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 축구 존중 ‘매니지먼트형’ 선수들 무한 신뢰…어떤 악플에도 꿋꿋 ‘해임 여론’ 딛고 최고 지도자로
일본 축구의 월드컵 여정이 16강에서 막을 내렸다. 역사적 승리와 뼈아픈 석패가 교차한 순간들이었다. 현지 매체 ‘뉴스포스트세븐’은 “대표팀의 분투에 일본인들의 희로애락이 드러났다”며 “그 가운데 칭찬과 비판을 가장 많이 받은 인물이 모리야스 하지메 감독이었다”고 전했다.
애초 월드컵 전에는 비판 여론이 들끓었다. 2021년 9월부터 시작된 아시아 최종예선. 일본 축구대표팀은 첫 경기를 오만에게 졌고, 세 번째 경기 상대인 사우디아라비아에도 패했다. “모리야스 감독을 해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세간에 쏟아졌다. 벼랑 끝에서 월드컵 출전이 결정됐으나 “선수교체가 늦고 지휘능력이 떨어진다”는 비난이 거셌다. 트위터에서는 ‘모리야스 해임’ 해시태그를 단 게시물이 잇따랐다.
하지만 선수들은 감독에 대한 신뢰를 잃지 않았다. 대표팀 주장이자 수비수 요시다 마야(34)는 모리야스 감독 해임론이 분출하자 “진심으로 선수를 생각해 주는 몇 안 되는 감독”이라며 “계속 대표팀 감독으로 모시길 바란다”고 옹호했다.
한 축구전문 기자는 “흔히 패배한 지휘관은 구심력을 잃어 팀이 흩어질 위험성이 크나, 이번엔 달랐다”고 지적했다. 오히려 선수들이 ‘모리야스 감독을 위해’ 똘똘 뭉쳐 월드컵에 나섰다는 것이다. 부침이 심한 축구계에서는 보기 드문 일이다. 일본 축구계의 레전드이자, 쓴소리를 많이 하기로 유명한 브라질 출신 귀화 일본인 라모스 루이도 “모리야스 감독을 지지한다”고 밝혀 눈길을 끌기도 했다.
#스타 선수와 거리가 멀었던 축구 인생
‘뉴스포스트세븐’에 따르면 “선수들이 모리야스 감독의 말이라면 순순히 귀를 기울인다”고 한다. 이처럼 감독이 선수들에게 신뢰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1968년생인 모리야스 감독은 평탄치 않은 축구 인생을 걸어왔다. 고교 시절에는 관심 밖에 있던 무명 선수였다. 재학 중 입단 테스트를 받아 ‘실업축구팀 마쓰다’의 입성이 내정됐지만, 뜻밖의 시련이 기다리고 있었다. 입사 전 채용인원 자리가 줄어들어, 평가가 가장 낮았던 모리야스는 마쓰다 본사가 아닌 자회사 마쓰다운수에 배속된다.
본사에 들어간 동기보다 월급이 적었을 뿐만 아니라 대우도 좋지 않았다. 그럼에도 매일 포장일을 한 뒤 축구 훈련에 힘썼다고 한다. 꾸준한 노력을 인정받아 자회사 입사 1년 만에 본사 채용이 결정됐다. 눈에 띄지 않는 미드필더였지만, 1992년 전환기를 맞는다. 일본 대표팀 첫 외국인 감독, 한스 오프트에게 발탁된 것이다. 당시 워낙 무명 선수였던지라 축구팬들은 모리야스의 이름조차 제대로 읽지 못했다. “모리 호이치가 대체 누구냐?”는 말이 나왔을 정도였다. 같은 해 5월 도쿄에서 열린 ‘강호’ 아르헨티나와의 친선경기에서는 선발로 출전해 데뷔전을 가졌다. 이 경기에서 강렬한 인상을 남겼고, 본인의 이름을 세간에 알리는 계기가 됐다.
