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확정 판결, 공수처 ‘추가 범죄사실 밝혀내’…검찰 수뇌부 ‘무마 의혹’ 겨눌지 관심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과거 고소장을 분실하고 이를 위조한 혐의를 받는 전직 부산지검 검사 윤 아무개 씨를 불구속 기소했다. 공수처 수사1부(부장검사 직무대리 이대환)는 전직 검사 윤 씨를 공문서 위조·변조, 사문서 등의 위조·변조 혐의로 지난 9월 23일 재판에 넘겼다.
윤 씨는 부산지검 재직 시절이던 2015년 12월 고소장을 분실했다. 윤 씨는 사건이 정상적으로 접수돼 수사 후 처리되는 것처럼 행사할 목적으로, 동일 고소인이 고소한 다른 사건의 기록에서 고소장을 복사해 수사기록에 대체해 위조했다는 혐의를 받는다. 또한 공수처는 이 과정에서 검찰 수사관 명의의 수사보고서에 직접 허위내용을 입력해 출력한 뒤 수사기록에 대체 편철하는 방법으로 공문서를 위조했다고 판단했다.
윤 씨는 동일한 사건으로 이미 한 차례 법정에 선 바 있다. 언론 보도와 국정감사 등을 통해 공문서 위조 사건이 드러나자 투기자본감시센터가 2016년 8월 윤 씨를 허위공문서 작성 혐의로 고발했다.
그럼에도 우여곡절이 많았다. 최초 서울중앙지검에 접수됐던 사건은 3개월 뒤 부산지검으로 넘어왔고, 다시 서울서부지검에 이송됐다가 부산지검으로 되돌아오는 등 다소 지지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이후 부산지검이 윤 씨를 비롯한 관련자 조사를 진행한 뒤 부장검사 회의까지 거쳐 2018년 10월 윤 씨를 불구속 기소했다. 사건 발생 2년 만이라 ‘늑장기소’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윤 씨는 2019년 6월 부산지법 형사5단독(부장판사 정영훈)에서 열린 1심에서 징역 6월에 선고유예형을 선고 받았다. 이에 불복해 항소와 상고를 냈지만 모두 기각돼 2020년 3월 대법원에서 원심이 확정됐다. 선고유예는 범죄 정황이 경미할 때 일정기간 형 선고를 미루고, 유예일로부터 2년간 사고 없이 지내면 형의 선고를 면해주는 제도다. 무죄판결을 제외하고는 가장 낮은 형의 선고다.
검찰이 한 차례 기소해 확정판결 받은 사안을 공수처가 다시 기소할 수 있느냐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형사소송법상 이미 한 번 판결이 난 사건에 대해 다시 공소를 제기할 수 없다는 일사부재리 원칙에 어긋난다는 이유다.
하지만 공수처는 추가 범죄사실을 찾아낸 만큼 사안이 달라 문제가 없다는 설명이다. 공수처 관계자는 “앞선 재판에서는 고소장 표지 위조만 판단대상이었다”며 “하지만 이번에 공수처에서 윤 씨가 다른 사건기록을 찾아 고소장을 복사해, 이를 잃어버린 고소장 수사기록으로 대신 끼워 넣은 것을 찾아냈다. 또한 수사관 명의로 작성된 수사보고서도 고소인이 같은 건으로 수차례 고소를 한 것처럼 꾸며 허위보고하고, 이를 출력해 수사기록에 대체 편철한 혐의도 추가로 기소한 것이다. 일사부재리는 문제없다”고 말했다.
실제 공수처는 앞서 징역 6월의 선고유예를 받은 혐의에 대해서는 기소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공수처 관계자는 “윤 씨의 위조문서행사와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에 대해서 혐의는 인정되지만, 법원 확정판결의 효력에 따라 공소권이 없어 불기소 처분했다”고 덧붙였다.
이번 공수처의 윤 씨 기소로 당초 2018년 검찰 기소가 한정돼 있었던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다시 나왔다. 검찰이 윤 씨를 기소하면서 혐의를 ‘고소장’이 아닌 ‘고소장 표지’ 위조에 한정해 형량이 적게 나오도록 ‘제 식구 감싸기’를 했다는 것이다.
실제 고발장을 제출한 투기자본감시센터는 1심 판결 이후 “법원이 공문서를 위조했고 검찰의 ‘제 식구 감싸기’로 징계조차 받지 않은 검사에게 선고유예 판결을 내렸다”고 비판했다. 이어 ‘사문서 위조 및 위조사문서행사 혐의를 추가 적용한 공소장 변경’ 진정서도 제출했다. 당시 항소심 재판부와 검찰, 대법원에서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는데, 이번 공수처 수사로 이 같은 혐의에 대한 기소가 이뤄진 것이다.
법조계에선 윤 씨 사건을 축소하고 무마했다는 의혹을 받는 검찰 전·현직 고위직에 대한 처벌까지 나아갈 수 있느냐를 관전 포인트로 꼽는다. 이번 수사는 임은정 현 대구지검 부장검사가 국민권익위원회에 부패신고 접수한 사건이 지난해 9월 공수처로 기록 송부되면서 시작됐다.
임은정 검사의 공익신고에는 윤 씨뿐 아니라 김수남 전 검찰총장, 김주현 전 대검찰청 차장검사, 황철규 현 법무연수원 소장, 조기룡 전 청주지검 차장검사 등의 직무유기 혐의도 담겨있었다.
당시 윤 씨를 둘러싼 논란이 검찰 내부에서 불거지자 윤 씨는 2016년 6월 책임을 지고 사직서를 제출했다. 부산지검은 감찰이나 징계위원회 없이 윤 씨 사직서를 수리하는 선에서 사건을 마무리했다. 이에 임은정 검사 등은 공문서 위조는 최소 징역형이 선고되는 무거운 범죄인데도 별 문제제기 없이 사표를 받아준 검찰 수뇌부가 직무를 유기했다고 비판했다.
임은정 검사는 권익위 신고 전에 김수남 전 총장 등을 서울경찰청에 고발했다. 경찰이 ‘무마 의혹’ 수사에 착수했지만, 검찰이 부산지검 등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세 차례나 기각하는 등 수사에 어려움을 겪었다. 경찰은 결국 불기소 의견으로 사건을 검찰 송치했다. 이미 검찰의 강한 반발이 있었던 만큼 공수처가 검찰 전·현직 수뇌부에 대한 기소에 성공할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된다.
이에 대해 공수처는 “조사 의뢰된 김수남 전 검찰총장 등 전·현직 검사들에 대한 ‘고소장 위조 무마 의혹’도 계속 수사할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윤 씨 사건의 최초 제보자 역시 관련 내용을 공수처에 보냈지만, 현재 공수처는 그 내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최초 제보자 A 씨는 지난해 10월 공수처에 이명박 전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통령 친인척 비리를 제기한 고발장을 제출했다. 이 고발장 안에는 윤 씨 관련 사건도 포함돼 있었다. 하지만 공수처는 해당 고발건을 대검찰청에 이첩했고, 검찰은 다시 경찰로 사건을 내려 보냈다. 경찰은 한 차례 고발인 조사를 진행했지만, 이후 별다른 수사진행은 없다고 한다.
A 씨는 “경찰의 고발인 조사에서 윤 씨 사건에 대해서는 정식 조서를 작성하지는 않았다. 정황에 대해 설명만 했다. 이후 수사의 별다른 진전 상황은 전해 듣지 못했다. 고발건을 다시 공수처가 가져갔다는 말도 못 들었다. 공수처가 정작 최초 제보자의 고발 내용은 들여다보지 않으면서 제대로 수사를 진행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