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유지 곳곳서 사육장·훈련장·사각링 발견…동물보호단체 “도박 장소로 사용되다니” 정치권 “직무유기”
투견 경기 운영자 및 도박 참여자들은 수사당국의 적발을 피하기 위해 교묘한 방법으로 투견도박을 실시한다. 동물보호단체 등에 따르면 투견 경기 운영자는 투견 경기가 시작되기 2~3시간 전쯤 카카오톡, SNS 메시지 등 자신들의 소통공간을 통해 시간과 장소를 갑작스럽게 변경한다. 수사당국과 시민들의 눈을 피하기 위해서다. 지역의 한 경찰 관계자는 “(시간과 장소가 갑작스럽게 변경되다보니) 경찰들도 투견 경기 현장에 급습하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투견 경기 운영자가 경기장에 일명 ‘개장수(도살자)’를 불러 윤리적 논란도 불거진다. 개장수는 경기에서 패배한 개나 심각한 부상을 입어 회복이 어려운 개 등을 경기 후 도살해 보신탕집으로 보낸다. 개가 부상은 크게 입지 않았지만 경기 시작한 지 10분 만에 패배해도 개장수에게 넘기는 견주가 있다. 동물보호단체 관계자는 “(개를 데리고 온 견주는) 개가 10분 만에 지면 ‘끈기가 없다’ ‘다음 경기에서 싸울 수 없다’고 판단해 개장수한테 넘긴다”며 “지더라도 10분 이상 끈질지게 버티고 싸우는 개는 개장수한테 넘기진 않는다. 견주는 버티는 시간으로 개를 평가한다”고 설명했다.
투견 경기는 겨울에 성행한다. 투견 경기에 내보낼 개를 기르는 견주는 경기에 참가하는 해의 여름부터 훈련을 실시한다. 투견에 내보낼 개들을 훈련시키는 사육장이 적발되는 시기도 대체로 여름인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대부분 경기에 나서는 개는 견주가 자택에서 직접 훈련시키는 것이 아닌 투견 사육장에 위탁한다. 동물보호단체와 경찰 등에 따르면 견주는 매달 위탁비를 지급하며 투견 사육장에 개를 맡기고, 위탁비를 받은 사육장 관리인은 뙤약볕에서 러닝머신을 뛰게 하는 등 경기 전까지 개를 훈련시킨다. 앞의 경찰 관계자는 “투견 사육장은 거의 다 무허가 시설”이라며 “도박을 위한 개를 훈련시키기 때문에 인적이 드문 곳에 사육장을 만들어 (훈련을) 진행한다”고 말했다.
무허가 시설인 투견 사육장은 전국에 퍼져 있다. 일요신문i 취재 결과, 공공기관 소유 토지들에도 투견 사육장이 설립, 운영된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해 대구광역시 수성구 가천동에서 발견된 투견 사육장 토지는 부동산 등기부 확인 결과 한국농어촌공사 소유다. 이곳에서 경기에 내보낼 개를 훈련 시켰던 60대 남성 A 씨는 동물보호법 위반으로 대구지방검찰청에 송치된 것으로 확인됐다. 한국농어촌공사 관계자는 “이런 사실(투견 사육장 운영)을 처음 듣는다”며 “(투견 사육장이 발견된 토지는) 지사에서 관리할 것이다. 내용을 확인해보겠다”고 말했다.
같은 해 대구시 수성구 연호동에서 발견된 투견 사육장 토지는 부동산 등기부 확인 결과 한국토지주택공사(LH) 소유다. 이곳에선 경기에 내보낼 개를 훈련시키는 러닝머신, 러닝머신에서 뛰는 개를 자극시킬 닭, 사각링 등이 발견된 것으로 전해진다. 5대 맹견으로 불리는 핏불테리어 13마리도 함께 발견됐다. LH관계자는 “지역 땅은 본사가 아닌 LH 지역본부에서 관리한다”고 설명했다. LH대구경북지역본부 관계자는 “내용을 확인해봐야 할 것 같다”고 답했다.
도박을 위해 만들어진 투견 사육장이 공공기관 소유 토지에서 운영되고 있던 것에 대해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동물권단체 케어의 산하기관인 ‘와치독’ 강영교 대표는 “공공기관 소유 토지에서 도박을 위한 투견 사육장이 운영되는 게 대한민국 현실”이라며 “개농장도 마찬가지다. 국유지인데 불법 견사를 지어놓은 경우가 많다. 어떤 업을 하는지도 모르고 (관청에서) 임대해주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해당 관청은 그곳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인지하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투견 관련 법 제도를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동물보호단체 ‘캣치독팀’ 정성용 총괄팀장은 “눈앞에서 동물이 뜯기며 피 흘리는 모습을 보면서 쾌락을 느끼고 돈까지 걸며 유흥을 즐기는 사람들은 잔인하다”며 “투견 경기라는 도박은 사회적으로도 위험해 국가에서 단호하게 관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투견 사육장 운영 및 경기 주최와 관련해 현행법에선 판결을 내리기 힘든 상황이다. 동물보호법 8조 2항에는 ‘누구든지 동물에 대해 다음 각 호의 학대행위를 하여서는 아니된다’고 명시돼 있다. 여기서 투견 경기에 해당하는 8조 2항 3호에는 ‘도박·광고·오락·유흥 등의 목적으로 동물에게 상해를 입히는 행위. 다만 민속경기 등 농림축산식품부령으로 정하는 경우는 제외한다’고 적혀 있다. 민속경기 등 농림축산식품부령으로 정하는 경우는 소싸움이다. 투견 경기는 소싸움과 달리 농림축산식품부령으로 지정되지 않아 동물보호법 8조 2항 3호에 위반되지만 해당 법안에 적용되기 힘들다고 법조계 관계자들은 설명한다.
변주은 동물자유연대 법률지원센터 변호사는 “사육장에선 개에게 상해를 입히지 않은 채 최대한 말끔하고 건강한 상태로 훈련을 시킨다”며 “결국 투견 사육장 운영은 동물보호법 8조 2항 3호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투견도박 행위에 대해선 “동물보호법 8조 4항에 ‘그 밖에 수의학적 처치의 필요, 동물로 인한 사람의 생명·신체·재산의 피해 등 농림축산식품부령으로 정하는 정당한 사유 없이 신체적 고통을 주거나 상해를 입히는 행위’에서 신체적 고통을 입증하는 게 애매하다”며 “재판부에 어느 정도의 신체적 고통인지 입증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변 변호사는 “도박 혐의도 투견 경기장에서 돈이 오가는 순간을 급습해서 현장 검거해야 성립된다”며 “투견 관련해 법 개정이 필수”라고 강조했다.
공공기관 소유 토지 내 투견 사육장 운영 등 일련의 상황에 대해 정치권에서도 한 목소리로 규탄하고 나섰다.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소속 안병길 국민의힘 의원은 “정부기관인 한국농어촌공사 등에서 관리하는 토지에서 불법 투견 시설이 운영된 사실은 직무 유기와 같다”며 “단순 관리 책임을 넘어 공사들이 소유하고 있는 모든 토지가 목적에 맞게 제대로 활용되고 있는지 전수조사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소영 기자 upjs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