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윤계 ‘당정일치’ 강조하자 비윤계 ‘당무개입’ 한 목소리…전문가들 의회민주주의 후퇴 우려 지적
#윤핵관이 띄운 명예 당대표 추대 논란
2월 15일 ‘윤핵관’ 이철규 국민의힘 의원은 당내 공부모임 ‘국민공감’ 참석 후 기자들과 만나 윤석열 대통령이 ‘국민의힘 명예 당대표’를 맡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는 것에 대해 “가능한 이야기”라며 “당과 대통령이 같은 방향을 보고 가야지, 지금까지 ‘당정 분리론’이라는 게 좀 잘못됐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대통령이 명예 당대표를 맡으면 당무개입이 될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해선 “당무개입 논란이라는 게 불편한 분들이 한 일방적인 얘기”라고 일축했다.
이 의원은 “대선 때 대선 후보와 당권을 가진 당대표가 분리돼야 한다는 취지로 ‘당정 분리론’이 나왔던 것이지, 집권 여당이 대통령과 다른 목소리를 낸다면 집권당이라 말할 수가 있겠나”라며 “선거 당시 국민께 (당정 통합을) 약속했다. 그것은 대선 후보 개인의 약속이기도 하지만 당의 공적인 약속”이라며 “공약을 지키기 위해서는 정부와 대통령과 우리 당이 같은 방향을 보고 나갈 수 있도록 함께 소통하자는 이야기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강조했다.
정진석 비상대책위원장도 지원사격에 나섰다. 2월 16일 정 비대위원장은 기자들과 만나 ‘명예 당대표 추진’에 대해 “민주당(문재인) 정부 때도 청와대와 당·정부 간 유기적 협력체계 가동됐다”며 “대통령실은 그야말로 혼연일체가 되어 국정 공동운명체로서 긴밀한 협력체계 유지해야 한다. 이것은 국민의힘 당헌 8조 규정된 우리 의무사항”이라고 말했다. 당헌 제8조에는 ‘대통령에 당선된 당원은 당의 정강 정책을 충실히 국정에 반영하고 당은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적극 뒷받침하며 그 결과에 대하여 대통령과 함께 국민에게 책임을 진다. 당정은 원활한 국정운영을 위하여 긴밀한 협조체제를 구축한다’고 명시돼 있다.
‘명예 당대표 추대론’은 앞서 친윤계에서 띄운 ‘당정 일체론’과 그 궤를 같이 한다. 2월 13일 장제원 국민의힘 의원은 ‘김기현 국민의힘 당대표 후보의 안철수 당대표 후보 당선 시 대통령 탄핵 가능성 주장’ 논란에 대해 “당정이 화합 못 하고 계속 충돌됐을 때 정권에 얼마나 큰 부담이 있었나. 우리 정당의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김 후보 발언은) 정권이 얼마나 힘들어졌는지를 강조한 발언”이라고 밝혔다. 같은 날 박수영 국민의힘 의원도 SNS(소셜미디어)에 “노무현 대통령이 시작했다가 본인도 후회했던 소위 ‘당정분리’. 대통령제 국가인 미국과 프랑스는 왜 대통령에게 적극적인 역할을 부여하고 있을까. 근본적인 재검토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비윤계 당권주자들은 일제히 ‘당무개입’이라며 비판했다. 2월 16일 안철수 당대표 후보는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전당대회 와중인데 자칫하면 국민들에게 대통령이 당무에 개입한다는 인상을 줄 수가 있다”며 “대통령을 전대에 끌어들이는 게 내년 총선 승리에 과연 도움이 될 것인가, 저는 되지 않는다고 본다. 이런 논란은 안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2월 15일 천하람 당대표 후보는 KBS ‘최경영의 최강시사’에서 “명예 당대표가 과연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 당이라고 하는 것은 대통령보다 스펙트럼이 오히려 넓어야 한다”며 “입법부는 행정부와 협력하는 것도 있지만 감시하고 견제하는 부분도 있다. 그러면 여당을 용산 출장소로 만들 건가”라고 되물었다. 이어 “저는 대통령은 당연히 협력하고 같이 또 도울 부분 도와야 되겠지만, 그것이 ‘대통령의 방향에는 국민의힘 의원들은 결코 반대해서는 안 돼’라고 하는 억압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 그것이 어떤 설득과 토론, 타협의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된다”고 덧붙였다.
