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틴 드라마 휩쓴 ‘10대들의 전지현’ 이번 작품 통해 추리·스릴러·액션까지…배우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
“찬미는 그냥 평소의 제 목소리와 일상에서 제가 가장 편한 사람을 만났을 때 보이는 행동을 그대로 가져갔어요. 그러다 보니 캐릭터를 구축해 가는 데도 어려움이 없었죠. 주변에서도 ‘너랑 가장 많이 닮은 캐릭터’라고 얘기해주셨고요. 그저 자연스러움이 1순위였어요. 예쁜 건 중요하지 않았고 전날 잠을 설쳐서 눈이 붓거나 충혈돼도 그대로, 연기를 하다 추워서 콧물이 나도 그대로 갔어요(웃음). 민낯을 보여주는 것에 회사에서도 반대가 없었어요. 하지만 가끔 화면으로 저를 보면서 '아 조금은 꾸밀 걸 그랬나' 싶을 때도 있었죠(웃음).”
12월 14일 12부를 마지막으로 막을 내리는 디즈니 플러스 오리지널 시리즈 ‘3인칭 복수’에서 신예은은 어린 시절 부잣집으로 입양 간 쌍둥이 오빠의 미심쩍은 죽음을 맞닥뜨린 뒤 사건에 숨겨진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오빠가 다니던 학교로 전학 온 사격 특기생 옥찬미 역을 맡았다. 오빠를 죽음으로 몬 범인을 찾아내 복수하려 하는 찬미는 불공평한 세상에 맞서 복수 대행을 시작한 같은 반 남학생 지수헌(로몬 분)과 얽히며 공통된 진실을 좇아 나간다.
“사실 전 범인을 몰랐어요(웃음). 3부까지 대본을 받은 뒤 그저 결말과 과정에 대해 두루뭉술하게 이야기를 들었을 뿐이었고, 또 세세한 플롯은 촬영 중에도 계속 바뀌어 갔거든요. 촬영하는 배우들도 자기가 범인인 줄 몰랐대요. 나중에 자기가 범인이란 걸 알고 나서 재촬영한 배우도 있고 그렇더라고요. 감독님이 몇몇 배우들에겐 미리 귀띔을 하셨다는데 전 안 듣기로 해서 마지막까지 몰랐죠(웃음).”
주인공이 시청자들과 같은 시각으로 주변 인물들을 끊임없이 의심하고 고민해야 하는 작품의 특성상, 범인을 알지 못하고 촬영에 들어간 것이 오히려 도움이 됐다는 게 신예은의 이야기다. 최대한 시청자들의 눈으로 주변을 바라보다 보니 작품에 몰입하기도 쉬웠다는 것이다.
“고민이 되긴 했어요. 범인을 알고 연기하는 게 앞으로의 촬영에 도움이 될지, 아니면 모르고 해야 모든 인물을 똑바로 바라볼 수 있을지. 그러다 나중엔 ‘그냥 모르고 가자!’고 결정하게 되더라고요. 그래야 신선하고 저도 충격을 많이 받을 것 같았거든요. 사실 처음 대본을 받았으면 범인이 저였으면 했어요. 아니면 이게 다 찬미의 상상이었다! 둘 다 아니란 걸 알고 나선 눈빛을 보니 딱 기오성이 범인이 아닐까 하고 계속 의심하고 그랬죠(웃음).”
이야기의 큰 틀은 쌍둥이 오빠를 죽인 살인범을 찾는 추리를 중심으로 하고 있지만, 아무래도 10대 청춘들이 모인 학교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보니 이들 간의 풋풋한 로맨스도 기대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신예은이 맡은 옥찬미는 ‘사적 복수 대행 히어로’ 지수헌 역의 로몬과 기억을 잃어 미스터리하지만 다정한 ‘연상남’ 석재범 역의 서지훈과 동시에 엮이는 복 많은(?) 주인공이기까지 하다. 여기에 찬미와 어설프지만 단단하게 우정을 쌓아나가는 태소연 역의 정수빈, 비밀을 간직한 악역 기오성 역의 채상우까지 나잇대가 비슷한 배우들끼리의 촬영 현장은 늘 왁자지껄하게 들떠 있었다고 한다.
“처음 데뷔했을 때를 생각해 보면 모든 현장에서 제가 항상 막내였었거든요. 매번 언니오빠들한테 의지하고 애교 부리는 역이었는데 이번엔 막내가 아닌 거예요. 저 맏언니였어요(웃음). 그래서 어떻게 하면 동생들을 편하게 해줄까, 어떻게 이끌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했는데 사실은 다들 저한테 아마 바라는 게 없었을 거거든요(웃음). 그랬는데 저 혼자 언니 부심(자부심), 누나 부심이 있어서 해줘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다들 너무 성숙하고, 맡은 연기도 잘하고, 또 오히려 저에게 힘을 주고 제가 본받고 배우고 싶은 점도 많이 가진 친구들이었어요.”
현장에서도 막내티를 벗은 만큼 신예은은 이제 오롯한 성인 역으로서 한 발을 성큼 내디뎠다. 하이틴 배우로 먼저 기억되던 이전에서 벗어나 좀 더 넓은 연기 스펙트럼을 펼칠 수 있는 다양한 장르에도 욕심이 생기고 있었다.
올 연말 공개를 앞둔 넷플릭스 최고 기대작 ‘더 글로리’에서 송혜교가 맡은 문동은의 학창 시절 학폭 가해자인 박연진의 아역으로 첫 빌런 역할을 해내는 한편, 내년 상반기에는 SBS 드라마 ‘꽃선비 열애사’로 첫 사극에도 도전한다. 대만 영화 ‘말할 수 없는 비밀’의 리메이크작으로 스크린 데뷔도 앞둔 신예은은 “제가 가진 매력을 잃지 않고 더 빛낼 수 있는 배우로 기억되고 싶다”며 힘주어 말했다.
“그 당시 저를 좋아해 주셨던 10대들이 이제는 다 성인이 됐거든요. 그런 만큼 자연스럽게 20대에서 절 좋아해 주시는 분들이 생겨났는데, 누가 저한테 그런 말을 해주셨어요. ‘너를 좋아하는 10대 친구들이 너와 같이 성장하면서 널 응원해 줄거야’ 라고. 그 믿음을 잃지 않으면서도 또 실망하게 해 드리지 않고 같이 성장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어요. 저는 앞으로도 계속 모든 이들이 궁금하고 기대하게 되는, 또 찾게 되는 배우이고 싶어요. 그러면서도 저만의 것을 계속 유지해서 발전해 나가는 그런 배우요. 트렌드를 찾아서 따라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제가 가진 매력을 잃지 않고 더 빛낼 수 있고, 몸과 마음도 건강한 그런 배우가 되고 싶습니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