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원 지지자 경찰 기자 유튜버 엉켜 100여m 이동하는 데 14분…조사 끝날 때까지 맞불 집회 이어져
1월 10일 오전 7시 30분쯤 이재명 대표 검찰 소환조사에 대해 찬반 입장을 가진 시민단체 회원들이 수원지검 성남지청 인근 남한산성입구역 앞에 대거 결집했다. 이 대표 지지세력인 민주시민촛불연대(1000명), 지지자연대(500명) 등은 역 3번 4번 출구를 중심으로 진을 쳤다. 반대편 역 1번 2번 출구에는 보수 성향 시민단체인 애국순찰팀(500명), 자유연대(300명) 등이 자리를 잡았다. 경찰은 양쪽 진영 충돌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오전 7시부터 12개 중대 900명의 인력을 배치했다.
현장은 이재명 대표 출석 전부터 12차선 도로를 사이에 두고 팽팽한 긴장감이 맴돌았다. 양쪽 진영 모두 대형 트럭에 전광판과 대형 스피커를 설치하고 집회를 열었다. 검찰 조사 반대 측은 △우리가 이재명이다 △정치탄압 중단하라 △이재명이 민주당이고, 민주당이 이재명이다 △표적수사 중단하라 △조작검찰 박살내자 △정치검찰 타도하자 등이 적힌 팻말과 파랑색 풍선을 흔들며 이 대표를 연호했다.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노사모) 노란색 대형 깃발도 휘날렸다.
반대 측 집회에 참석한 1969년생 이현정 씨는 “검찰에서 수년을 털어도 (이재명 대표) 혐의를 발견하지 못했는데 소환조사를 했다. 오늘 이 대표를 사수하기 위해서 왔다. 언론은 왜 (검찰) 편에 서서만 보도하냐”며 “화가 나서 현장까지 나오게 됐다”고 말했다.
검찰 조사 찬성 측에선 △성남시장 이재명 구속하라 △대장동 수괴 이재명 체포하라 △검찰 출석 대장동 수괴를 체포하라 등이 적힌 현수막을 내걸었다. 집회 참석자들은 태극기와 성조기를 흔들며 “이재명을 구속하라” “피의자 이재명” 등을 외쳤다. 이 자리에는 국민의힘 당권 주자인 윤상현 의원도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윤 의원은 대형 트럭 위 연단에 서서 “어느 누가 검찰 조사를 받으러 가는데 같은 당 지도부와 강성 지지자들을 호위무사로 대동하나”라고 비판했다.
찬성 측 집회에 참석한 1951년생 신 아무개 씨는 “전과 4범이자 검찰 조사를 받는 사람이 당 대표를 하는 경우가 어디 있느냐”며 “특히 저쪽 사람들은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인정하지도 않는 세력이다. 대선 불복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민주당은 검찰 수사를 ‘야당 탄압’으로 규정하며 단일대오를 형성했다. 이날 오전 10시쯤 민주당 지도부와 의원단은 성남지청 정문 앞에 먼저 도착해 이재명 대표를 기다렸다. 박홍근 원내대표, 김성환 정책위의장, 조정식 사무총장,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 박찬대 고민정 정청래 서영교 장경태 최고위원 등이 모습을 보였다.
원내에선 김남국 안호영 이해식 정태호 김의겸 김병기 문진석 최기상 임오경 강선우 김태년 한준호 전용기 주철현 김영배 박상혁 강준현 우원식 박범계 강득구 이동주 박성준 김정호 김원이 신정훈 황운하 양경숙 김병욱 이수진(비례) 서영석 진성준 위성곤 의원이 함께했다. 원외에선 양부남 민주당 법률위원장, 정진욱 광주 희망과 성장연구소 대표, 황명선 민주당 대변인, 김현정 대변인, 안귀령 상근부대변인, 이경 상근부대변인 등이 참석했다.
오전 10시 19분쯤 이재명 대표가 성남지청 정문에 도착했다. 이 대표 등장과 함께 양쪽 진영 집회 강도는 거세졌다. 이 대표 지지자들은 ‘이재명 무죄’라고 외쳤고, 보수단체 회원들은 ‘구속 수사’를 주장했다. 상대방 진영을 향한 거친 말들이 오가기도 했다. 모습을 나타낸 이 대표를 보고 박찬대 최고위원은 눈시울을 붉혔고, 임오경 의원은 흐르는 눈물을 닦았다. 이 대표 지지자들 중에서도 울음을 터트리는 이들이 있었다.
이 대표는 당 지도부·의원단 40여 명과 함께 정문에서부터 지청 본관 앞에 마련된 포토라인까지 약 100m 거리를 도보로 이동했다. 의원, 당직자, 지지자, 경찰, 기자, 유튜버 등이 한데 엉키면서 100여m를 이동하는 데 14분가량 걸렸다. 이 과정에서 인파에 밀려 언덕길을 오르던 일부 사람들이 넘어졌고, 사진기자 한 명은 호흡곤란으로 쓰러져 구급차에 실려가기도 했다.
이재명 대표는 당 지도부와 함께 오전 10시 33분 포토라인에 도착했다. 현장은 지지자들 환호와 우파 유튜버들의 욕설과 고성이 난무했다. 김세의 가로세로연구소(가세연) 대표와 김건희 여사 팬클럽 ‘건희사랑’ 대표인 강신업 변호사 모습도 보였다.
