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스 내세운 ‘주장전’서 승패 결정 40% 넘어…‘피셔방식’ 시간패 무려 21번 “일곱쯤엔 착점해야 실수 방지”
한국바둑리그 19번째 시즌인 올해는 바둑리그 출범 이래 최초로 대만과 일본도 참가하여 역대 최다인 12개 팀 체제로 리그가 진행 중이다. 본격적인 중반 레이스에 접어든 2022-2023 바둑리그의 이모저모를 짚어봤다.
#재미 위한 전격 변신 ‘주장전’ 도입
올해 바둑리그는 12개 팀이 참가, 바둑리그 사상 처음으로 양대리그로 진행된다. 리그는 ‘난가(爛柯)리그’와 ‘수담(手談)리그’로 나누어지며, 각 팀은 같은 리그 팀과 10경기, 다른 리그 팀과 인터리그 6경기로 팀당 16경기 정규리그를 소화한다.
각 리그 상위 1~3위 총 6팀이 진출하는 포스트시즌의 윤곽은 아직 확실치 않다. 14일 현재 난가리그에선 한국물가정보가 승점 19점(6승 3패), 포스코케미칼이 16점(5승 4패)으로 선두권을 형성하고 있고, 수담리그는 정관장천녹 20점(8승 2패), 원익 18점(6승 4패)으로 1, 2위를 유지 중이지만 일본과 대만을 제외한 다른 팀들과 차이가 크지 않아 막바지로 접어들수록 더욱 치열한 순위 경쟁이 예상된다.
지난 수년 동안 ‘그들만의 리그’라고 핀잔 받던 바둑리그는 올해 전격 변신을 선언하고 재미를 위한 다양한 아이템을 추가했다. 그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이 ‘주장전’의 도입이다.
바둑리그는 이번 정규시즌에 승점제를 도입했다. 종전의 5판 다승제가 아닌 4판 승점제로 변경된 것인데 승점은 3점(4 대 0 또는 3 대 1 승리 팀), 2점(2 대 2 동률 후 5국 승리 팀), 1점(2 대 2 동률 후 5국 패배 팀), 0점(0 대 4 또는 1 대 3 패배 팀)이 부여된다.
주장전은 4국까지 2승 2패 동률이 나올 경우 발생한다. 마지막 5국, 양팀은 에이스를 내세워 결정전을 펼치게 되는데 여기서 승리할 경우 앞서 설명한 대로 승리 팀은 2점, 패배 팀은 1점을 나눠 갖게 되는 것이다.
14일 현재 바둑리그 55경기 중 22경기가 주장전을 통해 승패가 결정됐다. 40%가 넘는 비율이다.
현재까지 주장전에서 강세를 보이고 있는 기사는 정관장 천녹 1지명자인 변상일이다. 그는 팀의 에이스로 세 번 출전해 모두 승리를 거뒀다. 그 뒤를 신민준(울산고려아연)이 3승 1패, 김명훈(셀트리온), 박건호(컴투스타이젬)가 2승, 신진서(킥스), 박정환(수려한합천)이 2승 1패로 추격 중이다.
단 주장전은 중복 출전이 허용되지만 선수 1명당 출전 횟수는 6회로 제한된다. 그렇기에 감독들이 팀의 에이스를 어느 시기에 투입하는지도 관전 포인트가 된다.
울산 고려아연의 박승화 감독은 “올해 바둑리그가 승점제로 바뀌면서 감독의 역할이 더욱 늘어난 것 같다”고 토로했다. 그는 “주장전도 중요하지만 우선 팀이 0 대 4나 1 대 3으로 패하지 않도록 하는데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 “선두권에 있다가도 두 번 연속 1 대 3 패배를 당하니 바로 하위권으로 떨어지더라. 일단 최하 2승 2패로 균형을 맞춰 승점 1점을 확보한 후, 착실히 전진하는 것이 순위 경쟁에 유리할 것 같다”고 분석했다.
#돌발 변수 ‘시간패’를 막아라
‘돌발사고’ 시간패의 급증도 올해 바둑리그 큰 특징 중 하나다. 올 시즌 시간패는 무려 21회나 발생했다.
‘초읽기’라는 용어의 원조인 바둑 경기에서 시간은 생명과도 같다. 그런데 갑작스레 등장하는 시간패는 당사자인 선수는 물론이고 지켜보는 입장에서도 허탈하고 당황스럽게 만든다.
올해 시간패가 자주 등장하는 원인은 변경된 초읽기 룰인 피셔방식 도입이 첫 손에 꼽힌다. 보다 박진감 넘치는 대국을 위해 올해 바둑리그는 기존의 계시원이 시계를 눌러주는 방식에서 대국자가 직접 누르는 방식으로 변경됐다. 그런데 가뜩이나 짧아진 시간에 시계까지 직접 눌러야 하니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 것. 하지만 근본적인 이유는 대국자들이 기존 습관에서 빨리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백홍석 9단은 “계시원이 초를 읽어줄 때는 아홉에 착점을 해도 넘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기계는 다르다. 시간패 확정 단어인 ‘열’을 부르는데 전혀 주저함이 없다. 그러므로 대국자들이 미리 여유를 갖고 최소 ‘일곱’쯤에는 착점을 해야 시간패라는 해프닝을 방지할 수 있을 것”고 조언한다.
#승점 자판기로 전락한 일본·대만 팀
개막 직후 돌풍을 일으키며 올해 양념 역할을 톡톡히 해줄 것으로 기대됐던 일본과 대만 팀의 부진은 아쉬움이 남는다.
난가리그에 속한 대만 ‘보물섬정예’ 팀은 2승 7패로 최하위에 머물러 있고, 수담리그의 ‘일본기원’ 팀은 9번 출전에 아직 승리를 신고조차 못하고 있다.
바둑리그 한 관계자는 “한국 팀들이 5명으로 구성된 데 반해 일본과 대만은 8명으로 선수단을 구성했다. 그런데 성적을 내기 위해선 정예 위주로 팀을 꾸려 내보내야 하는데 이들 두 팀은 순위 싸움엔 관심이 없고, 경험을 쌓게 해준다는 명분 아래 져도 계속해서 로테이션을 돌리고 있다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다크호스 역할을 기대했던 두 팀이 승점 자판기로 전락하면서 국내 팀들에게도 비상이 걸렸다. 자칫 대만과 일본에게 발목을 잡힌다면 순위 경쟁에서 치명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주장전과 시간패 해프닝, 해외 팀들의 부진이 남은 바둑리그 일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유경춘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