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 관계사서 클레이튼 기축통화 ‘쪼개기 입금’하다 덜미…크래커랩스 “운영자금·신규 프로젝트 위해 매도한 것”
최근 카카오 블록체인 플랫폼 클레이튼에서 발생한 일을 두고 가상자산 사업체를 운영하는 A 씨가 한 말이다. A 씨가 말한 사건은 클레이튼과 관계가 깊은 크래커랩스에서 최근 발생한 ‘믹서’를 통한 클레이튼 기축통화인 클레이(KLAY) 매도 사건이다. 믹서는 쉽게 말해 ‘돈 세탁기’다. 카카오 블록체인 계열사인 크러스트로부터 클레이를 투자받은 곳에서 돈세탁했다는 내용이어서 가상자산 시장에 충격을 줬다.
믹서를 간단히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블록체인의 특징은 모든 거래 내역을 누구나 다 투명하게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투명하지 않길 바라는 사람들이 있다는 점이다. 해커들이 남에게서 돈을 빼돌리거나, 불건전한 자금을 다른 사람에게 보낼 때 믹서를 쓴다. 믹서는 가상자산을 여러 계정으로 보내고, 그걸 다시 합치는 과정을 통해 가상자산의 기록을 섞는 것을 뜻한다. 자금 추적을 피하는 기술은 다양하고 이런 여러 기술을 포괄해 흔히 믹서라고 부른다. 기술은 다양하다.
현실 세계에 대입해 보면, 범죄자가 ATM에서 어디로 돈을 보냈는지 최종 목적지를 찾기 어렵게 하기 위해 한 번이 아니라 순식간에 수십 번 돈을 보냈다고 상상해 보자. 범죄자는 그렇게 옮겨진 그 수십 개의 계좌에서 다시 수십 개 계좌로 보낸다. 이런 방식으로 돈을 쪼개다가 몇 개 계좌는 버리기도 하면서, 한 곳으로 조금씩 합치는 걸 가상자산 시장으로 가져온 게 대표적인 믹서 기술이다.
합쳤다가 쪼갠다는 단어 그대로 믹싱 관련 기술은 많다. 전송 기록을 끊임없이 늘리다가 실제 전송은 이 가운데 하나에 숨기는 방법도 있다. 다양한 믹서 기술로 범죄자는 자신의 거래 내역을 숨기길 원한다. 북한이나 해커들이 많이 써 유명해지면서 미국에서 금지된 ‘토네이도 캐시’도 믹서 서비스의 일환이다. 이번 크래커랩스에서 벌어졌다는 사건에도 이런 기술이 적용됐다.
3월 6일 텔레그램 채널 ‘크립토 체크’에서 한 가지 의혹을 제기했다. 크립토 체크는 “매일 50만 클레이 입금하는 지갑을 발견했다”면서 “어느 한 바이낸스(가상자산 거래소)로 2월 22일부터 3월 6일까지 총 653만 클레이가 입금됐다”고 밝혔다. 당시 시세로 653만 클레이는 약 20억 원 가치였다. 크립토 체크는 “거래 내역 역추적이 쉽지 않지만 일단 기록했다. 언제까지 입금할지 보겠다”고 밝혔다. 해당 지갑 문제가 지적되면서 돌아가던 ‘돈 세탁기’는 3월 7일부로 작동을 멈췄다.
3월 8일 코인 인플루언서 변창호 씨가 이 포스팅을 보고 해당 지갑을 추적했다. 변 씨는 “입금 기록은 없는데 출금만 있는 상태”라면서 “A가 스테이클리라는 De-Fi(탈중앙화 금융)에 정상적으로 입금한 뒤 출금할 때는 스테이클리에서 갑자기 B로 출금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변 씨는 해당 자금을 믹싱해 바이낸스에 매도한 게 크래커랩스 지갑이라고 지목했다. 즉, 크래커랩스가 갖고 있던 클레이를 시장에 매도하면 분명 욕을 먹을 테니, 이를 믹서로 아무도 모르게 팔아 치웠다는 것이다. 업계에서는 다들 ‘이 정도 섞어 놓은 것을 찾아낸 게 신기한 수준이다’라고 입을 모았다.
크래커랩스는 클레이튼 프로젝트를 운영하는 싱가포르 법인 크러스트(Krust)에서 거액 클레이를 투자받은 바 있다. 크러스트에서 거액을 투자한 투자사가 공개적으로 클레이를 매도한 것도 아니고 믹서로 돌려, 돈세탁을 통해 매도한 만큼 클레이튼 커뮤니티 충격은 컸다. 이에 클레이튼 재단은 3월 9일 “현재 제기되고 있는 의혹 관련하여 클레이튼 재단은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 재단은 의혹과 관련된다고 언급되고 있는 크래커랩스에 사실관계 해명을 요청했다. 이른 시일 내에 크래커랩스가 해당 건에 대해 직접 해명할 예정”이라고 공지했다.
