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 KIA 꺽으며 4위팀 준PO 진출 전통 8년간 이어가…도입 첫해부터 명승부 연출
KT 선발 투수 소형준이 5와 3분의 1이닝 2실점(1자책점)으로 호투해 올가을 팀의 첫 승리 투수가 됐다. 배정대는 8회 말 승리에 쐐기를 박는 3타점 적시 2루타를 터트려 데일리 최우수선수(MVP)로 뽑혔다. KT는 16일 시작한 준PO에서 3위 키움 히어로즈와 만나 플레이오프(PO) 진출을 다툰다.
#아쉽게 4위로 밀린 KT
KT는 올 시즌 KIA보다 훨씬 좋은 성적을 냈다. 80승 2무 62패(승률 0.563)로 3위 키움 히어로즈와 정확히 동률을 이뤘는데, 리그 규정에 따라 키움 상대 전적(7승 1무 8패)에서 밀려 4위가 됐다. 반면 KIA는 70승 1무 73패(승률 0.490)로 승률 5할도 찍지 못했다. 시즌 막판까지 6위 NC 다이노스에 쫓기다 아슬아슬하게 5강 마지막 자리에 턱걸이했다. 두 팀의 정규시즌 게임 차는 무려 10.5경기. 1위 SSG 랜더스와 4위 KT의 격차(9경기)보다 더 컸다.
그럼에도 야구 관계자들은 "KIA가 '업셋'을 할 수도 있다"고 점쳤다. 팀 분위기는 KIA 쪽이 우세했기 때문이다. KT는 비로 경기가 잇따라 밀려 지난 11일까지 정규시즌을 연장했지만, 시즌 최종전에서 LG 트윈스에 통한의 끝내기 패배를 당해 와일드카드 결정전으로 밀렸다. 마지막까지 매 경기 총력을 기울이고도 원하던 결과를 얻지 못해 충격이 두 배였다. 원투펀치 웨스 벤자민과 고영표마저 마지막 두 경기에 모두 투입한 뒤였다.
반면 KIA는 지난 8일 광주 KT전을 끝으로 정규시즌 일정을 마친 뒤 차분하게 와일드카드 결정전을 준비해왔다. 서울 숙소에 머무르며 키움과 KT의 3위 전쟁을 지켜봤고, 와일드카드 결정전 상대가 KT로 정해진 뒤 수원으로 이동했다. 또 여차하면 션 놀린, 토마스 파노니, 양현종, 이의리 등 선발 투수 전원을 와일드카드 결정전에 쏟아부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1승 어드밴티지를 안은 KT와 달리 KIA는 무조건 2승을 올려야 하는 핸디캡을 안고 있었지만, 전망은 나쁘지 않은 듯했다.
1차전 선발 투수 매치업도 막상막하였다. KT는 2020년 신인왕인 오른손 투수 소형준을 내세웠다. 그는 올 시즌 27경기에 선발 등판해 171와 3분의 1이닝을 던지면서 13승 6패, 평균자책점 3.05를 기록했다. 특히 정규시즌 마지막 4경기 평균자책점이 1.50으로 무척 좋았다.
무엇보다 소형준은 '빅 게임 피처'였다. 지난 2년간 포스트시즌 통산 3경기 평균자책점이 0.60. 신인이던 2020년 두산 베어스와 플레이오프 2경기에서 9이닝 동안 1점만 내줘 깊은 인상을 남겼다. 또 지난해 한국시리즈 2차전에 선발 등판해 6이닝 3피안타 무실점으로 선발승을 올렸다. KT가 가을잔치 첫 판 선발 투수의 중책을 맡길 만한 투수였다.
KIA가 1차전 선발 투수로 낙점한 외국인 에이스 션 놀린도 만만치 않았다. 놀린은 KBO리그 첫 시즌인 올해 21경기에서 124이닝을 소화하면서 8승 8패, 평균자책점 2.47을 기록했다. 특히 후반기 성적이 압도적이었다. 13경기에서 80과 3분의 2이닝 동안 평균자책점 1.90(6승 3패)으로 호투해 팀이 5위 자리를 지키는 데 큰 힘을 보탰다. 6~7월 부상으로 전열을 이탈했는데도 KIA가 그를 믿고 기다린 이유를 보여줬다.
