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현진 앞에서 불펜 피칭한 기분 묘해…김현수 상대로 작심하고 던졌더니 최고 구속 찍어”
2022시즌의 아쉬움을 곱씹은 문동주한테 이번 겨울은 올 시즌을 준비하는 데 중요한 시간들이다. 비활동 기간 동안 광주의 한 트레이닝 센터에서 상당한 훈련량을 소화하며 2023시즌을 준비하고 있는 문동주를 만나 2022시즌을 돌아봤다.
문동주는 얼마 전 구단과 연봉 협상을 마무리 지었다. 300만 원 인상된 3300만 원이었다. 아쉬움이 없느냐고 묻자 해맑은 표정을 지으며 “한 만큼 받은 것 같다”고 말한다.
“사실 지난해 성적으로 보여드린 게 없어서 연봉 협상 자리에서 구단의 제시액을 받으면 금액 확인하지 않고 무조건 사인하고 나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전혀 기대하지 않았는데 그래도 300만 원 올려주셔서 고마운 마음으로 사인했다. 연봉을 보고 올해 정말 달라진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2023시즌을 마치면 연봉 인상을 기대할 수 있도록 좋은 성적을 올리고 싶다.”
문동주는 2022시즌 부상으로 힘든 시간을 보냈다. 시즌 전에는 내복사근 미세 손상으로, 시즌 중에는 견갑하근 부분 파열로 전력에서 이탈해 3개월가량 재활을 이어갔다. 그래서인지 2022시즌을 100점 만점에 20~30점으로 표현했다.
“이것도 많이 준 점수다. 부상으로 팀에 도움이 되지 못했다. 부상하면 운동을 하고 싶어도 못하고, 실력이 늘지 못한다. 재활을 통해 복귀한다고 해도 이전의 감을 찾기가 어렵다. 고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크게 아픈 적이 없었는데 2021년 10월 멕시코에서 열린 23세 이하(U-23) 야구월드컵에 다녀와선 이런저런 부상이 생겼다. 당시 의사가 푹 쉬어야 한다고 해서 많이 쉬었는데도 잘 회복되지 않았다.”
한화에서도 문동주를 특별관리했다. 마무리 캠프 때도 공을 못 만지게 했다. 1월부터 인터벌 드로인 프로그램으로 시작해 단계별 투구 프로그램(ITP·Interval Throwing Program)을 소화하며 다른 선수들보다 천천히 몸 상태를 끌어올렸다. 2월 8일 서산구장에서 입단 후 처음으로 불펜피칭을 진행했다. 100%가 아닌 50~60%의 저강도로 이뤄졌다. 그리고 3월 1일 대전 한화생명 이글스파크에서 류현진이 지켜보는 가운데 불펜 피칭을 실시했다. 당시 류현진은 메이저리그 직장 폐쇄로 인해 팀 합류가 지체되자 한화 선수단에서 훈련 중인 상황이었다.
“당시 불펜피칭 현장에 많은 분들이 나오셨다. 카를로스 수베로 감독님, 정민철 단장님도 계셨는데 누구보다 류현진 선배님이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이 설렘과 긴장감을 안겨줬다. 최고 구속이 155km/h까지 나왔다. 불펜피칭 마친 후 류현진 선배님이 공이 좋다고, 아프지 말고 잘하라고 격려해주시더라. 원래 롤 모델이 오타니 쇼헤이였다. 그러다 류현진 선배님을 뵙고 닮고 싶은 마음에 롤 모델을 류현진 선배님으로 바꿨다. 우연히 처음 뵈었지만 내가 그분 앞에서 공을 던지고 있다는 게 정말 신기했다.”
문동주의 1군 데뷔전은 5월 10일 잠실 LG전이었다. 전날 1군 엔트리에 등록해 선수단에 합류한 문동주는 잠실야구장에서 팀이 LG에 1-5로 뒤진 8회에 마운드에 올라 오지환한테 빗맞은 안타를 시작으로 도합 4피안타 볼넷 1개로 4실점하며 호된 신고식을 치렀다.
“사실 그날 등판할 줄 몰랐다. 신기한 마음으로 경기를 지켜보고 있는데 등판 준비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팔을 풀기 시작할 때부터 나도 모르게 감정이 올라왔다. 자꾸 흥분되는 것 같아서 애써 가라 앉혔는데 마운드에 올라가는 도중에 다시 감정이 올라왔다. 초구를 던지기 전 남자답게 삼진 세 개 잡고 내려오자고 결심했지만 결과적으로 남자답지 못한 투구를 선보였다. 돌이켜보면 얼떨떨한 상태에서 안타를 내주며 쓴 경험을 했던 것 같다. 내려올 때 관중 분들이 박수를 보내주셨는데 그런 경험은 정말 처음이었다. 경기 후 자책을 많이 했던 것 같다. ‘내가 뭘 잘못했지?’라는 생각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데뷔전의 아쉬움을 뒤로 하고 문동주는 이후 5경기서 모두 무실점 투구를 펼쳤다. 그중 인상적인 장면은 6월 3일 대전 키움전이었다. 문동주는 7회 마운드에 올라 이정후를 상대했다. 초구를 153km/h 패스트볼로 스트라이크를 잡은 다음 공 3개를 연속 체인지업으로 승부해 헛스윙 삼진을 끌어냈다. 이정후는 이전 기자와 인터뷰에서 “그날 문동주의 체인지업 공이 잘 안 보였다”고 말한 바 있다. 문동주에게 이정후와 대결을 앞두고 플랜을 세웠느냐고 묻자 “대한민국에서 제일 잘 치는 타자한테 플랜을 세우는 건 의미 없는 일”이라고 대답했다.
