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갚지 않으면 SNS에 유출” 4000% 살인 금리 적용…비대면 대출 급증 속 ‘딥페이크’ 음란물로 협박 사례도
최근에는 그 양상이 더욱 악랄해졌다. 심지어 성착취와 불법채권추심이 결합된 성착취 추심까지 등장했다. 일종의 담보로 알몸 사진을 받아낸 뒤 불법추심 행위를 하는 악랄한 불법 대부업체는 물론이고 딥페이크 기술을 활용해 피해자 사진으로 음란물을 만들어 협박하는 사례까지 등장했다.
#과거에는 성범죄와 불법추심이 혼재된 형태
경찰청과 금융감독원은 3월 20일부터 10월 31일까지를 성착취 추심 등 불법채권추심 특별근절기간으로 정하고 집중 단속을 시작한다고 밝혔다. 이 기간 동안 경찰청과 금융감독원은 법률 및 금융 지원방법 안내를 위한 피해자 상담을 진행하며 이 과정에서 확인된 피해에 대해 신속한 수사를 진행할 방침이다.
최근 불법채권추심 수법인 성착취 추심이 사회적인 문제가 되고 있다. 단순 협박을 뛰어넘어 가족이나 지인에게 실제로 피해자의 얼굴을 합성한 음란물을 보낸 사례까지 등장했다. 심지어 담보 개념으로 스스로 알몸 사진을 찍어서 보내게 한 뒤 이를 악용해 심리 조종을 한 사례도 있다.
과거에도 성착취 추심이 존재하기는 했다. 그렇지만 과거에는 성폭력이라는 범죄와 불법채권추심이 결합된 방식이었다. 2008년 11월 서울송파경찰서는 불법 대부업 일당 3개 조직, 총 12명을 검거했다. 검거된 한 일당은 주로 윤락여성을 상대로 무등록 대부업을 해왔는데 돈을 갚지 않는다는 이유로 잠실 한강둔치 주차장에서 20대 여성 피해자를 성폭행했으며 또 다른 윤락여성 피해자 3명을 사채업소 사무실에서 성추행했다.
심지어 20대 여성 피해자의 집을 찾아가 피해자는 물론이고 여동생까지 옷을 모두 벗기고 성추행하기도 했는데 피해자가 빌린 금액은 500만 원이었다. 이들 일당은 채무자들에게 연 304.9%의 높은 이자를 챙겼다. 알몸 사진으로 채무자를 협박한 불법 대부업 일당도 함께 검거됐다. 이들은 강제로 50대 여성 피해자를 납치 감금해 알몸 사진을 찍고 “아들에게 보여주겠다”고 협박했다. 이들은 피해자로부터 매일 6만 원씩 100일 동안 무려 연리 519.5%의 고금리를 챙겼다.
2009년 4월에도 서울 송파경찰서가 불법 대부업자인 40대 장 아무개 씨를 구속하고 공범인 30대 이 아무개 씨를 불구속 입건했다. 이들은 30대 주부에게 1000만 원을 빌려준 뒤 원금 상환이 늦어지자 두 차례 모텔로 끌고 가 성폭행한 뒤 알몸 사진까지 찍어 협박했다. 장 씨 일당은 채무자가 돈을 갚지 못하면 돈을 더 빌려줘 이자를 갚게 만드는 수법으로 채무액을 늘려 헤어나지 못하게 만들었다. 게다가 연이자도 600%나 됐다.
이처럼 과거에도 알몸 사진으로 채무자를 협박하는 불법 대부업자들도 있었지만 강제로 성폭행 및 성추행 등을 하는 성범죄에 더 가까웠다. 알몸 사진 역시 납치한 뒤 강제로 촬영한 것이었다. 그렇지만 요즘 성행하는 성착취 추심은 전혀 결이 다르다.
#2010년대 후반 일본에서 성착취 추심 기승
요즘 한국 사회에서 기승을 부리는 성착취 추심은 일본에서 먼저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이미 일본에서는 성착취 추심이 2010년대 후반부터 사회적인 문제로 부상했다. 이즈음 일본에선 악덕 고리대금업 피해자가 감소세를 보이고 있었다. 은행계좌 동결 등 강력한 조치를 동반한 일본 정부의 단속이 강화됐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악덕 고리대금업 자체가 실제로 줄어든 것은 아니었다. 대신 SNS(소셜미디어) 등을 활용한 비대면 신종 수법이 성행하기 시작했는데 이 과정에서 기존 고리대금업자들보다 더 악랄한 추심이 등장했다.
