. 주장 조승아 5단은 확실한 주장감이라 든든했고, 2장 이민진 8단은 오래전부터 따르던 언니라 부담이 없었다. 김혜림 감독과도 마찬가지였고. 선수선발식 후 서귀포 팀에 지명됐다고 들었을 때 좋은 예감이 들었다.”
―3지명이어서 섭섭하지는 않았나.
“전혀. 앞에서도 말했지만 3지명이라 정말 고마웠다. 혼자만 편하게 승부에 임한 것 같아 동료들에게 미안할 정도였다.”
―큰 승부에 강한 것 같다. 비결이 있나.
“원래 긴장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사실 이번에 마지막 경기 출전이 많았는데 긴장하기보다는 늦은 시간 대국이라 졸려서 힘들었다(웃음).”
―외국에 있어 실전 경험이 부족했을 텐데 기량 유지는 어떻게 가능했나.
“원래 공부를 많이 하는 스타일은 아니다. 그런데 캐나다에서 현지인들을 상대로 지도하려면 공부를 해야 한다. 알아야 가르칠 수 있으니까. 틈틈이 AI(인공지능)를 활용해 공부했다. 남을 가르치려고 공부했지만 내게 더 도움이 됐던 것 같다(웃음).”
공교롭게도 포스트시즌 최종 순위는 정규리그 순위와 같게 나왔다. 우승 서귀포칠십리, 2위 순천만국가정원, 3위 삼척해상케이블카, 4위 새만금잼버리 순. 상금은 우승 5500만 원, 준우승 3500만 원, 3위 2500만 원, 4위 1500만 원이다.
유경춘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