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우진·고우석·정우영·정철원 ‘수직 상승’…‘백의종군’ 박석민은 93% 삭감
이번 스토브리그에도 많은 선수가 연봉 때문에 울고 웃었다. 연봉이 수직상승해 의미 있는 수확을 한 선수가 있는가 하면, 순식간에 연봉이 반토막 나는 손해를 감수해야 하는 선수도 있다. 특히 1년 간격으로 데뷔해 나란히 '천재 타자'라 불렸던 이정후(25·키움 히어로즈)와 강백호(24·KT 위즈)는 희비가 크게 교차했다.
#이정후의 11억 원, 역대 단년계약 최고액
KBO리그 최고 타자 이정후는 프로에서 단 6년을 뛰었지만, 그 기간 동안 리그 역사에 셀 수 없이 많은 기록을 남겼다. 그라운드 밖 연봉 협상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는 올해 연봉 11억 원에 사인해 KBO리그 역대 단년계약 최고 연봉 기록을 갈아치웠다.
프리에이전트(FA)나 비FA 다년계약과 같은 특수 상황을 제외하고 재계약 대상자(보류선수)의 단년계약으로 연봉 10억 원을 돌파한 건 이정후가 사상 처음이다. 지난 시즌 타격 5관왕(타율·타점·안타·장타율·출루율)에 오르면서 정규시즌 MVP로 선정된 그는 연봉도 지난해 7억5000만원에서 무려 3억 5000만 원(46.7%)이 올라 KBO리그 연봉 역사에 신기원을 열었다.
이뿐만 아니다. 이정후는 2019년부터 올해까지 5년 연속 연차별 최고 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KBO리그 3~7년 차 최고 연봉 기록을 모두 이정후가 갖고 있다는 의미다. 2017년 당시 KBO리그 기본 연봉인 2700만 원(현재는 3000만 원)에서 출발한 이정후의 연봉 그래프는 2018년 1억 1000만 원, 2019년 2억 3000만 원, 2020년 3억 9000만 원, 2021년 5억 5000만 원, 2022년 연봉 7억 5000만 원으로 가파르게 상승했다. 그리고 7년 차가 된 올 시즌 마침내 10억 원의 벽까지 넘어버렸다.
종전 연차별 최고 기록들과의 격차도 크다. 이정후의 6년 차 연봉 7억 5000만 원은 류현진(토론토 블루제이스)이 2011년 한화 이글스에서 받았던 4억 원보다 3억 5000만 원이나 많았다. 심지어 올해 연봉인 11억 원은 김하성(샌디에이고 파드리스)이 2020년 키움에서 기록했던 7년 차 최고 연봉(5억 5000만 원)의 두 배에 이르는 액수다.
다만 과거의 류현진과 마찬가지로 이정후는 KBO리그 8년 차 최고 연봉은 경신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올 시즌을 끝으로 해외 진출 가능 요건(7시즌)을 채운 뒤 포스팅을 통해 메이저리그(MLB)에 도전할 계획이라서다. 이미 키움 구단과 상호 합의를 끝냈고, 미국 현지에서도 이정후를 향한 관심이 높다. MLB 슈퍼 에이전트 스콧 보라스와 대리인 계약까지 마쳤다. 이정후가 오는 3월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맹활약한다면 그의 가치는 더 올라갈 수 있다. 물론 이정후는 나성범(KIA 타이거즈)이 2019년 NC 다이노스에서 기록한 8년 차 최고 연봉(5억 5000만 원)을 이미 5년 차에 받았다. 그의 올해 목표는 오직 "키움을 우승으로 이끌고 미국으로 떠나는 것"이다.