1993년에는 미국 월드컵 최종예선에 출전하며 직접 ‘도하의 비극’을 경험하기도 했다. 일본 대표팀은 이라크와의 경기에서 2-1로 앞서다 종료 직전 동점을 허용해 다 잡았던 월드컵 티켓을 놓쳤다. 풀타임 출장한 모리야스는 “충격으로 시합 후 기억이 거의 없다”고 한다. “깨달았을 때는 숙소 호텔 베란다에서 엉엉 울고 있더라”는 일화를 털어놓은 바 있다. 이렇듯 화려한 스타 선수가 아니라, 많은 좌절을 겪어본 선배라는 점에서 모리야스의 말은 설득력을 지닌다.
#흔들리지 않는 ‘강철멘탈’의 소유자
‘선수를 우선으로 한다’는 점도 모리야스가 신뢰받는 이유다. 모리야스는 2003년 현역 은퇴 후 지도자의 길을 걸었고, 2012년부터 친정팀 산프레체 히로시마 감독으로 취임했다. 축구전문 기자 데라다 히로유키에 의하면 “감독 취임이 결정됐을 때 모리야스는 선수 개개인에게 전화해 ‘올해부터 감독이 되는 모리야스다. 같이 힘내자’며 인사했다”고 한다. 그런 걸 하는 감독은 처음이라 다들 놀랐다는 후문이다.
또한, 선수들에게 “힘든 일이 있으면 24시간 언제든지 연락해도 좋다”고 전했고, 실제로 고민 상담을 받으면 2시간 넘게 귀 기울여 들어줬다. 데라다 기자는 “위에서 내려다보는 시선이 아니라 같은 시선으로 바라보며 대화하기 때문에 선수들로부터 신뢰받는 게 아닐까 한다”고 추측했다.
누구에게나 공손하며 성실하다는 점도 큰 강점이다. 한편으로는 타협을 허용하지 않는 엄격함도 지니고 있다. 히로시마 감독 시절 당시 팀의 절대 에이스였던 사토 히사토를 젊은 선수와 교체했을 때 사토는 “왜 나를 교체하냐”며 격양된 반응을 보였다. 팀 화합을 어지럽히는 것을 무엇보다 싫어하는 모리야스는 사토 선수에게 2경기 벤치 밖이라는 ‘징벌’을 내렸다. 그 전에는 둘이서 머리를 맞대며 승리의 해법을 찾아 나갔으나, 모리야스에게는 ‘양보할 수 없는 것은 절대 양보할 마음이 없다’라는 원칙이 있다.
비판에 흔들리지 않는 ‘강철 멘탈’도 선수들에게 안정감을 주는 것 같다. 그는 경기를 이기고 있건 지고 있건 간에 표정 변화가 거의 없기로 유명하다. 흔히 전술을 비판하면 짜증을 내는 감독도 많지만, 일절 흔들리지 않는다. 데라다 기자는 “모리야스가 한번 결정하면 지렛대로도 움직일 수가 없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한 기자가 “인터넷상의 비판이 신경 쓰이지 않느냐”고 물은 적 있다. 그러자 모리야스는 “인터넷을 보지 않는다. 그러나 한 경기 한 경기마다 항상 ‘사느냐 죽느냐’라는 각오로 싸우고 있다”고 답했다.
모리야스 감독은 “이렇게 하라”며 지시를 내리는 톱다운형 지도자가 아니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선수들의 의견을 묻고 존중하며 양측의 생각을 종합해 최종 답을 제시하는 타입이다. 스스로도 ‘매니지먼트형 지도자’라고 말한다. 선수들의 자율성을 존중하는 지도 철학은 모리야스만의 강점이기도 하다. 동시에 선수들 자신이 결정한 일이니 잘해야겠다는 책임감이 커지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그런 모리야스 감독이 이끈 일본 대표팀의 열전은 오래도록 일본인들의 기억에 남을 듯하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