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정부 포퓰리즘 때문” vs “현 정부 안이한 대처 탓”…‘저소득층’ vs ‘국민 80%’ 지원대상 놓고 의견 갈려
매서운 한파가 기승을 부리는 가운데 각 가정집에 ‘난방비 폭탄’이 떨어졌다. 고지서를 받아든 국민들은 2022년 같은 기간 대비 가스 요금이 많게는 2~3배가량 크게 올랐다고 하소연했다. 직접적인 원인으로는 2022년 2월 발발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국제 에너지 가격 급등이 꼽힌다. 에너지 가격이 크게 오르면서 2022년 4차례(4·5·7·10월)에 걸쳐 도시가스 요금을 인상한 게 난방비에 반영됐다는 것이다.
산업통상자원부(산자부) 등에 따르면 가정에서 난방에 주로 쓰는 도시가스 도매요금은 2022년 네 차례에 걸쳐 1메가줄(MJ)당 총 5.47원 올라, 1년 사이 인상률이 42.3%에 달했다. 이에 따라 서울지역 도시가스의 경우 소매요금이 2022년 동기 대비 약 38% 상승했다. 지역난방 가구에 부과되는 열(난방·온수) 사용요금 역시 1년 동안 38% 상승했다.
더 큰 문제는 난방비 폭탄이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다. 이번 1월에 받은 고지서는 2022년 12월 사용량이다. 2월에 나올 고지서가 이번 1월 사용량이다. 12월말부터 이어진 한파 영향으로 난방 사용량이 늘어났을 가능성이 높다. 뿐만 아니라 도시가스 요금 추가 인상도 예고됐다. 앞서 산자부는 2022년 9조 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되는 가스공사 미수금 해소를 위해 올해 도시가스 요금을 더 올려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정치권에서는 한겨울 난방비를 민생과 직결된 사안이라는 점에서 예민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국민 불만이 고조되자 윤석열 정부는 수습책을 꺼내들었다. 예고됐던 가스 요금 추가 인상을 1분기 동결하고, 취약계층 난방비 지원 확대 및 사회적 배려대상자에 추가 요금 할인을 결정했다.
최상목 대통령실 경제수석은 1월 26일 브리핑을 통해 “정부는 겨울 취약계층 난방비 지원 확대를 위해 에너지 바우처 지원 확대와 가스공사 가스요금 할인을 대폭 확대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기초생활급여(생계·의료·주거·교육급여) 수급가구, 노인 질환자 등 더위·추위 민감 계층 177만 6000가구에 대해 올겨울 1~3월 한시적으로 에너지 바우처 지원 금액을 15만 2000원에서 30만 4000원으로 2배 인상하기로 했다. 가스공사는 올겨울에 한해 160만 가구의 사회적 배려대상자에 대해 요금 할인폭을 3만 5000원에서 7만 2000원으로 확대한다.
최상목 수석은 이어 “겨울철 난방 수요가 집중되는 점을 고려해 국민부담 완화 차원에서 올해 1분기 요금은 동결한다”고 말했다. 다만 정부는 이러한 대책이 한시적 조치로, 에너지 요금 현실화는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재확인해줬다. 최 수석은 “요금 인상은 전세계적인 현상”이라며 “우리나라 가스요금 수준은 미국 독일 등 대비 23~60% 낮은 수준으로 어려운 대내외 여건 속에서 에너지 가격 현실화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1분기 가스 요금 동결 이후 요금 인상과 관련해서는 “2분기는 말하기가 이르다”며 “국민들의 부담이나 한전과 가스공사의 재무구조 등 여러 상황을 고려해 결정해나갈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민주당은 대통령실 지원 계획을 훨씬 웃도는 총 7조 2000억 원 규모의 ‘에너지 고물가 지원금’을 전 국민 80%에게 지급하자고 정부여당에 제안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지난 1월 12일 신년기자회견에서 제시한 가구당 15만~40만 원의 ‘핀셋 물가지원금(5조 원 규모)’ 명칭을 바꾸고 지급대상을 확대해 1인당 10만~25만 원씩 지급하자는 내용이다.
