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생절차 목전에 두고 한국테크놀로지와의 합병 연기…컬링협회 회장직 사퇴에 프로농구팀 급여도 밀려
#김용빈 회장의 ‘승자의 저주’
대우조선해양(대우조선)은 2005년 옛 진로그룹 계열사였던 JR건설을 인수한 후 사명을 대우조선해양건설로 변경했다. 대우조선은 당시 해외 조선소 건설 사업 진행을 위해 대우조선해양건설을 인수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대우조선의 설명과 달리 대우조선해양건설은 2008년 ‘엘크루’ 브랜드를 통해 국내 아파트 사업에도 진출했다. 대우조선해양건설은 2010년대 초반 5000억 원 이상의 매출을 거두면서 나름대로 대우조선 실적에 기여했다.
대우조선은 2010년대 중반 들어 실적 부진을 겪기 시작했다. 이에 대우조선은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2017년 대우조선해양건설 지분 99.21%를 디에스씨밸류하이1호에 매각했다. 이후 한국테크놀로지가 2019년 디에스씨밸류하이1호를 152억 5000만 원에 인수하면서 대우조선해양건설 경영권을 손에 넣었다. 디에스씨밸류하이1호는 지난해 한국테크놀로지에 흡수합병됐다.
그러나 대우조선해양건설 인수 이후 한국테크놀로지의 재무는 갈수록 악화됐다. 결국 김용빈 한국테크놀로지 회장은 지난해부터 한국테크놀로지와 대우조선해양건설의 합병을 추진해왔다. 대우조선해양건설의 자본으로 한국테크놀로지 재무구조 개선을 꾀하기 위한 것으로 알려졌다. 비상장사인 대우조선해양건설이 합병을 통해 상장사가 되는 효과도 얻을 수 있다. 한국테크놀로지 측은 “합병을 진행하면 경영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함으로써 재무 및 영업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공시했다.
한국테크놀로지와 대우조선해양건설의 합병은 지난해 12월 완료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한국테크놀로지는 합병기일을 올해 2월로 한 차례 연기했고, 최근에는 4월로 재연기했다. 일각에서는 한국테크놀로지 계열사가 대우조선해양건설 지분 일부를 대출 담보로 제공해 합병에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보고 있다. 한국테크놀로지 계열사 대부분이 적자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어 빠른 시일 내 대출을 상환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대우조선해양건설의 상황은 악화일로에 놓여있다. 부동산 경기 침체 등의 영향으로 지난해 1~3분기 80억 원이 넘는 적자를 기록했다. 뿐만 아니다. 전국건설기업노동조합 대우조선해양건설지부에 따르면 대우조선해양건설은 유동성 부족으로 일부 아파트 공사를 중단했다. 심지어 임직원의 임금이나 하도급 대금마저 밀리고 있다.
대우조선해양건설지부는 지난해 12월 ‘임금채권자’로서 서울회생법원에 회생절차 개시명령을 신청했다. 대우조선해양건설 측은 당시 “원자재값 폭등과 금리 인상 등으로 건설 경기가 급격히 위축되면서 자금 마련에 어려움이 생겼다”며 “급여가 지연된 부분에서는 송구스러울 뿐이고, 빠른 시일 내 해결을 위해 자산 매각이나 외부 자금 조달 등 다방면으로 자금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밝혔다.
대우조선해양건설 모기업인 한국테크놀로지 역시 “기업 회생신청을 심문기일인 1월 9일까지 해결해 회생절차가 진행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할 계획”이라고 공시했다. 하지만 대우조선해양건설은 1월 9일까지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서울회생법원은 최근 대우조선해양건설에 포괄적 금지 명령을 내렸다. 금지 명령의 주요 내용은 회생절차가 결정되기 전까지 채권자와 담보권자의 강제집행, 가압류, 가처분 등을 금지하는 것이다.
대우조선해양건설이 회생절차에 들어가면 한국테크놀로지와의 합병은 사실상 무산된다. 현 상황에서는 한국테크놀로지 계열사가 대우조선해양건설을 지원해야 경영권을 지킬 수 있다. 그러나 상황이 여의치가 않다. 한국테크놀로지는 지난해 1~3분기 93억 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부채비율은 지난해 9월 말 기준 647.27%에 달한다. 대우조선해양건설 인수 이후 그룹 전반의 재무가 악화된 셈이다. 나아가 대우조선해양건설이 긴축 경영에 들어가면 수많은 협력업체에도 악영향을 미쳐 건설업계의 침체가 가속화될 수 있다.
이와 관련, 한국테크놀로지 관계자는 “원자재값 상승, 지속된 금리인상 등으로 인한 건설업계의 불황과 이와 맞물린 유동성 둔화로 인해 한국테크놀로지와 대우조선해양건설이 힘든 상황”이라며 “이러한 이유로 합병보다는 경영 정상화를 최우선 과제로 해결할 계획을 가지고 있으며 이로 인해 합병이 미뤄졌다”고 설명했다.
#스포츠계에도 불똥
대우조선해양건설의 경영 위기는 스포츠계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대우조선해양건설 자회사 데이원자산운용은 지난해 데이원스포츠를 설립했다. 데이원스포츠는 프로농구팀 ‘고양 캐롯 점퍼스’를 창단했고, 허재 전 농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대표이사로 선임하며 주목을 받았다. 이 밖에 김용빈 회장은 2021년 대한컬링연맹 회장과 대한체육회 이사로 취임했다.
하지만 대우조선해양건설 경영 환경이 악화되면서 김용빈 회장의 외부 활동을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 못하다. 김 회장과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스포츠 사업 역시 잡음이 일고 있다. 고양 캐롯 점퍼스는 한국농구연맹(KBL)에 가입비를 제때 납부하지 않아 경고를 받았고 최근에는 선수단 급여를 제때 지급하지 못해 파문이 일었다.
김용빈 회장은 비판 여론을 의식했는지 지난 1월 3일 대한컬링연맹 회장과 대한체육회 이사에서 물러나겠다고 밝혔다. 김 회장은 대한컬링연맹을 통해 “어려운 시기가 맞물리며 사퇴라는 결정을 내리게 됐다”며 “사업적인 일로 인해 컬링과 컬링인들에게 더 이상 누를 끼칠 수 없다는 마음에 이러한 결정을 내리게 됐다”고 밝혔다.
강릉시는 오는 4월 ‘믹스더블 세계선수권대회’ ‘시니어 세계컬링선수권대회’ 등의 컬링 국제대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하지만 김용빈 회장이 사퇴하면서 한국테크놀로지나 대우조선해양건설의 후원을 기대하기는 어려워졌다. 기업의 후원 없이 스포츠 대회를 진행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대한컬링연맹 관계자는 “자체적으로 다른 스폰서십을 찾고 있지만 아직 결정된 것은 없다”고 말했다.
앞서의 한국테크놀로지 관계자는 “농구단은 데이원스포츠가 독자적으로 운영하는 것으로 대우조선해양건설에서 농구단의 지원이나 후원 등은 계획하고 있지 않으며 대한컬링연맹 후원에 대해서도 결정된 바가 없고, 경영 정상화 문제를 먼저 해결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