2월 15일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명예 당대표론’에 대해 “대통령을 당에서 어떻게 관계를 맺을지는 새 지도부가 들어서면 새 지도부가 당원의 뜻을 모아서 결정할 일”이라며 “(당정관계가) 긴장 관계만 유지해서는 문제가 생길 수 있고, 너무 일치되면 건강한 비판 기능 같은 게 없어질 수 있다. 모든 것은 중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이준석 학습효과 때문?
그동안 여권에선 윤 대통령의 당무개입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2022년 7월 윤 대통령은 권성동 당시 당대표 직무대행과 주고받은 텔레그램 문자에서 당원권 정지 6개월 징계를 받은 이준석 당시 대표를 “내부총질이나 하던 당대표”라고 지칭하면서 파장이 일었다. 또 윤 대통령은 2022년 8월 25일부터 26일까지 1박 2일간 진행된 국민의힘 의원 연찬회에 장·차관급 고위 관료를 대거 이끌고 참석했다. 현직 대통령이 여당 연찬회를 참석한 건 처음 있는 일이다. 그해 11월에는 관저에서 윤핵관 4인방(권성동·장제원·윤한홍·이철규) 부부와 동반 만찬을 갖기도 했다.
나경원 전 의원의 전당대회 불출마를 놓고도 윤심이 작용한 것 아니냐는 뒷말이 무성했다. 1월 10일 나 전 의원은 전당대회 출마를 염두에 두고 저출산위 부위원장직에 대한 사임 의사를 표명했다. 그러자 1월 13일 대통령실은 나 전 의원을 저출산위 부위원장직과 기후대사직까지 모두 해임 조치했다. 결국 나 전 의원은 전당대회 불출마를 한 뒤 친윤계에서 밀고 있는 김기현 당대표 후보 지지 선언을 했다.
현직 대통령이 명예 당대표까지 맡았던 것은 과거 ‘3김시대’에선 흔했던 일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2년 대통령에 당선된 뒤 “대통령이 당을 장악해 의회를 지배하는 것은 유신 잔재”라며 ‘당정분리’를 선언했다. 대통령이 당 총재를 겸임했던 3김시대가 드디어 막을 내린 셈이다. 2006년 한나라당(국민의힘 전신)도 당정 분리를 공식화했다. 국민의힘 당헌 제7조에도 ‘대통령에 당선된 당원은 임기 동안에는 명예직 이외의 당직을 겸임할 수 없다’고 명시돼 있다.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없앤다는 취지로 만들어졌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당정일체론’을 위해 대통령을 명예 당대표로 추대하는 건 민주주의 역사를 거꾸로 돌리려고 하는 대목으로 볼 수밖에 없다. 3김시대로 역행하는 것이다. 대통령이 여당 총재가 돼서 정국을 좌지우지하는 것은 의회민주주의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대통령은 여야를 뛰어넘어 국민 전체의 대통령이 돼야 한다”며 “친윤계에서 김기현 후보가 당선돼야 당정일치 되고, 안철수 후보가 되면 ‘당정분리’ 된다고 당원들한테 압박감을 주려고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정치를 후퇴시키는 전략이다. 또 대통령이 명예 당대표가 된다면 추후 공천권 행사해도 할 말이 없어진다”고 말했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지난 지도체제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이준석 대표의 갈등과 대립이 ‘명예 당대표’ 추대가 나온 배경으로 보인다. 이런 갈등이 앞으로 없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한 것 같다”며 “비윤계 공천 학살 가능성이 충분히 예상된다. 내년 총선 공천을 대통령 국정 운영에 도움이 되는 사람 위주로 할 것이다. 그 여세를 몰아서 다음 대통령 후계자까지 물색할 것이다. 이런 일련의 것들을 준비하고 싶어서 ‘당정일체’를 이야기하고 있다. 이렇게 정당민주주의 보장 안 할 거면 박정희 시대처럼 대통령이 당대표까지 다 해라. 영국 이코노미스트 조사 결과, 우리나라 2022년 민주주의 지수가 24위로 전년(16위)보다 무려 여덟 단계나 강등했다. 이런 식이면 올해 지수는 더 떨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허일권 기자 oneboo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