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직 대표 영입부터 영업비밀 침해금지 가처분 신청까지…“인력양성 체계 구축해야”
특히 롯데는 2022년 4월 헬스케어 커머스 자회사 ‘롯데헬스케어’를 시작으로 5월에는 위탁생산개발(CDMO) 자회사 롯데바이오로직스(롯데바이오)를 출범해 본격적으로 바이오사업에 돌입했다. 이후 롯데바이오는 브리스톨마이어스스큅(BMS)의 미국 시러큐스 공장을 인수해 CDMO 사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롯데바이오는 오는 2030년까지 기업가치 20조 원의 글로벌 CDMO 기업으로 성장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롯데의 포부와 달리, 출범 1년도 채 안 돼 벌써 잡음이 들려오고 있다. 롯데바이오는 업계 1위인 삼성바이오로직스(삼성바이오)와 갈등을 빚고 있다. 삼성바이오는 롯데바이오 측에 지난해부터 최근까지 인력 유인활동을 중지해달라는 취지의 내용증명을 잇따라 발송했다. 이외에도 삼성에서 롯데로 이직한 3명을 상대로 영업비밀 침해 금지 가처분 신청을 내 법원의 일부 인용 결정을 받기도 했다.
롯데 측은 일반적인 공개 채용을 통한 이직일 뿐이란 입장을 보인다. 하지만 롯데가 새로운 사업을 추진하면서 인력을 끌어오다 보니 무리하게 ‘꼼수’를 쓴 게 아니냐는 의심의 시선도 있다. 기술집약적인 산업이니만큼 핵심인력 확보가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롯데가 바이오산업 진출을 선언한 직후부터 갈등은 예고됐다. 롯데는 2021년 8월 이원직 삼성바이오 바이오팀 상무와 우웅조 삼성전자 삼성헬스서비스‧플랫폼 총괄파트장을 영입했다. 이원직 전 삼성바이오 상무는 롯데지주 신성장2팀 상무를 거쳐 지난해 6월 롯데바이오가 출범하며 대표이사를 맡았다. 우웅조 상무는 롯데지주 신성장3팀장을 거쳐 현재 롯데헬스케어 사업본부장(상무)을 맡고 있다.
이후 삼성바이오 출신 직원 3명이 롯데바이오로 이직했다. 삼성바이오는 곧바로 지난해 7월 해당 직원 3명에 대해 영업비밀 침해 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인천지방법원은 이에 대해 일부 인용 결정을 내렸다. 인천지검은 지난해 10월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 내 롯데바이오 본사에 수사관을 보내 압수수색을 진행하기도 했다. 이들에 대한 형사 고소도 진행 중이다.
삼성바이오는 지난해 두 차례 그리고 지난 2월 초 한 차례 롯데바이오 측에 ‘인력 유인 활동을 즉각 중단하라’는 취지의 내용증명을 발송했다. 롯데바이오 관계자는 “공식 절차에 따라 공개채용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며 “특정 회사 출신이라고 지원하지 말라고 할 수도 없고 면접을 통해 좋은 인재를 채용했을 뿐”이라며 억울하다는 입장을 보인다.
바이오산업 특성상 연구‧개발 주기가 길고 인재들을 양성하는 데 긴 시간이 들다보니 인력 유출에 대한 분쟁이 종종 일어난다. 손지호 한국바이오협회 산업지원본부장은 “바이오산업은 기술집약적인 산업이기 때문에 핵심인력의 확보 여부가 기술력에 큰 영향을 미치는 특성이 있다”며 “대기업들의 투자가 증가하면서 인력 수요는 늘어나는 데 비해 핵심인력(경력직)의 풀(pool)은 부족하기 때문에 분쟁이 일어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인력 유출은 어느 산업에서나 발생하는 비일비재한 일이지만 바이오산업 특성상 인재 양성에 긴 시간이 들다보니 기존 회사 입장에선 ‘다 키워놓으니 빼간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며 “롯데가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면서 기존 한정된 인력 풀에서 인재를 찾다보니 꼼수를 써서라도 인력을 확보하려는 상황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바이오업계에서는 개인별 차이는 있겠지만 롯데바이오가 이직시 연봉 30% 인상을 내걸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삼성바이오의 현재 직원 평균 연봉은 7000만 원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소문대로라면 롯데는 평균 연봉으로 1억 원 정도를 주는 셈이다. 이 때문에 롯데바이오 직원 대부분이 삼성 출신이라는 소문까지 돌고 있다. 롯데바이오 관계자는 “업계 평균 연봉을 제공하고 있으며, 롯데 계열사에서 이동하거나 타사에서 이직한 분들도 있다. 삼성 출신 비중이 높은 편도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동종업계에서 이직은 자연스러운 일이라지만 의심의 시선이 롯데로 향하는 이유는 최근 롯데헬스케어에서 발생한 ‘표절 시비’ 영향도 있다. 롯데헬스케어가 지난 1월 열린 세계 최대 가전‧정보기술(IT)박람회 ‘CES2023’에서 선보인 영양제 디스펜서 ‘필키’는 국내 스타트업의 제품을 표절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필키는 개인이 여러 가지 약을 정기적으로 복용할 수 있도록 적정량을 제공해주는 기기다. 스타트업 알고케어에 따르면 롯데헬스케어는 2021년 9월부터 10월까지 알고케어와 투자 미팅을 진행했다 결렬됐다. 투자 미팅을 진행하며 롯데헬스케어 측이 시제품을 살펴보고 도용했다는 게 알고케어 측 주장이다. 반면 롯데헬스케어는 이미 미국, 일본 등 해외에서는 일반적인 제품으로 기술 탈취가 아니라는 입장을 내놨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바이오산업은 하루아침에 결과와 성과를 낼 수는 없는 산업이다보니 성장에 주안점을 두면 무리할 수 있지만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시대에 이런 논란은 적합하지 않다”며 “뉴노멀(시대 변화에 따라 새롭게 떠오르는 기준)인 ESG 스탠다드를 지켜 신사업을 추진해야 할 것”이라 조언했다.
단기적 목표에 치중해 인재영입에 집중할 게 아니라 중‧장기적으로 기업의 인력 양성 전략을 세울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황용식 교수는 “산‧학‧연 공조를 통한 인재 양성이 필요하다. 기존 인력 풀 안에서만 인재를 찾으려다 보면 지속적으로 잡음이 나올 수밖에 없다”며 “신사업을 시작했으니 백년대계 목표를 가지고 지속적인 투자와 R&D 연구개발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손지호 한국바이오협회 산업지원본부장은 “핵심인력 양성은 단기간 내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라며 “중장기적으로 초급 수준의 인력이 핵심인력으로 성장하기 위해 필요한 인력양성 체계를 만들어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아 기자 ja.ki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