#연봉 칼 삭감 강백호
KBO리그 3~7년차 최고 연봉 기록을 보유한 이정후는 유일하게 2년 차 최고 연봉 기록만 다른 선수에게 내줬다. KT 강백호다. 강백호는 2017년 신인왕 이정후보다 1년 늦은 2018년 프로야구에 데뷔해 첫 시즌부터 138경기에서 타율 0.290, 홈런 29개, 84타점을 기록했다. 역대 고졸 신인 최다 홈런 기록과 함께 신인왕 트로피도 들어올렸다. 그 결과 2년 차인 2019년 무려 9300만 원이 오른 연봉 1억 2000만 원에 재계약했다. 이정후가 남긴 2년 차 연봉 1억 1000만 원 기록을 1년 만에 다시 쓴 것이다. 야구 관계자들은 고교를 졸업하고 프로에 오자마자 확실한 존재감을 뽐낸 두 '천재 라이벌'의 등장에 설렘을 감추지 못했다. 이정후와 강백호는 2019년 말 일본에서 열린 프리미어12 대표팀에도 나란히 승선해 한국 야구를 대표하는 타자들로 성장하는 듯했다.
이후에도 강백호는 차근차근 이정후의 뒤를 밟았다. 3년 차인 2020년엔 이정후의 연차 최고 기록보다 불과 2000만 원 적은 연봉 2억 1000만 원을 받았다. 4년 차였던 2021년엔 3억 1000만 원으로 이정후와의 격차가 8000만 원으로 벌어졌지만, 꾸준히 연봉 맨 앞자리를 바꿔나갔다. 또 그해 전반기에 타율 4할을 넘나드는 타격 능력을 뽐내면서 5년 차가 된 지난해 무려 2억 4000만 원이 오른 5억 5000만 원을 받게 됐다. 이정후의 5년 차 최고 연봉과 타이를 이루면서 단숨에 다시 어깨를 나란히 한 것이다.
그러나 6년 차가 된 올해, 강백호의 연봉 상승 그래프가 처음으로 꺾였다. 무려 2억 6000만 원(47.3%)이 삭감된 2억 9000만 원에 재계약하면서 2년 전보다도 적은 연봉을 받게 됐다. 지난 시즌 두 차례 큰 부상으로 데뷔 후 최악의 성적을 낸 탓이다. 강백호는 144경기 중 62경기에 나서 타율 0.245, 홈런 6개, 29타점을 기록하는 데 그쳤다. 2021년과 비교하면 출전 경기 수가 절반 이하로 떨어졌고, 타율은 1할 이상 곤두박질쳤다. 홈런은 데뷔 후 처음으로 한 자릿수에 그쳤다. KT는 결국 모든 선수에게 공통적으로 적용하는 연봉 산정 시스템에 따라 절반 가까이 깎인 금액을 통보했다.
강백호는 구단이 책정한 삭감액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하지만 구단도 형평성을 고려해 굽히지 않았다. 양측의 연봉 협상이 하염없이 길어졌다. KT 선수단이 1월 29일 미국 애리조나주 투손으로 스프링캠프를 떠났지만, 강백호는 출국 이틀 전까지 계약서에 사인을 하지 못해 함께 비행기에 오르지 못하는 상황이 됐다. 그는 결국 다른 선수들이 출국을 하루 앞둔 28일 밤에야 어렵게 구단 제시액을 받아들였다. 이정후와 강백호의 6년 차 연봉 격차는 이제 4억 6000만 원으로 벌어졌다.
데뷔 후 처음으로 큰 시련을 겪은 강백호는 독기를 품었다. 동료들보다 이틀 늦은 31일 미국으로 출국하면서 취재진과 만나 "어찌 됐든 연봉을 잘 조율했기 때문에 캠프에 참가하는 것이다. 구단이 많이 배려해줬다"며 "연봉이 선수의 전부는 아니다. 연봉으로 선수의 등급이 결정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드리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그는 또 "지난 시즌을 마친 뒤 몸 관리를 잘해야 한다는 것을 크게 느꼈다. 기량도 중요하지만, 몸 관리 등 세부적인 것에 신경 써야 한다는 것을 배웠던 한 해"라며 "연봉 삭감이 큰 동기부여가 될 것 같다. 부상 없이 시작해 건강하게 새 시즌을 마치겠다"고 강조했다.
