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 공백 채울 인물 마땅찮아 신사업 차질 가능성…한국앤컴퍼니그룹 “조 회장 앞날 언급은 이른 이야기”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는 지난 1월 10일 조현범 회장을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한국타이어)가 타이어몰드를 고가로 구입하는 방식으로 한국프리시전웍스를 부당 지원했다는 이유에서다. 한국프리시전웍스는 한국타이어가 지분 50.1%를 보유 중이고, 조현범 회장과 형인 조현식 한국앤컴퍼니 고문이 각각 29.9%, 20.0%를 갖고 있다. 타이어몰드란 타이어 패턴을 만드는 틀을 뜻한다. 검찰은 지난 1월 26일 한국타이어 법인과 임원 A 씨를 불구속 기소했고, 조 회장에 대한 수사는 현재 진행 중에 있다. 이와 별개로 검찰은 조 회장 개인의 횡령·배임 혐의도 수사 중이다. 조 회장은 회사 돈을 집수리나 외제차 구입 등 개인 용도에 사용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조현범 회장이 횡령 혐의를 받으면서 한국타이어는 경영권 공백을 우려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특경법)에 따르면 5억 원 이상 횡령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을 경우 형 집행 종료 후 5년 동안 관련 기업에 취업할 수 없다. 즉, 조 회장이 5억 원 이상을 횡령한 것으로 밝혀지면 수년간 한국타이어 경영 참여가 불가능하다. 검찰은 조 회장의 구체적인 횡령 규모를 확인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횡령 액수가 5억 원 미만이더라도 검찰의 집중 타깃이 되고 있는 조현범 회장이 경영에 집중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사정기관에서는 조 회장이 최소한 기소를 피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내다본다. 사정기관 한 관계자는 “윤석열 정부의 기본 철학은 경제나 사회 발전을 위해서는 부정부패를 엄하게 처벌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적당히 수사를 무마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앤컴퍼니그룹의 다른 오너 일가가 조현범 회장을 대신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조 회장의 장녀 조유빈 양이나 조재민 군은 아직 만 20세도 되지 않았다. 조 회장의 누나 조희경 한국타이어나눔재단 이사장과 형 조현식 고문은 현재 한국앤컴퍼니그룹 경영에 직접적인 참여를 하지 않고 있다. 뿐만 아니라 조희경 이사장과 조현식 고문은 과거 조현범 회장과 경영권 분쟁을 겪으면서 관계가 악화됐다고 전해진다. 최대주주인 조현범 회장이 이들의 경영 참여를 허락하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또 다른 변수도 있다. 조희경 이사장은 2020년 조양래 한국앤컴퍼니그룹 명예회장에 대한 성년후견 개시 심판을 청구했다. 성년후견은 사무 처리나 의사결정이 어려운 성인에 대해 후견인을 지정하는 제도다. 조양래 명예회장은 당시 조현범 회장에게 한국앤컴퍼니 지분 전량을 증여했는데, 해당 증여가 자발적 의사인지 판단이 필요하다는 취지였다. 법원은 지난해 4월 조희경 이사장의 심판을 기각했고, 이에 조 이사장은 항소했지만 현재까지 판결은 나오지 않고 있다.
그러나 재계에서는 조희경 이사장이 승소하더라도 당분간 한국앤컴퍼니그룹 경영권에 변화가 발생할 가능성은 낮게 보고 있다. 한국앤컴퍼니그룹 사정에 정통한 한 인사는 “성년후견 심판은 현재의 조양래 명예회장의 후견인을 결정하는 것”이라며 “조양래 명예회장의 과거 지분 증여가 비자발적 의사라고 판결 받더라도 증여를 취소하려면 이에 대한 민사 소송을 또 걸어야 하는데 이에 대한 판결까지는 매우 긴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분석했다.
