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도망가라고 알려주는 셈” 반발하지만 법원 “사전 심문과 검색 제한 세계적 흐름” 중론
여러 해석이 나오는 지점이다. 특히 법원 안팎에서는 사법행정권 남용 사건으로 검찰의 압수수색을 직접 받아본 법원이 ‘직접 털려보고 난 뒤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한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디지털 증거자료가 대체 뭐길래
3월 3일 대법원이 입법예고한 개정안에서 주목해야 할 지점은 크게 두 가지다. 디지털 증거물과 관련해 앞으로 검찰은 휴대폰이나 컴퓨터 등 디지털기기에 대해 압수수색 영장을 청구할 때 분석할 검색어와 대상 기간 등을 써내야 한다. 또,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하기 전 법원(법관)이 피의자나 사건 관계자를 대면 심리할 수 있게 된다.
이를 위해 대법원은 ‘법원은 필요하다고 인정한 때에는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하기 전 심문기일을 정해 압수수색 요건 심사에 필요한 정보를 알고 있는 사람을 심문할 수 있다. 검사는 이에 따른 심문기일에 출석해 의견을 진술할 수 있다’는 조항을 신설한다. 대법원이 입법예고한 형사소송규칙 개정안은 4월 14일까지 외부 의견을 수렴하는 입법예고 기간을 거쳐 대법관회의에서 최종안이 의결되면 오는 6월부터 시행된다.
당연히 검찰은 강력 반발한다. 특히 압수수색 영장 심사에 재판부가 사건 관계자의 입장을 듣겠다고 한다면, 수사 기밀 유지가 중요한 간첩이나 기술유출 수사는 사실상 불가능해질 수 있다고 비판한다. 본인이 직접 본인의 자료를 지우는 것은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특수 수사 경험이 많은 한 검사는 “압수수색을 미리 사전에 신고를 하고 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며 “검찰이 수사 중이라고 미리 알려주면서, 증거를 인멸하고 도망가라고 가르쳐 주는 셈”이라고 비판했다.
특히 사전에 ‘검색어를 미리 정해서 넣어야 한다’는 것도 반발이 적지 않다. PC 등에서 자료를 확보할 때 검색어를 여러 번 다르게 입력하면서 확인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마약 범죄자들은 마약을 ‘아이스, 얼음’으로 부르는 등 음어를 쓰고, 회사의 경우 회계 장부 등 문제가 될 만한 자료들은 다른 이름이나 파일 이미지로 바꿔놓는 경우가 많아 현장에서 많은 변수가 생긴다는 지적이다.
수도권 지역 지방청 한 검사는 “예를 들면 누구의 컴퓨터에 ‘회계 관련 자료’가 있는지는 알 수 있지만, 그 당사자가 어디에 어떤 형태로 저장해놨는지는 모르기 때문에 검색어를 계속 바꿔가면서 검색하는 게 현재의 압수수색”이라며 “만일 정해진 검색어만 입력해야 한다고 하면 숨겨놓은 파일을 찾기 위해 또 영장을 발부받아야 한다. 지금도 필요하면 현장에서 검사나 수사관이 대기하는 상황에서 법원에 긴급 압수수색 영장을 올려서 다시 받을 만큼 과정이 까다로워졌는데, 만일 심문까지 제도화되면 압수수색을 하루걸러 다시 나가는 말도 안 되는 일이 생길 수도 있다”고 비판했다.
사전 심문 대상 범위에 제보자가 포함되는 것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압수수색 영장의 필요성을 확인하기 위함이라고 하지만, 신분 노출을 꺼리는 제보자의 경우 더 고발을 어려워하게 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법원, 털려보니 필요성 ‘공감대’
하지만 법원 내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검찰 일각에서는 김명수 대법원장이 ‘검찰 제동 걸기’를 위한 정치적 판단이라고 비판하지만, 판사들은 ‘고민해 볼 때가 됐다’는 게 중론이다. 디지털정보 압수수색에 제약이 없어 사생활의 비밀과 정보 결정권을 침해할 우려가 크다는 지적이다. 특히 문재인 정부 당시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 지휘 하에 대법원 PC가 대거 압수수색 당하는 것을 지켜본 뒤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했다는 후문이다.
익명의 한 판사는 “그 전에도 이메일 등 몇몇 디지털 자료의 압수수색 때 검찰이 사생활을 모두 들여다보는 것이 맞는가에 대한 우려는 있었다”며 “검찰이 어떻게 피의자들의 PC 자료를 가져가는지 직접 보면서 ‘조금이라도 의심이 가면 일단 다 가져가는 검찰의 수사 방식이 문제가 있다’는 공감대가 생긴 것은 사실”이라고 귀띔했다.
당시 수사를 받은 적이 있는 한 변호사는 “이메일 하나에서 어떻게 검색어를 입력하느냐에 따라 관련 없는 자료들도 수없이 많이 검색되는 것을 보면서, 당시 법원에서는 ‘검찰이 법원 PC를 압수수색하면서 판사 개인들의 약점을 잡았을 것’이라는 말까지 나왔다”며 “직접 수사를 받아보니 디지털 증거의 압수수색은 신중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느낀 것”이라고 덧붙였다.
검찰의 반발에 대해서도 개정안의 취지를 이해하지 못한 것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서울고등법원의 한 부장판사는 “필요한 경우 심문을 하겠다는 것이고, 이를 통해 수사를 위해 필요한 자료만 선택적으로 가지고 가라는 것이지 수사를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며 “전세계적으로 봐도 압수수색 때 피의자의 참여권을 보장해주는 흐름”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압수수색 영장 청구에 의문이 있는 경우 수사 기관 또는 그가 대동한 정보원을 심문할 수 있다. 디지털 증거에 대한 강제수사의 경우 청문회 수준의 대면 심리를 진행하고 있다. 독일은 형사소송법에 따라 통신정보 수집을 원칙적으로 공개적인 수사 처분으로 다루고 있고, 당사자에게 법적 심문의 기회를 보장하도록 같은 법률에 규정하고 있다. 사전 심문을 예외적으로 배제할 수 있으나 이때는 이유를 분명히 제시해야 한다. 사실상 대면 심리 방식이 기본이다.
앞선 변호사는 “미국의 경우 우리나라보다 압수수색 영장은 더 잘 발부를 해주지만, ‘집행’에 있어서는 훨씬 더 제한적으로 한다. 우리나라 검찰처럼 자료를 일괄적으로 다 가져가지 않는다”며 “우리나라는 압수수색을 하면 박스물이 여러 개가 나오지만 미국은 박스 하나로 압수수색을 모두 끝낸다고 보면 된다. 검찰의 구시대적인 압수수색이 개선되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법원은 3월 9일부터 1박 2일 동안 충남 부여군에서 전국 법원장 간담회를 열어 ‘압수수색 영장 실무의 현황과 적정한 운용 방안’을 주제로 토의한다. 이 자리에 참석하는 한 법원장은 “이미 어떤 방향으로 갈지 결정은 다 난 것으로 안다. 법원장 간담회를 통해 법리적으로 빈틈이 없는지 여러 의견을 모아보려는 것”이라고 귀띔했다.
서환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