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욕적인 언행, 갑질 등 빈번히 발생…인권센터서 상담과 솔루션 제공해 다행”
국회의원과 보좌진의 관계가 철저한 갑과 을이란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그러다 보니 보좌진들을 향한 국회의원 갑질은 빈번하게 발생한다. 하지만 그 실상은 제대로 드러나지 않았다. 해법 논의도 지지부진하다. 뉴스빅데이터 분석시스템 ‘빅카인즈’에서 ‘국회의원 갑질’ 키워드가 포함된 기사를 검색하면 1990년부터 2022년 2월 27일까지 5277건에 달한다.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 보좌진협의회장을 차례로 만나 국회 노동 실태에 대한 전반적인 얘기를 나눠봤다.[일요신문] 3월 2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이지백 더불어민주당 보좌진협의회장을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지백 회장은 제17대 국회 김근태 의원실 인턴으로 국회에 들어와 비서와 비서관, 보좌관을 거쳐 서울시 정무보좌관을 역임했다. 이지백 회장은 △직장내 성희롱·괴롭힘 피해 시 외부 전문가 조력 및 인권감시 옴부즈맨 도입 △보좌진 대상 정기 정신건강진단 시행 및 솔루션 제공 △연차사용 공시제 및 의정활동평가 반영 추진 등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워서 2022년 7월 제32대 보좌진협의회장 선거에서 당선됐다.
―국회 보좌진 근로환경 개선을 위한 최대 현안을 하나 꼽는다면.
“6급 이하 보좌진 호봉 인상 문제에 집중하고 있다. 보좌진은 별정직공무원이다. 일반 공무원처럼 연차가 올라가지 않는다. 처음에 부여한 연차를 초과하면 올라가는 구조다. 1호봉부터 시작하는 일반 공무원이 불공정하다고 말할 수 있지만, 실제 보좌진 업무가 일반 공무원과 다르다. 9급이라고 하더라도 5급 사무관 이상의 일을 한다. 7급 보좌진만 보더라도 연차가 올라가도 그에 합당한 대우를 못 받고 있다. 일반 공무원들은 호봉에 따른 임금 인상 효과를 보고 있지만, 보좌진들은 한계가 있다. 10년 동안 임금 인상 자체가 안 되고 있다. 두 번째는 연차 사용 활성화다. 국회 일정을 예측하기 어렵다 보니까 연차를 사용하기가 쉽지 않다. 전체 의원실이 각 의원실의 연차 사용 실태를 확인할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 연차를 등록하고 가야 하는지도 모르는 의원들도 적지 않다.”
―입법부 내 인권 보호를 책임지는 ‘국회인권센터’가 2월 9일 개소 1주년을 맞았다.
“국회인권센터가 적극적으로 일하려고 하고 있고, 이광재 국회 사무총장 의지가 강하다고 들었다. 인권센터가 개원한 지 얼마 안 돼서 규정이 제대로 정리돼 있지 않다. 국회 인권 관련 시스템을 전반적으로 정비하기 위해서 외부에 용역을 주고 작업 중인 걸로 알고 있다. 그동안 국회 내에서 성비위, 갑질 등의 문제가 발생해도 누군가에게 조력을 받기 어려웠다. 인권센터로부터 조력을 받을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졌다. 보좌진협의회에도 조력을 받을 수 있는 채널을 구축하려고 했지만, 보좌진들은 익명성 보장을 받을 수 있다는 신뢰가 크지 않아서 만들지 못했다. 이제는 인권센터에 본인 문제를 상담할 수 있고 솔루션을 제공받을 수 있어서 다행이다.”
―보좌진은 주 52시간을 지키기 어려울 때도 있고, 주말 출근을 해야 할 때도 많다.
“일반 공무원은 초과수당을 받는다. 보좌진은 일한 만큼 초과수당을 받지 못한다. 일반 공무원도 4급 이상은 초과수당을 안 받는다고 하지만, 보좌진 인력의 절반 이상이 5급 이하다. 보좌진들 사이에서 불만이 터져 나올 수밖에 없다. 국정감사를 사전에 준비한다고 한들 이슈들이 계속 터져서 주 52시간 근무가 어렵다. 업무뿐만 아니라 의원님들 리스크 관리도 해야 한다. 일이 있으면 그나마 다행이다. 특별하게 일이 없음에도 밤늦게 앉아만 있어야 하는 상황이 생기면 곤혹스럽다. 의원실마다 다르긴 하지만. 예전에는 당직을 서는 방도 있었다. 주말에도 나오고, 밤늦게까지 근무한다. 특히 SNS(소셜미디어)가 발달하면서 퇴근 이후에도 시도 때도 없이 호출을 받는다. 업무면 그나마 이해를 하는데, 사적인 걸 요구했을 땐 문제가 된다.”
―친인척이나 지인을 보좌진에 채용해서 논란이 불거진 일이 적지 않다.