따라서 조현범 회장이 부재하면 전문경영인이 회사 경영을 맡을 가능성이 높다. 일례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수감됐을 때도 정현호 삼성전자 부회장, 최윤호 전 삼성전자 사장(현 삼성SDI 사장) 등이 경영 전면에 등장했다. 한국앤컴퍼니그룹의 2인자로는 이수일 한국타이어 사장이 꼽힌다. 이 사장은 2017년 12월 조 회장과 한국타이어 각자 대표이사에 취임했다. 조 회장이 2020년 6월 한국타이어 대표에서 사임한 후부터는 단독으로 대표를 맡고 있다.
그러나 전문경영인이 회사를 이끌면 투자에 한계가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재계 관계자는 “공격적인 투자나 대형 인수합병(M&A)은 전문경영인이 총수와의 교감 없이 개인 판단으로 진행하기는 쉽지 않다”며 “총수가 경영에 집중하지 못하면 외부 상황을 정확히 알기 어려우니 투자를 섣부르게 승인해주기 어렵다”고 말했다.
조현범 회장은 그간 신사업에 큰 관심을 보였다. 한국앤컴퍼니그룹은 조 회장이 2021년 12월 회장에 취임할 당시 “조현범 회장 취임으로 새롭게 정립된 미래 혁신 방향을 중심으로 핵심 사업 경쟁력 강화 및 신규 사업 발굴을 위한 투자를 적극 주도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조 회장 역시 지난해 신년사를 통해 “향후 새로운 성장 동력에 적극적으로 투자해 그룹의 성장을 이어나갈 것”이라고 포부를 드러냈다.
한국앤컴퍼니는 지난해 캐나다 광학 MEMS(미세전자기계시스템) 설계 전문 기업 프리사이슬리마이크로테크놀로지 지분 60%를 2045억 원에 인수했고,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차량용 납축전지 배터리 판매 법인을 설립했다. 그러나 프리사이슬리마이크로테크놀로지 지분 인수는 조 회장의 회장 취임 전에 결정된 사안이고, 축전지 사업도 수십 년 전부터 하던 사업을 확대하는 것이다. 재계에서는 조 회장이 신사업에 추가적인 투자를 할 것으로 예상해왔다. 한국앤컴퍼니의 부채비율은 지난해 9월 말 기준 9.37%에 불과해 자금 여유도 있다.
한국앤컴퍼니그룹은 2021년 미래 성장 포트폴리오 ‘S.T.R.E.A.M’을 발표한 바 있다. S.T.R.E.A.M은 △친환경 배터리 및 신재생 에너지(Smart Energy) △타이어 및 관련 핵심 산업(Tire & Core biz) △미래 신기술 활용 사업 다각화(Rising Tech) △전동·전장화 부품, 기술, 솔루션(Electrification) △로봇, 물류 등 자동화 및 효율화(Automation) △모빌리티 산업 전반(Mobility) 등 그룹의 핵심 진출 분야의 앞 글자를 모아 만들어졌다.
타이어 본업에 대한 투자도 필요하다. 타이어업계의 최근 주요 화두는 전기차용 타이어다. 글로벌 시장조사 업체 프리시던스리서치는 글로벌 전기차 타이어 시장 규모가 2021년 400억 달러(약 49조 원)에서 2030년 1616억 달러(약 199조 원)로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라이벌인 금호타이어는 지난해 전기차용 타이어 ‘마제스티9 SOLUS TA91 EV’와 ‘크루젠 HP71 EV’를 출시하는 등 전기차용 타이어 개발에 힘쓰고 있다. 미쉐린 등 글로벌 타이어 업체들도 전기차용 타이어 연구개발(R&D)에 적극적인 모습이다.
한국타이어도 지난해 전기차 전용 타이어 브랜드 ‘아이온(iON)’을 출시했다. 그러나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서는 기술력에 대한 추가 투자가 필요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전기차는 상대적으로 무거우므로 내구성이 높은 타이어가 필요하다. 또 가속이 빠르므로 마모성도 일반 타이어에 비해 강해야 한다. 이 때문에 타이어업계에서는 관련 기술 보유 업체에 대한 M&A가 이뤄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이와 관련, 한국앤컴퍼니그룹 관계자는 “조현범 회장의 앞날을 언급하는 것은 이른 이야기”라며 “검찰 수사와 관련해서도 특별한 입장이 없다”라고 말했다.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