“내가 어떤 플랜을 세워도 이정후 선배님이 한창 우위에 계시기 때문에 차라리 안타 맞을 거라면 빨리 맞자고 생각했다. 그래서 초구를 패스트볼로 던진 것이다. 당시 로사도 투수코치 님한테 받은 미션이 있었다. 체인지업을 배운 지 얼마 안 된 상태라 1이닝당 체인지업을 3개씩 던지는 게 숙제였다. 초구를 스트라이크로 잡았으니 미션 수행을 위해 체인지업을 던지려고 마음먹었다. 두 번째 공은 볼이 됐고 3구째 체인지업에 헛스윙이 나왔다. 4구째 공을 던지는 순간 바닥으로 낮게 떨어지는 공이라 ‘망했다’고 생각했는데 방망이가 돌아갔고, 헛스윙이 됐다. 운이 좋았다. 체인지업은 지금도 계속 연마하는 중이다.”
문동주가 다른 선수도 아닌 이정후를 상대로 체인지업을 던진 건 나름 계산(?)을 한 부분이었다. 안타를 맞을 확률이 높은 선수기 때문에 피안타가 나와도 정신적으로 타격이 크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체인지업을 배운 지 얼마 안 된 상태라 자신이 없는 공이었는데 의외의 결과가 나왔고, 당시 문동주의 체인지업과 이정후의 헛스윙 삼진은 야구인들 사이에서 큰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9월 27일 대전 LG전에서 김현수와 맞대결도 인상적이었다. 선발 투수로 등판한 문동주는 2회초 2사 후 이재원에게 볼넷을 내준 다음 김현수를 상대로 158km/h의 강속구를 던져 헛스윙을 끌어냈다. 초구 커브가 파울이 된 후 2구부터 4구까지 모두 패스트볼로 승부했다. 이날 나온 158km/h는 문동주의 커리어 최고 구속이었다.
“김현수 선배님한테 던진 그 공은 작심하고 던진 공이었다. 그날 제구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경기를 힘들게 풀어갔다. 타석에서 위압감을 나타내는 김현수 선배님한테 집중하지 않으면 무조건 실점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온 힘을 다해 투구했다. 그 결과 최고 구속을 찍을 수 있었다.”
문동주의 프로 데뷔 첫 승은 10월 3일 대전 SSG전이었다. 이날 선발 등판한 문동주는 5이닝 7피안타 2볼넷 8탈삼진 4실점(3자책)을 기록했다. 1회 안타를 내줬지만 위기 상황에서도 흔들릴지언정 부러지지 않았다. 이날 최고 구속 157km/h에 이르는 강속구와 130km/h대의 커브를 섞어 던지며 상대의 타이밍을 빼앗았고, 기다렸던 첫 승을 이뤄냈다.
“그 경기가 시즌 마지막 등판이라 나름 기대를 갖고 있었다. 1회부터 안타를 많이 맞았지만 기죽지 않았다. 덕분에 팀이 7-4로 이겼고, 시즌 4번째 선발 등판 만에 첫 승을 따냈다. 시즌 전은 물론 시즌 중에도 부상으로 실망스런 모습을 보여드려 자책을 크게 했는데 마지막 경기를 승리 투수로 장식하게 돼 의미가 컸다.”
한화는 2022년 문동주에 이어 2023년에도 신인 드래프트 전체 1순위인 김서현을 영입했다. 두 선수 모두 155km/h를 넘는 빠른 공을 던지는 파이어볼러다. 한화의 미래이자 KBO리그 최상위 유망주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동주는 1년 후배인 김서현에 대해 묻자 자신의 경험을 담은 조언을 건넨다.
“부담을 안 느꼈으면 좋겠다. 나보다 잘 던지는 선수라 분명 잘 할 것이라고 믿는다. 고등학교 때 기록을 보면 나보다 좋다. 부상만 없다면 충분히 좋은 공을 던질 수 있을 것이다.”
투수한테 구속과 제구 중 어느 게 더 중요할까. 문동주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제구라고 대답한다. 구속은 보이는 부분이 크지만 제구는 경기 운영하는 데 중요한 터라 좋은 투수로 성장하려면 제구가 잘되는 공을 던지는 것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2023시즌을 맞이하는 문동주의 각오가 남다르다. 한화 마운드가 건강하게 돌아가려면 문동주의 활약이 중요하다. 문동주는 “앞으로 갈 길이 멀다”며 환하게 웃었다.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