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소리 났지만 심판 ‘계시기가 문제’ 대국 속개…바둑 누리꾼 “왜 김지석만 두 번 구제 받나” 시끌
지난 23일 2022-2023 KB바둑리그 바둑메카의정부와 수려한합천의 대결에서 초읽기를 둘러싼 해프닝이 두 번이나 일어났다. 주인공은 바둑메카의정부 김지석 9단. 하지만 김지석은 시간패 확정 단어인 마지막 ‘열’ 소리를 두 번이나 듣고도 모두 승리를 거두는 기염(?)을 토했다. 어떻게 된 일일까.
#두 번의 시간초과 시간패
먼저 김지석 9단-박영훈 9단 간의 3국에서 시간패 논란이 발생했다. 이로 인해 약 12분가량 대국이 중단됐다. 중반 김지석이 아홉 소리에 착점하고 황급히 계시기를 눌렀지만 계시기는 가차 없이 ‘열’을 부르며 시간패를 선언한 것.
하지만 시간 안에 눌렀다는 김지석의 이의 제기에 심판은 녹화된 비디오를 돌려보며 판독에 들어갔다. 결국 10여 분간의 대국 중단 끝에 시간패가 아닌 것으로 판정하고 대국을 속개했다. 김지석의 착점과 시계를 누른 동작엔 잘못이 없었고 계시기가 문제였다는 것이다.
그런데 똑같은 상황이 잠시 후 이어진 5국, 김지석과 박정환의 에이스 결정전에서 다시 발생했다. 이번에도 마지막 초읽기에 몰린 김지석은 계시기로부터 “시간초과 시간패입니다”란 소리를 들었지만 다시 판독에 들어간 심판은 이번에도 대국 속개를 지시했다. 역시 기계가 문제였다는 결론이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이후 속개된 대국에서 박정환 9단의 차례에서는 시간은 정지되고 초읽기는 계속 불리는 웃지 못할 상황도 나왔다. 하지만 그쯤은 애교 수준이라는 듯 그냥 넘어갔다.
다른 반칙 상황과는 달리 생방송 도중의 시간패가 미치는 파장은 크다. 대국자의 눈치도 봐야 하고 팀의 승패와도 직결되며, 지켜보는 시청자의 눈도 있어 판정 내리기가 쉽지 않다. 시간도 많이 걸린다.
결국 이날의 해프닝은 정상적으로 막을 내렸지만, 잦은 대국 중지로 이미 대국자나 시청자나 이미 흥이 다 깨져 김빠진 승부가 될 수밖에 없었다.
#속출하는 시간패 막을 묘안은?
대국이 끝나자 바둑 누리꾼들은 결과보다 시간패가 맞느냐 아니냐를 두고 들끓었다.
한 바둑 팬은 “시계가 이미 열을 선언했는데 비디오 판정을 왜 하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사람보다 기계가 정확하기 때문에 전자계시기를 도입했다면서 문제가 발생하니까 다시 사람이 개입하는 것은 옳지 않다. 만약 계시기를 제대로 못 눌렀다면 그것도 대국자의 책임”이라고 주장했다.
다른 바둑 팬 역시 “계시기가 고장난 것이 아니라고 하면 계시기에서 ‘열’ 소리가 나는 순간 무조건 패한 것이다. 앞에서 이미 강동윤 9단 등 많은 기사들이 같은 이유로 시간패를 당한 것으로 아는데 유독 김지석 9단만 두 번이나 구제받은 이유가 궁금하다”고 판정의 형평성에 이의를 제기하기도 했다.
한 바둑 관계자는 “이번 사태가 한국기원과 바둑TV의 총체적인 난맥상을 보여준 것”이라고 말했다. 익명을 원한 이 관계자는 “우선 생방송 도중 대국 중단 사태가 연이어 발생했다. 두 번이나 10여 분간 대국이 중단된 것은 바둑 흥행에 찬물을 끼얹는 절대 있어선 안 될 사고”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심판의 대처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우선 복장부터가 잘못됐다. 카메라에 비친 심판의 모습은 심판인지 일반인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그리고 심판의 생명은 권위인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대국자를 의식하는 모습이 역력해서 그 또한 불편했다. 결정적으로 신속하지 못한 늑장 대처가 일을 더 키운 감도 없지 않다”고 지적했다.
바둑룰에 정통한 김수장 9단도 인터넷 게시판을 통해 “이번 사태는 첫째 심판이 판정하는 동안 선수는 바둑판 앞에서 떠나 있었어야 했으며, 빨리 둘수록 시간이 축적되는 것이 피셔방식인데 굳이 초읽기 아홉에 두는 습관은 대국자가 고칠 필요가 있다”면서 “계시기 고장이 아닌 이상 시간패로 판정했어야 했다”고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이에 대해 한국기원 관계자는 “우선 예기치 않은 사고로 팬들에게 좋지 않은 모습을 보여드려 죄송하다”면서 “당장 다음 경기부터 선수들에게 익숙한 기존 계시기로 교체할 예정이며, 현재 추진 중인 ‘상임 심판제’를 최대한 빨리 도입해 사고 예방에 힘쓰겠다”고 밝혔다.
바뀐 계시기 역시 문제는 있었다. 디지털 모니터와 연동이 되지 않아 대국자의 남은 시간 사용을 볼 수 없어 재미가 반감됐다는 지적이 있는가 하면, 시간을 다투는 경기에서 시간을 확인할 길이 없어 보는 재미가 줄어들었다는 반응도 나왔다. 속출하는 시간패 사태에 묘안이 필요한 시점이다.
유경춘 객원기자