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양쪽에서 강력하게 처벌 의지 드러내…미국에선 최대 100년 이상 징역 선고 가능성도
권 대표는 한때 가상자산 업계에서 ‘한국판 일론 머스크’라고 불렸다. 권 대표는 일론 머스크처럼 성공과 동시에 트위터로 기행을 일삼는 면이 닮았었다. 한때 루나 가격이 엄청나게 상승해 시가총액 약 100조 원을 기록한 시기에 권 대표는 트위터로 상스러운 욕을 쓰기도 했다.
권 대표가 기행을 일삼으면서도 루나가 이더리움에 이은 De-Fi(탈중앙화 금융) 2위 프로젝트가 되자 그를 지지하는 세력인 ‘루나틱’이 나타나기도 했다. 한 미국 경제지는 스탠퍼드대학 출신인 그를 주목해 인터뷰했다. 하지만 테라-루나 사태를 통해 루나 가치가 폭락하면서 그를 향한 비판이 거세졌다. 애초부터 프로젝트가 망할 수밖에 없어 사기인 걸 알고 진행한 사기꾼이라는 비난이 쏟아졌고, 그는 도망자 신세로 전락했다.
평소 권 대표를 알고 지냈던 한 인사는 “코스타리카 여권을 갖고 몬테네그로에서 출국하려다 붙잡혔다는 것이 비현실적으로 들린다. 일종의 첩보물 같은 결말”이라고 평가했다. 권 대표가 잡힌 포드고리차 공항은 몬테네그로 수도에 위치해 있지만, 수하물 컨베이어 벨트도 하나뿐일 정도로 동유럽에서도 매우 작은 공항으로 평가된다. 가상자산 제왕의 끝은 화려함과 거리가 멀었다.
권 대표 체포 소식은 필립 아지치 몬테네그로 내무부 장관 트위터를 통해 알려졌다. 필립 장관은 트위터에 “포드고리차 공항에서 몬테네그로 경찰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지명 수배자 중 한 명인 권도형 테라폼랩스 대표를 구금해 공식 신원확인을 기다리고 있다”면서 “400억 달러(우리 돈 약 50조 원) 이상 손실을 낸 전직 ‘암호화폐 제왕’이 위조문서로 포드고리차 공항에 억류되자 한국과 미국, 싱가포르가 같은 요구(송환)를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필립 장관이 이런 내용을 트위터에 올린 뒤 한국 경찰청이 몬테네그로 인터폴에서 송부받은 권도형 테라폼랩스 대표와 한창준 전 차이코퍼레이션 대표 지문 자료 정보를 대조한 결과, 권 대표 및 한 전 대표 지문과 일치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 사실은 국내에서 권 대표 수사를 해오던 서울남부지검과 몬테네그로 인터폴에 바로 통보됐다. 자본시장법 위반 등 혐의로 권 대표를 수사해 온 남부지검은 몬테네그로 당국과 신병 송환을 위한 절차를 협의할 예정이다.
권 대표 신원이 확인되자 3월 24일 한국 경찰청은 필립 내무부 장관을 태그해 “당신의 리더십에 경의를 표한다. 한국 경찰청은 몬테네그로에서 유명 탈주자를 검거하는 데 도움을 주신 데 대해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면서 “그들을 한국으로 송환하는 데 도움을 주실 것을 기대한다. 이 문제에 대해 전폭적인 협조를 약속드린다”고 밝혔다.
경찰청이 한국으로 송환을 부탁하는 이유는 필립 장관 말처럼 권 대표 송환을 원하는 국가가 세 곳이나 되기 때문이다. 가장 적극적인 건 한국과 미국이다. 한국은 권 대표와 테라폼랩스가 한국 기업인 만큼 강력하게 한국에서 재판하고 처벌하길 원한다고 알려졌다.
지난해 9월 권 대표는 두바이를 통해 제3국으로 이동한 정황이 포착됐는데, 그곳이 동유럽 세르비아로 지목됐다. 권 대표는 10월 여권 효력이 정지됐다고 알려졌다. 권 대표가 세르비아행을 택한 이유는 한국과 세르비아 간에 범죄인 인도 조약이 없기 때문으로 꼽힌다. 한국 수사당국도 그가 세르비아에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지만 양국 간 범죄인 인도 조약이 없어 관련 협상을 위해 수도 베오그라드에 관계자를 파견하기도 했다. 몬테네그로는 EU(유럽연합) 범죄인 인도 조약에 가입한 국가다. 따라서 한국으로 송환하는 데 큰 문제는 없을 전망이다.
