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적 대화라 책임이 없다는 건 어불성설…5박7일 외교참사 박진·김성한·김태효 책임져야”
일요신문은 9월 28일 외교관 출신 홍기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만나 이번 해외 순방을 둘러싼 여러 논란들에 대해 물었다. 홍 의원은 행정고시 35회로 공직 생활을 시작해 한미자유무역협정(FTA) 무역규범과장, 주중국대사관 참사관, 터키 이스탄불 총영사, 청와대 국가안보실 정책자문위원 등을 역임하며 20여 년간 외교 현장에서 근무했다.
―5박 7일 해외 순방에 대해 총평을 해달라.
“한마디로 최악의 ‘외교참사’다. 교통 상황을 핑계로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조문도 가지 않았다. 한덕수 국무총리까지 나서서 설명했지만,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등 다른 나라 정상들은 걸어서라도 조문을 한 사실이 밝혀졌다. 한일정상회담에서는 저자세로 굴욕적인 모습을 연출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만나려고 행사 2개를 취소하고 갔음에도, 사실상 통역을 제외하면 24초 동안 인사만 하고 왔다. 거기에 비속어 논란까지 터졌다. 캐나다 가서는 미국 회사를 캐나다 회사라 발표했다가 취소했다. 해외 순방에서 이렇게 많은 문제가 발생한 적이 없었다. 국민께서 윤석열 대통령의 유엔총회 연설도 전혀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그럼에도 대통령실은 해외 순방에서 성과를 냈다고 하고 있다.”
―한미정상회담이 불발된 이후 윤석열 대통령은 행사 2개를 취소하고 예정에 없던 ‘글로벌 펀드 제7차 재정공약 회의’에 참석해 조 바이든 대통령과 48초 환담을 가졌다.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졌다. 9월 15일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이 대통령 해외 순방 계획 발표하면서 ‘한미, 한일정상회담 흔쾌히 합의됐다’고 밝혔다. 너무 조급한 발표였다. 고 엘리자베스 2세 여왕 국장에 참석하는 일정이 잡혀 있었고, 상황이 유동적으로 변경될 가능성이 높았다. 결국 외교 참사로 이어졌다. 바이든 대통령이 국내 정치 일정 등을 이유로 뉴욕 체류 기간을 단축하면서 한미정상회담이 취소됐다. 대통령실 입장에선 당혹스러웠을 것이다. 그래서 어떻게든 장면 연출하려고 경제 행사 2개를 불참하고 바이든 대통령 일정에 맞춰서 예정에도 없던 회의에 찾아간 것이다. 이를 위해 글로벌 펀드에 1억 달러를 낸 거다. 정상들의 만남은 10초를 만나도 무조건 사전에 협의한다. 48초 환담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글로벌 펀드 제7차 재정공약 회의’ 이후 나온 윤석열 대통령 발언이 논란이다.
“대화 자체는 사적인 대화라고 생각한다. 행사 끝나고 퇴장하면서 참모들한테 이야기했을 뿐이다. 문제는 그 모습이 영상으로 찍히면서 공개됐다는 점이다. 그러면 사적 영역에서 공적 영역으로 넘어온 거다. 사적 행위가 사회적 물의를 빚었다면 공적 책임을 져야 한다. 대통령뿐만 아니라 국회의원도 마찬가지다. 사적 대화라 책임이 없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미국이 윤석열 대통령 발언을 외교적 문제로 삼을 수 있을까.
“‘국회에서 이 XX들이 승인 안 해주면 바이든이 쪽팔려서 어떡하나’라는 대화에 비속어가 들어갔지만, 사적으로 나눈 내용이다. 맥락을 살펴보면, 바이든 대통령이 약속한 재정지원 관련한 미국 정치 상황을 이야기한 것이다. 외교 관계를 해칠 정도의 내용을 이야기한 것도 아니다. 미국 정부 차원에서 공적으로 문제 삼을 이유가 없다. 다만 미국에선 윤석열 대통령을 거침없이 말하는 캐릭터로 판단할 수는 있을 것이다.”
―대통령실 해명이 계속 바뀌고 있다.
“호미로 막을 것 가래로 막는 상황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국민께 사적 발언 관련해서 솔직하게 인정하고 잘못했다고 하면 일이 이렇게 안 커졌을 것이다. 그런데 대통령과 정부, 여당이 스스로 문제를 키우고 있다. 풀동영상이 기자단에 공유된 이후에 대외협력비서관이 기자들을 찾아가 국익을 위해서 보도를 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대통령실에서도 문제를 인지하고 있었단 뜻이다. 당초 김은혜 홍보수석 해명에선 비속어를 부인하지 않더니, 나중에는 입장을 번복했다. 박진 장관과 여당은 그런 말 자체도 없었다고 주장한다. 서로 엇갈린 해명을 하고 있다. 말을 안 했으면 미국에서 문제 삼을 것도 없는데, 동맹 훼손이라고 야당과 언론을 겁박하고 있다. 모든 언행이 상호 모순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본인 발언에 대해 진상규명을 해야 한다며 언론의 왜곡보도를 주장했다.
