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현국 위메이드 대표 지나친 자신감이 독 지적도…법적 대응 예고했지만 재상장·승소 사례 없어
11월 25일 장현국 위메이드 대표가 기자간담회에서 쏟아낸 말이다. 상장사 대표가 공적인 자리에서 공개적으로 또 다른 회사를 향해 쏟아냈다는 점을 고려하면 최고 수위로 비판한 셈이다. 장 대표 발언은 가상자산 위믹스 상장폐지가 위메이드와 업비트 사이의 싸움으로 번질 가능성을 보여줬다.
10월 27일 디지털자산 거래소 공동협의체(DAXA)는 계획된 유통량과 실제 물량이 차이가 있음을 이유로 들어 위믹스를 유의종목으로 지정했다가 11월 24일 결국 거래지원 종료(상장폐지)했다. DAXA 측은 위메이드가 발행한 가상자산 위믹스의 공시하거나 코인마켓캡(가상자산 정보 사이트)에 드러난 유통량과 실제 유통량의 차이가 컸기 때문이다. 위믹스가 거래소에 공지한 유통량은 약 2억 4400만 개였는데 실제 유통량이 3억 2000만 개로 훨씬 더 많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시장 신뢰를 상실한 게 이유가 됐다.
가상자산과 주식을 직접 비교하긴 어렵지만 유통량 문제는, 단순 비교해 100주가 있다고 발표했는데 그 뒤에 알고 보니 50주가 더 나온 상황이다. 주식수에 따라 시가총액이 결정되듯, 가상자산도 코인 발행 개수에 따라 시가총액이 결정된다. 투자자들은 시가총액을 보면서 투자하는데 이 개수가 달라지면 가상자산 평가 자체에 오류가 생기기 때문에 매우 중요한 지표다.
DAXA가 처음부터 위믹스를 상장폐지하기로 한 건 아니다. 오히려 지나치게 편의를 봐준다는 지적도 나왔다. DAXA가 위믹스 유의 조치를 취하고 두 번에 걸쳐 심사를 한 뒤 유의 종목 지정기간 마감일을 연장해줬기 때문이다. 최초 유의 종목 지정 후 4주 만에 상장폐지 결정이 나왔는데 일반적으로는 첫 번째 유의 종목 심사에서 유의 종목 해제나 상장폐지가 결정되곤 한다. 세 번째 심사 받을 기회를 준 것 자체가 편의 제공 아니냐는 비판이었다.
장현국 위메이드 대표는 11월 17일 부산 벡스코 ‘지스타 2022’ 행사장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상장폐지가 아닌 유의종목 해지를 자신했다. 장 대표는 “국내 거래소에서 위믹스를 투자 유의종목으로 지정한 이유는 위메이드가 제출한 유통 계획량과 실제 위믹스 유통량에서 차이가 발생했기 때문인데, 이 부분에 대해서는 DAXA 문답을 통해 이유를 설명하지 못한 것이 없다”며 “합리적인 수준에서 추론한 만큼 위믹스가 상폐될 가능성이 없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가상자산 업계 관계자는 11월 24일을 ‘심판의 날’로 생각했다. 위믹스가 상폐되거나 유의종목 지정 해제되거나 둘 중 하나가 판가름날 날이 24일이었기 때문이다. 가상자산 업계 관계자 A 씨는 “3번 심사 이후에도 유의종목 연장으로 끝내긴 어려울 것 같다. 유의종목 해지나 상폐나 둘 중 하나로 결론이 날 수밖에 없지 않나 싶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대다수 가상자산 관계자는 ‘상폐까지는 힘들 것’이라는 의견이었다. 위믹스가 국내 가상자산에서는 시총 1위를 차지하기도 했던 만큼 워낙 규모가 큰 데다 투자자 수도 많기 때문이다. 위믹스는 위메이드라는 상장사가 발행한 가상자산이기 때문에 국내 주식 투자자들이 많이 매수한 코인으로 꼽힌다. 소위 대마불사 아니냐는 얘기였다.
