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 투수가 평생에 단 한 번도 기록하기 어려운 대기록이다. 당하는 팀에겐 치욕적인 기록이지만 퍼펙트게임을 완성한 투수 입장에선 영원히 남을 훈장과도 같다. 참고로 2021년까지 140년이 넘는 미국 메이저리그에서도 단 23명 투수만이 이 기록을 달성했다. 일본 프로야구에서는 15차례 나왔다. 40년 역사가 있는 한국 프로야구에선 아직 단 한 차례도 퍼펙트게임이 나오지 않았다.
2010년 6월 3일 미국 메이저리그 디트로이트 타이거즈 투수 아르만도 갈라라가는 클리블랜드 인디언스(현 클리블랜드 가디언즈)를 상대로 9회 2아웃까지 퍼펙트 행진을 이어갔다. 마지막 타자 한 명을 잡으면 메이저리그 143년 역사 상 24번째 퍼펙트게임을 달성하게 되는 셈이었다. 절호의 기회였다.
마지막 타자는 내야땅볼을 쳤다. 1루수가 공을 잡았다. 1루 베이스커버에 들어간 투수에게 공을 넘겼다. 순간 디트로이트 선수들과 관계자들은 모두 환호했다. 그런데 당시 1루심이었던 베테랑 심판 짐 로이스가 세이프를 선언했다. 명백한 아웃 상황에서 일어난 세이프 콜에 대기록이 무산됐다.
갈라라가는 항의했다. 디트로이트 선수단 모두가 항의했다. 심지어는 상대팀이었던 클리블랜드 선수들까지 항의에 가세했다. 그러나 항의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방송 영상을 통해서도 명백한 오심인 것이 밝혀졌다. 그럼에도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오심도 경기 일부”라는 말을 남기면서 판정 번복을 하지 않았다.
메이저리그 사무국 논리는 이랬다. 설사 오심이더라도 심판 권위를 부정하면 더 많은 것을 잃을 수 있기 때문에 판정 번복은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심판 권위를 존중하고 인간이 실수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는 명제를 근거로 이 같은 결정을 내렸다.
오심도 경기 일부라는 말도 나름 의미 있는 논리일 수 있다. 그러나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이후 의미 있는 변화를 시행했다. 2014년부터 비디오 판독을 시행하기 시작한 것이다. 심판 권위와 원활한 경기 진행도 중요하지만, 실수할 수밖에 없는 인간이 오심을 했음에도 그걸 번복하지 않는 것이 더 나쁜 결정임을 인정한 셈이다. 권위보다 사실이 중요하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기도 했다.
30년 전까지만 해도 영화 현장에서 어떤 촬영을 하고 있는지 카메라 뷰파인더를 볼 수 있는 사람은 감독, 촬영감독, 그리고 제작자뿐이었다. 그 누구도 감히 촬영장면을 볼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직접 연기하는 연기자마저도 자신의 촬영장면을 볼 수 없었다. 감독의 OK 사인이 나면 ‘문제가 없구나’라는 생각만 할 수 있었다.
2000년대에 들어오면서 촬영장에 모니터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카메라에서 촬영하는 장면을 연결하여 모니터로 볼 수 있는 장치가 등장했다. 초기에는 모니터마저도 감독, 제작자, 주연배우 정도만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작품에 참여하는 모든 스태프·배우들이 현장 곳곳에 설치된 모니터에서 지금 우리가 무슨 장면을 찍고 있는지 다 볼 수 있다. 비밀번호만 입력하면 자신의 스마트폰이나 패드에서도 언제든지 촬영 장면을 볼 수 있는 시스템이 정착했다. 예전에 소수의 권력자 몇 명이 독점(?)했던 모니터를 모든 스태프와 배우들에게 공개한 현재에 이르러 한국 콘텐츠 경쟁력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향상됐다.
과거엔 감독과 제작자는 배우나 스태프들 의견을 중시하지 않았다. “그냥 시키는 대로 해”라는 지시가 감독이나 제작자로부터 떨어지면, 그냥 따라야 했다. 감독과 제작자의 권위는 살았을지 모르지만 촬영장 효율은 엉망이었다. 배우나 스태프들을 이해시키고 설득시키려는 노력보다는 그저 리더의 권위만 더 강조되던 시절이었다.
나도 오래전부터 꼰대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나 또한 “내가 해봐서 아는데”라면서 “너희들 흥행이란 걸 해보기나 했니, 너희가 대중들의 마음을 아니”라는 말을 접두어로 삼는 일이 날마다 반복됐다.
후배와 동료를 설득하기보다는 “내가 해봤어, 내가 흥행도 했잖니, 내가 성공을 해봤는데 무슨 말이 많니”라고 하는 것이 더 편하고 간단했다. 요즘 드는 생각은 내가 판단하고 결정하는 게 결코 옳지 않을 수도 있고 나 역시 인간이기에 실수할 수 있다는 점이다. 어떤 상황이라도 결정에 대한 면밀한 검토와 함께 동료 의견 수렴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생각을 훨씬 더 많이 한다.
나 역시 인간이기에 언제든지 실수할 수 있다. 이 사실을 전제로 그 결정을 모두의 생각을 바탕으로 비디오 판독하려 한다. 그건 나 자신이 꼰대가 되지 않으려 하는 일이 아니다. 결정권자의 실수엔 너무나 많은 희생과 아픔이 따른다. 비디오 판독이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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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동연 영화제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