“국민 대다수가 영상을 봤고, 윤석열 대통령 발언에 비속어와 바이든 대통령이 포함됐다고 판단하고 있다. 그런데 윤 대통령은 국민 판단이 잘못됐다고 적반하장으로 나오고 있다. 국민을 무시하고 우롱하는 처사다. 사람 누구나 실수할 수 있다. 윤 대통령이 잘못 인정했다면 다들 관대하게 받아들였을 거다. 대통령이 왜 이렇게 대응하는지 의아한 상황이다. 일각에선 윤 대통령이 평생을 검사만 해서 본인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속성이 있는 것 같다고도 이야기한다. 검사는 범죄자들이 잘못을 인정하도록 수사하고 그 수사결과를 재판에서도 인정되도록 하는 직업이다. 잘못 인정하는 것이 굉장히 어렵다고 느끼는 심리 상태를 지녔지 않나 싶다.”
―여당이 MBC를 항의 방문하며 총력 방어전에 나서고 있다.
“여당 의원들이 안타까운 상황이다. 대통령이 저렇게 해명하면, 여당 입장에선 다른 방향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 진상 규명은 가장 먼저 대통령이 뭐라고 말했는지 이야기해야 한다. 그런데 본인이 뭐라고 얘기했는지도 말하지 않고 있다. 이후 현장에 있었던 박진 장관, 김성한 안보실장 등을 따로 불러서 어떻게 들었는지도 조사해야 한다. 이런 절차도 없이 갑자기 언론 탓으로 돌리고 있다.”
―한일정상회담을 둘러싼 논란도 적지 않았다.
“성급하게 회담 확정을 발표한 김태효 1차장이 가장 큰 책임자다. 한일정상회담 확정 발표 후에 전문가들이 일본 내부 정치적 상황 어려워서 성과를 내기 어렵다고 문제를 제기했었다. 기시다 일본 총리가 고 아베 전 총리의 국장을 밀어붙이면서 내각의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하며 거센 역풍을 맞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통령실이 한일정상회담한다고 공언해놨기에, 언제 어디서 만날지에 대한 의사결정권을 일본에 준 채로 만나달라고 요청했을 것이다. 그러면서 태극기 설치도 못 하고, 한국 기자단을 부르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했을 것이다.”
―무리하게 정상회담을 추진한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윤석열 대통령이 외교·안보에 있어서 철학이나 식견이 부족해서 핵심 참모들의 생각이 많이 반영됐을 거다. 그 중심에 김태효 1차장이 있다. 김 1차장은 이명박 정부 시절 청와대 대외전략비서관·기획관을 지냈고, 소위 친일 인사로 분류된다. 김 1차장은 ‘한반도 유사시 일본 자위대가 개입할 수 있다’는 취지의 주장을 담은 논문을 써 논란이 인 바 있다. 김 1차장은 본인이 나서면 문재인 정부 때 어려워진 일본과의 관계를 정상화시켜 성과를 낼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실패했다.”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 조문 패싱 논란도 일었다.
“대통령의 해외 순방 준비 때 교통 체크는 가장 기본이다. 대사관 직원과 선발대 등이 사전에 파견을 가서 교통수단, 시간 등 모든 것을 사전에 점검한다. 영국에 도착해서 봤더니 교통 상황이 어려워서 조문을 못 했다는 건, 제가 해외에서 대통령 행사 준비한 경험에 비춰보면 합당하지 않은 해명이다. 대통령실은 윤석열 대통령을 포함해 오후 3시 이후 영국 런던에 도착한 각국 정상들도 조문에 참석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오후 3시 이후 런던에 도착한 EU집행위원장, 오스트리아 대통령, 그리스 대통령 등은 조문을 했다. 뭔지는 알 수 없지만. 윤 대통령은 아마 다른 이유로 조문을 가지 않았을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유엔총회 연설은 어땠나.
“대통령 취임 후 첫 유엔총회 기조연설이다. 향후 5년간의 대한민국 외교안보정책 기본 방향을 발표하는 자리로서 큰 의미를 지녔다. 그런데 전반적인 연설 내용을 보면 자유민주주의 국가 간 무조건 협력하자고 이야기한다. 연설 내용은 윤석열 대통령이 러시아와 중국을 적대 관계로 규정짓는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정상회의에 참석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굉장히 걱정스럽다. 외교·안보 방향 설정이 우리나라 운신의 폭을 굉장히 좁혀 놨다. 우리나라 입장에선 경제뿐만 아니라 북한 문제도 그렇고 중국도 굉장히 중요한 국가다. 중국, 러시아 등은 과거와 달리 외교적 영향력도 커졌다. 이 밖에 한반도 평화, 북핵 문제 등을 언급하지 않았다는 건 북핵을 그대로 방치하겠다는 취지로 보인다.”
―더불어민주당이 169명 소속 의원 전원 명의로 박진 외교부 장관 해임건의안을 발의했다.
“대통령실 외교·안보 라인 전면 개편이 필요하다. 김성한 안보실장, 김태효 1차장 등의 책임을 물어야 하지만, 국회에서 조치할 수 있는 권한이 없다. 그래서 대외적으로 공식 책임자인 외교부 장관 해임건의안을 제출했다. 윤석열 정부의 외교안보정책은 이명박 정부 시즌2다. 시즌1 때 친미국 일변도 외교 정책을 추진해서 한중관계가 굉장히 안 좋아졌었다. 김 1차장은 밀실에서 지소미아(GSOMIA·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를 추진해 경질되기까지 했다.”
허일권 기자 oneboo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