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쟁점 된 사건” 검찰 고위직 출신들 잇따라 거절…쌍방울그룹 법조계 네트워크도 안 먹혀
김 전 회장은 귀국에 앞서 KBS 인터뷰 등을 통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연락한 적이 없다”는 취지로 선을 그었다. 하지만 검찰은 이 해명이 ‘말맞추기’ 목적일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수사할 방침이다. 그런 가운데 법조계에서는 김 전 회장의 변호인을 ‘기피’하는 모습도 보이고 있다. 김 전 회장의 변호를 맡는 것을 부담스러워 하는 분위기인데, 실제로 몇몇 고검장·검사장 출신 변호사들에게 변호 요청이 갔지만 대부분 거절했다고 한다.
#한동훈 장관 “수사로 밝힐 것”
김 전 회장은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변호사비 대납 의혹과 쌍방울 주가 조작 의혹,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에 뇌물을 제공한 의혹, 불법 대북 송금 의혹 등에 연루돼 있다. 앞서 김 전 회장은 KBS와 전화 인터뷰를 통해 대북 송금 의혹에 대해서만 ‘부분적’으로 혐의를 인정했다. 2018년 중국에서 만난 북한 고위급 인사에게 거액을 전달했다는 혐의에 대해서만 “회사 돈은 10원도 준 게 아니”라며 “제 개인 돈을 준 거니까 제 돈 날린 거지 회사 돈 날린 거 하나도 없다”고 인정했다.
그 외 의혹들은 모두 혐의를 부인했다. 이재명 대표의 변호사비 대납 의혹에 대해서는 “(이 대표와) 만날 만한 계기도 없고 만날 만한 이유도 없다. 그 사람을 왜 만나나”라며 관련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그러면서 “그 이재명 때문에 제 인생이 이렇게 초토화됐는데”라고 답한 뒤 ‘전화통화를 한 적도 없느냐’는 질문에 “없다”고 선을 그었다. 실제로 김 전 회장은 송환 과정에서 만난 기자들의 이재명 대표 혹은 측근과의 접촉 여부를 묻는 질문에 “전혀 모른다”고 답했다.
또, 전환사채(CB)를 발행해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의혹에 대해 김 전 회장은 “회사에서 전환사채를 만드는 데 어떻게 비자금을 만들 수 있겠냐”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검찰 조사에 성실히 임하겠다. 저 때문에 저희 회사에서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이 상처를 받았다. 검찰에서 다 밝혀질 것”고 덧붙였다.
#검찰 ‘말맞추기’ 차단 방안 검토
이재명 대표도 “김성태 전 회장을 (개인적으로) 알지 못한다”는 취지로 해명했던 상황이다. 하지만 검찰은 김 전 회장의 발언을 ‘사전 입맞추기’로 보고 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하루 앞선 1월 16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업무보고에 출석하며 “해외 도피한 중범죄자들이 못 견디고 귀국하기 직전에 자기 입장을 전할 언론사를 선택해서 일방적인 인터뷰를 하고 자기에 유리하게 보도되게 하는 건 과거에 자주 있던 일”이라며 “그렇게 한다고 범죄수사가 안 된 것은 아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검찰은 김 전 회장을 상대로 본격적인 조사를 벌이고 있다. 수원지검 형사6부 검사들이 교대로 돌아가면서 김 전 회장을 수사하는데, 체포영장 시한 만료(48시간) 전인 오는 18일이나 19일 중으로 구속영장도 청구할 방침이다. 구속영장 발부 가능성이 높은 상황. 검찰은 변호인 외에는 아예 김 전 회장을 면회할 수 없도록 차단해 ‘말맞추기’를 하지 못하도록 하는 방안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앞으로 검찰과의 관계를 생각하면…"
흥미로운 점은 과거에는 인기가 높았던 김성태 전 회장의 변호인 지원자가 크게 줄었다는 점이다. 김 전 회장은 송환 한 달여 전 즈음부터 ‘변호인단 구성’을 시도했던 것으로 알려졌는데, 아직 구체적인 변호인단 구성 여부가 드러나지 않았다. 한 언론에 조 아무개 전 고검장 출신 변호사가 변호인으로 선임됐다는 보도도 나왔지만, 그는 김 전 회장의 요청을 고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비교적 높은 금액의 변호인 선임료를 주는 것으로 알려져 ‘고객’으로 삼고자 하는 변호사들이 많았던 것과는 사뭇 달라진 분위기다. 제안을 받은 적이 있는 검사장 출신 전관 변호사는 “김 전 회장을 잘 아는 동생이라는 사람에게서 ‘변호를 맡아줄 수 있냐’는 제안을 지난 연말 즈음 받은 적이 있지만, 김 전 회장도 잘 모르고 사건도 워낙 시끄러운 탓에 조심스레 거절했다”고 털어놨다.
차장검사 출신으로 주가조작 사건 담당 경험이 많은 전관 변호사 역시 “김 전 회장 측으로부터 한국에 가게 되면 사건을 맡아달라는 제안을 받았지만, 검찰이 전력을 다해 수사하는 사건을 변호사로 막아내는 것은 부담스러워 거절했다”며 “언론에 크게 드러나지 않는 주가조작 사건이면 모를까, 이렇게 정치적으로 쟁점화된 사안을 변호하는 것은 잃는 게 더 크다”고 설명했다. 검찰을 떠난 지 3년 안팎의 고검장·검사장급 출신 변호사들 중 상당수가 김 전 회장 측의 변호 요청을 받았지만, 대다수가 고사의 뜻을 밝혔다는 후문이다.
앞선 검사장 출신 변호사는 “윤석열 정부가 가장 공을 들여 진행하는 수사이기도 하고, 의혹의 범위도 워낙 넓어 어디까지 검찰이 수사할 것인지도 아직 정확하게 정해지지 않은 수사 아니냐”며 “검찰 출신 대통령이 당선된 뒤 가장 힘을 들여 진행하는 수사를 변호하는 것은 검찰 출신 변호사에게 가장 부담스러운 지점이다. 앞으로 검찰과의 관계를 생각할 때 쉽지 않은 결정”이라고 답했다. 그는 이어 “분명 전관 출신 중 하나가 사건을 맡겠지만 그 역시 검찰과 ‘수사 범위 조율 및 수사 협조’를 약속하고 사건을 맡지 않겠느냐”고 덧붙였다.
평소 전관 변호사들과 관계를 잘 쌓아왔던 김성태 전 회장과 쌍방울그룹의 네트워크가 먹혀들지 않는다는 평이 나오는 대목이기도 하다. 김 전 회장과 쌍방울은 지난 2014년 쌍방울 주가조작 사건 수사 검사 출신 변호사 등 전관 법조인들을 대거 사외이사에 앉히는 방식으로 법조계 인맥을 관리했다. 김 전 회장이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한 뒤 임명된 41명의 계열사 사외이사 가운데 17명이 법조인이었는데 검사 출신 9명에 판사와 고위 경찰 출신도 포함됐다.
앞선 차장검사 출신 변호사는 “김 전 회장이 직접 했다기보다는 쌍방울그룹 임원진들이 전관들을 관리하는 구조였는데, 심지어 처음 개업하면 아는 형님이나 동생의 소개라면서 인사를 먼저 올 정도”라며 “하지만 지금은 분위기가 다르지 않나. 아무리 거액을 줘도 맡고 싶지 않은 사건”이라고 털어놨다.
서환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