“‘국회의원 수당 등에 관한 법률’에는 4촌 이내의 친인척 채용을 금지하고, 8촌 이내 친인척 채용 시에는 반드시 신고하도록 명시돼 있다. 일정 부분을 제한을 가하고 있다. 다만 일률적으로 다 막는 것이 맞는지에 대한 고민은 좀 있다. 오래전부터 보좌진을 했는데, 이슈가 불거지면서 불가피하게 자리에서 물러나야 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특히 지인 문제가 크다. 보좌진 채용 자체가 정형화돼 있지 않다. 지인에게 이점을 주는 방향으로 채용을 진행한다면 문제가 된다. 불공정하다고 볼 여지가 있다. 다만 국회는 의원이 완전히 모르는 사람들과 일하는 구조가 아니다. 자신의 철학과 소신에 맞는 사람과 일하려는 부분도 있다.”
―보좌진은 직권면직 등 해고를 당할 경우 30일 전에 예고를 받거나 해고 예고수당을 받을 수 있다. 그런데도 여전히 부당해고가 적지 않다고 들었다.
“최근 면직예고제 도입 이후로는 30일을 지키려고 한다. 부당해고 기준을 개별 의원실 판단에 맡겨둘 것이 아니라, 해고 기준과 규정을 명확히 마련해야 한다. 국정감사에서 성과가 안 나왔을 때 해고하면 괜찮은지. 상임위원회가 변경되면서는 기존 직원을 해고하고 관련 전문가로 교체하는 것은 괜찮은지. 선거 앞두고 지역 인재로 보좌진을 교체하겠다는 건 괜찮은지. 교체 당사자인 보좌진들 입장에선 부당한 일이긴 하다. 의원 입장에서도 4년 계약직이기에 성과를 내야 한다는 욕심이 있다. 그런 입장 차이가 있다.”
―근로환경이 개선되지 않으면서 유능한 국회 보좌진 인력들이 외부로 유출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체감이 될 정도로 이직을 정말 많이 한다. 기업에서 많이 뽑기도 한다. 특히 이슈가 많이 불거졌던 플랫폼 기업들이 많이 뽑고 있다. 대형 로펌에서도 보좌진 출신을 선호한다. 보좌진들이 어느 정도 연차를 채우고 커리어를 모색하면 좋겠다라는 아쉬움이 많다. 잘한다고 생각하는 보좌진들이 바로 기업으로 가고 있다. 기업에서 찾는 연령대도 30대 중후반에서 40대 초반이다. 의원실에서 허리 연차로 한창 일할 때다. 일단 국회 근로환경 자체가 안 좋다. 반면 플랫폼 기업은 연봉뿐만 아니라 주5일제를 보장해준다. 주말에도 쉴 수 있고, 아이들과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야근에 대한 부담도 없다.”
―의원과 가까운 원외 인사가 보좌진들에게 업무를 시키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다.
“되게 민감한 주제다. 그나마 전문가 데리고 오면 정말 다행이다. 항상 문제가 되는 건 사모님(국회의원 부인)들이다. 사모님이 보좌진한테 업무지시를 하는 것부터 의원실에 대한 개입이 여전히 있다. 안 그러시는 분들도 많은데, 사모님들이 의원실에 그렇게까지 관여를 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공식적으로 확인하기 어렵지만, 보좌진들로부터 알음알음 이런 일을 당했다라는 고충을 듣고 있다.”
―보좌진을 상대로 모욕감을 주고 갑질, 성비위 등을 하는 의원들도 있다.
“그래서 국회인권센터가 참 중요하다. 문제들이 소송으로 가는 경우도 있지만, 문제 제기 이후 대부분 당내 윤리심판원으로 간다. 민형사상 솔루션을 찾기가 쉽지 않다. 의원과 보좌진 간 갈등이 불거졌을 때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가 여전히 과제로 남아 있다. 변호사 출신 보좌진 후배들한테 물어봐도 실현하기가 쉽지 않고, 애매한 부분이 적지 않다. 그래서 당한테 윤리심판원에 보좌진 입장을 대변해줄 수 있는 전문가를 넣어달라고 요청한 적이 있다. 그리고 국회에 모욕적인 언행, 갑질, 성비위 등이 많을 수밖에 없다. 문제의식을 못 느끼는 것 같기도 하다. 국회가 대기업처럼 체계화돼서 일하는 구조가 아니기 때문이다. 급수에 상관없이 업무 부담을 나눠서 질의서나 보도자료를 작성한다. 보좌진들 업무에 대해서 의원들이 예민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
―입법보조원 근무실태도 궁금하다.
“주 52시간을 안 지킬 정도로 업무를 시킨다면 문제가 심각한 것이다. 무급도 말도 안 된다. 보통 인턴 수준 정도의 월급을 지급한다. 일을 그렇게 시키고 월급을 안 준다면 부당 노동행위다.”
―끝으로 국회의원들한테 바라는 점이 있다면.
“보좌진은 의원들의 파트너다. 그런데도 여전히 인식은 가방을 들고 다니며 보좌하는 비서라는 인식을 갖고 있는 의원들이 많다. 보좌진을 바라보는 시선과 관점들이 우려스럽다. 보좌진을 의정활동을 같이 하는 운명공동체로 좀 봐줬으면 좋겠다. 보좌진은 국회의원의 부침을 함께 겪는 사람들이다. 그런 점을 헤아려주면 감사하겠다.”
허일권 기자 oneboo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