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 앞두고 따로 연락도 하지 않아…장원준·박건우는 두산서 한솥밥 먹을 당시 ‘찰떡 호흡’
고우석은 내년 1월 6일 이정후의 여동생과 결혼식을 올린다. 이종범 LG 2군 감독의 사위이자 이정후의 매제가 되는 것이다. 고우석과 이정후는 청소년 대표팀 시절부터 끈끈한 우정을 쌓아 온 친구 사이다. 이정후의 여동생과는 '친구 동생'과 '오빠 친구' 사이로 알고 지내다 연인으로 발전해 사랑의 결실을 맺는다. 고우석은 "훌륭한 사람과 평생을 함께하게 돼 행복하다"며 "멋진 남편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최고의 해 보내고 가족이 된다
곧 가족이 될 둘은 올해 선수로서 최고의 한 해를 보냈다. 이정후는 올해 142경기를 뛰며 타율 0.349, 홈런 23개, 113타점의 성적을 올렸다. 타율·안타(193개)·타점·출루율(0.421)·장타율(0.575) 부문을 모두 석권하며 타격 5관왕에 올랐다. 데뷔 후 최초로 정규시즌 최우수선수(MVP) 자리도 사실상 예약해놨다.
고우석은 올 시즌 61경기에서 60과 3분의 2이닝을 책임지면서 4승 2패 42세이브, 평균자책점 1.48을 기록했다. 올 시즌 세이브 1위를 차지하면서 역대 LG 소속 투수로는 최초로 40세이브 고지를 밟았다. 데뷔 후 최고의 성적과 함께 인생의 새 페이지를 열게 된 것이다.
심지어 둘은 내년 3월 열리는 2023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을 앞두고 일본 대표팀 감독이 투타에서 가장 경계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구리야마 히데키 일본 야구대표팀 감독(61)은 지난 10월 24일과 25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LG와 키움의 PO 1·2차전을 직접 관전한 뒤 이정후와 고우석, LG 불펜 투수 정우영을 '요주의 인물'로 꼽았다. 일본 ‘데일리스포츠’는 "구리야마 감독은 젊은 선수들의 힘을 주목했다. 특히 전 주니치 드래건스 선수 이종범의 아들이자 지난해 도쿄올림픽에 한국 대표로 출전했던 이정후를 주의 깊게 지켜봤다"고 썼다.
구리야마 감독은 이 매체와 인터뷰에서 "이정후가 어떤 느낌으로 치고, 어떻게 올 시즌과 같은 성적을 냈는지 확인하고자 했다. 이정후를 어떻게 상대해야 하는지 큰 그림은 그렸다"고 말했다. 이정호는 구리야마 감독이 지켜본 PO 1·2차전에서 9타수 5안타(타율 0.556)로 '단기전 승부사'의 재능을 뽐냈다. 구리야마 감독은 또 "단기전에서 짧은 이닝을 확실하게 막고 다음 투수에게 마운드를 넘길 수 있는 투수가 있다는 건 대단한 강점이다. 한국 불펜진의 투구를 피부로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며 "고우석은 도쿄올림픽에서 봤을 때보다 좋아졌다. 정우영은 매우 까다로운 투수"라고 평가했다.
이뿐 아니다. 올 시즌 한화 이글스에서 뛴 외국인 타자 마이크 터크먼은 KBO리그 선수 중 메이저리그(MLB)에서도 통할 만한 선수로 이정후와 고우석을 지명했다. 터크먼은 "이정후는 대부분의 타격 지표에서 상위권에 올라 있을 정도로 대단한 활약을 하고 있다. MLB에서도 충분히 경쟁력이 있는 외야수"라고 했고, "고우석은 정말 빠른 공을 던지는데, 직구 외에 MLB에서 통할 만한 변화구도 갖고 있다. 미국에 진출해도 불펜에서 충분히 좋은 활약을 하게 될 것"이라고 높이 평가했다.
#이정후-고우석 팀 승리에만 집중
포스트시즌에서 키움 타선의 핵심인 이정후와 LG 마무리 투수 고우석이 마주 보게 된다는 건, 두 팀의 승패에 가장 중요한 순간이 찾아왔다는 의미가 된다. '예비 가족'인 두 특급 선수의 승부와 스토리에 기대가 쏠릴 수밖에 없었다.
