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수진 빅리그 최상위 원투펀치에 타선 ‘56홈런’ 무라카미 등 포진…이강철 감독 “우리 컨디션 관리가 우선”
20개국이 참가해 본선 1, 2라운드와 준결승, 결승을 치르는 이번 대회에서 호성적을 거두기 위해서는 1라운드 통과가 급선무다. 앞서 열린 두 번의 대회에서 대표팀은 네덜란드, 이스라엘 등에 덜미를 잡히며 1라운드 관문을 넘어서지 못했다. 2006년 4강, 2009년 준우승이라는 성과를 거둔 것에 비하면 초라한 성적이었다.
#최근 분위기 밀리는 한일전
4개국이 한 조로 편성됐던 지난 대회들과 달리 참가국이 늘어나면서 5개국이 2라운드 진출을 두고 겨룬다. 각 조 2위까지 2라운드 진출권이 주어진다. 대표팀은 B조에 일본, 호주, 중국, 체코와 함께 편성됐다. '숙적' 일본을 대회 초반부터 만나게 된 것이다.
종목을 막론하고 언제나 라이벌 관계인 한국과 일본은 야구에서도 경쟁의식을 가지고 있다. 인프라, 역사 등에서 일본이 앞서지만 한국은 일본을 상대로 심심찮게 승리를 따내왔다.
프로 무대에서 뛰는 선수들이 선발돼 최정예로 만난 대결에서 한국 대표팀은 일본을 상대로 한때 우위를 점하기도 했다. 올림픽 최초 메달을 획득한 시드니 올림픽에서 2승으로 일본을 4위로 끌어내렸다. 2006 WBC에서는 비록 일본에 막혀 결승 진출에 실패했으나 3경기를 치러 2승 1패로 앞섰다.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는 두 번 만나 모두 승리를 거뒀으며 이듬해 열린 WBC에서는 다섯 번이나 만나 2승을 낚아냈다.
하지만 2010년대에 들어서며 대표팀은 일본에 밀리는 형국을 보였다. 대표팀은 2010년부터 2018년까지 3연속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목에 걸었으나 일본은 이 대회에 사회인 야구팀 선수들을 대거 출전시켰다. 올림픽, 프리미어12 등 주요 대회에서 대표팀은 일본에 패배를 반복해왔다. WBC에서는 대표팀이 최근 두 대회 연속 1라운드에서 탈락했기에 한일전이 성사되지 못했다.
일본은 이번 대회 메이저리거들을 대거 합류시키면서 호화 멤버를 구성했다. 이강철 대표팀 감독은 "최고의 선수들이 나오기에 오히려 부담은 적다"고 말했다.
#빅리거들 속속 합류
일본은 사활을 걸었던 2020 도쿄 올림픽(2021년 개최)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하지만 일본은 이에 그치지 않았다. 최근 자국 내 야구 인기 감소를 감지한 일본은 분위기를 반전시키기 위해 대표팀의 호성적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번 대회 일본은 최정예 전력을 구축했다. 그간 선수 차출에 미온적이었던 메이저리그(MLB)도 이번 대회만큼은 협조하고 있다. MLB에서도 정상급으로 통하는 오타니 쇼헤이(LA 에인절스), 다르빗슈 유(샌디에이고 파드리스)가 선발됐다. 이외에도 스즈키 세이야(시카고 컵스), 요시다 마사타카(보스턴 레드삭스) 등 빅리그 소속 선수들이 합류했다.
일본계 미국인 라스 눗바도 대표팀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눗바는 2018년 드래프트에서 세인트루이스에 지명돼 2021시즌부터 빅리그에 모습을 드러냈다. 2022시즌에는 108경기에서 14개의 홈런을 때려내 장타력을 인정받고 있다.
무엇보다 일본 대표팀에서 주목을 받는 부분은 빅리그에서도 '톱클래스'로 꼽히는 오타니와 다르빗슈가 원투펀치로 나선다는 것이다. 지난해 오타니는 만장일치 MVP를 수상한 2021시즌 못지않은 활약을 펼쳤다. 타자로서 타율 0.269 홈런 30개, 투수로서 15승 9패 평균자책점 2.35를 기록했다. 명실상부 현존 최고 야구선수 중 한 명이다. WBC 조직위는 투타 겸업 선수가 마운드에서 강판되더라도 타자로 경기에 계속 나설 수 있는 일명 '오타니 룰'을 적용시켰다. 오타니의 활약에 날개를 달아준 셈이다.