그런데 심판의 날에 충격적인 결론이 났다. 11월 24일 오후 7시 DAXA는 위믹스 상장폐지를 발표했다. 위믹스는 전일 약 2200원 선에서 거래된 것 대비 약 4분의 1토막 나면서 24일 오후 4시 기준 업비트 기준 620원, 빗썸에서는 475원 수준으로 거래되고 있다. 위믹스는 지난해 최고가 2만 8000원 기준으로 97% 이상 폭락했다.
이 와중에 미리 상장폐지 정보가 유출된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온다. 24일 오후 2시쯤 위믹스는 약 2500원 정도 거래됐는데 이때 약 200만 개(약 50억 원)가 시장가로 매도된 것이다. 위믹스는 약 1800원까지 하락했다가 다시 2200원까지 회복했지만 이때 시장가 매도를 두고 ‘정보를 미리 안 누군가가 던진 것 아니냐’는 얘기가 돌기도 했다.
11월 25일 위메이드는 긴급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장현국 대표는 이 자리에서 “유통량 계획 제출한 곳은 업비트 한 군데밖에 없다. 업비트의 슈퍼 갑질이라고 보고 있다”고 강조했다. 다른 거래소에는 유통량 계획을 제출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번 결정에 업비트가 깊이 관여한 것 아니냐는 게 위메이드 측 생각이다.
장 대표는 “업비트는 유통량에 대한 정의, 가이드라인, 기준도 제시하지 않은 상황에서 일방적으로 이와 같은 통보를 했다”며 “상장폐지 공지하면서도 위메이드 소명은 전혀 반영하지 않았고 어떤 소명이 불충분했는지 알려주지도 않았다”면서 이런 모습이 ‘슈퍼 갑질’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위믹스 상장폐지 결정은 다른 가상자산 프로젝트들과 형평성도 맞지 않다고 주장했다. 현재 업비트에 상장된 코인 가운데에는 유통 계획량 자체를 명시하지 않은 프로젝트들이 많은데, 위믹스의 경우 오히려 유통량 계획 정보를 제공했다고 해서 상폐한다면 그게 공정하냐고 항변했다.
일각에서는 위믹스 상장폐지를 두고 장 대표의 지나친 자신감이 독이 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가상자산 업계 관계자 B 씨는 “장 대표가 ‘상장폐지 없다’는 얘기를 하면서, 만약 상장폐지가 안됐을 경우 업계 사람들은 ‘위메이드가 DAXA 측과 뭔가 얘기가 됐기 때문에 저렇게 말한 것 아니냐’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면서 “또한 위믹스가 엮인 유통량 이슈가 워낙 치명적인 일인 만큼 상장폐지가 안 되면 ‘역시 대마불사 아니냐’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장 대표가 상장폐지를 두고 얘기하지 말고 유통량을 실제 수준으로 맞추는 작업에 집중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가상자산 업계 관계자 C 씨도 비슷한 얘기를 했다. C 씨는 “DAXA가 두 번이나 연장해준 배경은 유의 조치 해제 쪽에 무게가 있었다고 해석해볼 여지가 크다. 그런데 17일 장 대표 발언 이후 결국 분위기가 바뀌면서 이대로 유의 해제하면 다른 프로젝트도 관리하기 어려워질 것으로 본 게 아닌가 싶다”고 설명했다.