이 대표는 주변이 조용해질 때까지 차분하게 기다렸다 미리 준비한 약 2300자 분량의 입장문을 꺼내서 읽었다. 이 대표는 “지금 우리는 대한민국 헌정사 초유의 현장, 그 자리에 서 있다. 오늘 이 자리는 역사에 기록될 것”이라며 “이미 수년간 수사를 해서 무혐의로 처분된 사건을, 다시 끄집어내서 없는 사건을 만드는 없는 죄를 조작하는 사법 쿠데타”라고 말했다.
이 대표는 “성남시장으로서 성남시에 기업들을 유치해서 세수를 확보하고 일자리를 만든 일이, 성남시민 구단 직원들이 광고를 유치해서 성남시민의 세금을 아낀 일이, 과연 비난받을 일인가”라며 “검찰이 공권력을 마구 휘두르면 어느 지자체장이 기업 유치를 하고 적극 행정을 해서 시민의 삶을 개선하고 도시를 발전시키겠나. 전국에 시민구단 직원들은 과연 관내 기업들을 상대로 광고 유치를 하고 시민들, 국민들 예산을 아끼는 일을 해 나가겠나. 검찰의 왜곡과 조작이 상상을 초월하고 있다. 적법한 광고계약을 하고 광고를 해주고 받은 광고비를 굳이 무상의 후원금이라고 우긴다”며 검찰 수사를 조목조목 반박했다.
검찰은 ‘성남FC 후원금 의혹’ 관련해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제3자 뇌물 혐의를 이재명 대표한테 적용해 조사하고 있다. 이 대표가 성남시장 재직 시절인 2015~2018년 두산건설, 네이버, 차병원, 농협, 알파돔시티, 현대백화점 등의 기업에 부지 용도변경 등을 대가로 시민 축구단인 성남 FC에 160억여 원의 후원금을 내도록 했다는 것이 의혹의 골자다. 경찰은 2021년 9월 이 사건을 증거불충분을 이유로 무혐의 처분했다. 하지만 2022년 2월 검찰이 보완 수사를 요구하면서 재수사가 시작됐다.
이재명 대표는 입장문 발표 이후 ‘검찰이 무혐의로 종결한 사건의 보완 수사를 요청한 것에 의도가 있다고 보느냐’는 취재진 질문에 “검찰은 이미 답을 다 정해놓고 있다. ‘답정(답이 정해진) 기소’, 기소를 목표로 두고 수사를 맞춰가고 있다”며 “결국 진실은 법정에서 가릴 수밖에 없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표는 동행한 의원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눈 뒤 오전 10시 47분 수행비서, 변호사와 함께 성남지청 안으로 들어갔다. 검찰 조사에는 변호사만 입회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 측 변론은 검찰 출신의 박균택 민주당 정치보복수사대책위원회 부위원장이 맡았다.
박홍근 원내대표는 이재명 대표를 배웅한 후 기자들과 만나 “개인 이재명이 아닌 대통령 경쟁자였던 이재명, 자신들의 무능과 실정 바로잡기 위한 야당 당대표 이재명이기 때문에 검사와 수사관을 투입해 300번 가까이 압수수색까지 하면서 이렇게 정적 제거에 혈안 아니겠냐”며 “원내 1당인 민주당 입장에서는 이런 검찰 공화국, 검찰 독재에 강력히 항의한다. 검찰의 무도한 이 대표에 대한 칼날 앞에서 우리 민주당 의원들은 개인 이재명이 아닌 대통령 경쟁자이자 야당 대표 이재명에 대한 보복수사라고 규정하고 이 자리에 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민주당은 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를 향해서도 칼날을 겨눴다. 정청래 최고위원은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해야 한다. 모든 아내도 법 앞에서 평등해야 한다”며 “대통령의 아내라고 예외일 수는 없다.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의혹에 대해 김건희 수사는 왜 안 하는 것이냐. 안 하는 것이냐 못하는 것이냐”고 비판했다. 이어 “김건희 여사도 반드시 검찰 출석하는 그 모습을 보여드리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
이재명 대표는 성남지청 측에서 제안한 지청장 티타임을 거절한 채 곧바로 조사에 임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유력 인사 조사 전에 통상적으로 수사 책임자와의 티타임을 진행한다. 이 대표는 미리 준비한 A4 용지 6장 분량의 서면진술서를 검찰에 제출했다. 검찰 질문에는 대부분 ‘서면진술서’로 답변을 갈음했고, 일부 질문에만 의혹을 부인하는 취지의 구체적 답변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오후 10시 42분 이재명 대표는 12시간 가까이 진행된 검찰 조사를 끝내고 모습을 보였다. 현장에서 기다리던 지도부와 의원들에게 “죄송하다”고 말하며 일일이 악수를 나눴다. 이 대표는 “충실하게 설명할 것은 설명했고, 어차피 답은 정해져서 기소할 것이 명백하고 또 조사과정에서도 그런 점들이 많이 느껴졌다”며 “결국 법정에서 진실이 가려질 것이다. 오늘 제시되는 여러 자료들을 봐도 납득할 만한 그러한 것들은 없었던 것 같다”고 말한 뒤 현장을 떠났다.
이날 현장 맞불 집회는 이재명 대표 조사가 끝날 때까지 진행됐다. 이 대표 지지자들은 “이재명은 죄가 없다, 김건희를 특검하라”고 외쳤고, 반대 진영에선 “이재명 죄인 고개 숙여”라고 소리쳤다. 이 대표는 성남지청 정문 앞에서 내려 대기 중이던 지지자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한 뒤 다시 차량을 타고 떠났다.
허일권 기자 oneboo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