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심한 수사 당부하면서 ‘할 일은 하자’ 메시지…‘성남 FC 의혹’ 재판 ‘대북송금 의혹’ 수사 차질 불가피
검찰 역시 전 씨 사망 과정을 놓고, 문제가 될 만한 부분이 있었는지 확인하며 수습에 나섰다. 이원석 검찰총장이 직접 등판했다. 일각에서는 전 씨가 사망하면서 남긴 유서 내용이 되레 검찰 수사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검사의 숙명' 언급한 이원석
전 씨는 2022년 12월 성남 FC 불법 후원금 의혹 사건으로 입건돼 검찰 조사를 받은 바 있다. 네이버가 성남 FC에 불법 후원금 40억 원을 건네는 데 관여한 혐의로 입건돼 2022년 12월 1차례 영상 녹화 조사를 받았다. 네이버 측에 이 대표의 뜻을 전달했다는 등 이재명 더불어 민주당 대표의 구속영장에서 전 씨의 이름이 23차례나 거론됐다.
검찰은 당혹스러운 표정이다. 벌써 검찰 수사 과정에서 전 씨를 포함해 무려 5명이나 극단적인 선택을 했기 때문이다. 검찰은 곧바로 “고인이 이후 별도 조사를 받거나 출석 통보를 받은 적은 없다”며 서울중앙지검, 수원지검 등 성남 FC 후원금 의혹 사건 외에는 전 씨를 조사한 적이 없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진혜원 부산지검 중요경제범죄수사단 부부장검사는 자신의 SNS(소셜미디어)에 “원래는 누가 불려가서 조서를 작성했다고 하더라도 그 자체로는 아무런 증거능력이 없지만 조서가 꾸며진 사람(참고인)이 사망하면 그냥 증거능력이 인정돼 버린다”며 형사소송법 316조 2항을 언급한 뒤 “열심히 조서 작성하게 그냥 둬야 한다. 읽어보라고 하면 읽더라도, 서명날인을 절대로 하면 안된다. 서명날인을 강제할 수 있는 규정은 그 어디에도 없다”고 비판하며 수사 과잉론을 제기했다.
4일 뒤인 3월 13일 검찰총장이 나섰다. 이원석 총장은 이날 오전 부장회의를 소집한 자리에서 “사람의 생명보다 더 소중한 것은 어디에도 없다. 고인의 명복을 빌고, 유족에게 진심으로 깊은 위로를 다시 드린다”고 밝혔다.
세심한 수사를 해야 한다는 점도 당부했다. 이어 “검사에게는 이런 굴레가 계속 숙명처럼 따라다닌다. 늘 마음 한편에 무거운 돌덩이를 매달고 사는 심정”이라며 “앞으로 안타까운 일들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법률에 맞고, 세상의 이치에 맞고, 사람 사는 인정에 맞도록, 더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 달라”고 검찰 구성원들에게 부탁했다.
이원석 총장의 발언을 놓고 ‘수습 마무리를 선언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 총장을 잘 아는 동기 변호사는 “이원석 총장은 특수통으로 굵직한 사건들을 다수 경험하며 유사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며 “지난 주말 사이 검찰 내부의 조치가 문제될 것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뒤 수사팀을 포함한 검찰 전체의 분위기를 추스르기 위해 공식 발언을 한 것 아니겠느냐”고 설명했다.
차장검사 출신의 변호사 역시 “총장이 발언한 것은 ‘이번 사건을 토대로 똑같은 사고가 발생하지 않게 해달라’는 메시지도 있지만, 해야 할 일은 해야 한다는 메시지도 담겨 있다. ‘검사의 숙명’이라고 한 지점이 바로 그것”이라며 “수사팀도 예전처럼 다시 수사를 속도 내 진행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대북 송금' 사건 수사 더 큰 차질 전망
검찰 수사에는 일부분 차질이 불가피해 보인다. 성남 FC 후원금 의혹 사건의 경우 전 씨를 포함해 사실상 검찰 수사가 마무리됐지만, 재판이 아직 남아있다. 전 씨는 성남 FC 사건의 공범 중 한 명이었던 상황. 하지만 전 씨가 사망하면서 기소된 나머지 공범들이 전 씨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전략을 선택했을 때 검찰이 취할 수 있는 대응 카드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다만 검찰이 전 씨를 상대로 진행한 ‘영상조서’가 변수다. 진혜원 검사가 지적한 형사소송법 316조 2항에는 ‘원진술자가 사망, 질병, 외국거주, 소재불명 그 밖에 이에 준하는 사유로 인하여 진술할 수 없고, 그 진술이 특히 신빙할 수 있는 상태에서 행하여졌음이 증명된 때에 한하여 이를 증거로 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영상조서는 이에 해당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검찰이 중간에 편집하지 않고, 원본 전체를 제출할 경우 증거로 채택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그렇다고 해서 증거를 모두 믿는 것은 아니고 이재명 대표 측의 논리도 확인해야 한다”며 “다만 이 대표 측이 논리적으로 해명한 지점이 있다면, 전 씨를 직접 불러 조사할 수 없기 때문에 이 대표 측에게 유리한 부분도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증거 채택’이 무조건 가능한 것은 아니라는 지적도 있었다. 한 고등법원 부장판사는 “사망했다고 해서 무조건 진술을 다 받아주는 것은 아니고 여러 가지 정황들을 고려해야 한다”며 “핵심적인 내용을 얘기하는 게 아니라 전언 형식의 영상조서라면 법원에서 이를 받아주지 않을 수도 있다”고 답했다.
수사가 마무리돼 영상조서라도 있는 성남 FC 후원금 의혹 사건과 다르게, 아직 진행 중인 쌍방울그룹 ‘불법 대북 송금’ 사건 수사는 더 큰 차질이 예상된다. 당장 관련 재판에서 ‘김성태 전 쌍방울그룹 회장의 모친상에 전 씨가 이재명 당시 경기도지사를 대신해 조문을 갔다’는 진술이 나왔던 상황.
검찰은 전 씨를 참고인 신분으로 불러 조사하거나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 등 관련자들의 재판 증인으로 부를 수 없다. 전 씨가 이재명 경기도지사 시절 초대 비서실장을 지내면서 보고 들은 내용을 공식적으로 법원에 확인시켜 줄 수 없게 된 셈이다. 비서실장이 여러 행사에서 ‘분신’처럼 역할하는 점을 고려했을 때, 검찰은 핵심 참고인을 잃은 셈이다.
당장 쌍방울그룹이 경기도의 스마트팜 사업비용 500만 달러를 북한에 대신 지불한 직후인 2019년 5월, 김성태 전 회장의 모친상에 조문을 갔던 상황 등은 확인할 방법이 요원해졌다. 이재명 대표 측은 ‘전 씨에게 지시한 적이 없다’라고 부인하면, 검찰이 이를 거꾸로 입증해야 하는 상황이 된다.
다만 검찰 안팎에서는 ‘이재명 대표를 원망하는 내용의 유서’가 검찰에게 유리한 부분도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검사장 출신의 변호사는 “유서에서 이재명 대표가 책임을 떠넘기는 부분을 지적한 내용들이 확인된다면, 이를 법원에 전 씨의 진술 신빙성을 강조하는 측면으로 제출할 수 있다. 이 대표의 ‘혐의 부인’을 반박하는 근거가 될 수도 있다”며 “다만 일련의 과정에서 검찰 수뇌부에게 중요한 것은 수사팀을 잘 추스르는 동시에 같은 사고가 반복되지 않게 하는 것이며, 이를 위해 이원석 총장이 총대를 메고 나선 것 같다”고 설명했다.
서환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