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전·현대중공업 등 유동비율 100% 미만…SK이노·LG전자 등은 당좌비율 100% 밑돌아
#한전, 대한항공 등 유동비율 100% 미만
유가증권 시가총액 상위 43개 기업(50대 기업 중 금융사 제외)의 지난해 3분기 연결기준 유동비율을 분석한 결과, 200%가 넘은 기업은 16곳이었다. 22개 기업은 100~200%의 유동비율을 기록했다. 100% 아래의 유동비율을 나타낸 기업도 5곳 있었다.
유동비율은 1년 안에 현금화할 수 있는 유동자산을 1년 안에 상환해야 하는 유동부채로 나눈 지표다. 즉 1년 안에 갚아야 할 빚보다 현금화가 가능한 돈이 얼마나 있는지를 나타낸다. 통상 유동비율이 200%가 넘으면 단기 채무 상환 능력이 우수하다고 평가한다. 100~200%는 보통 수준이다. 유동비율이 100% 미만이면 재무위기에 취약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난해 3분기 기준 유동비율이 가장 낮은 기업은 67.09%를 기록한 한국전력공사(KEPCO)였다. 한국전력공사 유동비율은 2020년(79.45%), 2021년(69.49%)에서 지난해 3분기 67.09%로 꾸준히 내림세를 나타내고 있다. 한국전력공사의 유동성에 적신호가 켜진 것은 국제 연료 가격이 급등하면서 전력 구매비 부담이 커졌는데, 전기 요금을 대폭 인상하기도 어려운 상황에 내몰린 탓이다. 한국전력공사 관계자는 “요금 인상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해 자금 부족이 생겨났다. 정부와 협의해 단계적인 전기요금 정상화를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다음으로는 현대중공업이 94.89%로 낮은 유동비율을 보였다. 현대중공업도 2020년(117.11%), 2021년(111.88%)과 비교해 꾸준히 유동비율이 낮아지는 추세다. 조선업의 경우 선박 수주 시 받는 선수금을 재무제표상 부채로 반영하기 때문에, 수주가 늘어날수록 부채가 증가하곤 한다. 지난해 국내 조선 업계는 3년치 수주 잔량을 확보하는 등 호황기를 맞았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을 비롯한 고부가가치 선박도 수주가 많이 되고 있다. 환 헤지형 상품 가입을 통해 유동성 리스크에 대응하고 있다”고 답했다.
대한항공은 2020년 50.11%, 2021년 78.64%, 지난해 3분기 98.89%로 유동비율이 점진적으로 개선되는 양상을 보였지만 100%의 벽을 넘지는 못했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항공기 도입 단가가 비싸 항공사들은 (유동비율이 높게 나타날 수 없는) 처지에 있기는 하다. 단기부채를 줄이고 장기부채로 전환하는 등 운영 능력이 중요할 것 같다”고 했다. 지난해 3분기 기준 대한항공의 단기차입금은 1조 473억 원으로, 2021년 말(9856억 원)보다 늘었다.
두산에너빌리티(옛 두산중공업), SK텔레콤도 100% 미만의 유동비율이라는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두산에너빌리티는 2020년과 2021년 76.10%, 83.13%의 유동비율을 기록했지만 지난해 3분기 98.59%로 높아졌다. 유동성 위기로 채권단 관리 체제에 들어갔던 2020년 이후 유동성이 개선됐으나 아직 100%는 넘지 못했다. 두산에너빌리티 관계자는 “유동성은 지속해서 나아지고 있다”며 “수주 증가세가 이어지는 데에 따라 매출과 영업이익 등 실적 개선도 이뤄지리라 본다”고 설명했다. SK텔레콤은 지난해 3분기 98.52%의 유동비율을 기록했다. 2021년(91.27%)보다는 높아졌지만, 2020년(107.30%)보다는 낮다. 2021년 유동비율이 낮았던 것은 SK스퀘어를 인적분할한 데 따른 영향이 작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유동비율이 감소세를 보이는 기업도 적지 않았다. 2021년 말보다 유동비율이 낮게 나타난 기업은 17곳이다. 대표적으로 삼성바이오로직스가 2021년 말 254.96%에서 지난해 3분기 178.68%로, 같은 기간 SK이노베이션이 148.02%에서 115.04%로 각각 줄어들었다. 롯데케미칼도 205.95%에서 191.69%로 유동비율이 낮아졌다. SK, S-OIL은 100~110%의 유동비율을 기록하면서 100%를 겨우 넘긴 것으로 조사됐다.
이외의 기업은 100%가 넘는 유동비율을 기록했다. 가장 높은 기업은 크래프톤이었다. 크래프톤은 지난해 3분기 828.03%의 유동비율을 나타냈다. 2020년(317.93%), 2021년(572.52%)에 이어 계속해서 유동비율이 상승하고 있다. 크래프톤 관계자는 “영업활동으로 인한 현금보유액이 증가하면서 유동비율이 높아졌다”고 설명했다. 크래프톤은 3분기 당기순이익은 6656억 원으로, 2021년 동기(5136억 원) 대비 30% 늘었다. 그러나 크래프톤은 현금배당을 한 번도 실시한 적이 없어, 일부 주주들 사이에서는 불만도 감지된다.
#유동비율은 안정적이었지만 당좌비율은?
당좌비율도 유동성 상황을 판단하는 기준이다. 유동비율과 비교해 당좌비율이 더 낮게 나오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당좌비율은 유동자산에서 재고자산처럼 현금화하는 데 시간이 걸리는 자산을 뺀 당좌자산을 유동부채로 나눈 비율이다. 당좌비율 역시 통상 100%를 넘어야 단기적인 현금 동원력이 좋다고 판단할 수 있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연결 기준 당좌비율이 100% 미만으로 나타난 기업은 SK하이닉스, 삼성SDI, LG전자, SK이노베이션, SK, 한국전력공사, SK텔레콤, 두산에너빌리티, 현대중공업, S-Oil, 대한항공, 한화솔루션, LG이노텍이다.
이와 관련, LG전자 관계자는 “재고자산이 늘어난 영향이 있는 듯하다. 특히 소비재는 경기 침체 타격이 컸다. 다만 (당좌비율이) 80~100% 수준이면 안정권으로 보고 있기에 크게 특이사항이 있는 수치라 보고 있지는 않다”고 말했다. SK이노베이션 관계자는 “당좌비율이 60%대를 기록한 건 SK온의 단기차입금이 늘어난 데 따른 것이다. 지난해 말 SK온이 8000억 원을 유치하는 등의 영향으로 지난해 4분기 기준으로는 조금 회복되지 않을까 보고 있다. 장기적 재무 투자자를 찾고 있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어 상황은 나아질 거라고 판단한다”고 답했다. 한화솔루션 관계자는 “아직은 한화갤러리아와 합쳐진 상태다. 특성상 매입채무가 많은 유통업종에선 당좌비율이 낮게 나온다. 유상증자 등 선제 조치를 해둬서 유동성 이슈는 크게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황용식 세종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금 시기에서 가장 중요한 건 현금이다. 유동성을 확보한 기업이 경기가 활성화됐을 때도 탄력적으로 빨리 회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비용을 절감하는 동시에 자산운용사나 증권사에 현금을 맡기고, 유동성 위기에 처한 기업은 자산을 매각하는 게 도움이 될 듯하다. 특히 유동비율이나 당좌비율이 100% 미만으로 나타난 기업은 이러한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명선 기자 se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