2019년 6월 일본의 니혼게이자이신문이 알몸 사진을 활용한 악질 고리대금업 관련 기사를 보도했다. 도쿄에 거주하는 한 20대 일본 여성은 트위터에서 ‘건전한 개인대출을 해드립니다’라는 글을 발견해 상담한 뒤 해당 트위터로 자신의 얼굴과 각서 사진을 보냈고 바로 3만 엔(약 30만 원)을 계좌로 입금 받았다. 몇 차례 더 대출을 받아 대출금은 14만 엔(약 140만 원)이 됐는데 10일 동안 이자가 6만 엔(약 60만 원)이나 됐다. 연리로 환산하면 무려 1500%가 넘는 고금리다.
살인적인 고금리도 문제지만 악질적인 채권추심이 더 심각했다. 대출 과정에서 알몸 사진과 지인 연락처를 보내라고 요구한 뒤 원금이나 이자가 연체되면 “알몸 사진을 지인들에게 뿌리겠다”는 협박을 가하기 때문이다.
이번에 경찰청과 금융감독원이 불법채권추심 특별근절기간까지 정하고 집중단속에 돌입한 성착취 추심 사례가 이와 거의 유사하다.
#차용증 들고 찍은 사진이 비대면 대출 인증절차라고?
국내에서 성착취 추심이 크게 화제가 된 것은 지난해 11월이다. 부산경찰청 강력범죄수사대가 불법 대부업 집중 단속을 벌여 7개 불법 대부업체의 관련자 66명을 검거했는데, 이들에게 당한 피해 사례 가운데 성착취 추심이 등장한 것.
경찰에 따르면 조직폭력배 A 씨는 동네 후배들과 불법 대부업 조직을 결성해 2021년 1월~2022년 10월까지 모두 66억여 원을 빌려주고 25억여 원의 이자를 챙겼다. 인터넷 광고를 통해 은행 등에서 대출이 어려운 신용불량자와 저소득층, 10대 등에게 돈을 빌려준 뒤 연 4000%가 넘는 금리를 받았다. 법정 최고 금리인 연 20%의 200배가 넘는 살인적인 고금리다. 무려 1만 2000여 차례에 걸쳐 10만 원에서 수백만 원의 소액 대출을 해준 뒤 엄청난 이자를 챙겼는데 피해자가 무려 3500여 명이나 된다.
가장 높은 이자를 받아 챙긴 사례는 10만 원을 빌린 뒤 바로 다음 날 이자까지 18만 원을 갚은 피해자로 이자가 무려 연 1만 2166%나 된다. 중고차량 담보로 700만 원을 빌려주고 피해자가 약속한 기일에 상환하지 못하자 피해자 동의 없이 중고차를 해외 수출업자에게 팔아넘기기도 했다.
이들은 돈을 빌려주는 시점에 피해자가 차용증을 들고 찍은 사진을 보내라고 요구했다. 이후 약속된 날짜에 돈을 갚지 못하면 이 사진을 피해자 가족과 지인 등을 초대해서 개설한 단체 대화방에 올리는 방식으로 채무 상환을 압박했다. 경찰이 밝힌 실제 피해 사례를 보면 급전이 필요해 불법 대부업체에서 20만 원을 빌린 피해자는 일주일 뒤 35만 원을 상환하기로 했지만 갚지 못했다. 이에 불법 대부업체는 피해자 가족과 지인 등을 초대해서 개설한 단체 대화방에 미리 받아 놓은 피해자가 차용증을 들고 찍은 사진을 올리며 피해자를 압박했다.
게다가 채무불이행 전력이 있는 피해자에게는 알몸 사진까지 요구했다. 약속된 기일에 채무를 불이행할 경우 알몸 사진을 SNS에 유출하겠다는 협박도 서슴지 않았다. 알몸 사진이 일종의 담보가 된 셈이다. 경찰에 따르면 과거 채무 불이행 이력이 있는 한 피해자는 알몸 사진을 요구 받아 중요 부위를 가린 알몸 사진을 전송했는데 역시 상환 기일까지 채무를 변제하지 못하자 가족과 지인에게 알몸 사진을 유포하겠다는 협박을 받았다고 한다.
