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위원부터 예능 출연까지 현장 복귀 위한 준비 과정…두산의 변화에 힘 보탤 것”
이승엽 신임 감독이 두산 사령탑으로 내정됐다는 소문은 김태형 감독과 재계약하지 않겠다는 두산의 입장이 공표되면서 급부상했다. 이후 이 감독 관련 기사들이 쏟아졌고, 이 감독의 두산행은 기정사실처럼 알려졌다. 마침내 이 감독은 은퇴 후 5년 만에 삼성이 아닌 두산 사령탑에 올랐다. 14일 이승엽 감독과 전화 인터뷰를 했다.
전화 연결이 된 이승엽 감독에게 “축하한다”는 인사를 먼저 건넸다. 그리고 “앞으로 고생하겠다”라고 말을 잇자 이 감독은 “그 말이 딱 맞는 것 같다”고 대답했다. 점심 먹으러 식당을 찾았는데 전화가 많이 와서 식사를 제대로 못했다는 그가 점심 식사를 마친 후 전화 인터뷰에 응했다.
―두산이 김태형 감독과 재계약하지 않겠다고 발표하자마자 이승엽 신임 감독설이 급부상했다. 당시 어떤 생각이 들었나.
“그냥 ‘내가 왜?’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삼성 감독설이 나돌 때처럼 후보군 중 한 명일 뿐이라고 편하게 받아들였다. 이전 국가대표팀 감독 후보군에 이름이 오르내릴 때처럼 비슷한 분위기라고 생각한 것이다.”
―두산 측에서 만나자는 연락을 받았을 때 심정이 궁금하다.
“언론에서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 걸 알았고, 그러다 직접 연락을 받으니까 뭔가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걸 느꼈다. 사장님과 단장님을 만나러 나간 자리에서 직접 감독직 제안을 받았다. 두산이 나를 왜 필요로 하는지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주셨다. 그 내용들이 정말 좋았다. 지도자 경험이 없는 내게 사령탑을 맡긴다는 건 쉽지 않았을 텐데 말이다. 그래서 더 감사했고, 부담도 컸다.”
―바로 그 자리에서 두산의 제안을 수락했던 건가.
“대략적인 내용만 협의를 했고, 세부적인 건 어제(13일) 와일드카드 결정전 1차전을 마친 후 마무리지었다. 2017년 선수 생활 은퇴 후 올 시즌까지 5년이 지났다. 5년 뒤엔 현장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그 마음이 두산으로 향하게 될지 몰랐다.”
―왜 은퇴 후 5년 지나 현장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생각한 건가.
“작년까진 준비가 안됐다. 현장으로 향한 마음은 은퇴한 지 3년 지났을 때부터 조금씩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그동안 여러 일들을 하며 준비를 하고 있었고, 시간이 흐를수록 야구가 내 천직이란 걸 부인할 수 없더라. 해설위원, KBO 홍보대사, 장학재단, 야구와 골프 관련 예능 프로그램 출연 등 모든 활동들이 현장으로 돌아가기 위한 준비 과정이었다고 본다.”
―이전 다른 팀에서 감독이나 코치직 제안을 받은 적이 없었나.
“없진 않았다. 하지만 내가 몸담았던 삼성 구단에서 제안 받은 적은 없었다.”
―지도자의 시작이 코치가 아닌 감독이란 점에서 부담도 있었을 것 같다.
“이전에 어떤 제안을 받았을 때 이렇게 말씀 드린 적이 있었다. 내가 코치로 가게 될 경우 그 팀의 감독님이 어떤 분이냐에 따라 합류할 수도 있고, 합류하지 못할 수도 있다고 말씀드렸다. 예를 들어 류중일 감독님이 계셨고, 류 감독님이 나를 코치로 품으셨다면 감사한 마음으로 그 안에 들어갔을 것이다. 류 감독님이 LG에 계실 때 농담처럼 내 옆으로 오라고 말씀하신 적도 있었다. 그런데 만약 다른 분이 감독으로 계신데 내가 코치로 간다면 나보다 그 감독님이 불편해 하지 않으실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로 인해 코치들이, 선수들이 불편하진 않을까. 감독님이나 선수들한테 가야 할 스포트라이트가 코치인 나한테 쏠리면 어떻게 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서로 불편한 상황은 만들고 싶지 않았다.”
―2군 감독으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할 계획도 있었나.