대한민국 대표팀은 이미 국제대회에서 오타니의 위력을 절감한 바 있다. 2015 프리미어12에서 두 차례 그를 상대했다. 당시 대표팀은 4강에서 일본에 승리해 우승을 차지했으나 오타니를 상대로는 고전했다. 오타니는 우리와 두 경기에서 무실점(13이닝 3피안타 21삼진)을 기록해 우리 타선을 침묵시켰다. 김현수, 이대호 등 내로라하는 타자들이 '못 친다'고 표현할 정도였다. 당시 오타니는 MLB에 진출하기 이전, 일본프로야구(NPB)에서 뛰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우리 대표팀은 오타니를 타자로만 상대할 것으로 보인다. 일본은 대회 첫 일정인 중국전에서 오타니를 내고 두 번째 경기인 한국전에는 다르빗슈를 선발로 내세울 것으로 전해진다.
다르빗슈는 2021시즌 8승 11패 평균자책점 4.22로 부진했으나 2022시즌 16승 8패 평균자책점 3.10으로 부활하는 모습을 보였다. 샌디에이고의 1선발로 활약하며 팀의 내셔널리그 챔피언십 시리즈 진출에 힘을 보탰다. 우리로선 분명 버거운 상대다. 샌디에이고 팀 동료이자 대표팀 내야수 김하성은 '일요신문i'와 인터뷰에서 "다르빗슈가 나오는 것은 반칙 아닌가. WBC 출전하지 말라고, '페어플레이 하자'고 말했다"는 농담을 전하기도 했다.
다르빗슈 역시 NPB 시절 국가대표로 한국 대표팀을 상대한 경험이 있다. 총 다섯 차례 한일전이 펼쳐진 2009 WBC에서 다르빗슈는 선발과 불펜을 오가며 여러 차례 등판했다. 선발로 나선 2라운드 한일전에서는 패배를 안았고 결승전에서도 동점을 허용해 블론 세이브를 기록했으나 이후 타선의 도움과 추가 실점을 내주지 않으며 우승의 순간을 지킨 '헹가래 투수'가 됐다.
오타니와 다르빗슈 외에도 대표팀 합류가 예상됐던 우완투수 센가 코다이는 불참을 선언했다. 코다이는 2023시즌을 앞두고 11년간의 NPB 생활을 마무리하고 뉴욕 메츠와 계약했다. 빅리그 데뷔를 앞두고 시즌 준비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타선도 강력한 ‘사무라이 재팬’
야수 부문에선 빅리그 간판을 달고 스즈키 세이야, 요시다 마사타카가 나선다. 스즈키는 2022시즌 MLB 데뷔 시즌을 치렀다. 111경기에서 타율 0.262 104안타 14홈런을 기록해 빅리그 신인으로서 경쟁력 있는 모습을 보였다. 데뷔 첫 한 달간 맹활약으로 4월에는 '이달의 신인선수상'을 수상했다.
요시다는 2023시즌을 앞두고 보스턴과 계약하며 빅리그 데뷔를 앞둔 외야수다. 5년 9000만 달러(약 1106억 원)의 대형 계약으로 주목을 받았다.
또 한 명의 빅리그 타자는 다름 아닌 오타니다. 유일무이 투타 겸업을 이어가고 있는 오타니는 위협적인 투수인 동시에 무서운 타자기도 하다. '괴물'들이 득실거리는 MLB에서도 2번, 또는 3번으로 상위타선에 배치되고 있다.
'2020년대 일본 최고의 타자'라는 평가를 받는 내야수 무라카미 무네타카(야쿠르트 스왈로즈)도 주목할 선수다. NPB 데뷔 2년 차인 2019년부터 36홈런을 기록, 장타력을 뽐낸 그는 2022시즌 56홈런으로 단일시즌 일본인 역대 최다홈런을 기록했다. 이외에도 5연타석 홈런, 최연소 통산 150홈런 등 갖가지 기록을 써내려가고 있다.
반면 일본 대표팀의 붙박이 유격수로 활약하던 사카모토 하야토(요미우리 자이언츠)는 명단에서 빠졌다. 2022시즌 부상과 부진이 겹쳤고 연이은 사생활 문제로 일본 내 여론도 좋지 못했다. 결국 구리야마 히데키 감독은 사카모토를 대표팀에 부르지 않았다. 사카모토의 백업으로 도쿄 올림픽 금메달에 일조했던 겐다 소스케(세이부 라이온스)가 이번에도 선발됐고 신인급인 나카노 타쿠무(한신 타이거즈)가 새로운 유격수로 뽑혔다.
객관적인 전력에서 우리보다 일본이 앞서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대표팀 사령탑 이강철 감독은 상대를 의식하기보다 우리 준비에 집중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는 "선수들이 대회에 맞춰 컨디션을 100% 끌어올리는 게 급선무다. 대표팀 훈련을 시작하기 전까지 컨디션을 잘 유지해 오면 좋겠다"고 했다. 앞서 두 번의 WBC 실패 요인으로 선수들의 컨디션 문제가 꼽힌 바 있다. 전문가들 역시 대회에 맞춰 평년보다 빠르게 몸을 끌어올리는 것이 우선이라고 입을 모은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