#강백호 역전한 안우진
강백호와 희비가 엇갈린 선수는 한 명 더 있다. 고교 시절 최고 선수 자리를 다퉜던 키움 에이스 안우진이다. 키움은 지난해 정규시즌부터 포스트시즌까지 꾸준히 에이스 역할을 한 안우진에게 기존 연봉에서 133.3%(2억 원) 오른 3억 5000만 원을 안겼다. 이번 시즌 키움 연봉 재계약 대상자 가운데 가장 인상률이 높다.
휘문고 출신인 안우진은 2018년 서울 연고 구단 키움에 1차 지명으로 입단했고, 서울고 출신인 강백호는 중학교 시절 전학 이력 탓에 1차 지명 대상자에서 제외돼 신인 2차드래프트 전체 1순위로 KT의 지명을 받았다. 다만 강백호가 승승장구하는 동안 안우진은 고교 시절 학교폭력(학폭) 전력으로 구단 자체 징계(50경기 출전 정지)를 받아 프로 첫 시즌을 정상적으로 소화하지 못했다. 2019년 안우진의 2년 차 연봉은 3200만 원. 첫해 기본 연봉에서 고작 500만 원 오른 금액이었다.
1년 만에 억대 연봉을 받게 된 강백호와 달리, 안우진은 연봉 1억 원대에 진입하기까지 3년이 더 걸렸다. 2020년 4800만 원, 2021년 9000만 원으로 조금씩 연봉을 끌어 올렸고, 프로 5년 차가 된 지난 시즌에야 1억 5000만 원을 받을 수 있게 됐다. 강백호와의 격차는 무려 4억 원이었다. 하지만 1년 만에 상황이 완전히 뒤바뀌었다. 안우진이 마침내 데뷔 6년 만에 처음으로 강백호보다 높은 연봉을 받게 됐다.
안우진은 지난해를 확실한 터닝 포인트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30경기(선발 29경기)에서 196이닝을 던지면서 15승 8패, 평균자책점 2.11, 탈삼진 224개, 퀄리티스타트 24회를 기록했다. KBO 공식 시상 부문인 평균자책점과 탈삼진은 물론이고, 투구 이닝과 퀄리티스타트도 모두 리그 전체 1위다. 학폭 이력 탓에 지난 연말 여러 시상식에서 외면 받았지만, 투수 부문 골든글러브는 품에 안는 데 성공했다. 키움 역시 외부 평가와 별개로 안우진의 팀 공헌도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훌쩍 뛰어오른 연봉으로 지난해의 활약에 보답했다.
#'이정후 매제' 고우석도 대박
LG 트윈스 마무리 투수 고우석도 지난 시즌의 좋은 성적을 올해 연봉으로 수확했다. 2억 7000만 원에서 1억 6000만 원(59.3%) 오른 연봉 4억 3000만 원에 재계약해 FA를 제외한 팀 내 최고 연봉 선수가 됐다. 그럴 만 하다. 고우석은 지난해 4승 2패 42세이브, 평균자책점 1.48을 기록하면서 세이브왕에 올랐다. 역대 LG 투수 최다 세이브 기록도 경신했다. 리그 대표 소방수로 인정 받으면서 몸값이 수직상승하고 있다.
개인적인 경사도 있다. 고우석은 지난 1월 6일 이정후의 여동생 이가현 씨와 결혼했다. 처남 이정후와 함께 WBC 대표팀에 선발돼 나란히 태극마크도 단다. 고우석 역시 이정후처럼 MLB 진출을 목표로 삼고 있다. LG가 지난해 말 역대 최장 기간, 최고 금액으로 비FA 장기 계약을 제안했지만, "FA 자격을 얻으면 MLB에 도전하고 싶다"며 정중히 거절했다는 후문이다. 2017년 입단한 고우석은 2년 뒤 FA가 된다.
