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대만 법인 청산 이어 태국 법인 철수…인천공항 입점 여부와 중국 관광객 입국 재개 변수
호텔신라는 국내 상장사 중 유일하게 해외 면세 사업에 진출한 기업이다. 2018년에는 업계 최초로 해외 매출 1조 원 시대를 열기도 했다. 그런데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하늘길이 닫히면서 수익성이 지속적으로 악화됐다. 이는 결국 사업 철수로 이어졌다. 호텔신라는 태국 푸켓 시내면세점 운영이 2년 넘게 중단되자 지난해 1분기 태국 법인(GMS 듀티 프리)의 보유 주식 전량을 현지 합작사에게 넘겨 지분관계를 정리했다. 2021년에는 전일본항공상사와 합작으로 설립한 일본 법인(A&S 다카시마야 듀티 프리)을 청산했다.
지난해 3분기에는 사업성 검토 끝에 대만에서도 사업을 접기로 결정하고 법인 청산 절차를 밟았다. 이 법인은 2017년 11월에 설립됐으나 2018년 대만 타오위안 공항 면세점 입찰에 실패한 후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했다. 면세업계 한 관계자는 “홍콩이나 싱가포르와 달리 대만처럼 자국 사업자가 있는 곳들은 해외 사업자에게 진입장벽이 높다. 경영이 악화하자 결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호텔신라는 현재 싱가포르 창이공항, 홍콩 첵랍콕공항, 마카오 공항 세 곳에서만 면세점을 운영하고 있다.
매출 비중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시내 면세점의 수익성도 악화했다. 지난해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 호텔신라의 면세점 부문 매출은 1조 1400억 원으로 2021년보다 13% 증가했지만 영업적자는 196억 원을 기록하며 적자전환했다. 관광객이 줄어들며 기업형 따이공(중국 보따리상인)들의 입김이 세진 까닭에 알선 수수료가 40%가 넘게 치솟은 탓이다. 한 증권사 연구원은 “면세사업의 경우 직매입을 해서 파는 구조라 매출 원가가 50~60%에 달하기 때문에 알선수수료 40%와 판관비를 떼고 나면 적자가 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다만 지난해와 달리 시내 면세점은 분위기 반전이 이뤄질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중국 정부가 3월 15일부터 3년 만에 관광 비자 발급을 재개했기 때문이다. 머지 않아 중국인 여행객들이 다시 국내를 찾게 되면 국내 면세업자들이 다시 협상력을 되찾게 될 가능성이 높다. 유진투자증권 이해니 연구원은 올해 1월 낸 보고서에서 “면세 산업은 따이공과의 주도권 잡기 경쟁에 돌입했다. 하반기로 갈수록 영업이익 개선세는 빨라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다른 증권사 연구원은 “일반인 관광객이 매출을 책임져주면 중소형 따이공과 수수료율을 낮춰서 계약할 수 있게 되므로 실적 반전의 터닝포인트가 될 수 있다. 분기 단위로 면세업체들 수익성이 개선되는지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항공 노선 회복에 걸리는 시간을 감안하면 올해 하반기부터 면세업도 상승세를 탈 것”이라며 “소비력이 좋은 중국 관광객의 보복소비를 감안하면 2024~2025년에는 코로나 이전 시기의 매출 이상까지 내다볼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고 분석했다.
시내 면세점보다 중요한 것은 공항 면세점이다. 호텔신라는 2019년 공항 면세점에서만 약 1조 9000억 원가량의 매출을 올렸다. 그러나 코로나19가 닥치면서 현재 약 4분의 1 수준으로 매출이 급감한 상태다. 2021년 호텔신라가 인천국제공항 면세점에서 가장 매출을 많이 올리던 화장품·주류·담배 판매 구역에서 빠져 나오게 되면서 매출 타격이 컸다는 분석이 나온다. 따라서 올해 인천공항 재입점에 성공할 수 있을지가 중요한 관전포인트다.
인천공항은 공항면세점 매출액만 약 2조 원에 달한다. 전세계에서 가장 매출 규모가 큰 국제공항으로 꼽힌다. 이용객이 많아 홍보 효과도 큰 데다 인천공항에 입점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명품 브랜드들과의 협상과정에서 우위를 차지할 수 있다. 앞서의 면세업계 관계자는 “외국에서는 주로 국경·항만·공항면세점만 운영하는 경우가 많다. 인천공항에 입점한 면세업자는 해외사업권을 따내기에 훨씬 유리하다. 향후 관광이 다시 활성화하는 것을 고려하면 입점이 필수”라고 말했다.
인천공항 입점사업자 발표는 올해 4월 중순으로 예정돼 있다. 다른 증권사 연구원은 “호텔신라는 워낙 대형사업자다 보니까 무난하게 입점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며 “사업권을 따내면서도 이익을 볼 수 있는 입찰 가격을 써 냈는지가 관건이 될 전망”이라고 말했다.
재입점에 성공한다고 해도 '꽃길'이 보장된 것은 아니다. 중국국영면세점그룹(CDFG)이 인천공항 입찰전에 참전했기 때문이다. CDFG는 중국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단기간에 글로벌 1위 규모까지 성장한 기업이다. 국내 기업들을 상회하는 자금력을 갖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인천공항의 경우 입찰 조건에 자국 면세 사업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진입장벽이 따로 없는데다, 1차 입찰 심사 기준 중 가격 제안 점수(임대료)의 비중이 40%인 까닭에 CDFG의 입점이 유력할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CDFG가 인천공항 입점에 성공할 경우 호텔신라를 비롯한 국내 면세업자들의 부담이 오히려 가중될 수도 있다. 인천공항은 이번 면세점 입찰에 고정 최소보장액(고정임대료) 제도를 폐지하고 공항 여객 수에 따라 임대료를 산정하는 '여객당 임대료' 방식을 도입한 까닭이다. 구매력 높은 중국인 관광객이 중국 정부의 자국 우선주의 정책에 따라 CDFG의 사업장에만 몰릴 경우 국내 사업자들은 매출은 내지 못하면서 비용 부담만 커질 수 있다.
호텔신라 관계자는 “면세점 같은 직매입 구조는 규모의 경제가 제일 중요한 까닭에 인천공항 입찰 참여는 숙명이라고 생각한다”며 “인천공항의 회복 속도가 빨라지고 있는 데다 저희로서도 매출을 크게 올리고 바잉 파워를 한 단계 높일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입점을 희망한다”고 말했다.
김정민 기자 hurrymi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