이뿐 아니다. 놀린은 정규시즌 KT전 3경기에서 2승 1패, 평균자책점 2.00으로 좋은 성적을 올렸다. 그의 시즌 마지막 등판이 지난 7일 광주 KT전이었는데, 7이닝 9탈삼진 1실점(비자책점)으로 호투해 성공적인 리허설도 마친 뒤였다. 여러 모로 승부를 예측하기 어려웠던 경기였다.
#16년 만의 수원 가을야구, KT 승리
수원에서 가을야구가 열린 건 2006년 10월 14일 현대 유니콘스(당시 수원 연고)와 한화 이글스의 PO 2차전 이후 16년 만이었다. 2015년 1군에 진입한 KT는 올해로 3년 연속 포스트시즌에 진출했지만, 지난 2년은 '남의 집'에서 가을잔치를 열었다. 코로나19 여파로 포스트시즌 경기 대부분이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렸기 때문이다. 창단 첫 한국시리즈 우승 축포도 고척에서 터트려야 했다.
올해는 달랐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해제되면서 처음으로 홈 팬들 앞에서 가을야구를 함께할 기회를 얻었다. 이 때문에 KT는 정규시즌 최종전 패배로 가라앉은 팀 분위기를 빠르게 수습하기 위해 애썼다. 경기 하루 전인 10월 12일 KT는 팀 훈련 일정을 잡지 않고 선수단 전체에 휴식을 줬다. 순위 경쟁에 지친 선수들의 심신을 추스르는 게 먼저라는 판단에서다.
이강철 KT 감독은 13일 1차전에 앞서 "팬들에게 할 도리를 해 기쁘다.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 팬들이 가을을 오래 즐기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야구장 역시 가을야구의 시작을 맞이하는 팬들의 열정으로 가득했다. 경기 시작 후 1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 입장권 1만 7600장이 모두 팔려나갔다.
경기 초반은 팽팽했다. 2회까지 소형준과 놀린 모두 한 타자도 출루시키지 않았다. 특히 소형준은 3회 초까지 연속 삼자범퇴 행진을 이어가면서 KIA 타선을 완벽하게 기선제압했다. 그러자 KT 타선도 3회 말 놀린을 한꺼번에 무너뜨리는 데 성공했다. 1사 1·2루에서 조용호가 2타점 선제 결승 적시 2루타를 터트렸다. 2사 후엔 앤서니 알포드의 짧은 안타성 타구를 KIA 우익수 나성범이 뒤로 빠뜨리면서 2루 주자가 추가 득점하는 행운도 겹쳤다. 놀린은 결국 초반 기세를 이어가지 못하고 2와 3분의 2이닝 3실점(2자책점)을 한 뒤 조기 강판했다.
소형준도 4회 초 흔들렸다. KIA 선두타자 류지혁에게 좌중간 2루타를 허용했고, 1사 후엔 나성범과 소크라테스에게 연속으로 초구 안타를 내줘 1점을 빼앗겼다. 그러나 이후 계속된 2사 만루에서 추가 실점을 막아냈다. 5회 초에는 자신의 포구 실책 탓에 추가 실점했다. 2사 2루에서 이창진의 땅볼 타구를 잡으러 간 1루수 강백호 대신 베이스 커버를 들어갔지만, 빨리 아웃카운트를 잡으려고 서두르다 송구를 놓쳤다. 2루에 있던 올 시즌 도루왕 박찬호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홈으로 파고들었다.
KT는 이후 1점 리드를 지키는 데 집중했다. 소형준이 6회 초 1사 후 최형우에게 우중간 2루타를 맞고 내려가자 불펜의 핵심 김민수가 올라와 불을 껐다. KT 벤치는 8회 초 외국인 에이스 웨스 벤자민까지 마운드에 올려 KIA 타선의 추격을 봉쇄했다.
KT는 결국 8회 말 승부를 갈랐다. 구원 등판한 이의리의 제구 난조로 2사 만루 기회를 잡았고, '해결사' 배정대가 주자 셋을 모두 불러들이는 싹쓸이 적시 2루타를 터트려 승리에 마침표를 찍었다. 놀린, 파노니, 이의리를 총동원한 KIA는 끝내 승부를 뒤집지 못한 채 올해 가을야구를 1경기 만에 마감해야 했다.