고우석 앞에서 LG 뒷문의 바통을 이어주는 홀드왕 정우영도 연봉이 지난해 2억 8000만 원에서 올해 4억 원으로 올랐다. 비FA 중 고우석 다음으로 많은 액수다. 정우영을 지난 시즌 35홀드를 올려 이 부문 타이틀을 차지했다.
지난해 신인왕인 두산 투수 정철원은 3000만 원에서 7000만 원 오른 1억 원에 사인해 데뷔 6년 만에 억대 연봉에 진입했다. 올해 두산 재계약 선수 중 최고 인상률(233.3%)이다. 2018년 신인 드래프트 2차 2라운드 지명을 받고 두산에 입단한 뒤 입단 5년 째인 지난해 5월 1군에 데뷔했다. 이후 빠른 속도로 두산의 필승 불펜 한 자리를 꿰차면서 58경기에서 72와 3분의 2이닝을 던져 4승 3패 23홀드 3세이브, 평균자책점 3.10을 기록했다.
이외에도 KT에서 선발로 활약한 투수 엄상백은 지난 시즌 8000만 원에서 1억 2000만 원 오른 2억 원에 계약해 팀 내 최고 인상률(150%)을 찍었다. 키움 주전 포수로 활약하면서 WBC 대표팀에도 승선한 베테랑 포수 이지영은 전년 대비 2억 원(66.7%) 오른 5억 원에 사인해 높아진 주가를 실감했다. 또 SSG 랜더스의 우승에 힘을 보탠 주전 외야수 최지훈은 기존 연연봉의 두 배인 3억 원에 계약했다.
#백의종군 박석민 93% 삭감
반면 NC 다이노스 베테랑 내야수 박석민은 올해 연봉이 90% 이상 깎였다. 지난해 연봉 7억 원에서 6억 5000만 원(93%) 줄어든 5000만 원에 사인했다. 박석민이 구단에 연봉을 백지위임했고, NC는 올 시즌 16경기에서 타율 0.149를 기록한 그의 연봉을 5000만 원으로 책정했다. 93%는 KBO리그 역대 최고 삭감률이다.
박석민은 2020시즌을 앞두고 NC와 2+1년 최대 34억 원에 두 번째 FA 계약을 했다. 그러나 2021년 중반 코로나19 방역수칙 위반으로 122경기 출장 정지 징계를 받아 장기간 결장이 불가피했다. 징계를 모두 소화하고 지난 시즌 복귀한 뒤에도 예년만큼의 기량을 보여주지 못했다. 올해로 38세가 된 데다 지난 시즌을 마지막으로 계약도 끝나 은퇴 가능성까지 고개를 들었다.
그러나 박석민은 "선수 생활을 더 하고 싶다"며 일찌감치 구단에 백의종군 의사를 밝혔다. 새로 부임한 강인권 NC 감독도 "박석민에게 재기의 기회를 주겠다"며 올 시즌 주전 3루수로 기용할 뜻을 내비친 상황이다. NC 구단은 한때 '삼성 왕조'의 주역으로 활약한 박석민의 마지막 자존심에 기대를 걸고 있다. 박석민 역시 "떠나기 전 반드시 명예회복을 하겠다"며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는 후문이다.
음주운전을 한 내야수 하주석도 연봉 삭감의 칼날을 피해가지 못했다. 하주석은 지난해 연봉 2억 90만 원에서 1억 90만 원(50.2%) 삭감된 1억 원에 재계약했다. 그는 지난해 11월 19일 오전 5시 50분쯤 대전 동구 모처에서 경찰의 음주단속에 적발됐다. 측정 결과 혈중알코올농도 0.078%가 나와 면허정지 처분을 받고 벌금형에 약식기소됐다. KBO 상벌위원회는 KBO 규약 제151조 '품위손상행위'에 따라 70경기 출장 정지 징계를 내렸다. 이에 따라 하주석은 올해 정규시즌 144경기 중 74경기만 출전할 수 있다. 연봉이 순식간에 반토막 나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다.
배영은 중앙일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