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성근 사표수리 지연 의혹’ 고발 건 등…압수수색 대면심문 검찰 반발에 고등부장 승진 폐지 내부 불만
올해 9월까지 남은 임기 6개월을 앞둔 김명수 대법원장. 현재 몇몇 사건으로 수사기관에 고발당한 상황이기도 하다. 무혐의 처분을 받은 사건도 있지만, 임성근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를 상대로 한 사표수리 지연 의혹은 아직 남아있다. 자리에서 물러나면 수사를 받게 될 가능성이 거론된다.
#압수수색 ‘대면 심문’에 검찰 반발
검찰에게 압수수색은 ‘가장 중요한 공개수사’ 가운데 하나다. 현장에서 피의자 관련 주요 정보를 얼마나 가져오는지가 수사의 성패를 좌우한다. 때문에 검찰은 현장에서 조금만 범죄 혐의와 의심이 있어도 압수물에 포함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필요하다면, 현장에서 수시간 대기를 하면서 추가로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아 압수물을 가져오기도 한다.
그런데 법원이 이를 문제 삼고 나섰다. 지나치게 넓은 범위로 압수수색을 하는 것이 문제가 있다는 취지다. 이를 서면으로만 제출해 법원으로부터 영장을 발부받는 과정에 빈틈이 있다는 판단에서다. 영장을 발부하기 전 판사가 미리 사건 관계자를 만나 압수수색 영장이 타당한지를 확인하는 ‘대면 심문’ 제도를 도입하겠다는 것이다.
대법원 법원행정처는 형사소송규칙 개정안을 입법예고하면서 “법원이 필요하다고 인정한 때에는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하기 전에 심문기일을 정해 압수수색 요건 심사에 필요한 정보를 알고 있는 사람을 심문할 수 있다”는 조항을 신설했다.
또, 디지털 장비(휴대폰 등)에 대해서는 검색어를 사전에 허가받은 것만 입력 가능토록 해 무리하게 개인정보를 뒤질 수 없도록 하는 것도 포함시켰다. 이번 대법원의 개정 작업은 국회의 형사소송법 개정 절차가 아닌 대법원규칙 변경을 통해 추진되므로, 김명수 대법원장의 의지가 중요한 지점이기도 하다.
#검찰 안팎 ‘정치적 판단’ 의심
올해 9월 임기를 마치는 김명수 대법원장이 이 제도를 밀어붙이는 의도를 놓고, 검찰 안팎에서는 여러 추론이 나온다. 문재인 정부 초 사법 행정권 남용 수사 허가, 김명수 대법원장을 향한 잇따른 고발 사건 등 김 대법원장이 재임 기간 동안 발생한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해 검찰을 ‘나쁜 놈’으로 만드는 정치적인 판단을 했을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다.
검찰 출신의 한 변호사는 “검찰은 범죄를 수사하기 위한 수사기관이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여죄를 찾는 것은 당연한 의무 아니냐”며 “지금의 영장 심사에서 충분히 무리한 영장 청구는 기각할 수 있고, 지금도 그렇게 해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대면 심문이라는 절차가 없이도, 검사에게 ‘서면자료’를 추가로 요구하는 방식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취지다.
향후 이뤄진 정치적인 사건들에 대해 ‘압수수색 영장의 기각 가능성’을 높이기 위함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익명의 한 검사는 “법원이 인사를 통해 영장실질심사 재판부에 그동안 진보적인 성향의 인사를 주로 앉혔다는 얘기가 검찰 내에서는 공공연하게 나왔다”며 “인사를 통해 컨트롤할 수 없을 상황에 대비해 절차를 복잡하게 하려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지적했다.
#‘너무 많이 조직을 변화시켜 놨다’
그런가 하면, 법원 안에서 김명수 대법원장을 향한 여론은 ‘너무 많이 조직을 변화시켜 놨다’는 부정적인 여론이 다수다.
법관 생활이 20년이 넘은 한 판사는 “가장 에이스들이 가야 하는 대법원 재판연구관 자리를 모두가 꺼리고,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연이어 사표를 냈다는 것은 우리 조직 인력 구성에 문제가 있다는 얘기”라며 “이는 고등부장판사 승진제도를 폐지했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대법원 재판연구관 경력이 5년에 달하는 신원일 부장판사(사법연수원 32기)를 필두로, 조세·노동 등 특정 분야를 담당하는 총괄 재판연구관 2명도 최근 사의를 표했다. 실제로 2022년에만 전국 고법판사 13명이 법복을 벗었고, 올해는 서울고법에서만 판사 13명이 사표를 냈다. 예전 같으면 고법 부장 승진을 바라봤을 판사들이 승진 제도가 사라지면서 조직을 떠났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 법원장은 “기존의 판사는 ‘고등부장 승진’을 목표로 20년가량 최선을 다한다. 사건 처리도 많이 하고 동시에 어려운 사건도 잘 판단해야 승진할 수 있는 게 고등부장이기 때문”이라며 “하지만 최근에는 승진이 사라지면서 열심히 해야 할 이유가 사라졌고, 자연스레 사건 처리 속도가 늦어지기 시작했다”고 비판했다.
실제로 지난 2020년 평균 309일 걸리던 재판 처리 기일은, 2021년(364일)과 2022년(420일) 해가 바뀔 때마다 50일 넘게 늦어지기 시작했다. 익명의 한 서울고등법원 판사는 “복잡하거나 어려운 사건은 처리하지 않고, 일부러 쉬운 사건만 처리해 사건 처리 개수를 맞추는 경우도 있다”며 “법원이 예전에 비해 느슨한 공무원 조직이 돼가고 있다”고 질타했다.
특히 내부 조직 문화가 ‘갈등’ 분위기로 흐르는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김명수 대법원장 임기 5년 동안 과거 에이스로 불렸던 고등부장판사들을 ‘적폐’로 몰았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고등법원 부장판사들 중에는 스스로를 ‘적폐’라고 칭하며, 젊은 판사들이 싫어할 것이라고 말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만찬 논란은 무혐의 받았지만…
내부와 외부 모두에서 ‘좋은 평’을 받지는 못하고 있는 김명수 대법원장은 임기가 끝난 뒤 검찰 수사를 받게 될 가능성도 있다.
과거 공관 만찬 논란과 아들 부부 관사 재테크 의혹은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부장검사 박혁수)와 서울중앙지검 형사8부(부장검사 김형석) 무혐의 처분을 받았지만, 아직 임성근 전 부장판사 사표수리 지연 의혹은 남아 있다.
김 대법원장은 2020년 5월 당시 사의를 희망하는 임성근 부장판사와의 면담에서 탄핵 가능성을 언급하며 사표를 고의적으로 받지 않았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김 대법원장은 사실이 아니라며 의혹을 부인했으나 이에 임 전 부장판사가 면담 당시 녹취파일을 공개한 바 있다. 이에 김 대법원장은 “약 9개월 전의 불분명한 기억에 의존해 다르게 답변했다”고 사과를 해야 했다.
검찰은 지난 1월 당시 법원행정처 차장으로 근무한 김인겸 서울가정법원장을 방문 조사를 하는 등 관련 수사를 진행 중이다. 일각에서는 김명수 대법원장이 임기 만료 전후로 사건 결과가 나올 가능성도 거론된다.
윤석열 대선 캠프에 몸담았던 법조인은 “이번 정부 입장에서 김명수 대법원장은 문재인 정부의 알박기 인사로 풀이되고, 압수수색 영장 대면심리와 같은 조치를 강행할 경우 이를 법리적인 지점으로만 해석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서환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