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한 수사’ 당시 대검 중수부에 윤석열·한동훈 등 포진…핵심 인물 스티븐 리 체포하며 ‘만회’ 가능성 열려
핵심 인물 스티븐 리 전 론스타코리아 지사장(이정환·미국 국적)이 미국으로 도망가면서, 유희원 론스타코리아 대표에게 구속영장을 잇달아 청구했지만 모두 기각됐다. 대검 중수부가 나섰지만 ‘실패한 수사’라는 오명을 뒤집어 써야 했다.
그런데 최근 핵심 인물 스티븐 리가 미국에서 체포되면서, 론스타 사건이 다시 수사가 이뤄질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진다. 스티븐 리가 송환되면 2006년 당시 대검 중수부가 범죄인 인도 청구 이후 17년 만에 신병을 확보하는 셈이다.
#대검 중수부에 사건 맡겼지만…
2003년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헐값에 산 뒤 되팔아 큰 차익을 남긴 이 사건은 2005년 가을 시민단체의 고발과 함께 검찰 수사가 시작됐다. 당초 서울중앙지검에 배당됐던 사건은 곧바로 대검 중수부로 이첩됐다. 당시 대검 중수부는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위세가 대단했었다. 대검 중수부에게 사건을 맡겼다는 것은 검찰 윗선에서 ‘어떻게든 처벌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것이기도 했다.
당시 중수부에는 SK 비자금 사건을 수사했던 박영수 중수부장을 필두로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 사건 수사를 담당했던 채동욱 수사기획관, 현대차 비자금 수사를 했던 최재경 중수1과장, 윤석열 부부장 검사, 이동열 부부장 검사, 여환섭 검사, 윤대진 검사, 한동훈 검사 등 특수통들이 대거 포진해 있었다. 2과에는 검찰 사상 최초로 현직 대통령의 아들인 김현철 씨를 구속했던 오광수 2과장, 임진섭 부부장 검사, 이복현 검사, 이영상 검사 등 회계나 영어에 능한 속칭 ‘선수’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리고 검찰은 검사 20여 명과 수사관 100여 명 등 중앙수사부 수사인력 전원을 동원해 수사에 나섰다. 대부분 영문 자료인 압수 문건이 920상자에 이르고, 모두 630여 명을 소환조사했다. 1만 800기가바이트(GB)에 달하는 전산자료와 이메일 50만 건을 분석했다.
외국 자본의 국내 금융기관 인수 과정을 수사하는 유례가 없는 사건에서 성과도 냈다. 대주주 자격이 없는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가 은행법 예외조항을 적용받아 외환은행을 인수할 수 있도록 외환은행의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이 낮게 조작된 사실과 외환은행 부실 규모가 부풀려져 정상 가격보다 최소 3443억 원, 최대 8253억 원 낮은 가격에 매각된 사실도 확인했다. 또 론스타가 114억 원의 조세를 포탈하고 243억 원의 업무상 배임행위를 벌인 사실도 확인됐다. 대검 중수부는 2006년 11월에는 이강원 전 외환은행장(구속기소)과 변양호 전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장 등을 기소했다.
#실패한 수사? 무죄 판결에 ‘논란’
하지만 법원은 검찰의 주장을 인정해주지 않았다. 1심 재판부는 이강원 전 은행장, 변양호 전 국장의 배임 혐의에 대하여 무죄를 선고했고, 2심과 3심 모두 이를 뒤집지 않았다.
수사 과정도 잡음이 많았다. 유희원 론스타코리아 대표의 경우 영장을 4차례나 청구했으나 모두 기각됐다. 이 과정에서 검찰은 영장을 한 글자도 고치지 않고 재청구하는 등 법원 결정에 노골적으로 항의했지만, 영장은 끝내 발부되지 않았다. 대검 중수부는 유 대표에 대한 영장을 포함해 수사 과정에서 모두 12차례나 구속영장과 체포영장이 기각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변양호 전 재정경제부 국장도 두 차례 영장을 청구했지만 모두 기각됐다.
수사 실패의 원인으로 핵심 인물 스티븐 리의 신병 확보에 실패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론스타의 한국 내 투자사업은 미국계 한국인인 당시 30대 중반의 스티븐 리가 주도했다. ‘컨트리 매니저(Country Manager)’가 그의 정식 직함이었는데, 그는 미국 텍사스에 있는 론스타 본사의 존 그레이켄 회장의 전폭적인 신뢰를 받고 있어 전체 서열 3~4위권의 위상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외환은행 인수 후 론스타코리아 한국대표 자격으로 외환은행 사외이사직도 맡았다.
그런 그는 2005년 9월 돌연 사임하고 모든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 직후 검찰 수사가 시작됐지만 그가 미국으로 돌아간 탓에 신병을 확보하지 못했다. 스티븐 리에 대해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조세포탈 및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혐의로 법원에서 체포영장을 발부받고, 미국 측에 범죄인 인도청구를 한 것이 할 수 있는 모든 조치였다.
#스티븐 리 기소해 유죄 받는다면…
2006년 스티븐 리를 기소중지하고, 미국에 범죄인 인도를 청구했던 검찰. 그럼에도 17년 동안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
하지만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론스타 사건에 관심을 보이면서, 미국 당국과 공조가 이뤄졌다. 지난 2월 이노공 법무부 차관이 일본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 지역 형사사법포럼’에 참석해 미국 법무부 고위급 대표단과 양자 회의를 하고 스티븐 리에 대한 범죄인 인도 절차의 신속한 진행을 요청한 덕이었다. 법무부는 스티븐 리의 최신 미국 소재지 자료를 분석해 미국 당국에 제공했고, 이 정보를 바탕으로 미국 뉴저지주 연방 검찰청이 스티븐 리를 3월 2일(현지시간) 검거하는 데 성공했다. 스티븐 리의 범죄인 인도를 청구한 지 17년 만이었다.
2006년 당시 대검 중수부는 스티븐 리에 대해 외환은행 불법 매각과 수익률 조작으로 업무상 배임, 조세포탈, 횡령 등 혐의가 있다고 발표했던 상황이다. 다시 수사가 이뤄질 가능성이 점쳐지는 대목이다.
검찰 관계자는 “기소중지가 돼 있던 상태이기 때문에 국내 송환이 확정되면 당시 수사자료를 토대로 기소해야 할 것”이라며 “기소하지 못한 스티븐 리를 기소해 유죄를 받는다면 실패했다고 평가받았던 수사팀이 조금은 명예를 회복하지 않겠냐”고 말했다.
서환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