“그 또한 1군 감독이 누구냐에 따라 달라졌을 것이다. 2군 감독이 싫어서가 아니라 ‘이승엽’이란 이름값을 다른 지도자들이 부담스러워하지 않는 게 중요했다. 그래서 앞에 류중일 감독님을 예로 들었던 것이다. 사실 2년 전부터 해외에서 지도자 연수를 받을 계획이었는데 코로나19로 무산됐다. 그 부분이 많이 아쉬웠다.”
―해설위원으로 본 두산은 어떤 팀인가.
“2015년부터 계속 상승세를 보이다 어느 순간부터 강팀의 면모가 사라지더라. 지난 7년 동안 좋은 성적을 내면서 신인 드래프트 지명 순번이 뒤로 밀리고, FA 선수들이 타 팀으로 이적하는 등 전력이 약화된 건 사실이다. 지금의 두산에 변화가 필요했고, 그 변화에 힘을 보태고 싶었다. 올 시즌 성적이 좋지 않았지만 두산에는 여전히 뛰어난 선수들이 많다. 허경민, 김재환, 정수빈, 김재호 등 베테랑 선수들이 충분히 제 기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 나이 어린 선수들, 유망주들도 잘 파악해서 잘 성장할 수 있도록 이끌 예정이다. 두산은 우승을 많이 해본 강팀이다. 그 저력을 무시할 수 없다.”
―흔히 감독 자리를 ‘독이 든 성배’라고 표현한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은 없나.
“되도록 부정적인 생각을 안 하려고 한다. 실패를 하든 성공을 하든 내 책임일 것이고, 어렸을 때부터 항상 부담되는 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실패에 대한 비난도 모두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다. 팬들에게 좋은 경기를 보이는 게 목표지만 때론 어떠한 비난도 감수해야 하는 게 감독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레전드 출신인 선동열 전 감독이 삼성에서 우승을 경험하고 친정팀 KIA에서 아쉬운 마무리를 보였다. 그만큼 감독이란 자리가 어렵다는 걸 보여준 사례다. 두산 선수들에게 어떤 지도자로 다가가고 싶나.
“선동열 감독님도 존경받는 지도자였다. 내가 하고 싶은 건 선수들과 많은 대화와 스킨십을 통해 소통하는 지도자다. 코치들도 있지만 연습하는 과정에서 도움을 주고 싶고, 유니폼 입고 있으면 감독이지만 벗고 있을 때 야구 선배로 다가가고 싶다.”
―수석코치로 김한수 전 삼성 감독이 내정됐다고 하던데 사실인가.
“구단에 김한수 감독님을 수석코치로 모시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김한수 감독님은 내가 스무 살 때 삼성의 3루수였고, 스타플레이어로 성장했을 때 팀 주장이셨다. 내가 일본 갔다가 다시 삼성에 복귀했을 때는 팀 타격코치였고, 선수 생활 은퇴하기 전 마지막 감독님으로 모신 분이다. 감독님이 아쉽게 삼성을 떠나셨지만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꼭 김한수 감독님과 함께할 것이라고 마음먹었다. 내가 갖지 못한 현장 경험을 갖고 계신 분이고, 타격에선 일가견이 있는 지도자라 김한수 감독님과 꼭 함께 가고 싶었다. 나머지 코칭스태프 구성은 구단과 의견을 조율 중이라 결정되면 그때 말씀드리겠다.”
―두산 사령탑을 맞게 되면서 JTBC ‘최강야구’의 감독직에서 물러나게 됐다. 고마움과 아쉬움이 공존할 것 같은데.
“어제 장시원 PD한테 상황을 전했고, 잘 이해해주셨다. ‘최강야구’란 프로그램을 통해 아마추어 야구에 대한 관심이 늘어났고, 프로그램도 점차 인기를 얻으며 성장해나갔다. 지금까지 20경기를 치르며 감독으로 더그아웃을 맡긴 장시원 PD한테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다. 두산 구단의 허락 하에 마지막 촬영을 앞두고 있는데 그 촬영을 통해 ‘최강야구’ 제작진들, 선수들, 그리고 팬들에게 인사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됐다.”
―마지막 질문이다. 두산 감독직을 수락하기 까지 가장 고민했던 부분이 무엇이었나.
“삼성이었다. 삼성 선수로 사랑받고 레전드에 오른 내가 두산으로 가는 걸 팬들이 이해해주실까 싶었다. 꼭 이 말씀을 드리고 싶었다. 은퇴한 지 5년이 지났고, 난 야구가 하고 싶었다고. 그래서 두산에서 감독을 시작하게 된 거라고. 그 말의 의미를 이해해주셨으면 좋겠다.”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