이강철 감독은 경기 후 "소형준이 '빅게임 피처'답게 이닝을 많이 끌어줬다. 불펜이 부족했는데, 여유를 줬다"며 "김민수도 갈수록 공이 좋다. 큰 경기에서 가장 중요할 때 쓸 수 있는 카드가 바로 김민수"라고 치켜세웠다. 또 "배정대도 집중력이 좋아 찬스를 놓치지 않는다. 타자가 불안해하면 스윙을 못하고 투수가 이기기 마련인데, 배정대는 투수가 위닝샷을 던지기 전에 승부를 한다. 멘털이 강하다"고 흐뭇해했다.
프로 사령탑 첫 해 가을야구를 허무하게 끝낸 김종국 KIA 감독은 "선수들은 열심히 잘했다. 내가 과감한 결단을 내렸어야 하는 데 미흡했다"며 "이의리가 올해 정말 잘해줬기에 8회 1이닝 정도 막아준다면 9회에 우리에게도 기회가 올 거라고 생각해 마운드에 올렸는데 결과가 안 좋았다. 승부처에서 대타를 기용하지 못한 점도 아쉽다"고 고개를 숙였다.
누구에게나 처음은 있다. 김 감독은 "큰 경기가 어떤 건지 많이 경험했다. 선수들도 오랜만에 포스트시즌에 나왔는데 좋은 경험을 많이 했을 것"이라며 "내년 시즌에는 나뿐 아니라 선수들도 더 높은 곳을 바라보며 준비를 잘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7팀 중 4팀이 PO도 갔다
와일드카드 결정전이 도입된 2015년부터 올해까지 8번의 시리즈가 열렸는데, 단 한 번의 예외도 없이 4위 팀이 5위 팀을 제치고 준PO에 진출했다. 올해의 KT 역시 어김없이 그 전통을 이었다. 또 그 중 6차례는 모두 올해처럼 1차전에서 승부가 끝났다.
와일드카드 결정전이 2차전까지 이어진 해는 2016년과 2021년, 두 번뿐이다. 2016년은 5위 팀 KIA가 1차전에서 4-2로 이겨 2차전을 한 번 더 치렀지만, 2차전에서 연장 승부 끝에 0-1로 석패해 당시 4위였던 LG에 준PO행 티켓을 내줬다. 지난 시즌에는 5위 키움이 1차전에서 4위 두산 베어스를 7-4로 제압했지만, 2차전에서 8-16으로 크게 져 준PO에 오르지 못했다.
올해 KT가 키움을 제치고 PO에 진출하게 될지도 관심거리다. 지난해까지 와일드카드 결정전에서 승리한 7개 팀 중 4개 구단은 여세를 몰아 준PO에서 정규시즌 3위팀을 밀어내고 PO 무대를 밟았다. 2016년 4위 LG가 오지환의 맹활약 속에 3위 넥센(현 키움)을 3승 1패로 꺾었고, 2017년 4위 NC 다이노스가 3위 롯데 자이언츠와 5차전까지 치른 끝에 3승 2패로 준PO를 통과했다. 이어 2018년엔 4위 넥센이 3위 한화 이글스를 3승 1패로 제압해 PO까지 나섰다. 지난해 준PO 역시 4위 두산이 3위 LG에 2승 1패(코로나19 여파로 3전2선승제 축소 진행)로 이겼다.
다만 이 네 팀 중 한국시리즈까지 진출한 팀은 2021년의 두산뿐이다. 지난해 준PO와 PO가 모두 2선승제로 열리면서 다른 시즌에 비해 4위 팀의 체력 부담이 덜했던 게 그 비결로 꼽힌다. 그 외의 세 팀은 모두 PO 진출까지가 한계였다.
2016년 승자인 LG는 PO에서 NC를 만나 1승 3패로 패했다. 또 2017년 승자 NC는 PO에서 만난 두산에 1승 3패로 졌다. 3패 모두 두 자릿수 실점을 했을 정도로 무기력한 승부였다. 2018년 승자 넥센은 PO에서 SK(현 SSG)와 5차전 연장까지 가는 '끝장' 명승부 끝에 2승 3패로 져 한국시리즈 문턱에서 물러났다.
