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HD현대 엔진 제작업체 인수해 역량 강화…삼성중공업 “인수 계획 없다” 외부 협력 기조 유지
#엔진 제작 내재화 움직임 이는 까닭
지난 2월 16일 한화그룹 계열사 한화임팩트는 HSD엔진의 2734만 5628주(지분 32.77%)를 2269억 원에 인수하는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고 공시했다. 한화임팩트는 HSD엔진의 제3자 배정 유상증자에 참여해 신주 1190만 3148주(14.26%)를 인수하고, HSD엔진의 현재 최대주주인 인화정공으로부터 구주 1544만 2480주(18.50%)를 매수할 예정이다. 한화임팩트는 올해 3분기 중 인수를 마무리한다는 계획이다.
HSD엔진은 선박의 주 추진기관인 저속엔진 세계시장에서 현대중공업에 이어 점유율 2위를 기록하고 있다. HD현대, HSD엔진, STX중공업 등 국내 엔진제작 기업들은 선박용 저속엔진 원천기술을 보유한 독일 만에너지솔루션(MAN-ES), 스위스 윈지디(WinGD)와 기술제휴 계약을 맺고 엔진을 생산한다. 지난해 3분기 HSD엔진은 선박엔진, 선박용 질소산화물 저감장치(SCR), 디젤발전 및 부품판매 사업 등으로 약 5400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HD현대의 조선 중간지주사인 한국조선해양은 STX중공업 예비입찰에 인수의향서를 제출한 상태다. STX중공업은 중소형 엔진 제작 전문기업으로 전 세계 선박용 저속엔진 시장에서 점유율 3위를 기록 중이다. 지난해 3분기 STX중공업의 선박엔진, 엔진부품 등 사업부문 매출은 1303억 원이었다. HD현대는 저속엔진 시장 글로벌 1위인 현대중공업에 이어 STX중공업까지 품어 엔진 제작 역량을 강화하겠다는 계획이다.
앞서 1월 한화그룹은 대우조선해양과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한화시스템, 한화임팩트파트너스, 한화컨버전스, 한화에너지 싱가포르 등 5개 계열사를 통해 대우조선해양 유상증자에 2조 원을 투입해 대우조선해양 지분 49.33%를 인수하는 신주인수계약을 맺었다. 한화그룹은 계약 체결 이후 한국 공정거래위원회, 유럽연합(EU), 일본, 중국, 싱가포르, 튀르키예, 베트남, 영국 등 8개국에 기업결합 심사를 요청한 상태다. 최근 튀르키예는 두 기업의 기업결합을 승인했다.
국내 조선업 시장이 한화와 HD현대, 삼성으로 재편된 가운데 상위 두 기업이 엔진 제작 부문에 있어 자체적인 역량을 키우는 데에 집중하고 있는 셈이다. 한국조선해양플랜트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9월 말 선박 수주량 점유율은 현대중공업이 24.4%로 가장 높았고 한국조선해양 자회사 삼호중공업이 22.9%로 뒤를 이었다. 대우조선해양이 22.3%를 기록했다. 삼성중공업 수주 점유율은 21.7%이었다.
대한조선학회장을 맡고 있는 이신형 서울대 조선해양공학과 교수는 “엔진은 선박가격의 10% 정도를 차지한다. (조선기업 입장에서) 엔진을 외주에 맡기면 이문을 엔진 제작 업체에 줘야 했는데, 인하우스로 돌리면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조선업계 한 관계자는 “조선업이 호황일 때는 엔진이 없어서 계약을 못 하는 경우가 많다. 엔진 생산 대수가 정해져 있는데 엔진 제작 업체 입장에서는 계열사에 물량을 먼저 배정할 수 있다. 즉 엔진 제작 능력을 내재화하면 선박 수주 경쟁에서도 우위를 점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엔진 회사를 갖고 있으면 친환경 엔진 선박 시장을 선점하는 데도 유리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김용환 서울대 조선해양공학과 교수는 “새로운 대체 연료들이 나오면서 엔진의 변화가 필요해진 시점이다. 빨리 시장을 선점하지 않으면 중국 등 다른 나라에 종속되는 게 당연한 수순이다. 엔진 제작 기술 내재화를 통해 해외로 유출되는 자본을 줄이고, 선박 제조 기술 유연화를 통해 무탄소 선박 시장을 선점하려는 국내 기업들의 움직임으로 보인다”라고 설명했다.
#삼성중공업 외주화 전략 변화 전망은?
삼성중공업은 엔진과 관련해 경쟁사와 다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삼성중공업은 HSD엔진 등에서 엔진을 구매해 사용한다. HSD엔진의 주요 매출처 중 삼성중공업은 대우조선해양에 이어 두 번째로 비중이 높다. HSD엔진의 주인이 경쟁사로 바뀌어도 당장 엔진 수급을 우려할 일이 아니라는 평가다. 한 증권사 연구원은 “엔진 제작업체가 계열사 엔진만을 생산할 수도 없기 때문에 삼성중공업에 당장은 큰 영향은 없을 듯하다”고 내다봤다. 국내 엔진 제작업체들의 전체 공급량을 감안하면 삼성중공업의 엔진 수급에 차질이 생길만한 상황은 아니라는 의견도 있다.
다만 중장기적인 측면에서는 영향이 예상된다. 일단 HSD엔진이 한화에 인수되면 삼성중공업과 진행하고 있는 친환경 선박 관련 연구개발보다는 한화와의 협력을 강화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지난해 8월 삼성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 HSD엔진은 차세대 친환경 엔진 개발 관련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엔진 외주 전략을 펴는 삼성중공업 입장에서는 엔진 공급망 관리가 더욱 중요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하지만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삼성중공업이 엔진 제작업체를 인수할 가능성은 높지 않게 보고 있다. 엔진 시장의 크기가 정해져 있는 상황에서 삼성중공업은 후발주자가 된 셈인데, 굳이 무리해서 다른 경쟁사들과 경쟁하려 들지 않을 것이란 이유에서다. 앞서의 조선업계 관계자는 “삼성중공업은 삼성그룹에서는 전체적으로 봤을 때, 매출 비중이 높지 않다. 적극적으로 인수합병에 나서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일단 삼성중공업은 공급망 관리 및 무탄소 선박 기술 협업에 공을 들일 것으로 전망된다. 삼성중공업은 미국 블룸에너지와 업무협약을 맺고 연료전지 추진선 기술을 개발하고 있고, 독일 만 등과는 암모니아 추진선 공동 연구를 진행 중이다. 한국원자력연구원과 용융염 원자로(MSR)를 탑재한 원자력 추진선 연구개발 협력을 이어오고 있다. 이와 관련, 삼성중공업 관계자는 “엔진 제작업체 인수 계획은 없다”고 답했다.
김명선 기자 se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