가상자산 업계 한 관계자는 “재단이나 관계사는 가진 가상자산을 매각 전 사전 공지하는 게 당연하게 취급된다. 만약 일론 머스크가 ‘절대 팔지 않겠다’던 테슬라 주식을 세탁기로 돌려 몰래 파는 게 적발되면 어떻게 되겠나. 머스크처럼 대표는 아니더라도 크래커랩스도 GC 멤버인 만큼 어느 정도 책임감을 갖고 있어야 했다”면서 이번 일을 황당해 했다. 가상자산 업계 다른 관계자도 “이번 일은 위믹스 유통량 이슈보다 훨씬 더 심각한 일이다. 클레이튼도 위믹스처럼 상장폐지는 물론이고, 그 이상의 처벌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클레이튼은 2월 말까지만 해도 ‘제로 리저브’ 정책을 발표하고 ‘투명한 소통을 꾸준히 하겠다’는 기자간담회 발표를 내면서 200원 대였던 가격이 400원 대로 수직으로 상승하기도 했다. 그런데 3월 9일 260원까지 하락했다. 가격 하락 후에 이번 사건이 원인으로 꼽히기도 했다.
3월 9일 크래커랩스 팀은 해명문을 내고, 해당 지갑이 크래커랩스 팀이 맞다고 인정했다. 크래커랩스는 해명문을 통해 “크래커랩스는 크러스트와의 계약을 통해 클레이를 받았다. 이는 독립된 법인 사이의 적법한 계약에 따라 이루어진 것이다”라면서 “논란이 된 트랜잭션은 크러스트 유니버스나 클레이튼 재단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최근 부족해진 팀 운영자금 및 신규 프로젝트 자금을 위하여 보유하고 있던 클레이를 활용해야 하는 상황이었고, 이 과정에서 되도록 논란과 충격을 최소화하고자 하는 짧은 생각에 다양한 채널로 분산해 클레이를 이동시켰다”고 말했다. 크래커랩스는 “이 방법이 큰 문제가 될 것이라는 생각을 미처 하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이런 해명에도 커뮤니티 반발은 계속됐다. ‘꼬리 자르기’처럼 별개 법인으로 주장한다고 해도 크래커랩스에 많은 클레이가 투자된 만큼 크러스트 등 운영사 책임이 완전히 지워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크래커랩스는 일종의 이사회 멤버라고 할수 있는 클레이튼 GC(거버넌스 카운슬) 멤버다. 커뮤니티에서는 ‘지분 관계만 없을 뿐 큰 돈을 투자받고 책임 있는 자리에 있었는데, 이제 와서 모르는 척 발뺌한다’는 반응이 터져 나왔다.
크래커랩스 관계자는 “이번 거래를 통해 현금화한 적은 없다. 약 250만 달러 규모 클레이를 매도해서 타 코인을 취득했다. 이 과정에서 커뮤니티에서 발생한 논란을 줄이기 위해 다시 클레이를 사서 갖고 있다. 이 과정에서 늘어난 클레이는 소각했다”고 밝혔다.
이어 크래커랩스 관계자는 “(믹싱 기술이 아닌) 시장에 끼치는 악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몇 단계 절차를 걸쳐 분산해 거래소 지갑으로 이동시켰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A 씨는 “시장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자체적으로 믹서를 만들어 전송할 이유가 없다. 이번 믹서는 입금자만 출금이 가능한 De-Fi가 있는데, 이곳에서 특정 함수는 입금된 적 없는 지갑으로 출금을 실행하는 방식이다. 입금자 지분을 다른 곳으로 출금하는 함수가 있는데 이게 이번 믹서의 핵심이다. 이런 방식은 추적이 매우 어렵다. 시장에 악영향을 위해 그렇게까지 추적이 어렵게 만들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인터폴(국제형사경찰기구)은 죄형법정주의에 따라 가상자산 자금세탁 행위 자체를 범죄로 규정하도록 법령을 정비하고, 법률상 자금세탁 방지의무를 부과하도록 권고했다. 인터폴이 자금 세탁 행위만으로도 처벌하도록 권고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다만 한국에서는 아직 제도가 정착되지 않아 해킹, 도난 등 명백한 범죄 목적으로 탈취한 가상자산을 현금화한 게 아니라면 현행법상 처벌하기 어렵다는 게 법조계 시각이다.
코인 인플루언서 변창호 씨는 클레이튼 투명성이 훨씬 높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지금까지 클레이가 소수자의 뒷주머니 챙기기 용도가 아니라는 증명을 하려면, 어떤 경위로 크래커랩스가 막대한 클레이를 가지고 있게 됐는지 내역 공개와 소명이 필요하다. 만약 소명하지 못하면 해당 클레이는 리저브로 반환돼 소각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변 씨는 “확실하게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매듭을 지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건 소수가 다수 피해자를 발생시키면서 크게 한몫 챙긴 사건”이라면서 “클레이튼 정상화를 목적으로 사법 처리, 규제 도입 등이 실현될 때까지 목소리를 높일 예정이다. 최종 목표는 코인판(가상자산 시장) 악습의 고리를 끊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