물론 이정후와 고우석은 "그라운드에서는 상대와 개인적 관계를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며 확실하게 선을 그었다. 고우석은 PO 시작 전 "정후와 대결이 또 하나의 재밌는 이야기가 될 것 같긴 하다. 예전에 포스트시즌에서 정후와 맞붙었을 때도 재밌었는데, 어차피 한 명만 웃을 수 있는 승부"라며 "그래도 (내가 정후에게 이기는 것보다) 우리가 한국시리즈에 가는 게 더 중요하다. 지난 번 포스트시즌 승부에선 안타를 맞았으니 이번에 만나게 되면 더 잘해야 한다는 생각은 든다"고 했다.
고우석은 또 PO 1차전에서 6-3으로 앞선 9회 초를 피안타 없이 2탈삼진 무실점으로 막고 세이브를 올린 뒤 "PO는 나와 이정후의 싸움이 아니라 LG와 키움의 싸움이다. '왜 이렇게 (우리가) 주목을 받지?'라는 생각도 했다"고 웃으며 "승리에 대해서만 집중하고 있다. 지나고 나면 이런 것도 다 추억이 될 것"이라고 했다.
포스트시즌을 치르는 선수 입장에선 결혼을 비롯한 개인사에 신경 쓸 여력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고우석은 "긴장이 풀려 있다면 결혼 이야기가 쑥스럽거나 민망하기도 할 텐데, 지금은 집중력이 최고조로 올라 있다"며 "정후와 가능하면 만나고 싶지 않지만, 만나게 된다면 가을야구이니 무조건 이겨야겠단 생각만 하고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또 '이정후와 맞대결에서 어떤 공을 던질 건가'라는 질문에는 "직구 아니면 변화구"라는 농담으로 받아치며 활짝 웃었다.
이정후도 다르지 않다. KT와 준PO 1차전을 앞두고 "꼭 PO에 올라가서 고우석을 만났으면 좋겠다. 중요한 상황에서 만나는 것만 피했으면 좋겠다"고 웃으면서도 "한국시리즈로 가는 길목에 LG가 있기 때문에 당연히 만나야 한다"며 '승부의 일부'임을 강조했다. 또 LG와 대결이 성사된 PO 1차전을 앞두고는 "우석이와 대결이나 이에 대한 관심은 전혀 부담스럽지 않다. 살면서 개인적으로 부담이 됐던 것은 '이종범의 아들'이라는 꼬리표 하나뿐이었다"고 자신감 넘치는 답변을 내놨다.
PO를 앞두고 고우석과 따로 연락도 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저 "나나 우석이나 서로 승부에는 신경 쓰지 않는다. 그저 야구장 안에서는 팀 승리에만 집중한다"며 "키움과 LG에는 나와 우석이 말고 여러 선수들이 있다. 이번 PO에서 너무 우리에게만 관심이 쏠리면 한 시즌을 함께 고생한 다른 선수들이 묻히는 것 같아 미안할 따름"이라고 털어놨다.
#또 다른 처남-매제 장원준과 박건우
이정후와 고우석 이전에 야구계에서 가장 유명한 처남-매제 사이는 두산 베어스 장원준(37)과 NC 다이노스 박건우(32)였다. 두 사람이 두산에서 한솥밥을 먹던 2017년 1월, 장원준이 박건우의 친누나와 백년가약을 맺었다. 장원준은 두산 선발진의 한 축을 맡아 전성기를 보내던 시기였고, 박건우는 동기생 정수빈·허경민과 함께 '두산 왕조'의 핵심 타자로 활약하고 있었다. 잘 던지는 매형 장원준과 잘 치는 처남 박건우가 두산의 승리를 합작하는 날이 적지 않았다.
