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FF 챔피언십 개막…박항서의 베트남-신태용의 인도네시아-김판곤의 말레이시아 우승 도전
#'변방' 축구대회에 주목하는 이유
동남아 국가들은 세계 축구에서 '변방'으로 간주된다. 유럽이나 남미에 비해 비교적 약체로 평가받는 아시아에서도 동남아는 주류에서 벗어나 있다.
월드컵 본선을 제외하고서도 최종예선이나 아시안컵 참가마저 쉽지 않다. 동아시아와 중동에 철저히 밀리는 모양새다. 2022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에 나선 12개 국가 중 동남아 국가는 베트남 하나였다. 베트남마저 10경기에서 단 1승만 거두며 자신들이 편성된 조에서 최하위를 기록했다.
아시안컵도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다. 2019 아시안컵 본선에 진출한 24개국 중 동남아 국가는 태국, 필리핀, 베트남 3개국이었다. 그중 태국과 베트남은 토너먼트 진출에는 성공했지만 16강에서 탈락했다.
피파랭킹도 동남아의 열세를 잘 보여주는 지표 중 하나다. AFF 소속으로 피파랭킹이 가장 높은 국가는 96위 베트남이다. 46개국이 가입된 아시아축구연맹(AFC)으로 범위를 좁혀도 17위에 불과하다.
이처럼 축구계 주류에서 밀려나 있기에 이들 간의 대회인 AFF 챔피언십은 뜨거운 열기를 자랑한다. 동남아 지역 각국 대표팀은 AFC, 또는 국제축구연맹(FIFA) 차원의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내기 어렵기에 이 대회에 사활을 건다. 2019년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베트남이 당시 지휘봉을 잡은 박항서 감독에게 뜨거운 지지를 보낸 이유도 이 때문이다.
경기 수준은 부족할 수 있지만 이 대회를 주목해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 동남아 지역은 세계 인구의 약 10%가 몰려 있다. 주변국에서는 충분히 매력적인 시장이 될 수 있다. 일본은 과거부터 이 시장에 관심을 갖고 AFF 챔피언십에 기업들이 메인 스폰서로 나서고 있다. 이 대회는 2008년부터 '스즈키컵'으로 불리다 이번엔 '미쓰비시 일렉트릭컵'이 됐다.
한국 축구도 동남아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동남아 지역 3국 대표팀에 한국인 지도자가 지휘봉을 잡고 있다. K리그는 몇 차례 동남아 국적 선수를 영입해 기대 이상의 마케팅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동남아에서 열리는 한국인 지도자 3파전
이번 대회 본선에 나서는 10개 국 중 3국의 사령탑에 한국인 지도자가 자리하고 있어 더욱 눈길을 끈다. 동남아 지역에는 2017년 박항서 감독이 베트남 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이후 '축구 한류'가 불고 있다. 박 감독의 성공 이후 2020년부터 신태용 감독이 인도네시아를, 2022년 초부터 김판곤 감독이 말레이시아를 이끌고 있다.
이들 한국인 지도자들은 이미 AFF 챔피언십에서 좋은 기억을 갖고 있다. 베트남은 박항서 감독 2년 차였던 2018년 대회 우승을 차지했다. 역대 두 번째 우승이자 2008년 이후 10년 만의 우승이었다. 2021년 열린 대회(코로나19로 인해 1년 순연)에서는 신태용 감독의 인도네시아가 '사고'를 쳤다. 대회 결승에 올라 준우승을 차지하는 성과를 냈다. 전 대회 우승국 베트남은 4강에 진출했다.
이 같은 결과에 각국에서 한국인 지도자들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다. 박 감독은 AFF 챔피언십 우승 이외에도 동남아시안 게임(SEA GAMES) 우승, 월드컵 최종예선 진출 등 성과로 베트남의 축구영웅으로 등극했다. 2020년 8월 베트남 정부의 훈장도 받았다.
신태용 감독은 인도네시아 현지에서 '신오빠'로 불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AFF 챔피언십에서 준우승하면서다. 인도네시아 지휘봉을 잡으면서 만들어진 신 감독의 소셜미디어 계정의 팔로워는 130만 명이 넘는다. 빅리그에서 활약 중인 대표팀의 이강인, 황희찬보다 많은 수치다. 그가 올리는 게시물마다 최소 1000개 이상의 댓글이 달린다.
한국인 지도자들이 현지에서 지지를 받는 이유는 성적 외에도 시스템 확립에 있다. 박항서 감독과 신태용 감독 모두 전술적 능력이나 용병술을 보여줬다. 하지만 베트남과 인도네시아의 연령대 대표팀 감독까지 모두 맡으며 협회와 대표팀의 시스템을 다지는 데도 힘을 쏟았다.
박 감독이 베트남 선수들의 식단을 운동선수에게 맞게 바로잡은 일은 널리 알려져 있다. 신 감독은 부임 초기 인도네시아 축구협회를 향한 쓴소리로 대립각을 세웠으나 원칙을 중요시하는 소신으로 현지 팬들의 지지를 받았다. 그 과정에서 대한민국 U-20 대표팀 감독 시절, 대표 선수로 발탁이 가능했던 아들(신재원)을 외면한 일화가 현지에 알려져 더 큰 응원을 받았다.
행정가로 한국 축구를 지원했던 김판곤 감독은 이 같은 한국인 감독들의 면모를 기대하고 선택받았다는 분석이 뒤따른다. 김 감독은 지도자로서 역량뿐 아니라 지난 4년간 각급 대표팀을 총괄해 온 인물이다. 이번 2022 카타르 월드컵 16강 진출의 배경에도 김 감독의 손길이 깃들어 있다.
한국인 지도자가 팀을 이끄는 3국 모두 목표는 우승이다. 외부에서도 우승이 가능한 전력으로 평가받고 있다. 베트남은 최근 2개 대회를 우승과 4강 진출이라는 좋은 성적으로 마무리했다. 인도네시아는 직전 대회에서 어린 선수 위주로 팀을 꾸렸음에도 준우승을 거뒀다. 이번 대회에서는 더욱 높은 목표를 바라본다. 말레이시아는 베트남과 인도네시아, 태국과 함께 4강 진출 후보로 꼽힌다. 이들은 2010년 우승, 2014년과 2018년에는 준우승으로 꾸준히 상위권 성적을 기록했으나 직전 대회에서 6위에 머물렀다. 이 대회에서 기대 이하의 성적으로 김판곤 감독에게 적극적인 러브콜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박항서 감독과 김판곤 감독은 대회 첫 일정을 기분 좋게 시작했다. 말레이시아는 미얀마 원정에서 0-1로 승리했다. 베트남은 라오스에 6-0 대승을 거두며 우승 후보로서 면모를 과시했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