민주당 정책위원회는 소득 하위 30%(1544만 명)에게는 1인당 25만 원씩, 30~60%(1544만 명)는 15만 원씩, 60~80%(1029만 명) 10만 원씩 지급하는 것으로 예산을 짰다. 이를 통해 4117만 명에 7조 2000억 원이 지급된다는 추산이다.
이재명 대표는 1월 27일 전북 익산시청에서 열린 현장 최고위원회의에서 정부의 에너지 바우처 2배 인상 대책에 대해 “안 하는 것보다는 나으니 잘 하셨으나 매우 부족하다”며 “여론에 떠밀려 ‘언 발에 오줌 누기’식 땜질 정책이 아니라 특별한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민주당이 제안한 지원안을 재차 강조했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은 책임 소재를 놓고도 대립각을 세웠다. 국민의힘은 ‘난방비 폭탄’ 원인으로 문재인 정부 가스비 인상 방치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주호영 원내대표는 1월 26일 비상대책위원회 회의에서 “민주당이 난방비 폭등을 두고 현 정부를 비난하는 것은 ‘눈 가리고 아웅’하기이고 무책임과 뻔뻔함의 극치”라고 꼬집었다. 이어 “문재인 정부는 대선 전까지 1년 반 동안 가스 요금을 동결했다가 선거가 끝난 이후에 겨우 12% 인상했다. 가스 요금 인상은 피할 수 없는 과정”이라며 “문재인 정권의 에너지 포퓰리즘 폭탄을 지금 정부와 서민들이 다 그대로 뒤집어쓰고 있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문재인 정부는 2020년 7월 주택용 가스요금을 11.2% 인하한 뒤 2022년 3월까지 이를 동결해왔다. 이처럼 전임 정부가 도시가스 가격 인상을 억제하다보니 가격 상승 체감이 높아진 것도 ‘폭탄’의 간접적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민주당은 난방비 폭탄을 현 정부여당 무능과 실정으로 몰아가고 있다. 이재명 대표는 최고위원회의에서 “전쟁이나 경제상황 때문에 이런 일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은 대체로 예상할 수 있는 일이었다”며 “현 정부는 대책을 충분히 마련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민주당 한 경제통 인사는 “국민의힘에서는 문재인 정부 때 도시가스 요금을 제때 인상하지 않아서 지금 폭탄으로 돌아왔다고 하는데, 문재인 정부 때는 국제 LNG(액화천연가스) 가격이 하향 안정 추세여서 요금 인상 요인이 크게 없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면서 가스비가 폭등하기 시작한 것은 사실상 윤석열 정부 들어선 이후다. 왜 아직도 전임 정부 탓을 하느냐”며 “또한 국제 LNG 가격이 요동쳐도 이를 조정해 국민들 생활에 타격이 오지 않도록 하는 게 정부와 가스공사의 역할이다. 자신들이 뚜렷한 대책을 준비하지 않고 수입가격에 따라 폭등시켜 놓고 뒤늦게 대책을 내놓는 것도 수권능력이 의심스럽다”고 비판했다.
민주당 다른 관계자도 “윤석열 정부는 말로는 매번 민생을 이야기하지만 내용을 보면 전혀 반대 행보다. 가스비의 경우 문재인 정부는 형평성을 이유로 산업용이 주택용보다 낮았기 때문에 산업용 가격을 올려왔다. 그런데 지난해 윤석열 정부 들어 산업용을 다시 인하해주고 있다. 정말 민생이 걱정됐다면 산업용을 더 올리고 주택용을 낮춰줬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여권에서는 ‘난방비’가 윤석열 대통령 국정 운영에 부담이 될지 전전긍긍하는 모습이다. 국민의힘 한 관계자는 “문재인 정부는 부동산과 종부세, 세금 등으로 민심이 돌아섰다. 그만큼 민생이 중요하다”며 “이번에 난방비에 대한 국민 불만 목소리가 심상치 않다. 특히 종부세와 달리 가스·전기 요금은 매달 청구서가 나온다. 계속 회자될 수밖에 없다. 명확한 대책을 내놓지 않으면 내년 총선 때까지 계속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