특히 결혼 첫해인 2017년 6월 23일 롯데 자이언츠전에서는 장원준이 선발 등판한 날 박건우가 데뷔 후 첫 연타석 홈런을 터트리며 기념비적인 하루를 보냈고, 장원준의 그다음 등판인 6월 29일 SK 와이번스(현 SSG 랜더스)전에서는 박건우가 시즌 첫 결승타를 때려내기도 했다. 또 그다음 등판인 7월 5일 KT 위즈전에선 장원준이 8이닝 무실점으로 시즌 최고 피칭을 하자 박건우가 1-0으로 앞선 7회 말 2사 1·2루에서 2타점 쐐기 적시타를 쳐 매형의 어깨를 가볍게 해줬다. 박건우가 경기 후 "매형이 던지는 모습을 보면 존경스럽다"고 찬사를 보내자 장원준은 "꼭 내가 선발 등판한 날이 아니더라도 건우가 잘 치면 기분이 좋다"고 화답했다.
그해 가을야구에서도 두 사람의 우애는 계속됐다. 장원준은 NC와 PO 2차전에 선발 등판했는데, 경기가 생각만큼 잘 풀리지 않았다. 5회까지 홈런 3방을 얻어맞으면서 6점을 내줘 두산이 5회까지 4-6으로 끌려가야 했다. 포스트시즌에 강했던 선발 장원준의 난조가 예상 밖이라 두산은 더 당황했다. NC 타선은 장원준의 실투를 놓치지 않고 계속 받아쳤다.
그때 박건우가 '해결사'로 나섰다. 데뷔 후 첫 포스트시즌 홈런을 신고하면서 3안타 3타점 3득점을 올려 박건우 개인의 포스트시즌 한 경기 최다 안타와 타점을 기록했다. 안타 3개가 모두 득점으로 연결됐고, 두산 타선의 연쇄 폭발을 일으키는 도화선이 됐다. 이날 두산 김재환이 3점 홈런 두 방을 쳤는데, 모두 2사 후 박건우가 출루하면서 흐름을 이어간 뒤 터트린 대포였다. 박건우는 그 후 "매형이 정말 좋은 투수인데, 이상하게 공이 몰려 계속 맞는 걸 외야에서 바라보고 있으니 나도 모르게 울컥했다. 마음도 편치 않았다"며 "포스트시즌이니만큼 더 이기고 싶다는 마음, 내가 잘해서 만회하고 싶다는 마음이 강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박건우가 올해 NC로 이적하고 장원준은 두산에 남으면서 둘은 이제 다른 팀 유니폼을 입고 있다. 6년 최대 100억 원에 프리에이전트(FA) 계약을 한 박건우는 NC의 핵심 전력으로 활약하고 있다. 반면 장원준은 지난 4년간 1군에서 별다른 활약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지난 10월 14일 두산의 새 사령탑으로 부임한 이승엽 신인 감독은 개인 면담에서 "현역 생활을 연장하고 싶다"고 밝힌 장원준의 뜻을 존중하기로 결정했다.
이 감독은 "장원준은 프로 통산 129승을 한 투수다. 이 정도 이력을 쌓은 선수가 은퇴할 생각이 없는데 뛸 수 있는 팀을 찾지 못하는 건 불명예 은퇴다. 나는 레전드를 대우하고 싶다"며 "우리 팀에 왼손 투수가 부족한 상황이어서, 나 역시 장원준이 조금 더 자신의 역할을 해줬으면 하는 마음이다. 장원준에게 '후회 없이 한 번 뛰어보자'고 얘기했다"고 전했다.
장원준은 '두산 왕조'의 일등공신 중 한 명이다. 2015년부터 3년간 두산의 토종 에이스로 활약하면서 41승을 올렸고, 포스트시즌에서도 맹활약해 2015년과 2016년 두산의 한국시리즈 2연패와 2017년 준우승을 뒷받침했다. 그러나 2018년부터 부상과 부진에 시달리면서 그해 5월 5일 이후 더는 승수를 추가하지 못했다. 올 시즌엔 27경기에 중간 계투로 등판해 1패 6홀드, 평균자책점 3.71을 기록했다. 은퇴의 갈림길에 섰던 장원준에게 이승엽 감독이 손을 내밀었고, 구단도 이 감독의 의견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이 감독은 "장원준이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후배들과 재밌는 경쟁을 해줬으면 좋겠다"며 "그러나 특혜는 없다. 장원준도 과거 경력이 아닌 현재 결과가 좋아야 (1군이 뛰는) 잠실에서 경기할 수 있다"고 격려와 당부를 동시에 전했다.
배영은 중아일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