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월드컵 최종예선 진출 등 동남아 최강 성장…“한국에선 감독 하지 않을 것” 선 그어
#5년 동행 마무리
박항서 감독이 이끈 베트남 축구 국가대표팀은 지난 16일 태국에서 열린 동남아축구연맹(AFF) 챔피언십에서 최종 준우승을 차지했다. 우승이라는 목표를 달성하지는 못했지만 무패(3승 1무)로 조별리그를 통과하는 등 좋은 과정을 보였기에 박수가 쏟아졌다.
앞서 이번 AFF 챔피언십을 마지막으로 결별을 발표했다. 2017년 최초 계약 이후 2019년 한 차례 재계약했으나 이번엔 헤어짐을 택했다. 지난 5년, 약 2000일간의 여정을 마무리하는 자리였기에 베트남에 이번 대회는 더욱 특별했다.
베트남은 박항서 감독 부임 이후 동남아 톱클래스로 올라선 면모를 이번 대회에서도 유감없이 발휘했다. 조별리그에서 연이은 대승으로 여유 있게 토너먼트에 올랐다. 4경기 3승 1무, 12득점 무실점을 기록했다.
준결승 1차전에서는 인도네시아와 0-0 무승부를 거둬 흔들리는 듯했지만 홈에서 열린 2차전에서 2-0 완승으로 결승에 진출했다. 비록 준우승에 그쳤지만 라이벌 태국에 종합 스코어 2-3으로 단 한 골이 부족했을 뿐이다. 박항서 감독과 베트남 선수들은 크게 좌절하는 여느 대회 준우승 팀들과 달리 옅은 미소를 띠며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박항서 감독은 이 대회에 3회 참가해 우승, 3위, 2위라는 성적을 남겼다.
#박항서가 바꾼 베트남
2017년 베트남 지휘봉을 잡은 박항서 감독은 빠른 시간 내 결과를 냈다. 연령별 대표팀 감독도 겸직한 그는 2018년 중국에서 열린 아시아축구연맹(AFC) U-23 챔피언십에서 준우승을 차지했다.
한국이나 일본, 중동의 강팀에 대회 준우승은 큰 성과가 아닐 수 있지만 베트남 사정은 달랐다. 동남아시아 밖의 큰 규모 대회에서는 힘을 쓰지 못하던 베트남이었다. 이들이 AFC 주관 대회 결승에 진출한 것은 연령별 대표 전체를 통틀어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에 베트남 정부는 팀에 1급 노동훈장, 박항서 감독 개인에게 3급 노동훈장을 수여하며 화답했다. 이어진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는 준결승 진출에 성공, 최종 4위를 차지했다. 비록 메달 획득에는 실패했지만 이 또한 베트남 역사상 최고 성적이었다.
이외에도 박항서 감독은 AFF 챔피언십(2018 대회 우승), 아시안컵(8강), 월드컵 예선(최종예선 진출), 동남아시안게임(SEA GAMES, 우승) 등 나서는 대회마다 일정 이상의 성과를 냈다. 그중 백미는 AFF 챔피언십 우승과 월드컵 최종예선 진출이었다. 매번 4강 문턱을 넘는 데 어려움을 느끼던 베트남은 2018년 AFF 챔피언십에서 우승컵을 들었다. 월드컵 최종예선은 베트남이 최초로 경험하는 무대였다. 비록 본선 진출은 실패했으나 베트남도 월드컵이라는 무대에 한발 다가설 수 있다는 희망을 심었다.
박항서 감독은 베트남을 동남아 내 확실한 강팀으로 끌어올렸다. 태국 정도를 제외하면 동남아 내 적수가 없는 위치까지 올라섰다. 임기 중 동남아 지역 내 대회에서 우승을 경험했다. 아시아 전체로 영역을 넓혀서도 유의미한 성과를 냈다.
피파랭킹이 박항서 감독 부임 이전과 이후의 차이를 보여주는 지표다. 베트남은 2016년 내 최고 순위가 129위에 불과했다. 2018년부터 100위 이내로 들어서더니 2019년부터는 꾸준히 90위권대를 유지하고 있다.
박항서 감독의 성공은 동남아 축구 판도를 바꾸기도 했다. 라이벌 태국 대표팀의 마담 팡 단장도 그에 대해 "동남아 축구를 바꾼 지도자"라는 평가를 남겼다. 동남아에선 한국 지도자 열풍이 진행 중이다.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가 차례로 신태용·김판곤 감독을 불러 앉혔다. 이들은 나란히 이번 AFF 챔피언십에서 4강에 올랐다. 이외에도 베트남, 싱가포르, 홍콩 등 각국 리그까지 한국인 지도자 진출이 이어지고 있다.
#베트남과 박항서 감독의 미래
베트남은 지난 5년간 박항서 감독의 리드 아래 동남아 축구강국으로 성장했다. 다음 과제는 아시아 전체에서도 동남아 내 못지않은 위용을 뽐내는 것이다. 성공 가도를 달려온 박 감독은 "팬들에게 행복한 축구 감독으로 기억에 남고 싶다"는 말과 함께 다음 감독에게 바통을 넘겼다.
동남아 내에서 기반을 다진 베트남은 그 이상을 바라본다. 이들의 지상 과제는 월드컵 본선 진출이다. 그간 단 한 번도 월드컵 본선 무대를 밟지 못했다.
다가오는 2026 캐나다·멕시코·미국 월드컵에서는 기대를 걸고 있다. 본선 규모가 48개국 참가로 늘어나며 아시아에 본선 티켓 8.5장이 분배됐다. 앞서 베트남은 최종예선에 오른 지난 월드컵 예선에서 12개 국가 중 최하위 수준의 성적을 냈다. 한 단계 성장을 이뤄내야 예선 과정을 뚫을 수 있다. 이상윤 MBC 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은 "새 출발을 하는 베트남은 다시 한 번 시험대에 오르게 됐다"며 "이제는 동남아 내부가 아닌 중동·동아시아 국가를 목표로 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항서 감독의 다음 발걸음에도 눈길이 쏠린다. 그는 "베트남과 한국에서는 더 이상 감독을 하지 않겠다"는 말로 선을 그은 바 있다. 박항서 감독이 베트남에서 떠날 의사를 밝힌 이번 겨울, 축구계에는 '박항서 감독이 K리그 지방구단 행정을 맡을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구체적인 팀도 언급됐으나 아직까지 구체적인 움직임은 감지되지 않았다.
5년 전 하위리그 감독을 맡다 쫓겨나듯 베트남으로 간 그는 금의환향하는 모습으로 국내에 돌아올 수 있는 상황이 됐다. 박 감독은 "축구협회나 프로축구연맹에 갈 생각은 없다. 행정 능력이 없다"면서도 "분명 축구와 관련된 일을 할 것"이라며 의지를 보였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