25일 기자간담회에서도 비슷한 질문이 나왔다. 이에 장현국 대표는 “큰 문제 소명이 끝나고 자잘한 문제 소명 방향으로 가면서 문제가 해결됐다고 생각했다. 그동안 커뮤니케이션이 원활했다고 생각했고 20차례에 이르는 자료 요구에도 성실히 응했다”면서 “질문이 왔고 그 당시 내가 아는 최선의 지식으로 판단해 ‘상장폐지 가능성 없다’고 대답을 했다. ‘상장폐지 가능성이 없다’는 말을 했는데 그 말에 상장폐지를 했다면, ‘네가 틀린 걸 보여주겠다’는 듯이 결정했다면 더 큰 문제다. 누가 밉다고 해도 거래소는 공정하게 심사해야 할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장 대표는 “설마 그러지는 않았다고 보지만 내가 ‘상장폐지는 없다’는 말에 (업비트 측이) 화가 나 본때를 보여주겠다고 생각했다는 얘기를 하는 기자도 있었고, 소문도 들었다”면서 “이런 중차대한 문제를 공정하게 처리하는 게 아니라 화가 나서 처리했다면, 업비트가 분명하게 답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 발언이) 판단에 영향을 미쳤다면 그게 더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위메이드는 상장폐지 가처분 소송을 내고 법적 대응으로 전환하겠다는 것을 분명히 했다. 현재까지 상장폐지됐다가 재상장된 사례는 없다. 던프로토콜이란 코인이 퍼스트블러드란 이름일 때 업비트 BTC(비트코인) 마켓에 있다가 상장폐지됐다가 다시 재상장된 바 있지만 위믹스와는 상황이 조금 다르다. 당시 업비트와 제휴하고 있는 비트렉스 거래소가 퍼스트블러드 상장폐지 절차를 진행했기 때문에 업비트에도 일괄적으로 적용됐고, 이후 퍼스트블러드가 던프로토콜로 바뀌는 등 변신한 뒤 업비트 자체 심사로 재상장됐기 때문이다.
상장폐지 가처분 소송도 승소 사례가 없다. 지난해 6월 피카 프로젝트도 유통량 문제로 상장폐지됐고 이에 피카 측이 가처분 신청을 냈는데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기각된 바 있다. 이에 장 대표는 “정확히는 모르지만 피카 프로젝트는 유통량 문제를 해소하지 못한 것으로 안다. 위믹스는 유통량과 관련된 문제를 완전히 해소했고 지금은 유통 계획 안에서 유통이 되고 있다”고 답변했다.
장현국 대표가 말하는 가처분 신청 외에 ‘갑들의 불공정을 두고 보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밝혔지만 업비트의 어딜 공격할지 아직은 미지수다. 다만 장 대표는 ‘유통량 계획을 밝히지 않은 곳도 있는데 유통량만으로 상폐된 게 억울하다’는 입장인 만큼 업비트에 상장됐지만 유통량 계획을 밝히지 않은 곳이 타깃이 될 수 있어 보인다.
업비트 측은 “업비트 단독으로 결정한 사안이 아닌 DAXA 회원사들이 모여 소명자료를 분석한 뒤에 종합적으로 내린 결론이다. 국내에서 위믹스를 거래지원하는 4개 거래소가 모여서 심도 있게 논의했고, 투자자 보호를 위해 고심을 거듭해 내린 결론으로 알고 있다”고 답변했다.
위믹스가 국내 거래소 일괄 상장폐지를 딛고 다시 일어날 수 있을지 아직은 미지수다. 장현국 대표는 “위믹스는 이미 사업의 축이 글로벌로 이동한 상황이라 이번 상폐가 사업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말했지만 사태의 크기는 심각할 것으로 보인다. 위믹스를 원화로 살 수 있는 통로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글로벌 거래소 상장도 아직 결정된 곳이 없는 데다 해외거래소 바이비트도 ‘위믹스가 토큰 관리 규정을 충족하지 않았다’며 상폐 가능성이 있다고 공지했다.
가상자산 업계 관계자 D 씨는 “난관이 있더라도 위믹스가 끝까지 사업을 지속하는 모습을 보여주길 바란다. 어려움 속에서도 생태계를 확장해 다시 재상장하는 최초 사례를 만들면 되는 것 아니냐”면서 “그게 사업가 모습이고, 가상자산 업계에 큰 충격을 준 것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