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격 5관왕’ 이정후 전체 득표율 1위…‘진짜 마침표’ 이대호 마지막 눈물
#최다 득표자는 이정후
올해 골든글러브 수상자 중 최다 득표자는 '타격 5관왕' 이정후(키움 히어로즈)였다. 그는 유효표 313표 중 97.1%에 달하는 304표를 얻어 압도적인 지지로 외야수 부문 골든글러브를 품에 안았다. 프로 2년 차인 2018년부터 올해까지 5년 연속 골든글러브를 수집하면서 '타격의 달인' 고 장효조 전 삼성 라이온즈 2군 감독이 보유한 외야수 골든글러브 최다 연속 수상 기록(5년·1983∼1987년)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압도적 시즌이었다. 이정후는 올해 타율(0.349), 안타(193개), 타점(113점), 장타율(0.575), 출루율(0.421)에서 모두 1위를 차지했다. 지난달 17일 KBO 시상식에서는 정규시즌 최우수선수(MVP)로 선정되면서 아버지 이종범 LG 트윈스 코치(1994년)와 함께 한미일 프로야구 최초로 부자(父子) MVP에 오르는 역사를 썼다. 올해를 마무리하는 골든글러브 시상식에서도 황금장갑을 손에 넣으면서 화려한 대미를 장식했다.
이정후는 "TV로 보고 계실 어머니, 늘 동기부여가 되는 아버지에게 감사하다"며 "올해 아쉽게 우승 문턱을 넘지 못 했는데 팬들의 응원에 힘을 얻었다. 내년 키움 선수들의 위대한 도전에 함께해 주시길 부탁드린다"고 말해 박수를 받았다.
#이대호 7번째 황금장갑
올해 시상식의 하이라이트는 은퇴한 이대호(전 롯데 자이언츠)의 지명타자 부문 수상이었다. 골든글러브 시상식은 그가 선수로서 참석한 마지막 공식 자리였고, 현역 생활의 '진짜' 마침표였다. 이대호는 지명타자 부문에서 292표를 얻어 2위 추신수(SSG 랜더스·14표)를 넉넉하게 따돌리고 개인 통산 7번째 황금장갑을 수집했다. 또 40세 5개월 18일의 나이로 수상하면서 7년 전 이승엽 두산 베어스 감독(39세 3개월 20일)이 남긴 역대 최고령 수상자 기록을 새로 썼다. 은퇴하는 시즌에 골든글러브를 수상한 것 역시 역대 최초로 벌어진 '사건'이다.
이대호는 시상식에 앞서 "최근 눈물이 많아져서 수상하게 되면 또 울지도 모르겠다. 오늘은 웃으면서 떠나고 싶다"고 했다. 그 바람은 이뤄지지 않았다. 그는 수상자로 호명된 뒤 무대에 올라 끝내 눈물을 흘렸다. 앞서 1루수로 4번(2006·2007·2011·2017년), 3루수(2010년)와 지명타자(2018년)로 1번씩 총 6번의 수상 경험이 있는 이대호지만 이날만큼은 감회가 남다른 듯했다. "마지막 시즌에 골든글러브를 받아 영광이다. 첫 골든글러브를 받았을 때 아내가 시상식장에서 축하해줬는데, 마지막 골든글러브도 아내 앞에서 받게 됐다"며 울먹였다.
시상식이 끝나고 나서도 마찬가지였다. 이대호는 "울지 않으려 했는데 나오는 눈물을 막을 수 없었다"며 "바보 같이 울지는 않아서 다행이다. 대성통곡할 것 같았는데 잘 참았다"고 벅차오르는 감정을 애써 다스렸다. 또 "이제 선수로서 올 수 있는 곳이 아니기 때문에 마음이 더욱 이상했던 것 같다"며 "솔직히 시즌 마지막에는 체력적으로 힘에 부치긴 했지만, (야구장에) 많이 와주시는 팬들 덕에 힘을 얻고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기 위해 나를 채찍질했다"고 돌이켰다.
실제로 이대호는 은퇴를 준비하면서도 골든글러브 수상에 손색이 없는 성적을 냈다. 타율 0.331, 홈런 23개, 101타점의 성적은 웬만한 타자들의 전성기 성적보다도 좋다. 그는 "롯데 팬들이 지금 야구장에 많이 안 오시지만, 선수들이 열심히 해서 잠시 움츠리고 있는 팬들을 다시 불러줬으면 좋겠다"며 "롯데 팬들이 너무 보고 싶다. 그분들이 많이 와서 야구가 더 재미있어지길 바란다"고 마지막 바람을 남겼다.
#양의지와 황금장갑의 인연
양의지(두산)는 골든글러브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선수다. 그는 2020년 NC 다이노스 소속으로 포수 부문 골든글러브를 받으면서 99.4%(유효표 342표 중 340표)의 표를 휩쓸어 역대 최고 득표율을 기록했다. 올해도 포수 부문에서 255표를 받아 개인 통산 8번째 골든글러브를 수상했다.
KBO 골든글러브 역대 최다 수상은 기록은 이승엽 두산 감독이 보유 기록한 '10번'이다. 양의지와 올해 3루수 부문 수상자인 최정(SSG)은 나란히 8회 수상으로 한대화(전 쌍방울 레이더스), 양준혁(전 삼성)과 함께 통산 최다 수상 공동 2위를 이루게 됐다. 현역 선수이자 팀의 핵심 전력인 양의지와 최정은 은퇴 전 이 감독의 기록을 넘볼 수 있다. 이뿐만 아니다. 양의지는 김동수(전 히어로즈)의 포수 부문 최다 수상 기록(7회)과 타이를 이루기도 했다.