가상자산 관련 전문가인 홍진현 법무법인 청림 변호사는 테라폼랩스 권도형 대표의 국내 송환 가능성에 대해 “서울남부지검에서는 가상자산 루나 가격 폭락사태 이후 권도형 대표를 수사하면서 이미 지난해 9월 체포영장을 발부받았다. 권 대표 출국 이후 인터폴에 적색수배도 요청해놓은 상황이며, 권 대표가 검거된 몬테네그로의 경우 대한민국과 범죄인 인도 조약이 체결된 국가다. 이미 남부지검에서 법무부, 경찰과 공조해 국내 송환을 위한 절차를 밟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미국도 권 대표 신병 확보에 적극적이다. 3월 23일 뉴욕타임스 등에 따르면 뉴욕 검찰은 권 대표를 증권 사기, 통신망을 이용한 사기, 상품 사기, 시세조종 공모 등 총 8개 혐의로 기소했다. 앞서 지난 2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도 권 대표를 증권 거래 등록 및 사기 방지 조항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한 바 있다. SEC는 미 뉴욕 맨해튼 연방법원에 제출한 서류를 통해 권 대표와 테라폼랩스가 등록되지 않은 증권 자산을 판매하고, 스테이블 코인 '테라' 등 디지털자산의 위험성을 알리지 않은 채 투자자들을 상대로 계획적으로 수십억 달러 규모 사기 행위를 벌인 혐의가 있다고 주장했다.
23일 뉴욕타임스는 “권 대표에 대한 법적 드라마의 다음 단계는 불분명하다”면서도 “미국이 권도형 송환을 모색할 가능성이 높지만, 한국도 권도형이 한국에서 재판 받게 하려고 할 수 있다”고 전했다. 미국 가상자산 전문매체 코인데스크는 “뉴욕 검찰 대변인이 권도형을 미국으로 송환해 수사할 것이라고 밝혔다”고 전했다. 미국도 송환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익명을 원한 부장검사 출신 변호사는 “한국과 몬테네그로 양국 법무부 및 외교부가 권 대표에 대한 국내 송환을 결정하면, 몬테네그로에서는 권 대표를 강제 추방하고 우리 수사기관이 현지에서 권 대표를 체포해 국내로 송환하는 절차를 거치게 된다. 다만, 권 대표가 몬테네그로 현지에서 법적 대응에 나설 경우 국내 송환까지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알 수 없고, 미국 증권거래위원회와 뉴욕 검찰도 권 대표를 사기 혐의로 기소한 만큼 미국 송환 가능성도 있다”고 설명했다.
한미 양국에서 강력하게 원하고 있어 권도형 대표가 한국으로 갈지, 미국으로 갈지 아직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법조계에서는 미국으로 가게 된다면 100년이 넘는 형량이 나올 가능성도 있다고 봤다. 한상준 법무법인 대건 변호사는 “권 대표 입장에서는 한국에서 재판받는 게 유리할 것이다. 미국은 천문학적인 보석금을 납부하면 불구속 재판을 받을 가능성은 있지만 기소된 혐의 8개가 모두 유죄로 인정될 경우 최대 100년 이상의 형이 선고될 가능성도 있다”고 봤다.
홍진현 변호사도 비슷한 의견을 냈다. 홍 변호사는 “미국에서도 권 대표에 대해 사기 등 8가지 혐의로 기소가 이뤄진 것으로 알고 있는데, 미국은 여러 범죄를 저지른 경우 개별 범죄 형량을 합산하는 ‘병과주의’를 채택하고 있고, 한국과 달리 유기징역의 상한선도 없기 때문에 금융 사기범에게 수백 년 이상의 징역을 선고할 수도 있다. 권 대표는 한국보다 미국에서 더욱 중한 처벌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2009년 미국 역사상 최대 규모 다단계 금융사기(폰지 사기)를 벌였다고 알려진 버나드 메이도프는 무려 징역 150년을 선고 받은 바 있다. 메이도프 사기 사건은 확인된 피해자 약 4800명, 피해 금액 650억 달러에 이른다고 알려졌다. 똑같이 비교하긴 어렵지만 루나 사건 피해액은 400억 달러 정도로 추산되고 있다.
만약 권 대표가 한국으로 온다면 서울남부지검이 권 대표의 기소를 담당할 것으로 보인다. 홍 변호사는 “서울남부지검에서는 가상자산 루나, 테라를 증권으로 보고 자본시장법 위반과 사기를 주요 혐의로 권 대표를 수사 중이다. 언론 보도를 통해 이미 검찰이 권 대표가 테라폼랩스 직원에게 테라 시세를 조종하라는 취지의 구체적인 지시를 내린 메신저 대화 내용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만약 권 대표 혐의가 인정될 경우 징역형 실형은 기본, 상당한 중형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