#첫 관문부터 명장면·명승부 속출
와일드카드 결정전은 포스트시즌의 첫 관문답게 역사에 비해 많은 명승부와 명장면을 남겼다. 도입 첫해인 2015년 첫 경기부터 그랬다. 넥센과 SK는 동점 상황이 세 차례 반복되는 접전 끝에 4-4로 연장전에 접어들었다. 그러나 엎치락뒤치락 승부의 마지막에는 허무한 끝내기 실책이 기다리고 있었다.
연장 11회 말 2사 만루. SK 구원투수 박정배가 넥센 타자 윤석민을 유격수 플라이로 유도했다. 타구는 내야 안에서 높이 떠올랐고, 그대로 넥센의 득점 기회는 날아가는 듯했다. 그러나 모두 아웃을 예상하던 그 순간 공이 내야 한복판에 툭 떨어졌다. SK 투수, 2루수, 유격수가 모두 달려 들었지만 누구도 이 공을 잡지 못한 탓이다. 결국 SK 유격수 김성현의 끝내기 실책으로 기록됐고, SK는 힘겹게 올라온 가을 잔치를 1경기 만에 마감했다.
처음으로 2경기가 열린 2016년은 더 치열했다. 1차전에서는 '유격수 대란'이 벌어졌다. LG 유격수 오지환이 4회 초 치명적인 실책으로 2점을 내줬고, KIA 유격수 김선빈은 두 차례 호수비로 실점 위기를 막았다가 8회 낙구 실책으로 역전 위기를 자초하며 롤러코스터를 탔다. 결국 KIA 마무리 투수 임창용이 9회 말 무사 1루를 투수 병살타로 막아 승리를 지켰다.
2차전은 국내 에이스들의 팽팽한 투수전과 야수들의 호수비 퍼레이드가 펼쳐진 '역대급' 명승부였다. LG와 KIA팬들뿐 아니라 다른 팀 팬들에게도 박수 세례를 받았을 정도다. LG 선발 류제국이 8이닝 무실점, KIA 선발 양현종이 6이닝 무실점으로 각각 호투했다. 또 LG 오지환이 전날 실수를 만회하는 호수비를 펼치고, 김선빈은 또 한 번 실책으로 팀 동료들의 가슴을 철렁하게 했다.
하지만 최고의 명장면은 8회 말에 나왔다. 0-0으로 맞선 2사 2·3루에서 LG 양석환은 우익수 쪽으로 향하는 안타성 타구를 날렸다. 사실상 승부를 가를 수 있는 일격이었다. 그런데 이때 KIA 노수광이 몸을 날리며 등장해 타구를 순식간에 낚아챘다. 말 그대로 '슈퍼 캐치'. 지켜보던 모든 이를 감탄케 했다.
KIA는 결국 9회 말 1사 만루서 임창용이 김용의에게 끝내기 희생플라이를 맞아 0-1로 석패했다. 하지만 이때도 전진수비하던 KIA 중견수 김호령이 우중간을 가르는 김용의의 2루타성 타구를 끝까지 달려가 잡아내는 투지를 보여줬다. 타구 하나, 하나에 모든 선수가 집중하고 희비도 극명하게 엇갈리는, '가을야구'의 진수를 보여준 경기였다.
2018년에는 넥센 이정후가 또 한 번의 '슈퍼 캐치'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추격하던 KIA가 넥센과 5-5 동점을 이루는 데 성공한 7회 초 무사 1루였다. KIA 중심타자 최형우가 풀스윙으로 외야 좌중간을 완벽하게 가를 듯한 대형 타구를 만들어냈다. 하지만 넥센 좌익수 이정후가 공을 끝까지 노려보며 전력질주했고, 2루타가 될 것 같던 타구는 낙구 지점을 정확하게 포착한 이정후의 글러브로 거짓말처럼 빨려 들어갔다. 좌익수 플라이. 이와 함께 2루타를 확신하고 이미 3루 근처까지 가 있었던 1루 주자 나지완까지 2루에서 아웃돼 순식간에 아웃카운트 두 개가 올라갔다. 가장 큰 위기를 벗어난 넥센은 경기 흐름을 다시 가져오면서 10-6으로 이겼다.
배영은 중앙일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