양의지는 2014~2016년과 2018~2020년 등 총 6차례 포수 골든글러브를 받았다. 하지만 2021년에는 지명타자 수상자로 골든글러브 시상식 무대에 올랐다. 지난해 시즌 초반 팔꿈치에 공을 맞은 뒤 후유증 여파로 포수 마스크를 많이 쓰지 못 했기 때문이다. 포수 대신 지명타자로 자주 나서면서 타격 실력으로 지명타자 부문 황금장갑을 꼈지만, '포수'라는 포지션에 자부심이 있는 양의지는 아쉬움을 느꼈다. 올 시즌 개막을 앞두고 팬들에게 "올해는 포수로 많은 경기에 출전해 다시 포수로 골든 글러브를 타고 싶다"고 말했고, 그 약속을 지켰다.
다만 양의지는 올해 NC 소속 선수로 활약하고도 두산에 골든글러브를 안기게 됐다. 골든글러브 시상식이 열리기 전, 친정팀 두산과 역대 KBO 자유계약선수(FA) 단일 계약 최대 규모인 6년 152억 원에 사인했기 때문이다.
골든글러브는 '시상식 당일의 소속팀'을 수상자 표기의 기준으로 삼는다. 이 지침이 정해진 시기는 1993년이다. 당시 OB(현 두산) 유니폼을 입고 활약한 김광림이 시즌 후인 11월 23일 쌍방울로 트레이드됐고, 12월 4일에는 해태 타이거즈의 간판타자였던 한대화가 LG로 트레이드됐다. 그해 12월 11일에 열린 골든글러브 시상식에서 김광림은 외야수 부문 2위로 생애 첫 황금장갑을 획득했고, 한대화는 7년 연속 3루수 골든글러브를 수상했다. 그러나 김광림의 소속팀은 OB가 아닌 쌍방울, 한대화의 소속팀은 해태가 아닌 LG였다.
당시에는 이런 전례가 없었기에 소속팀에 대한 유권해석을 두고 갑론을박이 일었다. 소속팀 표기는 향후 프로야구 연감에 역사로 남는 것은 물론, 골든글러브 관련 각종 기록 집계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문제였다. 이후 같은 일이 벌어졌을 때의 기준도 마련해야 했다. 결국 "팀을 옮긴 선수의 이름 앞에 다시 전 소속팀 명을 표기하는 게 더 이상하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으면서 현재의 방침으로 굳어졌다.
그렇다면 양의지가 두산에서 NC로 이적했던 2018년 말엔 어땠을까. 얄궂게도 그때 역시 NC는 '이적생 골든글러브'의 혜택을 받지 못 했다. 시상식 바로 다음 날 양의지의 소속팀이 바뀐 탓이다. 지금이나 그때나 양의지는 단연 FA 시장의 최대어로 꼽혔다. 골든글러브 시상식 전후로도 FA와 관련한 질문을 많이 받았다. 하지만 NC의 공식 발표가 나오지 않은 상황이라 "계약에 대해선 지금 할 말이 없다. 이 자리에서는 감사 인사만 하고 싶다"고 말을 아낀 뒤 두산 소속으로 포수 골든글러브를 받았다. 그리고 바로 다음 날 아침 NC는 양의지와 4년 총액 125억 원에 계약했다고 발표했다.
#투수 안우진의 최저 득표
올해 골든글러브 투표의 최고 격전지는 투수 부문이었다. 90%의 득표율을 찍은 선수가 3명(이정후, 이대호, 2루수 키움 김혜성)이나 나올 정도로 올해 골든글러브는 수상자 예측이 어렵지 않았지만, 투수 부문 수상자를 놓고는 의견이 분분했다. 투수 부문 수상자 안우진(키움)의 고교 시절 학교폭력(학폭) 의혹 때문이다.
안우진은 올해 30경기(선발 29경기)에서 196이닝을 던지면서 15승 8패, 평균자책점 2.11, 탈삼진 224개, 퀄리티스타트 24회를 기록했다. KBO 공식 시상 부문인 평균자책점과 탈삼진은 물론이고, 투구 이닝과 퀄리티스타트도 모두 리그 전체 1위다. 그러나 투표에서 179표(득표율 57.2%)를 얻어 이번 골든글러브 수상자 10명 중 가장 낮은 득표율을 기록했다. 97표(득표율 31.0%)를 받은 김광현(SSG)과 격차도 크지 않았다.
심지어 안우진은 골든글러브 시상식 전까지는 기록으로 받은 KBO 공식 부문별 상 이외의 다른 투수 부문 상을 하나도 받지 못 했다. 최동원상과 일구상을 비롯한 여러 야구 관련 시상식은 안우진을 수상자 명단에서 제외했다. 최고 투수상은 김광현이나 고우석(LG)의 차지였다. 관련 징계를 이미 소화했고, 최근에는 피해자 몇 명이 안우진을 지지하는 성명도 냈지만 아직 안우진은 '학폭 연루자'라는 꼬리표를 떼지 못한 탓이다. 투수 부문 골든글러브는 안우진이 '투표'를 통해 받은 첫 상인 셈이다.
안우진은 시상식에서 "우승은 못 했지만 높은 곳에서 마무리할 수 있어서 좋았다"면서 "키움 팬의 응원 덕분에 힘든 줄도 모르고 열심히 던졌다. 내년에도 많이 응원해달라"고 했다. 또 "앞으로 더 좋은 모습을 보이고 좋은 선수가 되도록 노력하겠다"면서 "부모님께 감사하고 죄송하다. 더 효도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의미심장한 소감을 남겼다.
배영은 중앙일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