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로금리 시대 새로운 투자처로 각광…진품 감정 등 과열 현상에 어린이들은 되레 ‘소외’
일본은 30년여 전 트레카 판매가 시작돼 지금도 폭넓은 연령층으로부터 사랑받고 있다. 주로 게임이나 수집을 위해 트레카를 산다. 판매가격은 5장에 200엔(약 1900원) 정도. 게임에 필요한 카드가 최소 40장이므로, 몇 만 원을 투자하면 대전에 필요한 카드를 갖추게 된다. 다만, 카드를 사기 전에 캐릭터나 인물을 미리 확인할 수 없어 선호도 혹은 희소성에 따라 서로 교환하기도 한다.
트레카 판매점을 운영하는 와타나베 씨에 의하면 “모두가 같은 카드를 원하는 경향이 있어 희소 카드는 고가에 거래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특히 여성 캐릭터는 남녀 모두에게 인기가 높아 순식간에 가격이 폭등한다는 것. 예를 들어 150장 중 1장꼴로 들어있는 SAR(스페셜아트레어) 미모사 카드다. 정가는 5장에 180엔이나, 발매 즉시 중고거래로 나와 쟁탈전이 벌어졌다. 발매 후 불과 10시간 만에 거래 가격은 5만 5000엔까지 치솟았다.
일본 언론들은 “코로나19 사태를 거치면서 트레카 시장 규모가 크게 확대됐다”고 분석한다. 2021년도 트레카 시장 규모는 약 1700억 엔.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2001년 이래 최대였다. 이에 대해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코로나19로 야외 레저를 마음껏 즐길 수 없게 되면서 대신 감염 위험이 낮은 트레카를 취미로 시작한 사람이 늘어났다”고 전했다. 아울러 “학창시절의 추억을 자극해 수집을 재개하는 등 성인 세대의 수요 증가가 시장 확대를 이끌었다”는 설명이다.
돈이 된다는 입소문이 나자 트레카를 주식처럼 사고파는 사람들도 나타났다. 한 남성은 NHK 인터뷰에서 “트레카 1800장을 20만 엔에 사서 팔지 않고 뒀더니, 가격이 계속 올라 현재 20만 엔 정도의 차익이 났다”고 밝혔다. 남성은 2년 전부터 가격이 오를 것 같은 카드를 구매와 매각을 반복해 이익을 내고 있다고 한다.
가장 인기가 있는 카드는 유명 애니메이션 포켓몬스터로, 일명 ‘포켓카 투자’라 불린다. 남성은 “주부를 비롯해 한정판 스니커즈로 재테크를 하던 젊은 층도 포켓카 투자로 관심을 돌릴 만큼 상당히 수익률이 좋다”고 덧붙였다.
한편, 재테크 수단으로 급부상하면서 트레카 애호가를 기만하는 사건도 벌어지고 있다. 인기 트레카를 복제해 팔거나 현금을 사취하는 문제다. 반대로 이를 막기 위한 서비스도 등장했는데, 바로 ‘트레카 정품 감정 서비스’다.
일례로 미국에 본사를 둔 트레이딩 카드 감정회사 PSA가 일본 시장에 진출했다. 일본지사 대표 토니 아람 씨는 “진품과 보존 상태를 감정하는 서비스”라고 운을 뗀 후 “거래 시 지표가 되기 때문에 신용도가 올라가고 트레카 매매가 더욱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감정은 카드 상태를 10점 만점으로 평가, 카드 끝에 작은 손상이라도 있으면 평가에 차이가 생겨 시장 가치는 크게 달라진다.
NHK에 따르면 “최근 일본에서 출시된 트레카가 세계적으로 매매가 늘어나는 추세”라고 한다. 요컨대 온라인 시장에서 일본 트레카 거래액이 1년 만에 9배 이상 불어났다는 것. NHK는 “특히 진품 감정 서비스가 트레카 매매 가속화를 뒷받침하고 있다”고 전했다.
트레카 매매로 상당한 부를 축적한 인물도 있다. 미국 미주리주에 사는 스코트 프랫 씨는 주로 감정에서 높은 등급을 받은 포켓몬 희소카드를 매매해 1년에 10억 원 이상의 수익을 올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관련 시장이 활황을 보이는 이유를 묻자, 스코트 씨는 “끊이지 않는 수요가 있기 때문”이라고 추측했다. 지금도 아이부터 어른까지 폭넓은 세대가 포켓몬 카드 수집에 열광해 시장이 일정한 규모를 유지하고 있다는 견해다.
지난해 미국 헤리티지 옥션이 주관한 경매에서는 포켓몬 카드 한 장이 33만 6000달러에 낙찰돼 화제를 모은 바 있다. 우리 돈으로 무려 4억 4000만 원이다. PSA가 최고점 10등급을 부여한 카드로 전 세계에 121장밖에 없는 카드였다. 또한 미국의 유명 유튜버, 로건 폴은 피카츄가 그려진 ‘포켓몬 일러스트레이터’ 카드를 얻기 위해 비공개 경매에서 527만 5000달러(약 69억 원)를 썼다고 한다. 이로 인해 그는 ‘가장 비싼 포켓몬 카드 구매자’로 기네스 세계기록에도 올랐다.
종이카드 한 장이 투자 대상이 되고, 심지어 집 한 채보다 비싸게 팔리기도 한다.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질까. 경제학자인 미즈노 가즈오 호세이대 교수는 “가장 큰 배경은 ‘장래에 대한 불안감’이 커졌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고용 형태의 변화, 코로나 팬데믹, 우크라이나 전쟁 등 긴박한 국제 정세, 그리고 일본의 경우 금리가 사실상 제로(0)에 가까워 예금이 전혀 늘지 않는 상황이다.
새로운 투자 대상을 찾고 있는 가운데, 그 대상이 현재 ‘트레카’로 향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주식 투자는 어쨌든 종잣돈이 만만치 않다. 그에 비해 트레카는 부담이 적어 자산규모가 크지 않은 사람도 시작하기가 쉽다. 그러나 미즈노 교수는 “지금처럼 고가 거래가 계속 이어지리란 보장이 없다”고 강조한다. 세간에서는 흔히 ‘투자’라 불리지만, 성공하면 투자고 실패하면 투기일 뿐이다. 나중에 돌이켜봤을 때 과열 현상이었고 ‘가격 거품’이 낀 투기였을 가능성도 있다는 지적이다.
완구 전문지 편집장 후지이 다이스케 씨는 “지나친 가격 급등이 오히려 트레이딩 카드 업계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가치가 있다고 인정받는 셈이니 값이 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부분. 반면 ‘살 수 없으니 더 이상 가지고 놀지 않아도 된다’며 순수하게 게임을 즐기던 소비자가 떠나는 상황이 벌어지게 된다.
후지이 편집장은 “이탈자가 쏟아져 장기적으로 봤을 때 시장 규모 축소로도 이어질 수 있다”는 의견을 내비쳤다. 실제로 새로운 카드가 발매되는 당일, 매점매석으로 구매를 할 수 없게 되자 고개를 떨구며 돌아서는 초등학생들이 많았다고 한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