급히 30만 원을 빌리려는 피해자에게 알몸 사진을 요구한 사례도 있다. 피해자는 3주 뒤 대출금의 3배가 넘는 100만 원을 갚았지만 불법 대부업체에선 100만 원은 이자일 뿐 원금 30만 원을 추가로 내라고 압박했다. 이에 피해자가 반발하자 알몸 사진을 인터넷에 유포하겠다며 협박했다.
#파일공유 앱 깔도록 유도한 뒤 음란물 합성해 협박
아무리 대출이 급해도 알몸 사진만 보내지 않는다면 이런 성착취 추심을 피할 수 있을까. 문제는 전혀 그렇지 않다는 점이다. 한국 역시 일본과 마찬가지로 SNS나 인터넷 광고 등을 통한 비대면 대출이 급증하고 있다. 성착취 추심 역시 대부분 이런 비대면 불법 대부업체에서 주로 발생한다.
사회 변화와 발전에 맞춰 범죄 행각 역시 고도화하고 치밀해지고 있다. 이제는 불법 대부업체가 애플리케이션(앱)까지 자체 제작한다. 앞서의 A 씨 일당은 1만 1456명의 채무불이행 신용정보를 수집해 이 정보를 검색할 수 있는 신용정보 공유 스마트폰 앱을 제작해 대부업자 240여 명에게 배포한 뒤 월 13만 원의 사용료를 받았다.
더욱 심각한 사실은 대출 과정에서 피해자들에게 스마트폰에 파일공유 앱을 설치하도록 하는 것이다. 불법 대부업체에선 비대면 대출 과정에서의 인증절차 내지는 채무상환능력 심사 자료라며 파일공유 앱을 깔도록 유도한다. 피해자 스마트폰에 파일공유 앱이 설치되면 불법 대부업체에서 피해자 스마트폰에 저장된 사진과 연락처 등을 열어볼 수 있다. 만약 상환 기일까지 빌린 돈과 이자를 갚지 못하면 여기서 확보한 피해자 사진을 음란물과 합성한 뒤 성착취 추심에 활용한다.
요즘에는 딥페이크 기술이 발달해 마치 피해자가 직접 찍은 것처럼 보이는 음란한 사진이나 영상을 만들 수 있다. 이를 파일공유 앱으로 확보한 피해자 가족과 지인 연락처로 보내거나 온라인에 유포하겠다고 피해자를 협박한다. 이 과정에서 실제로 가족이나 지인에게 이런 음란물을 보내고 온라인에 유포한 사례도 있다. 또 한 피해자는 이런 악질 성착취 추심 행위로 직장에서 해고당한 뒤 대인기피증으로 힘겨워하고 있다.
성착취 추심은 아닐지라도 가족이나 지인을 통한 불법추심 역시 피해자에게 상당한 고통이다. 최근 불법추심의 주된 수법은 피해자 가족이나 지인을 활용하는 방식이다. 금감원이 3월 19일 밝힌 2023년 1~2월 불법추심 관련 피해 상담 접수 건수는 총 271건으로, 2022년 1~2월 127건과 비교해 2배 이상 증가했다. 특히 가족과 지인을 통한 불법 채권추심 피해 사례가 총 174건으로 전체의 64%나 된다.
가장 흔한 사례는 2022년 부산경찰청 불법 대부업 집중 단속에서 드러난 것처럼 대출 과정에서 피해자에게 차용증을 들고 찍은 사진을 찍어 보내게 하는 것이다. 온라인 비대면 대출 인증 절차라며 채무상환능력 심사 자료로 차용증을 들고 찍은 사진과 지인 연락처 목록을 요구하는 방식이 대부분이다. 이후 차용증을 들고 찍은 사진을 가족이나 지인에게 공유한다는 협박으로 불법추심이 시작된다.
금감원은 대출 상담 과정에서 휴대전화 주소록이나 사진 등을 요구받으면 바로 상담을 중단하고 정식으로 등록된 대부 업체인지 금감원 금융소비자 정보포털에서 확인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한 파일공유 앱을 통한 주소록 공유를 요구하거나 본인 사진 및 가족관계증명서 등을 요청하는 행위는 대출심사와 무관한 만큼 절대 요구에 응하지 말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전동선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